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브룬(Schönbrunn) 궁전은 좋은 샘이 있는 궁전이란 뜻이다. 이 궁전의 시작은 1569년 빈 숲의 중심부에 사냥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막시밀리안 II세가 구입을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1612년 황제 마티아스가 글로리에떼 언덕 아래에서 좋은 샘을 발견하면서 그것이 궁전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세기 동안 궁전은 재단장되고 확장 되기도 방치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743년 마리아 테레지아는 궁정 건축가 니콜라우스 파카씨(Nicolaus Pacassi)에게 황실의 여름 별장을 지으라고 함으로써 바로크 양식에서 출발한 로코코양식의 궁전이 되었다.
서민들이 바라보는 단조롭지만 위엄있는 궁전의 앞면이 보인다.
Rococo양식으로 지어진 궁전은 좌우대칭과 일직선이 그 특징을 이룬다. 궁의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된 곳이다. 왕궁의 내부는 일반 서민들에게 보여지는 외부에 비하여 너무나 화려하다.
보여 지는 곳 외에도 식물원과 동물원이 있다고 한다.
이 왕궁의 이야기 주인공은 앞서 언급 했듯이 Maria Theresa여황제(1717생 1780졸)이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는 아들이 없어서 딸이 황제의 자리를 물려 받았으나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합스부르크를 슬기롭게 다스렸고 결혼생활 20 여년에 자녀 16명 출산 할만큼 정치와 사랑의 균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유학을 온 학생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 하였으니 당시 시대를 앞선 결혼이라 할 수 있다. 남편은 정치가 아닌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한결같이 아내를 향한 손짓이 화가의 그림에도 남아 있다. 실세는 부인이 황제라는 타이틀만 남편이라는 걸 황실의 화가도 알았으리라.
ㅎㅎ 아이를 16명이나 낳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침대를 몰래 찍었다.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다.
모든 시선을 집중 받는 그녀는 150센치 정도의 키에 몸무게가 나중엔 100kg이상 이어서 계단을 이용 못하고 인력으로 된 승강기를 이용했다고 한다.
궁중 화가의 필사적 역작, 실제와는 너무 다른 몸매를 그려내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62년 그가 겨우 6살이었을 때 이미 쇤브룬에서 마리아 테르시아를 위해 공연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고 마리아 테레지아의 무릎에 뛰어 올라가 키스를 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그녀의 딸과 친구 관계로 지냈다고 한다. 그 딸은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 마리 앙뚜아네트이다.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만큼이나 주목 받고 있는 여인이 그녀의 며느리 쎄씨 왕비이다.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는 키 170에 몸무게 43. 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빵 하나와 오렌지 2알을 먹었다나 뭐라나.
황실 가족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왕궁 내부의 아름다운 정원을 둘러 보았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장미와 꽃들이 만발하였다. 바오로씨는 굳이 49일 순례 기간에 곱게 태운 팔을 찍어 달라고 한다. ㅋ 이 아름다운 정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