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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국물 좀 없어요? 커피를 여러 잔 마셨더니 속이 쓰리네. 밤새 도미자 할머니 쫓아다니느라 눈썹 씨름도 못해봤어”
국솥에 멸치가루를 넣고 젓다가 갑작스런 인적기에 놀라서 국자를 놓쳤다. 아니다. 도미자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하마터면 뜨거운 국솥에 손을 넣을 뻔 했다. 아직 인수인계를 하지 않은 김 선생과 이 선생이 충혈 된 눈으로 소리도 없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 배식구 앞에 서 있다.
“도미자라니? 이름이 뭐 그래? 특이한 이름이네?
“응 일본식 이름 이래 첫날이라 낯설어서 그런지 밤새 자리 틋 을 하시느라 한 숨도 안주무시는 거 있지. 아홉시쯤에는 베개를 보듬고 애기라고 젖 먹인다고 한 시간은 앉아서 불을 못 끄게 해서 다른 할머니들도 못 잤지. 열두시쯤은 해바라기 방 웅규 할아버지 침대머리맡에 가서 할아버지한테 갖은 욕설을 다 하더라. 두시쯤 되자 폭탄이 떨어진다고 침대 밑으로 들어가 납작 엎드려 계서서 불을 환하게 켜니까 나오질 않나. 간신히 침대에 재웠는데 세시 반쯤 되자 라운딩 하느라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어느 참에 복도에 나와서 대피하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다른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다 일어났지. 덕례 할머니는 잠을 못 자게 한다고 달려들어 할퀴려 들지 정녀 할머니는 욕하지 그런 난리굿이 없었네 ”
“우리 3층은 조용했는데 2층은 엄청 힘들었네. 새로 입소하면 적응기간이 필요해. 내일 저녁은 내가 2층인데 한참 앉아 있을 시간도 없겠네. 뭔 할머니가 치매가 그렇게 심하냐? 어디서 오셨는데 가족은?”
“글쎄 가족 사항이 별로 기록된 게 없던데, 어제 저녁에도 식사하시다 남석 할아버지한테 뜨거운 국을 가슴에다 부으며 예끼 이 죽일 놈 나쁜 놈 하고 욕하는 통에 소동이 낫대 사연이 많은 분이 신가봐”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다 고등어조림이 바짝 졸았다. 하마터면 태울 번했다. 잎 떨어진 감나무 가지위에 까치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있다. 도미자 할머니가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는 남석 할아버지는 얼굴이 붉으레하여 피부가 곱다. 93세인 할아버지는 거실이나 물리치료실 어디든 상관없이 바지를 내리고 자위행위를 해서 생활지도사들을 당황하게 한다. 가끔 남자선생들한테 오팔팔이나 옐로우촌으로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쓴다했다. 꿈을 꾸는 듯 애인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남석 할아버지 강적 만났다 이 방 저 방 할머니들 방 기웃거리시며 이상한 짓 하시더니”
“어제도 고촌 할아버지와 한 바탕 싸울 뻔 했다지 순엽 할머니 방 기웃거리다가”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못 말려”
“얼른 올라가세 인계하려면 바빠”
갑자기 눈자위가 가렵다. 내 왼쪽 눈썹가운데 돌로 맞은 녹두알만큼 한 흉터 하나가 있다. 어린 날 대문 앞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를 할 때 옆집 수야가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며 던진 돌에 맞은 상처다. 뜨거운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고 그녀들이 빠져나간 식당은 조용하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한다. 고무줄놀이 할 때 불렀던 노래 한 대목이 생각났다. 니 네 모르나 도꾸샤 니네 모르나 도꾸샤 도꾸샤. 도꾸샤는 도꼬짱 도미자 언니를 지칭한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이리저리 매만진다. 어제 한 파마가 적응이 안 되고 영 낯설다. 눈 밑에 언제부터인가 까무잡잡한 반점들이 야구선수들의 눈부심을 방지하기 위해 그린 것만큼 뚜렷하게 그려있다. 콤팩트를 계속 두드린다. 거울에 매달린 신발이 흔들린다. 한 방울 눈물이 신발 코 위로 뚝 떨어진다. 신발을 만들어 매달던 두 달 전을 떠올린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오늘도 눈물이 흘렀다. 다시는 울지 말아야지 다시 한 번 신발을 흔들어본다. 초록색과 빨간색이 알맞게 배합된 신발은 예쁜 꼬마가 그네를 타는 듯 행복한 모습으로 흔들린다. 화장대위에 어제 받은 편지가 얌전히 접혀있다. 동생은 말한다. 누나 우리 집에도 행운이 왔나봐. 얼마 전에는 송아지를 한 마리 샀는데 오늘은 우등상을 탔어. 퇴근하면서 학용품과 책을 사서 보내야겠다. 델리바리를 맞추느라 밤 12시까지 야근을 하다가 통금에 걸려 자취방에 갈 수 없었다. 다음날 출근해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려면 시간을 아껴야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회사의 숙직실 방에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완성 반 김 주임이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불러냈다. 김 주임은 수염자리를 언제나 깔끔하게 깎아서 말끔한 모습이다. 야식으로 먹은 라면국물에 한 잔씩 마신 소주가 덜 깼는지 얼굴이 불그레하다. 그는 공장 사장의 조카로 우리들의 일당을 책정하는 공장에서 실세다. 공장 뒤 켠 아카시아 나무 밑에 있는 벤치에서 내 재봉 바늘땀이 성글다고 화를 낸다. 밤에 보는 아카시아 꽃은 파랗게 보였다. 그의 어깨너머로 심술 고약한 도깨비 한 마리가 길고 검은 그림자를 끌며 하얗게 덧난 송곳니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지붕위에서 내려다보며 야옹 거렸다. 달은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석 달쯤 지나고 결근계를 3일 냈다. 자취방에서 미역국을 끓여 먹으며 가을달이 처량하게 맑아서 불도 켜지 않은 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지붕 위에 갓 태어난 고양이 새끼가 어미를 찾는지 여린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실컷 울고 나니 후련했다. 불을 켜고 반짇고리를 꺼냈다. 색깔이 예뻐서, 천이 고와서 모아두었던 자투리 천으로 작고 앙증맞은 아기 신발을 만들었다. 한 땀 한 땀 정성 들였다. 바닥에다 가죽을 덧댔다. 두 짝을 가만히 한 손에 올려놓았다. 다른 여공들도 예쁘다고 저마다 부탁들을 했다. 일하는 틈틈이 자투리 천으로 아기 옷을 만들었다. 한 뼘 되는 멜빵바지, 대학노트만한 원피스, 잠바스커트, 베레모 등 다른 여공들의 화장대나 거울, 책상위에, 벽이나 유리창에 장식했다. 작은 옷본을 만들었다. 여공들은 가끔씩 옷본을 들고 갔다. 샘플실로 자리도 옮겼다.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제품의 샘플을 맡았다. 월급도 많아졌다. 다른 미싱공들을 가르치는 반장이 됐다. 여공들에게 쉽게 만드는 나만의 방법들을 가르쳤다. 가끔씩 재봉질 대신 풀로 붙이기도 했다. 그것들이 만들어 진 날은 우리들은 미역국을 끓이고 삼겹살에 상추쌈을 먹으며 청승맞게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나 동백아가씨를 소리소리 지르며 불렀다.
흰죽을 끓였다. 도미자 할머니가 밤새 주무시지 않았다고 했다. 늦잠을 주무시고 아침 식사를 거른 할머니를 위해 죽을 가지고 올라갔다.
“김 선생 도미자 할머니 식사 좀 드려보지”
그녀는 아직 자고 있다. 새록새록 코까지 곤다. 나이에 비해 피부도 하얗고 얼굴이 곱다. 속눈썹이 긴 그녀의 모습이 도미자 언니를 닮았다. 이마를 찡그리고 입술을 꼭 앙다물었다. 가만히 그녀의 손을 쓰다듬었다. 야위고 까칠하다. 내 팔목 반 만 하다. 이불 밖으로 나온 발이 손안에 꼭 들어온다. 가만히 이불을 덮었다.
“할머니 아직 못 일어나셔 늦게 주무셨거든 약 드시고 주무셔” 돌보는 생활지도 선생의 말에 죽 담긴 쟁반을 놓고 방을 나왔다. 간호사실로 들어서니 그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도미자 할머니 좀 봐 엊저녁 내내 베개를 업고 자장자장 하고 다니며 다른 방 할머니 잠 다 깨우고 다녔다네. 오늘은 하루 내내 축 쳐져 주무실거야.”
“아 그 할머니 저번 날은 저수지 둑까지 가서 물을 바라보며 아가아가 하고 부르고 계시더라구. 뒤쫓아 붙잡아 모셔 오느라 생고생을 다 했어. 아이를 나서 잃어버린 사연이 있나봐. 가끔 베개를 안고 어르기도 하고 기순이 할머니를 아들이라고 손을 잡고 다니기도 해. 당신 소생은 하나도 없다는데.”
“그 조카란 분이 신경정신과 의사하고 상담한 내용에 의하면 정신대에 다녀왔대 길가다가 일본 군인한테 잡혔대 그게 열일곱 살이었대 그것도 학교에 가다가, 아이를 낳았는데 낳자마자 당신 손으로 아이를 엎었다더라. 일본 놈 씨는 받아 기를 수 없다고. 정말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야 그 상황에서 그럼 아이를 낳았다고 기를 수가 있었겠냐? 그것도 원하지 않는 아이를”
“할머니는 그럼 해방되고 나서 결혼도 못 한 거야?”
“아이 셋 딸린 홀아비네로 시집갔는데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병들자 그 자식들이 돌보지 않은 모양이야.”
“낳은 부모도 안 모시는데”
“대부분 시설에 오시는 분들 평탄하게 사셨던 분들은 드물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무난하게 별 탈 없는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해야지 이를 테면 죽는 연습을 해야지 ”
선생들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주방으로 내려왔다. 빈 감나무 가지에 앉았던 까치 세 마리가 희고 검은 바둑 빛 날개를 부채같이 좍 펴서 내려와 마른 논에 앉는다. 이른 저녁식사를 찾는 모양이다. 해는 발갛게 익은 홍시 빛깔로 앞산에 걸쳐있다. 저녁쌀을 씻으며 나는 노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그 노래를 언제 불렀는지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중얼거렸을 뿐이다. 뒤 숲에서는 멧새들이 지절된다.
“니 내 모르나 도뀨샤 도뀨샤‘
“할머니 뭐 하세요”
“우리 아기 배게 만들어 근데 너는 어디서 왔냐”
“예 저는 서울서 왔어요 할머니는 요?”
“응 나 사이판서 살다왔다. 거기서 아들 낳았다. 우리 아들 기저귀 끊게 가재 베 한 필 만 끊어다 주소. 군표 나오면 주께 내 이 편지 좀 부쳐주어”
곱게 접은 두루마리 휴지를 내 손에 꼭 쥐어준다.
“할머니 어디로 보내드려요?”
“입암면 선들 마을 퇴촌”
그녀는 손수건 두 장을 겹쳐서 꿰매고 있다.
“응 우리 아들 바지 만들어 내일이 우리 아들 백일이라네.” 바느질을 하는 도미자 할머니 손등에 오전 햇살이 창 너머로 넘어와 따뜻하게 비추고 있다.
“뭐하세요?”
“우리 아기 젖 주지 뭐해”
베개를 가로 안고 바짝 말라 콩알만 한 젖꼭지만 달랑거리는 가슴을 비빈다. 도닥도닥 그녀의 마른 어깨를 두드리고 방을 나왔다. 긴 가뭄 끝에 단비가 꼽꼽하니 내리는 오후였다.
할머니는 마늘을 대문 앞에 묶어 걸었다. 급하게 밥을 지어 소복하게 한 그릇 담고 물바가지에 물을 가득 붓고 간장을 한 사발 타고 파를 송송 썰어 넣었다. 도미자 언니를 대문 앞에다 앉혀놓고 칼로 머리를 넘기고 바가지 물을 뿌렸다.
“엣세세 엣세세 임진년 10월 열사흘 날 올해 열여덟 김 씨 처녀한테 붙은 물에 빠져 죽은 귀신 시집못가 죽은 처녀귀신 장가 못가 죽은 몽달귀신 각종 거래귀신들은 밥 한 그릇 정성껏 차렸으니 이 밥 한 그릇 먹고 저승길로 달개가고 우리 김 씨 처자한테서 뚝 떨어지소. 엣세세”.
할머니는 사설과 함께 칼을 던지자 날을 밖으로 향하여 땅에 꽂혔다.
“칼날이 밖으로 향했으니 다 잘 되었니 그려”
그리고 할머니는 도전 댁에게 일렀다. “조용히 하고 애 일어나거든 따뜻하게 밥이나 잘 멕이고 뭔 소리 할 것 없네. 아이고 세상에 무슨 일이 이런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너무 험해지니 밤길을 어찌 다니겄노. 도꼬짱 탈 없이 일어나야 할낀데 걱정이다.”
“어머니 무슨 일입니까? ”
“아 도꼬짱이 밤늦게 퇴근하다 헛것을 보고 놀랬대. 별 탈 없어야 할건데...”
도꼬짱은 아래채에 세들어 사는 할머니의 먼 친척이다. 도미자 언니는 가끔씩 나에게 인형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업어 주기도 한다. 언니한테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엄마하고는 다른 냄새다. 할머니는 자꾸만 별 탈 없어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그날 도미자 언니는 산발한 채 가위로 방바닥을 찍고 있었다. 옷을 찢으며 울었다가 웃었다가 하는 모습과 할머니, 어머니, 도전 댁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오빠나 언니에게 떠벌렸다. 그리고 키들키들 웃었다. 그 다음날 우리 골목에는 그 노래가 퍼졌다. 고무줄을 할 때도 공기 돌을 할 때도, 어느 장날 도미자 언니엄마는 푸른 대 향기가 물씬 풍기는 직사각형 뚜껑이 달린 대바구니를 사왔다. 나는 저 큰 바구니에 약과나 산자를 담아 놓으면 얼마나 오래 먹을까? 하고 꼴칵 침을 삼켰다. 날씬한 언니는 갈수록 뚱뚱해졌다. 방을 기웃거리다가 뭔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언니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리고 언니엄마의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해라 동네사람 듣겄다.”
.도미자 언니 엄마는 마당에서 노는 우리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한참을 걸려 심부름을 하고 왔을 때 언니의 엄마는 빨래를 이고 강으로 가고 있었다. 빨래다라 위에는 새로 산 뚜껑 달린 대바구니가 얹혀 있었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언니의 엄마 등 뒤에 역시 울어서 눈이 퉁퉁 붓고 배가 홀쭉해 보이는 도미자 언니가 있었다. 그 아이도 모세처럼 아주 부자 집에서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는 상상을 했다.
“그 몸으로 나오지 마라. 내 얼른 댕겨오마.”.
“니 내 모르나 도꾸샤 니 내 모르나 도꾸샤 그때 빨래할 때 그때 빨래할 때”
우리는 아무 의미 없이 그 소리를 하면서 놀았고 웃었다. 할머니는 우리를 혼내셨지만 소용이 없었다. 도미자 언니는 여러 날을 앓았다. 언니는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읍내에 있는 다방에 레지하러 다녔다. 입술에 빨간 루즈도 칠했다. 인형 옷도 인형도 만들어 주지 않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팔로 안아주는 날도 없고 잘 웃지도 않았다. 그 전의 언니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산에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봄이 되었다. 나는 하얀 손수건을 접어 옷핀으로 가슴에 달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받아쓰기를 100점 받아 동그라미 다섯 개를 받았다. 기쁜 마음에 달려 왔더니 왠지 온 집에 텅 빈 듯,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가 도미자 언니네 살던 부엌에서 나오며 저고리 고름으로 눈물을 찍었다. 도미자 언니 네가 이사를 가는 중이었다. 방안에는 이불 보퉁이 두 개와 옷 보따리 하나가 덩그마니 놓여있었다. 종율이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밤기차를 타고 서울로 간다고 했다. 도미자 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한 번 꼭 껴안아 주었다. 언니한테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는 화장기 없는 언니가 큰 이불 보퉁이를 이고 긴 그림자를 끌며 밤기차를 타러 가는 것을 보았다. 도미자 언니 네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종율이 오빠가 태어나서 중학교를 입학할 때까지 살던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갔다. 인제는 도미자 언니가 가끔씩 갖다 주던 기막히게 맛있는 오트밀을 먹을 수 없다. 언니에게 안겨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종율이 오빠의 까까머리를 쓰다듬으며 좋아할 수도 없다. 나는 내가 도미자 언니의 소문을 내서 이사를 가게 된 것 같아 마음이 찔렸다. 봄 내내 우리는 도미자 언니 네가 떠나간 빈집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연극을 하면서 아무 일 없는 듯이 그렇게 일상을 보냈다.
꿈을 꾸었다. 큰 호수의 물은 푸르다 못해 하얗게 거품을 품어대듯 일렁이고 있었고. 곱게 단층 칠 한 정자 옆에 너무도 예쁜 꽃가마 한 채가 서있었다. 포졸 복을 입은 여러 남자들이 가마를 에워싸 있었고 도미자 언니가 고운 색동옷을 입고 정자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소리를 쳤다. 언니 안 돼! 타지 마 그 가마를 타면 안 돼 오줌이 마려워서 호수가로 갔다. 아랫배에다 힘을 꽉 주었다. 시원했다. 아 차 잠이 깼다.
“할매!” 코를 골고 주무시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셨다.
“이노무 가시나 또 오줌 쌌구나.”
철썩 엉덩이를 맞았다.
새벽의 산은 어둠에 잠겨있다. 억새가 저희들끼리 몸을 비비며 노래한다. 억새들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는 스산하다. 요양원이 있는 산으로 가는 길은 어둡고 무섭다. 건너편 산에서 파란 불꽃이 꼬리를 길게 끌고 있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한 발짝 걸음을 걷고 뒤를 돌아다본다. 다시 한 발짝 뒤를 돌아다본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요 모퉁이만 돌면 불빛이 보일거야 새벽운동 나온 할머니들도 계실거야. 도깨비가 좋아할 노래를 생각한다. 니 내 모르나 도꾸샤 니 내 모르나 도꾸샤 무섭다. 공장에서 밤일을 하고 오다 도깨비에게 홀려 옷이 찢겨 온 도꼬짱 언니가 생각난다. 그래 도깨비가 니 내 모르나 도꼬짱 하고 불렀다지. 저수지쯤에 환하게 불빛이 보인다. 두런두런 사람소리도 들린다. 걸음을 빨리 했다.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저수지 쪽으로 비추고 있다. 도미자 할머니가 저수지에 들어가 있다. 물은 그녀의 종아리까지 온다. 그녀가 입고 있는 갈색 바지가 함빡 젖었다. 남자인 강 선생은 저수지 안쪽에서 할머니를 밀고 이 선생 정 선생 두 여선생이 양 팔을 잡아 물 밖으로 끌어내고 있다. 베게가 둥둥 물 가운데로 떠가고 있다. 신참인 정 선생은 울먹인다.
“할머니 감기 들어요. 얼른 나가세요. 따뜻한 물에 목욕하시게 ‘”
“에고 힘들어 할머니, 할머니 아들 집에 왔으니 젖 주러 빨리 가요”
“노련한 김 선생은 할머니와 같은 수준으로 말을 받는다.”
“아녀 아녀 우리 아가 내가 물에 띄워 보냈어.”
“아네요. 우리가 건져서 우유 먹였어요. 얼른 집에 가시게요 감기 걸려요”
“당직자 네 사람이 할머니 한분을 못 당해 내고 있다.
“아니 어떻게 비밀번호를 알아서 문을 열고 나가셨는지 모르겠네.”
“번호를 기억 하겠어 우리가 누르는 손 모양을 보고 눌렀겠지”
한 바탕 소동을 낸 할머니는 하루 종일 주무시겠다.
목이 컬컬하다. 기침이 나온다. 머리도 아프다. 열도 난다. 저수지에 한참 서서 찬바람을 맞은 탓이다. 머플러를 찾느라 장롱 속을 뒤졌다. 장롱 맨 밑바닥에서 쓰지 않던 반짇고리가 나온다. 반짇고리는 장롱 속에서도 먼지가 앉았다. 뚜껑을 열었다. 뚜껑에 달린 거울속에서 중년 여인이 나를 본다. 낯설다. 후 하고 거울에 입김을 불었다. 뽀얀 거울너머로 다른 풍경이 나온다. 긴 형광등이 흐리게 비추고 있다. 매캐한 먼지 냄새가 난다. 스무 살의 여자애가 머리를 묶고 미싱 바늘에 실을 꿰고 있다. 내 옆에서 서서 재봉을 배우던 명애의 하얀 얼굴이 생각난다. 파란 우단, 빨간색 다후다, 밤색 골덴, 노란색 가죽재단을 하던 성옥이, 카라를 박던 인순이 소매를 달던 봉심이, 비 라인의 우 반장, 천 한 장 한 장에 잊었던 그녀들이 차근차근 떠오른다. 그녀들은 켜켜이 쌓여있는 먼지처럼 매캐한 냄새로 내게 왔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얼마나 울었더언가- 절절하게 부르던 윤자의 얼굴도 기억난다. 연탄불에 끓여먹던 미역국 삼겹살 상추쌈도 지금 내 입안에 침으로 가득 고인다. 부엌을 통해서 들어가던 작은 방이 기억난다. 작은 화장대 거울 앞에 초록빛깔의 신발이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거린다. 명애의 눈에서 파랗게 일던 불꽃이 빛났다. 김 주임은 행여 우리들이 노조라도 결성할까 해서 야학이나 교회 가는 것을 단속했다. 가끔 여공들을 밖으로 불러 맛있는 차를 사준다고도 했다. 언니 나 다 잊고 공부 할래 야간학교에 갈래. 대학에 갈 거야. 작고 앙증맞은 신발이 나왔다. 그 밤 공장에서 구름 속에 달이 숨었던 날 밤 긴 그림자를 끌며 내게 웃던 송곳니가 삐죽 나온 도깨비가 생각난다. 쇼핑백을 가져왔다. 천 조각과 바늘쌈 골무를 담았다. 천 조각들은 낡지도 않았고 색도 바라지 않았다. 옷본도 담았다. 밤새 오르던 열은 내렸다.
나는 그동안 단추가 떨어져도 바지 단이 뜯어져도 꿰매는 일을 하지 않았다. 세탁소에 맡기거나 그 옷을 입지 않았다. 반짇고리는 장롱 속 깊숙이 쳐 박혀있었다. 이사를 할 때도 시집 올 때 가져온 요강과 함께 꼭 필요 하지도 않으면서 버리지도 못하는 물건처럼 다른 짐들 속에 쌓여 따라왔다. 나는 앞으로도 바느질은 하지 않을 작정이다. 니 내 모르나 도꾸샤 도꾸샤 우리는 마음속 깊이 감추고 싶은 비밀 하나쯤은 간직하며 살고 있다. 비밀은 흐르는 물살이나 부드럽게 부는 바람에도 주인의 살을 벤다. 도미자 할머니가 저수지 위에서 그녀의 아기를 부르던 것과 같이 가슴 속은 상처에 덧난 흉터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니 내 모르나 도꾸샤 도꾸샤 도미자 언니도 어쩌면 그날 그 빨래터에서 자신도 몰랐던 생채기 하나를 찾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사랑하는 언니의 그 상처를 덧나게 할퀴어 밤기차를 타게 했는지 모르겠다. 묘지위에 뜨는 푸른 별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마음자락 꼭꼭 숨겨 두었던 생채기 속에 숨어 있던 길 잃은 영혼 하나를 그리워했는지 모르겠다. 인불이 무서워서도 도깨비가 무서운 것도 아니다. 장롱 속에서 반짇고리를 꺼냈다. 마당으로 나갔다. 빨간 색과 초록색이 배색된 신발이 나온다. 두 짝이 내 한 손에 얹혀 진다. 성냥을 그었다. 파랗게 불꽃이 인다. 바람에 불꽃이 춤을 춘다. 불꽃 속에 초록색 나비 한 마리가 포로롱 날아간다.
도전 댁 아지매와 도미자 언니랑 강으로 빨래를 갔다. 푸르고 깊은 강물이 흐르는 강가 빨래터에서 방망이를 두드리며 빨래를 하는 여자들 틈에서 나는 첨벙거리고 놀다 혼이 났다. 강 위쪽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멀리 다리위에도 사람이 많은지 작은 점들이 보인다.
“어제 다리위에서 어떤 여자가 뛰어내렸대.”
“여고생이 애를 배가지고 자살했대.”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세상은 말세야 부모들이 힘들게 여고까지 가르쳤더니 연애질이나 해서 애나 배고 거기다 자살까지 부모 가슴에다 왼 못질이야.”..
“그기 아이고 어쩌다가 당해서 애가 들어 섰다대”
“그래도 생목숨을 끊다니”
“그라모 자꾸 불러오는 배를 숨기지 못하고 어쩌겠나. 오죽 무서우면 강에 몸을 던졌겠나.” “그라이 여자는 몸땡이를 잘 간수해야지 함부로 굴리면 쓰나“
“ 어느 순간에 덮치는데 여자가 무슨 힘으로 감당 하겄노 세월이 죄지 가난이 죄고”
잠수하는 아저씨들이 우리가 빨래하는 곳으로 왔다.
“거기서 뛰어내렸으면 어제 같은 물살에는 이쯤 어디에 걸렸겠다. 자 여기서 빨래하지 말고 다른 데로 옮기시오”
우리는 빨래를 다라에 허겁지겁 담아서 자리를 옮겼다. 얼마 있지 않아 들것에 뭔가를 옮겨서 버드나무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강가 수풀위에다 놓는 것을 보았다. 도미자 언니는 빨래 방망이를 들고 멍하니 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빨래 방망이를 힘차게 두드렸다. 마치 땟국이 빠지듯이 우리의 죄도 없어지길 바라는 듯이 질타하는 여자들에게 성난 매질을 하듯이. 빨래하는 여자들은 한 소녀의 죽음에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했다. 그 아이를 밸 수 있는 사람은 도미자 언니도 나도 다른 여자들도 될 수 있다는 걸 커서 19 살 인 나는 공장에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니 내 모르나 도꾸쌰 니 내 모르나 도꾸샤 그때 빨래할 때.
도미자 할머니가 기순 할머니 손을 잡고 식당에 내려 오셨다. 기순 할머니도 뱅긋 웃고 있다. 두 분은 식당에 식사하러 오신 손님이다. 선생들은 종업원인양 천연덕스럽다.
“어서 오세요.”
“이리 앉으세요.”
“누구랑 같이 오셨어요.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신가요”
“우리 아들.”
“식사는 뭘 로 드릴까요?”
“정말 천생연분이네. 딱 이네. 딱”
“뭐가? 도미자 할머니나 기순 할머니 말이야 어제는 말 안 듣는다고 기순 할머니한테 베개를 던지더라. 기순 할머니도 정말 엄마한테 혼나는 아이 같이 한쪽에 다소곳이 서 계시더라고.”
“언젠가 안 봤어? 기순 할머니가 창에 비춘 당신 얼굴을 보고 엄마 하며 혀 짧은 소리로 아기처럼 부르는 거, 병실로 전화가 오니까 엄마 전화 왔어 그러시던데 꼭 여섯 살 아이 투로.”
“팔순이 넘은 노인네들도 엄마를 찾네.”
“사람은 팔순 아니라 이백 살을 먹어도 어머니는 고향이지 아니 자신이 나온 자궁속이지 남석 할아버지가 할머니들 방을 기웃 거리는 거라든가 자위행위를 하는 것도 어쩜 어머니 배속 태아 속에 있을 때가 그리워서 하는 무의식적인 행위일 수도 있지.”
선생들의 수다가 할머니들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도미자 할머니가 갈치 토막을 기순 할머니 밥그릇에 얹는다. 기순 할머니가 씩 웃으며 갈치토막 든 밥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간다.
도미자 할머니는 노란색으로 저고리를 꿰매고 있다. 다른 할머니들도 몇몇이 모여 바느질을 하고 있다. 복주머니, 바지저고리 갓난아기가 입을 만한 사이즈다.
“할머니들 너무 잘 하세요 다음 바자회에 팔게요.”
옷들이 신발들이 하나 둘씩 숫자가 늘어났다.
“바자회에 내서 전시하고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머니들이 밤에 잘 주무셔서 좋네.”
“맞아 도미자 할머니 밤중에 저수지 나가서 아가, 아가 부르지 않으니 다행이야”
선생들의 수다를 들으며 커피 생각이 났다. 내가 마시던 커피가 떨어졌다. 다른 때라면 다른 상표라도 마셨겠지만 그날따라 꼭 그 커피라야 했다. 비가 올 듯이 하늘이 낮게 내려와 있었다. 모처럼 차를 가지고 슈퍼를 가기로 했다. 큰 도로로 들어서는 입구에 내가 탄 차를 비끼기 위해 검정색 그랜저가 서 있다. 요양원 방문객일까 아님 석산으로 들어가는 차일까 궁금했다. 좁은 농로 길이 꽉 차게 들어가는 그랜저를 백미러 안으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차를 세워놓고 저수지가에서 아이만한 토끼 인형과 옷가지를 태우고 있는 두 사람을 봤다.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젊은 여자와 남자다. 그때서야 주위의 산이 온통 묘지였다는 걸 깨달았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동지가 되기 전까지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서 걷는 이 10분간의 출근길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가끔은 조금 일찍 길을 나서서 푸른 나팔꽃을 뜯어 비벼보기도 하고 쑥을 몇 줌 뜯어 들고 오기까지 하던 산책하기 좋은 길이었다. 때때로 길섶에서 타다 남은 옷가지나 인형을 봐도 누군가 쓰레기를 갖다가 태우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제야 부슬부슬 비오는 날 보았던 푸른 불빛이 생각났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다시 노래가 생각났다. 니 내 모르나 도꾸샤.
밤이 길어지고 낮이 짧아지는 동지로 들어서면서 10분간의 아침 출근길은 무서웠다. 앞산 묘지에 푸른 별이 내려와 반짝거린다. 이슬거리가 내려 촉촉한 날은 어김없이 푸른 빛 별이 묘지위에서 낮게 날았다. 어느 날은 이쪽에서 어느 날은 저쪽에서 가끔은 저수지 위로 피융 하고 내려 꽂혔다. 처음 불빛을 봤을 때는 누군가 플러시를 들고 일을 한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멀건 대낮에 그곳을 바라 봤을 때는 그 새벽에 그곳에서 할 일은 없을 터였다. 그 때서야 도깨비불이라는 생각을 했고 와락 무섬증이 났다. 그랜저를 타고 와서 인형을 태우던 젊은 남녀도 생각났다. 주먹 쥔 손에 땀이 난다. 물에 빠져서 아이를 부르던 도미자 할머니도 생각난다. 요양원 불빛이 보일 때까지 걸음을 빨리했다. 중학교 때 옛날이야기나 무서운 이야기를 즐겨하시던 생물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도깨비불은 말이야 인불이야 인불!. 죽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인이 공기 중에 바람과 부딪치면서 발광하는 인불이란 말이야. 그러니 제군들은 앞으로 군대에 가든지 대학에 가서 지옥훈련이라고 밤에 묘지에 가서 있다 오는 훈련을 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 혹시 인광을 만나면 아 원소기호 p 주기율표 14번의 원소를 만나고 있구나 생각하라.”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농로 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다.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며 제 몸을 비벼 노래한다. 도깨비가 나와서 노래를 불러 달래면 니 내 모르나 도꾸샤 도꾸샤 하고 불러주어야겠다.
< 2009년 무안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