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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살요목』 중에서 「보살계 서문」
~~불자여 정념을 지키고 결코 술을 마셔 취하지 말지니, 언제나 밝고 통달한 지혜를 호지하라. 이것이 우바새 우바이의 계이니, 신명이 다하도록 지킬지니라. (나무 석가모니불)~~~
금주의 법어--두 번째 구르는 진리의 수레법륜
금주의 법사--불광법회 선덕 혜담스님
사랑하는 불광법회 불광사 법등가족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또한 유튜브를 통해서 불광법회를 함께 하고 계시는 전국의 사부대중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형제 여러분의 가정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항상 함께 해서 집안이 평안하고 가족이 건강하고 하시는 일 모두 성취하기를 기원합니다. 처서가 지나서 밤이 시원해졌고 이제 머지않아 전국 산천이 울긋불굿하게 단풍으로 물들 겁니다. 이 좋은 계절에 형제 여러분의 마음에도 항상 즐겁고 기쁜 마음이 함께 하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지난 법회에 이어서 오늘도 '두 번째 구르는 진리의 수레법륜'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초전법륜에서는 주로 사성제, 고집멸도를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연기법을 깨달으셨지만 5비구를 비롯한 중생을 위해서 연기법을 먼저 말씀하시지 않고 사성제를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고통을 안고 있다는 것이 고성제이고 그 고통은 생의 모든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집성제이고 고통을 멸하기 위해 모든 집착을 놓아버리는 것이 멸성제이고 그래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도성제로 초전법륜의 내용입니다.
『반야경』에서는 법회보에 나온 것처럼 “물질적 존재가 바로 일체지이고, 일체지가 바로 물질적 존재이다. 나아가 일체종지가 바로 일체지이고, 일체지가 바로 일체종지이다. 물질적 존재의 진실된 모양 내지 일체종지의 진실된 모양은 하나의 진실된 모습이어서 둘이 없고 다름이 없다. 여러 천자들아, 뜻이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은 처음 성도를 했을 때에 마음속에서 가만히 있으려고 하여 설법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심히 깊어서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며, 사유로서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깨달음을 얻으신 때에는 연기법을 깨달으셔서 초전법륜은 사성제를 먼저 설하셨는데 『반야경』의 제2전법륜에 오면 연기법이 아니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서 깨닫기 어렵고 힘들다고 연기법 대신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한문으로 무상정등정각이며 위 없고 원만한 바른 깨달음으로 해석됩니다. 무상정등정각을 증득하는 것은 달리 말해서 연기법을 깨닫는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불법을 만나서 『반야심경』과 한문으로 된 「무상계」를 많이 읽었습니다. 제 고향 앞바다 멀리 섬을 바라보며 항상 무상계를 많이 읽었는데 왜 반야심경을 외지 않았나 많이 생각하다가 뒤에 승려가 된 뒤에 보니 무상계 속에 반야심경을 능가하는 깊은 뜻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상계를 보면 12연기법인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고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인연하여 육입 있으며 육입을 인연하여 촉이 있었고 촉을 인연하여 수가 있었고 수를 인연하여 애가 있었고 애를 인연하여 취가 있었고 취를 인연하여 유가 있었고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었고 생을 인연하여 늙고 병들고 근심슬픔죽음이 있게 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통 불교를 강론하고 법문하시는 법사님이나 스님을 보면 연기법을 잘 설명하지만 그렇다고 깨달음을 얻었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연기법을 깨달아서 연기법이 자기화되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연기법을 깨달아서 연기법 자체가 되고 연기법과 하나 된 겁니다. 연기법을 강의하시는 법사님이나 스님들은 연기법을 읽고 있어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번뇌가 쉬지 않고 고통이 멸하지 않는 겁니다. 만약 연기법과 하나 된다면 읽는 자리에서 바로 깨달음을 얻어서 모든 고통을 여의게 되겠죠. 연기법 자체가 내 것이 되고 내가 연기법과 같은 생명이 되어야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연기법 자체가 되어서 자기화되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해 연기법에 기인한 사성제를 먼저 설하시고 뒤에 가서 연기법을 설하십니다. 그런데 반야경에 오면 연기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대체하여 제2전법륜이라 설명합니다.
저는 고희를 앞둔 68세 정도 되었을 때 그동안 수행한 내용과 수행하면서 실수한 것 등 수행 전반을 정리하려고 고희를 3~4개월 앞두고 ‘그대 마음을 가져 오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불광형제들에게 전부 한 권씩 나눠드렸습니다. 여기에 보면 큰스님께서 1991년 4월 3일에 설하신 법문이 나옵니다. ‘아난존자의 깨침’이란 제목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 때 아난존자는 깨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을 이어받은 가섭존자에게 부처님 법을 받은 표시로 가사와 발우를 받았는데 그 밖에 받은 것이 무엇인가 하고 아난존자는 묻습니다. 그때 가섭존자가 아난아, 예, 문 밖의 찰간, 스님들이 법문할 때 세우는 깃발을 넘어뜨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법문이 끝났다는 말입니다. 아난아, 예. 그 사이에 법문이 끝났다는 문답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아난존자는 7일을 수행하다가 7일에 그 도리를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경전을 결집하는 자리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서로 부르고 대답하는 그 사이는 부처님의 일대 교법, 정법안장, 즉 부처님께서 깨달은 법 자체를 전해 받은 도리가 다 있는 것입니다.
저는 광덕대선사를 대선지식으로 생각하고 깨달음 얻으신 분으로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대선지식이 그 당시 천여 명이 모여있는 불광법회 대중 앞에서 그냥 알음알이로 법문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아난이여, 예, 하는 그 사이에 모든 게 다 들어있음을 확신하고 저희에게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가 각화사를 지은 이유는 기원사라는 비구니 스님 절에 저의 도반들과 초대받아서 가니 절이 엄청나게 커서 그때 놀라며 생각했습니다. 비구니 스님도 저렇게 큰 절을 지어서 부처님전에 바쳤는데 나는 대장부로 태어나 부처님께 바칠 것이 없구나, 나도 부처님께 절을 지어 바쳐야겠다 생각했고 마침 수행공간이 필요해서 각화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큰스님께서 저에게 시간 나면 조사어록을 읽어보라고 몇 번 말씀하셨지만 불광에서 살림할 때는 조사어록 읽을 시간이 전혀 나지 않다가 각화사 짓는 불사가 끝난 뒤에는 오직 일심으로 조사어록, 무문관과 여러 선서를 탐독했습니다. 다른 선서 중에서도 저는 유독 「무문관 제22칙」, 아난존자의 깨침,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시간을 사용하며 이 도리가 무슨 도리인가 2~3년 참구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 이 도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제 경지를 책에다 썼습니다. 남녘에서 봄바람이 산천을 연초록으로 물들였고 가을비 낙숫물 소리는 황금 들판을 만드네. 새벽의 여명에 이슬 먹은 꽃가지 피고 초가지붕의 하얀 박꽃은 연록으로 빛난다. 저는 이것이 그 도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는 불교방송 개국하고 6개월 후부터 '자비의 전화'라는 프로그램을 맡아서 생방송을 7년간 진행하면서 많은 불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는데 그때마다 제가 마치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나서 이런 도리를 봤을 때 창피했습니다. 정말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 마치 깨달은 것처럼 말한 것이 창피해서 그 뒤에 이 책을 집필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저처럼 저의 후배스님들이 깨달음이 아닌 것을 깨달음인 것처럼 큰소리치는 것을 없애야겠다는 목적을 갖고 이 책을 3년에 걸쳐서 집필했습니다. 대한민국 종교계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재림예수라는 사람이 몇백 명이 되고 불교에서는 견성성불했다는 스님이 몇백 명 된다는 말이 회자됩니다. 그만큼 깨달음 혹은 재림예수를 갖고 사기 치는 많은 종교인이 있습니다. 이건 재산상의 사기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사기를 치는 겁니다.
사람들의 인지가 발달해서 사상 자체가 종교를 불신하기 때문에 교회와 사찰이 비게 되는 겁니다. 아마 우리 불광법회에서 일어나는 이 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는 오늘 새 가사와 새 승복을 입었습니다. 불광법회에 처음부터 나오던 보살이 일하는 종로의 승복집으로 승복을 고치러 갔는데 그 보살은 저에게 도고마성, 도가 높아지면 점점 마구니 악마가 기승을 부린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님의 도가 많이 높아져서 불광이 그런 어려움이 있는 모양이라는 보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불광법회가 이렇게 스님들의 행패에 의해서 혼란을 겪는 것은 우리 불광형제들의 도가 너무 높아져서 마구니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마구니란 돈만 탐내는 스님을 말합니다. 출가할 때, 처음에는 돈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나이가 들면서 스님들이 차츰 현실에서 돈의 소중함을 알고 탐내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 불광법회 불광사에서 벌어지는 일도 일부 광덕문도스님들, 직계상좌와 손상좌들이 돈을 마음대로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면 절에 들어오는 시줏돈이 주지스님의 돈이 아니고 신도와 스님의 공동재산이라는 것에 누구나 공감합니다. 물론 잘못된 신도들은 시줏돈은 스님돈이라 생각하는 신도도 있지요. 부처님 당시부터 탁발해서 먹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돈을 탐하지 말라는 것으로 걸식, 얻어 먹고 살라는 뜻입니다. 도고마성이라 생각하면 위안이 될 겁니다. 불광법회 법등가족으로 있으면서 스님들로 고통을 받는 것은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의 도가 높아져서 마구니가 극성을 부리는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하고 긍지를 갖고 불광법회를 살려나가는 것이 광덕대선사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제2전법륜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큰스님께서는 '무문관 22칙'의 '아난존자와 가섭존자의 대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설명은 형제 여러분이 가만 생각해보면 상당히 타당할 것이라 알게 될 겁니다. 아난존자도 이것을 깨닫기 위해 7일 동안 한 발로 서서 잠도 안 자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깊은 도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연기법이고 반야경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는 겁니다. 무상정등정각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연기법을 깨닫고 체득하여 내 생명으로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지식이나 생각, 이론으로 아는 것을 알음알이라 합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수행이라 합니다. 제발 스님들이 출가 본래의 뜻을 되찾아서 광덕대선사의 말씀을 저버리지 않고 불광법회를 정상화시켜서 한국불교의 기틀을 마련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두 달 전엔가 법회장에게 전화를 해서 각화사를 불광법회에 넣겠다고 하니 생각을 좀 해보라고 해서 많은 생각을 해봤는데 역시 각화사를 불광법회의 기도처, 수행도량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 불광법회에 증여하기로 생각했습니다. 정수위와 회장단과 임원이 모여서 각화사를 수행처로 받을 것인가 의논하시고 결정하면 됩니다. 각화사를 증여한다는 뜻은 제가 죽은 뒤에 각화사의 창건주를 불광법회가 갖는 겁니다. 지금 각화사는 범어사 말사로 되어 있는데 제가 죽은 뒤에 각화사 주지 추천권을 불광법회 회장단이 갖는다는 겁니다.
창건주를 가만히 있으면 본공스님에게 가게 되는데 저는 본공스님에게 줄 생각이 없습니다. 그동안 30여 년을 본공수좌에게 속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공스님에게 각화사를 넘기면 각화사 본래 창건에 맞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화사는 요즘 시세로 30억, 40억 되는데 그것을 불광법회에 내놓겠다는 겁니다. 횡성에 불광 정진원이라고 땅을 샀는데 전답은 제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이 지홍스님이 조계사 신협 문제로 신용불량자여서 땅을 매입할 수 없으니 이름 빌려달라고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작은 언덕은 대각회로 등록되어 있는데 그 땅 자체가 팔려고 해도 안 팔립니다. 정상화된다고 해도 횡성의 땅은 정진원으로 쓸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각화사를 불광법회의 정진원으로 내놓고 제 사후에는 창건주 자격을 법회에서 받아 범어사에 새 주지를 천거하면 됩니다. 다만 천거하되 첫째는 불광법회에 대해 찬성해야 되고, 광덕선사에 찬성해야 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스님이라도 불광법회 창립의 취지를 어기는 사람은 추천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광덕스님의 불광 사상을 찬성하는 스님이라면 누구라도 각화사 주지로 추천해서 범어사에 하면 됩니다. 그것이 제가 각화사를 불광법회에 증여하는 취지입니다. 제가 유언하지 않더라도 창건주만 공증 받아놓으면 유효하니까 정수위에서 불광법회 정진원으로 쓰겠다고 마음이 모아지면 그렇게 조치를 취해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불광인의 선서>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법등오서, 우리는 불광법등입니다. 전법으로 무상공덕을 삼겠습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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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의 포살법회 일지를 작성하시면서
다양한 영상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흡사 법회에 동참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좋았습니다.
스님 법문의 정확한 녹취로 청취시 못알아듣는 귀절을 확인받는 즐거움, 법문을 복습하는 유익함이 있습니다.
바라밀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바라밀님 수고 많으십니다 오타가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무상게를 무상계로 표기하셨습니다
무상게가 맞습니다
바라밀 님,
법회일지 작성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직도 모든 시설을 원만하게 사용 못 하게 하지만, 그래도 법원 판결 이후 보광당에서 법문 들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는데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사찰 측에서는 그 편안함도 허락하지 않으니
주지스님도, 공양실 법회 때 삼존불을 쓸어버리던 용역들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네요.
잠깐 스칠 때 합장하고 반배하면 살짝 지어주던 그 미소의 진의를 알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