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투박한 항아리의 변신. (수기).
나는 실로 무식한 사람이고 말주변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는 떳떳이 말 할 수 있다,
투박한 항아리의 변신.
투박한 빈 항아리로 살면서
황금을 담을 것을 꿈꾸었네.
온갖 보석으로 가득 채우기를 갈망하였고
사랑의 향기 뿌려지기를 바람이여
누가 나를 투박한 항아리라 하여도
말 없는 언어장애로 살며
내 안에 온갖 보석으로 채우기를 바랐지만
당신은 내가 노력하지 않는 한
여전히 투박한 항아리로만 살아야 한다고 했네.
나의 노력이 조그만 꽃을 피우는 날
당신은 시인이란 날개를 달아 주었고
내 안에 심어준 온갖 보석들로
칠보단장한 신부와 같이 꾸며주었지
지성이면 감천이라
드디어 부족한 저에게
심혼을 흔들 수 있는 시어로 채우시어
나로 한 마리 파랑새 되어
뭇사람의 머리 위에 행복의 씨앗을 뿌리며 살게 했지.
* * *
나는 중학교 시절 공부도 못하였고, 지금도 남 앞에서 말도 제대로 잘하지 못한다.
결혼 후 자녀를 셋 두었으나 원만하게 공부 시킬 능력도 없었다.
학원에를 보낼 형편도 못되고 하여 내가 직접 가르쳐야 되겠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일하고 와도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 했다. 공부를 가르치는 시간에는 절대로 못한다고
나무라지 않았고 꾸중 할 때는 공부를 하지 않을 때 꾸중했다.
나 자신도 모르는 것은 스스로 공부했고. 특히 음악이론은 신전교회 청년 “김윤영” 선생으로부터 배운
기초 이론을 가르쳤더니. 진우는 그것 한 가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교회 안에서는 다른 집안 아이들이 공부 잘한다고 소문이 나도 우리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이제야 말이지만 우리아이들은 모두 중학교 까지 우등생을 놓치지 않았고 두 딸아이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공부에 간습하지 않았다. 아들 진우는 고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도 영어를 가르쳤는데 혼자서 독학하며
배운 실력이라 엉터리 실력인줄도 모르고 영어 단어를 발음기호대로 불러 주면 진우는 알아듣고
단어를 쓰고 있는데 하루 저녁에는 큰 딸아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는 배를 잡고 깔깔 넘어가도록 웃었다. “왜 웃느냐”? 하니까
“엉터리로 불러주는 아버지나 그것을 알아듣고 쓰는 아들이나 똑같다.” 하였다.
그 말을 듣고는 “아하! 이제는 더 이상 못 가르치겠구나.” 생각 하고는 앞으로는
너희들 알아서 열심히 하라고 하고는 손을 떼었다.
그 당시 컴퓨터가 처음 나온 시절이라 모두들 컴퓨터에는 생소 했는데 진우는 혼자서
컴퓨터에 관한 책을 사와 혼자 독학으로 컴퓨터 다루는 법과 컴퓨터 고치는 기술을 익혔고.
부품을 구입하여 컴퓨터를 조립하여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는 컴퓨터를 사달라고 하여 시험처서 반에서 일등만 하면 사준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늘 3~4등 하던 아이가 다음 시험에서 일등을 하여서는 컴퓨터 사달라고
하는데 그 당시 내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고 3~4개월 모아야 될 판이라.
기쁘면서도 기가 찼다. 그리하여 아이는 자꾸 조르는데 돈은 없고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촌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더니
어머니께서 돼지 기르는 막내 동생에게 이야기 하여 그 당시 돈으로 240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컴퓨터를 사주었다. 아이가 얼마나 기뻐하든지!!!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작은 삼촌 말이라면 껌뻑한다. 그리고 특히 삼촌 집에
간다면 좋아한다.
고3이 되어 진학 문제로 오라하여 집사람(차상옥 권사) 이 선생님을 찾아 갔는데.
선생님께서 진우 어느 학교로 보내겠느냐? 물었고 진우는 한양대나 연세대 컴퓨터 과 로
가겠다하고 선생님과 차권사 는 부산대 치의예과로 가라고 하여,
진우는 극구 반대 했으나 선생님과 집사람이 계속 설득하여 결국 부산대 치의예과로 결정을
보았다 하였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진우는 화가 나서 “엄마는 내게 아무 도움도 안된다” 고
하였고 1m85,의 장신으로 긴 다리로 운전석 의자를 힘껏 밀어 뻗치니, 운전기사가
눈치를 채곤 긴장을 하더라. 는 애기를 들었다.
그랬으나 지금은 제 직업에 만족 하는 모양이다.
큰딸 주연이 는 장학금을 몇 번 받고 과외를 하여 집안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십일조와 고르반) 에 기술 하였고. 지금은 날마다 전화로 안부를 물어온다.
작은딸 주현이 는 그 당시 제 성적으로 부산대 교대에 들어 갈수 있었는데 겁을 먹고
고신대 아동학과에 들어가 사립이라 학자금이 조금 많이 들어갔으나 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여 지금은
병설유치원 원감이 되었고, 원감 자격정과 혼자 써는 원감 실 사진과 명패를
사진 찍어 엄마에게 보여주러 가지고 내려왔으나 그것을 보지 못하고 먼저 소천 하였다.
엄마의 죽음에 현아가 제일 많이 울었다. 용돈도 제일 아끼며 지냈고
지금은 나의 모든 세금은 자동이체 시키고 나의 살림살이 까지 현아가 휴대폰으로 한다.
우리 식구들은 좀 내성적 인데 비하여 며느리 ‘복현정“ 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무용도 잘하고
활달하고 사람도 잘 사귀는 성격이라 좋았고 자녀들도 잘 건사하고 지금도 영어 화화를
공부하여 외국에 나가면 외국인들과도 잘 소통하고 시아버지인 나에게도 격이 없이 잘 한다.
친척들 특히 서울에 사는 작은 고모가 많이 칭찬한다.
교회서도 며느리 잘 보았다고 하는 분들이 여럿 있다.
글 쓴다고 6~7년간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고 운동 부족에다 젊을 때부터 한참 크는 나이에 위장병으로
시달리다 보니 나는 키도 작은 편이고 외소 하다. 지금도 소화제를 먹고 있다.
집사람 돌아간 후 자녀들과 며느리마저 거북목 이라며 고개를 들어라 어깨를 펴라 다리를 앞으로 쭉쭉 뻗어라 하여.
열심히 하루 한 두 시간씩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요즈음은 걸음걸이도 힘차고 반찬이며 옷 같은 것도 계절에 맞게 사줘 집사람 소천 후 한 달 반 만에
완전히 제정신으로 돌아 와 지금은 아무도 없는 집에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다.
이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송죽 : 박외도.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 (시편136편1절.)
*한글 맞춤법 검사기에 넣어보지 못하여 맞춤법이 많이 틀릴 수 도 있습니다.
첫댓글 반갑고, 감사합니다.
금년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올려주신 精誠이 깃든 作品 拜覽하고 갑니다.
恒常 즐거운 生活 속에 健康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