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두개 있습니다. 춘추시대때 전통의 강국이던 진(晉)이 3개의 나라로 분열합니다. 이것을 삼가분진(三家分晉)이라고 합니다. 진나라의 유력가문이었던 한, 위, 조씨 가문이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세나라로 나눠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제나라는 강태공이 세운 강씨의 나라인데, 그 신하인 전씨가 나라를 탈취합니다. 삼가분진과 전씨의 제나라 탈취를 전국시대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춘추시대 때는 제후를 몰아내고 제후의 신하인 대부가 제후를 자처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는 봉건제도의 축을 무너트리는 일로 다른 제후들과 종주국인 주나라의 강력한 제재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주국인 주나라의 힘이 약해지고 제후들의 힘은 강해지고, 또 제후국 내에서도 제후의 힘이 약해지고 귀족들의 힘이 강해지는 하극상이 일어나면서 전국시대가 시작됩니다.
현대에 남은 병법서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입니다. 그래서 보통 손오병법이라고 합니다.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이라면 누구라도 손오병법을 읽고 통달해야 합니다. 한신의 배수진도 손자병법을 응용한 것이고, 조조가 손자병법의 해설서를 낸 것은 유명합니다. 사마천이 살았던 시기에는 사마병법이라는 것이 전해지고 있어서 나름 많이 읽힌 책이었던 모양입니다.
사기열전의 네번째 이야기는 사마병법을 남긴 사마양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마는 벼슬이름이고. 양저는 이름입니다. 성은 전씨이니 전양저가 본명입니다. 나중에 벼슬이 대사마에 올라 사마양저로 불렸던 모양입니다. 병법연구는 제나라에서 많이 이뤄진 것 같습니다. 손무와 손빈이 모두 제나라 사람인데, 전양저도 제나라 사람입니다.
제나라 경공 때 진(晉)나라와 연나라가 동시에 제나라를 쳐들어와 제나라 군대가 연달아 패배하자, 안영이 경공에게 전양저를 추천해서 장군으로 임명했습니다. 전양저는 전씨 가문의 서자로 명성이 높지 않아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갑자기 장군으로 임명하니 모두 놀랐던 모양입니다.
전양저가 경공에게 "저는 근본이 미천하고 아는 사람이 없는데 갑자기 장군으로 임명하니, 병사들은 따르지 않고, 백성들은 불신하니 군주께서 총애하는 귀족 출신 신하중에서 한명에게 감군(군대를 감독하는 직책)을 맡기고 싶습니다."라고 청하니 장고라는 사람을 감군으로 임명합니다. 군대가 출정하기 전날 전양저는 장고에게 "내일 정오까지 군문에서 만납시다."라고 약속합니다.
장고는 귀한 가문 출신으로 성격이 교만하고, 장군인 전양저가 이미 군영에 가 있으니 감군인 자기는 조금 늦게 가도 상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친척들이 차려주는 송별회에서 오래도록 술을 마시다가 정오를 넘겨 저녁에 군영에 도착하게 됩니다.
전양저는 군대에서 군법을 집행하는 군정에게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사람은 군법에 어떻게 처리하도록 되어있는가?"라고 물어보니, 군정은 "참형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돌아가는 사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장고는 부하를 경공에게 보내 목숨을 살려달라고 부탁합니다. 경공은 자기가 아끼는 신하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깜짝 놀라서 사자를 전양저에게 보내 장고를 사면하게 합니다. 아직 사자가 도착하기 전인데, 전양저는 장고를 참수하여 전군의 병사들에게 보이니 모든 병사들이 두려워서 몸을 떨게 됩니다.
이때 경공의 사자가 수레를 타고 군영안으로 달려 들어와 장고를 사면하라고 전하지만, 전양저는 "장수가 군대를 이끌 때에는, 군주의 명을 받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將在軍 君令有所不受)"라는 유명한 말을 하면서, 또 군정에게 "군영안에서 수레를 타고 달리면 군법에 어떻게 처리하도록 되어있는가?"라고 물어봅니다. 군정이 "참형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전양저는 "임금의 사자를 죽일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대신 사자의 마부를 참하고, 수레를 모는 네마리의 말 중에서 왼쪽 바깥쪽에 있는 말을 베어 병사들에게 보이니, 모두 두려워서 군율을 엄정하게 지키게 됩니다.
이 에피소드는 초한지에서는 한신이 한 것으로 나옵니다. 한신도 갑자기 대장이 되어 한나라 군대를 지휘하게 되는데, 전양저의 고사를 빌려와서 한신의 비범함을 묘사했습니다. 초한지나 삼국지는 어차피 소설이라 남의 이야기를 빌려와서 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전양저는 이렇게 병사들의 군기를 세운 후에, 병사들의 어려움을 직접 보살피고, 장군에게 주어지는 먹을 거리를 병사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병사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병들고 약한 병사들을 친근하게 대합니다. 이렇게 장군과 병사들 사이에 신뢰가 쌓이자 사기가 오른 병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기를 원하게 됩니다. 이런 군대로 진과 연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니 연전연승하게 됩니다. 승리한 후에 도성으로 돌아오니 경공은 전양저를 대사마로 삼았고, 전씨 가문의 지위도 제나라에서 높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전양저를 시기한 제나라의 귀족 가문들이 경공에게 참소하고, 전양저는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고 울화로 죽게됩니다. 이 사건으로 전씨 가문이 제나라 귀족들을 원망하고 제나라를 뒤엎을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후에 전상이 제나라 간공을 시해했고, 전상의 증손인 전화는 스스로 제나라의 군주가 됩니다. 그리고 그 후손인 제 위왕이 원래의 <사마병법>에 자신의 선조인 전양저의 병법을 포함시켜 <사마양저병법>으로 부르게 하였고 전나라 사람들은 이를 익혀 제나라가 여전히 군사강국으로 남았다는 것입니다.
전양저의 에피소드에서 병법의 근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병법이라고 하면, 흔히 제갈량같은 책사의 신기막측한 묘책으로 적은 군사로도 대군을 패퇴시키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실전에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자 않습니다.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대군으로 소규모 군대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첫번째 요결은 훈련이 잘된 병사로 적과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신기막측한 계책도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양저는 먼저 군법을 어긴 귀족 출신의 장고를 참수하여 병사들에게 군법이 상하 차별없이 시행됨을 보여 병사들이 군법을 두려워하여 감히 어길 수 없게 만듭니다. 그리고 군령을 잘 설명하고 이를 준수하게 합니다. 이를 열전 원문에서는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병사들에 지급되는 보급품을 점검하여 빠진 것이 없게 합니다. 그리고 사령관인 본인에게 지급하는 보급품도 병사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리고 자신은 병사들과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잠자리에 잠을 잡니다. 병들고 약한 병사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물론 훈련도 강도높게 실시했을 것입니다. 사기가 높아진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전투에 나가겠다고 전양저에게 요청하게 됩니다. 이렇게 장군과 병사가 한몸이 되는 경지가 되면 전투에서 지는 경우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칭기스칸은 부하들에게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쓸데없는 용맹을 발휘해 목숨을 버리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패배가 확실시 되면 후퇴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하를 아끼는 칭기스칸의 진심에 그 부하들은 "칭기스칸이 물을 가리키면 물로 뛰어들고, 불을 가리키면 불로 뛰어드는" 일당백의 병사들로 바뀌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 군법을 어긴 병사들을 곤장때리고, 도망간 군졸을 잡아 참수하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또 보급품이 충실한지 매일 점검합니다. 이렇게 먼저 군기를 엄정하게 해야 실전에서 싸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엄청난 훈련을 합니다. 이순신 장군도 취미 활동이 활쏘기인지 매일같이 활을 쏩니다. 그리고 전쟁에 임해서는 병사들과 한 몸이 되어 싸웁니다. 전투 후에 임금에게 올리는 장계에는 전사한 비천한 군졸의 이름까지 모두 기록해 공적을 기립니다. 이순신 장군은 기기묘묘한 계책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병법의 기본을 지켰기 때문에 승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