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잡았네 / 민명숙
사과를 잡았네
자전거와 부딪힐 뻔한 사과를
보도블록이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사과를
봉지에서 탈출하는 사과를
만유인력으로 잡아당기는 사과를
왼쪽 팔 안쪽과 옆구리가 잡았네
잡으려는 생각이 없었는데
잘 쓰지 않던 왼쪽 팔 안쪽과 옆구리에 어느 틈에 들어와 있네
심장 안쪽에 쿵, 하고 떨어졌네
제법 묵직했네
묵직한 걸 부여잡느라 한동안 꼼짝하지 못했네
꼼짝하지 못하는 사이 왼쪽 팔 안쪽과 옆구리에서
천만다행이 열렸네
다행으로,
넘어지지 않았고
자전거에 부딪히지 않았고
허리를 삐끗하지 않았고
과일가게에 다시 가지 않았고
잘 구르지 않는 쇼핑 카트에 휘둘리지 않았고
큐알코드를 찍느라 미간에 주름을 보태지 않았고
계산하느라 지루함에 줄 서지 않았고
무료 주차 단말기가 5불을 빨아먹지 않았네
다행 多幸이 오는 길을 명심했네
동시다발의 길에는
신호등이 없다는 것
속도와 적재 제한이 없다는 것
일방통행이라는 것
다행은,
비어 있는 곳으로
수시로 지나간다는 것
** 시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시적화자가 자전거하고 부딪칠 뻔 했는데 봉지 속에 든 사과가 떨어지려는 것을 잡은 것이죠.
바로 떨어지려는 사과를 잡는 순간에 대한 시입니다. 순간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지
독자들이 주목할 만합니다. 일상에서 너무나 사소한 순간인데 놓치지 않고 순간 속에 수많은 이야기를 잡아채는
표현들이 재미있습니다. 순간 속에 한편의 드라마를 구성하는 솜씨가 좋습니다. 첫줄(사과를 잡았다)이 재미있습니다.
보통은 사과를 떨어뜨리고 시작하는데 순간의 긴박함이 엿보입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옆구리가 잡은 것은 다행이잖아요.
이 다행은 어떻게 오는가 치명적인 사고와 불행이 잠재되어 있는 것도 다행 속에 있습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속에는 큰 일이 더 많이 숨겨져 있죠. 거기서의 다행은 그렇기 때문에 더 값집니다.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하구요. 얼마나 많은 불행이 우리 발목을 잡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가를 얘기합니다.
사소한 순간에 대한 관찰 묘사로 되어 있지만 우리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너무 사소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평범한 순간 속에 치명적인 것이 얼마나 많이 숨어있는가.
순간의 급습을 통해서 그 속에서 우리 삶에 놓칠 수 있는 통찰을 이끌어낸 것이 이 시의 놀라운 점입니다.
충전하는 동안 / 민명숙
휴대폰에 코드를 연결하지 않고는 얼마 되지 않아 곧 방전되고 만다
짧은 42퍼센트로 약속 장소를 변경하고 지도를 보고 꽃을 주문할 수 있을까
교통카드에 하루보다 긴 다리를 붙인다
발바닥이 전철 바닥을 흡입하는 동안 남은 노선을 헤아린다
열차가 휘청거릴 때마다 다리도 휘청,
두 발이 놓친 바닥을 얼른 다시 더듬는다
카페에 엉덩이를 붙이고 한 시간 동안 웃었다
좋았다고 말하고 산책을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시장에 가고 요리를 하고 저녁을 먹었다
노을이 3퍼센트 남았을 때까지
두 발은 바닥을 벗어날 수 없었다 깜깜해져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내일 또 내일을 위하여
꿈은 언제나 공중으로 더 높이, 더 멀리 뛰라고 소리치지만
공중에서 겨우 한 바퀴,
바닥으로 다시 떨어진다
곤두박질치는 게 재미없으면
고척동에서 종로까지
소낙비로 엉킨 줄들을 제치고 콘센트를 찾아다녔다
나의 두 발이 노심초사 바닥에서 서성이는 건
다 엄마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마의 탯줄을 끊고 나온 이후부터,
젖을 먹고 등에 업혔을 때 말고는 줄곧,
그때부터 그랬다
처음부터 흠 있고 처음부터 짝퉁이라고
**핸드폰 충전이야기로 읽었는데 읽다보니까 충전의 대상이 화자 자신인 것으로 읽혀집니다. 충전이 되지 않은 것은 언제 방전이 될지 몰라 불안합니다. 충전이 되지 않은 것 같은 화자 자신의 불안한 내면 심리가 있습니다. 1,2연은 휴대폰에 관한 얘기입니다.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42%밖에 충전이 되어 있질 않죠. 2연에서 “짧은”은 빼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반도 충전이 안된 핸드폰을 들고 나갈 때의 화자의 불안한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교통카드에 하루보다 긴 다리를 붙인다”는 오늘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거죠. 4연은 충전되지 않은 휴대폰처럼 화자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표현했습니다. 6행의 “노을이 3퍼센트 남았을 때까지”는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자기 몸의 방전, 하루의 방전, 방전되기 직전까지 하루 일과를 마친듯한 걸 표현했죠. 7,8행은 꿈에서조차 충전되지 못한 불안으로 쫒기듯이 콘센트를 찾아다니는 심리를 나타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구요. 8,9,10행은 자기 한탄을 노골적으로 고백했습니다. 늘 충전되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한탄, 하소연입니다. 앞에까지 죽 진행되어 온 거에 비해 그로 인해 다소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늘 충전되지 않은 것 같은 몸의 상태, 심리 상태를 나타냈습니다. 이 시의 화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늘 결핍을 느낍니다. 전전긍긍하고 반복되는 일상인데도 힘들어하고 더 큰 걱정거리들이 올 것같은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표현하였습니다. 제목에서 보면 독자들이 핸드폰 충전하는 동안 일어나는 일인줄 착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힘들다 그런 고민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휴대폰으로 돌려말하는게 주목할 만합니다. 돌려서 말하는게 명숙님은 능합니다. 시에서 자기의 감정을 어떻게 남 얘기하듯이 돌려서 얘기할 것인가 이런 고민이 있으신 분들은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