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아직은 이름만 봄이어서, 1층인 우리 집엔 해가 잘 들지 않아서, 겨우내 거실에 두었던 빨래건조대를 아직도 베란다에 내놓지 못하고 있단다.
엄마는 지금 색이 진한 옷들을 빨아 널고서 달콤한 커피를 한 잔 타들고 빨래를 바라보고 있다. 집에 남자만 셋인지라 거무튀튀한 색 일색이구나. 하루라도 축구를 안 하면 몸살이 나는지, 호르몬 이상으로 발작이 일어 나는지 알 수 없는 네 동생 트레이닝 바지가 세 개, 그에 어울리는 스포츠 티셔츠가 몇 장, 엄마가 운동하고 내 놓은 반팔 티셔츠 몇 장, 아빠 바지가 하나, 행주 2장, 그리고 이제는 크기만으론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양말, 양말, 양말...
그러고 보니 아직은 내 식구가 분명한 너는 엄마의 빨래건조대에 그 흔적이 없구나.
오늘은 금요일. 지난 주일 밤 기숙사에 들어간 네 녀석의 것이라곤 양말 한 짝도 없다. 일하다 혹 깜빡 놓칠까 마음 졸이며 매일 밤 빨아대던 너의 교복 셔츠도 이제는 없다. 네가 없으니 너의 옷도 없다.
깜깜한 밤, 교복 셔츠를 빨며 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준 것에 감사하고, 혹 하루 동안 네가 받았을지도 모를 상처와 그로 인한 상한 마음이 빨래판에 비벼져 쓸려가 버리는 때처럼 사라지기를 기원하던 나만의 의식도 사라져 버렸다. 네 양말에서 묻어나는 하루의 수고와, 네 외투에 스며있는 일상의 즐거움을 가늠할 방법도 찾을 수가 없구나. 네 상한 마음과 하루의 수고와 일상의 즐거움들은 지금 기숙사 옷장안 어두운 곳에 덩그마니 놓여 있겠지.
네가 어렸을 적 우리가 살았던 주택 베란다에 하얗고 기다란 천 기저귀를 바람에 펄럭이게 널어놓으면 책을 파는 영업사원이 벨을 누르기도 했었는데...
그 때도 지금처럼 빨래가 말을 했었나 보다. 엄마의 손바닥만 했던 네 양말들이, 네 유치원 원복이, 물감이 묻어 있던 바지가, 김치 국물이 튄 티셔츠가, 흙 묻은 체육복이 했던 말들을 엄마는 모두 기억하고 있단다.
네 기쁨과 슬픔, 너의 이야기들 모두를...
내일이면 네가 온다. 너의 옷도 잔뜩 따라오겠지.
내일 밤 엄마의 빨래건조대에 너의 옷이 주렁주렁 걸리면, 빨래는 많은 말들을 쏟아내겠지. 그리고 엄마가 모르는 이야기, 너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보송보송 말라가겠지.
이 글은 2학년 13반 남연우엄마가 공동 저자로 참여한 '너를 읽어주마' 라는 책에 실린 연우 엄마의 글입니다.
기숙사에, 또는 자취방에 아이를 보내 놓고 아이의 학교생활, 공부, 교우관계..아이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너무 좋은 글이어서 옮겨왔어요~~^^
첫댓글 아이고‥
공감공감하면서‥
가슴이찡하니울려대면서‥
읽었네요~!!!
아이들은‥
부모들의작은수고와정성에서‥
사랑받고있음을
느끼고있는것같다는생각이‥
드네요~^^;;
서로를‥
토닥토닥하고싶네요~♡♡♡
참 실감나는 글이네요. 전 요즘 계속 아들의 빨래가 없는 상태지만요. ㅎㅎ
공감백배. 맛갈나고 정겹고 그리움 가득한 글입니다. 보고싶다...
주말에 집안 전체의 운동화를 빨아보니 예전에 세탁기도 없이 전부 손으로 빨래하시던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요즘 빨래는 너무 편하게하고 시간도 벌었는데 왜 더 바쁘죠?
글읽으면서 너무 공감되어 울었어요 ㅠㅠ
글을 쓰신 연우맘도 여러번 울며 원고를 고치셨답니다..엄마 마음 다 똑같은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