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4.01.12.대민(주일낮)
순리대로 사는 삶(민21:1-8)
하나님께서는 성도 된 우리들에게 순리대로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혹 목적이 선하면 과정이야 어떠하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반칙과 변칙을 일삼는 성도들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시간이 걸리고 기다리는 고통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날을 바라보며 순리를 따라 정의와 진리를 따르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성도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말고 창조의 뜻을 따라 마음을 다하여 순리대로 사는 것이 성도의 기본입니다.
탈무드에는 “몸은 머리를 따른다” 는 말이 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따라야 합니다.
유목민들의 생존방식은 동물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의 이동경로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순리대로 동물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동물이 살지고 사람이 잘 되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인 생활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기계는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질서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방향을 하나님의 뜻대로, 순리대로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내 삶의 마지막까지 선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역 방향으로 돌리면 선을 깨뜨리는 혼란이 올 뿐입니다. 인생을 거꾸로 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허가가 없는 인생을 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혼돈 속의 가시밭, 자갈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 해의 두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도된 우리들은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잠언16장1절에 “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리대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은 모두 613가지였습니다. “하라”라고 하는 율법이 248가지이며 “하지 말라” 라고 하는 율법이 365가지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율법을 모두 쓰면 60만 히브리어 문자가 사용되어 지는 데 이스라엘 백성들 장정이 60만명 이었을 때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년은 365일고 아담부터 모세까지가 248세대였습니다. 합하면 613입니다. 그래서 전 역사를 초월하는 율법을 주었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율법중에서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율법사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말씀은 간결하였습니다. 단 세 마디였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자기 사랑”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역사를 되 돌이켜 보면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한 나라들이 강대국이 되고 선진국이 되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순리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순리를 따르는 일입니다. 한주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주일은 육체적인 일손을 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사실 일손을 놓지 않으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일손을 온전히 놓아야 합니다. 그에 따른 손실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잊고 육체적인 쉼을 누려야 합니다.
욕심 부리면 안 됩니다. 우리 신체구조는 엿새 일하고 하루 쉬어야 건강이 유지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거스르면 몸에 무리가 오게 됩니다. 그것이 나중에 병이 됩니다. 하나님이 쉬라고 하면 푹 쉬면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라고 하면 열심히 일하면 됩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 순리대로 사는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의 모든 법칙을 우리가 순리대로 따라가야 하듯이 하나님의 법칙에 순리대로 따라가면서 기다릴 수 있는 신앙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1.여호와의 승리를 믿어야 합니다.(1-3)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진행하는 중에 아랏 이라는 나라와 싸우게 되는데 전쟁에 져서 여러 사람이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이 위기에 단결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전쟁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 이기고 그 땅을 호르마(멸망의 자리)라 불렀습니다.
3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붙이시매 그들과 그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여기 호르마라는 말은 파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사람 아랏왕을 파멸시킨 기념으로 붙힌 땅의 이름입니다. 아랏왕이 이스라엘을 먼저 건드렸습니다. 몇 사람을 잡아갔습니다.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승리는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군사가 많고, 전략이 좋고, 무기가 좋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앞서 행하시는 여호와"(신 1:30)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앞서 행하시는 여호와란 말은 미리서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이요 미리서 공급해 주시고,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열왕기상8장27절에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고백을 듣기에 족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은 시원찮은 분으로 끌어내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약하며 유한하며 약속을 지키시지 않은 분으로 생각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의 크기는 얼마만합니까? 그는 성경에서 말하는 만큼 무한하신 분이십니까? 오늘 주눅이 들어 있는 우리의 현실에 있어서의 하나님은 너무 왜소하지는 않으십니까?
그런 사람들은 작은 문제에도 쉽게 낙담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무슨 일이 이루어 지면, 모두 자기 힘인 줄 착각하는 것도 더 큰 문제입니다. 자기의 울음소리에 태양이 떠올랐다고 믿는 수탉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크고 위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져가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는 결코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보여드리기에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문제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우리는 승리합니다. 승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전쟁이 없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쟁은 없으면 더 없이 좋은 일이지만 전쟁은 다른 것과는 달라서 결코 시작되면 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는 것은 때때로 이기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은 전쟁에서는 합당한 말이 아닙니다. 지는 것은 때때로 분통이 터지고 괴로운 일이지만 특히 전쟁에 지는 것은 정말 못 견딜 노릇입니다. 패전국의 국민은 자유를 잃고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쟁에서는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속에도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이것은 혈육과 같이 때때로는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보이는 전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전쟁입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적전쟁에서 우리가 지면 우리는 마귀의 종이 됩니다. 참 자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많은 절박한 상황을 만납니다. 그럴 때마나 내가 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하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이 함께 계시는 한 우리는 이것들을 이길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지는 자가 되지 아니하고 이기는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겨우 견디어 내는 승리가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차고 넘치는 승리가 될 것입니다.
신명기28장7절에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순종하는 자의 적을 물리치신다는 약속입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대적을 치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치려고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대적이든지 하나님이 물리쳐 주십니다. 아무리 강하고 수가 많아도 막아주시고 물리쳐 주십니다.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대상17:10) 하나님께 복종하면 대적자를 복종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우리의 대적입니까? 나의 것을 빼앗는 자를 험담하는 자들, 멸시하는 자들, 조롱하는 자들, 핍박하는 자들, 넘어뜨리려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굳건합니다.
“너를 대적하는 적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리라”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으로 적을 이긴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도 된 우리가 하나님의 순리대로 순종하며 살아간다면 우리 삶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승리를 허락해 주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4-5)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생활 말미에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가나안 땅 근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으로 가려면 에돔이라는 나라를 통과해야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돔에 정중하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을 테니 지나가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에돔이 완강하게 거부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먼 길을 돌아가야만 하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향해 먼 길을 우회하기 위해 호르산을 출발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자기들이 왔던 광야 길로 되돌아가야만 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 여기저기서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합니까? 여기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고 이 끔찍한 음식 곧 만나도 진저리가 납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9번에 걸친 원망 중에서 마지막에 해당되는 원망입니다.
하지만 원망의 정도는 가장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원망은 주로 모세나 아론과 같은 지도자에 대한 원망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겨냥해서 원망을 쏟아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으로 광야를 방황하게 하신 이유가 불신앙적인 태도와 아직까지도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잊지 못하는 출애굽 세대의 진멸을 위해서였는데, 과거를 회상하면서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출애굽 세대들이 다 죽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감사할 조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유와 해방, 만나와 메추라기, 구름기둥과 불기둥, 반석의 샘물과 십계명 돌판, 하나님과 맺은 언약까지 감사할 조건들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특히나 그들이 먹었던 만나는 그 누구도 먹어보지 못한 하늘의 양식이었습니다. 맛 또한 기가 막히는 고급 영양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만나를 향해서 한다는 소리가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입니다.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가고 없고, 현실의 어려움만이 남아 그들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바를 오히려 원망거리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것은 천번 만번 감사해야 했을 것입니다. 날마다 하늘의 만나를 먹고사는 기적생활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만나는 결코 박한 식물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16장31절에 만나의 맛은 꿀 섞은 과자 같다고 했으니 원망한 자들은 거짓된 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78편9절에 "하나님은 그 맛있는 만나를 저희 소욕대로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탐욕의 소산 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78편10절에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저희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어려운 상황이 주어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볼 때 하나님은 살려주는 하나님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들을 살려주시기는커녕 오히려 식물도 없고 물도 없는 곳으로 몰아 넣으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왜 하나님이 자기들을 죽게 만드느냐며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고생의 길로 인도하신 것은 그들에게 감춰져 있는 죄를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때때로 그런 식으로 일하십니다. 남보다 뒤쳐지게 하거나 자존심이 상하도록 하기도 하십니다. 남보다 앞서 있을 때는 여유를 가지고 자기 신앙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착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자존심 상하는 문제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도록 하십니다. 예를 들어, 운전할 때 옆 차가 끼어 들면 신경질을 냅니다. 평소에 자신은 늘 관대하며 다른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일을 당함으로써 자신도 역시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도록 하시는 이유는 먼저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그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며, 그래야만 참된 안식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들을 잘 되게 해 주시는 분이시지 어렵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심령이 상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나님과 주님의 종이 싫어지게 되고 원망이 앞서게 되고 세상의 삶이 그리워집니다. “예수 믿고 잘 된 것이 무엇이 있나 차라리 아무렇게나 살던 때가 더 좋았다” 하며 세상 삶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싫어지고 말씀의 맛이 없어집니다.
설교 듣는 시간이 길고 지루해 지고 비평하고 평가하는 자리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의 상태를 점검하려면 내가 설교를 듣는 자세가 어떠한가 살펴보면 자신의 심령의 상함과 건강함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만나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스라엘백성들처럼 박한 음식으로 느껴지면 우리의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이 체질화되어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원망합니다. 원망하면 모든 것이 깨지고 무너집니다. 파멸과 멸망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도 빼앗겨 초라하게 됩니다.
순리대로 사는 삶은 원망이 아닙니다.
원망하기 보다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감사할 일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특별한 일에서 감사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려면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란 그냥 저절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며 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배우면서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란 고마워하기를 선택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의도적인 감정입니다. 하루에 감사한 일 다섯 가지만 기록한다면 훨씬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현재상황에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순리대로 사는 삶입니다.
3.기도를 요청해야 합니다.(6-8)
“여호와께서 불뱀 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불편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고의 은혜를 베풀고 게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 하고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불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냈습니다. 불뱀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마침내 불뱀으로 인한 그 죽음과 고통의 현장에서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즉각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당신을 향하여 원망을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가 왔다고 고백을 합니다.
7절에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징계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살 길이 서서히 열리는 법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불필요한 고집을 부리거나 불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은 징계로서 초자연적인 방법을 동원하시는데 이 일이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5장9절에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주로 매를 맞아야 정신을 잘 차립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우리는 그런 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물로서도 하시고, 불로서도 하시고, 때로는 전쟁의 고통을 통한 징계로도 하시고, 전염병으로도 하시기에 그 심판이 무서운 것입니다.
성도들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나 회개할 이유가 있을 때 기도를 요청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불뱀에 물려 죽음에 있어서 이 죽음에 문제를 해결을 하는 길은 하나님에 종 모세를 찾아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길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알려 주셨습니다. 불뱀을 놋으로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놋뱀을 들고 다니면서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살 것이라고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모세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불뱀에 물려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장대를 들고 이 불뱀을 보는 이들은 다 살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 놋뱀을 보는 이들은 다 생명을 받았습니다.
사실은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 종들을 찾아가 해결을 본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역사 속에서도 기도의 요청을 통하여 문제 해결을 본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때의 일입니다. 영국군 335,000명이 프랑스 해안 단케르트라는 곳에서 독일군에게 완전 포위되었습니다. 독일군은 절호의 기회를 얻자 육해공군을 총동원하여 영국군을 전멸시키려 하였습니다. 이런 위험 상황을 보고 받은 영국수상 처칠은 위기를 모면할 방안을 여러 가지로 궁리하였으나 무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함을 깨닫고 전국에 있는 교회와 국민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군인은 싸우면서 기도하고, 온 국민들은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독일군이 작전 날짜로 잡은 바로 그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땅에 갑자기 때아닌 폭우가 몇 일 동안 쏟아져 전차는 진흙에 빠져 전진할 수가 없었고, 독일군 전투기들은 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있는 도버해협은 맑은 날씨에 바다는 잔잔했습니다. 그래서 영국군은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이 모두가 다 포위망을 뚫고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위기에 처한 한 나라를 기도로 지킨 것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신앙의 성공자들은 한결 같이 기도했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작정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의 간구를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5장17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교회지도자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장로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프레스뷔테로스'라는 단어로 감독이라는 말과 목사(엡4:11, 딤전3:1)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교회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교회지도자는 고난가운데 있는자(질병, 가난한자, 낙심한 자. 심령이 연약한 자)와 진리에서 떠난 자(19-20절)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지도자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들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어렵고 힘들일을 만났을 때 중보기도를 요청해야 합니다.
|
|
첫댓글 누군가를 위한 중보기도 열심히 하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