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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꽃지기 원문보기 글쓴이: 양산박
2019년 4월 28일 일요일 백두대간 30 회차 촛대봉
자유인 산악회
백두대간 30회차 : 저수령-촛대봉-투구봉-시루봉-배재-싸리재-흙목정상 (점심)-뱀재-헬기장-솔봉-묘적령-고항치
산행거리 : 약 13 km 산행시간 : 약 7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474043
거리 13.8 km
소요 시간 7h 30m 24s
이동 시간 7h 0m 20s
휴식 시간 30m 4s
평균 속도 2.0 km/h
최고점 1,113 m
총 획득고도 435 m
난이도 보통
백두대간 (白頭大幹) 30 – 묘적령
묘적사 이야기
양산박
빈대끓는 절간에서 몸보시를 하랬더니
하루이틀 한달두달 빈대몸살 못견디네
살생마라 하신말씀 빈대벼룩 마찬가지
부처말씀 뼛속깊이 새겨두라 일렀거늘
부처말씀 따르자니 빈대고통 못참겠네
절간인들 무삼하리 빈대부터 잡고보세
활활타는 불길속에 빈대죽고 나도죽고
살생말라 타이르던 부처말씀 속절없네
흔적없는 절터위에 흰구름만 오락가락
먼옛날의 이야기가 어제인듯 들려오네
텅빈 저수령 주차장
저수령 (低首嶺 850 m)- 고개가 높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는 고개
우리는 다시 한 번 밑으로 살짝 내려와 소백산 줄기 아래에 섰다. 국립공원마다 봄 가을 두 차례 산불방지를 위한 입산금지 기간을 정해서 시행하기 때문이다. 국립공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5월 중순까지 입산이 통제된다. 그런 입산통제 없이 지리에서 설악까지 죽 이어서 간다면 산줄기를 이해하는데 조금 더 낫겠지만 어쩌겠나. 그렇게 엄격히 통제하는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크고 작은 산불이 일어나는데 만일 이런 통제를 통해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면 어쩌면 더 큰 산불이 더 많이 발생할 수도 있으리니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통제하지 않는 구간을 찾아서 봄철 산행을 진행해야 한다. 중앙고속도로 단양 나들목을 나와 높다란 고개에 올라 버스가 멈춰선 곳은 저수령(低首嶺 850 m)이다. 정상적인 북진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오른쪽은 경북 예천군 은풍면이고 왼쪽은 충북 단양군 단성면이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지만 비 예보는 없다. 아니, 오후에 아주 조금 내릴지도 모른다는 예보다. 요즘은 가뭄이 심한 편은 아니지만 비록 산행하는 주말이라도 단비가 흠뻑 내려서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인간 문명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대세는 자연이요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것은 우주를 섭렵하는 조물주의 손이다.
조물주의 손이 우리 땅에 햇볕을 조금 더 쏱아 부으니 계절이 바빠졌다. 그가 따뜻한 햇볕을 언제 거둬갈 것인지 DNA 속에 세세히 적어두었기 때문에 이 대자연속의 만물들은 자신들의 노하우에 따라 빠르게 생태시간을 돌려야 한다. 이제 도심에는 화려하게 피었던 벚꽃이 지고 가지에는 푸른 잎이 무성하게 자랐다. 그리고 이 높은 산에도 산벚나무꽃이 만발하고 진달래가 고운 자태를 뽐내는 계절이다.
9시 30분 저수령에 도착한 버스는 텅빈 너른 주차장에 산꾼들을 내려 놓았다. 이 고개 밑으로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수 많은 차들이 드나들었을 터인데 지금은 휴게소마저 운영이 안돼 문을 닫아 놓았고 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앞서 내린 총대장님은 버스 옆에 세워진 작은 트럭 운전사와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길래 오지랖 넓은 총대장님이 또 아는 사람을 만났는가 싶었다. 총대장님은 운전사와 얘기를 마치고 여기 저기 흩어져 산행 채비를 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다가와 빨리 사진을 찍고 행선을 서두르라 독촉한다.
노랑제비꽃 - 처음부터 끝까지 온 산길을 노란 색으로 물들였다.
족도리풀 - 꽃이 신부 족도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독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운전자는 산불감시원이었던 모양이다. 산림청에서는 국가 예산으로 해당 지자체에 산불감시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주고 지자체는 또 마을의 이장이나 활동력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 그 사람들은 산의 건조한 상태나 산행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 산행을 막을건지 허용할지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우리가 탐방하려는 구간은 산방으로 인한 산행금지구역에서 제외되어 있는데 최근 고성에서 크게 일었던 산불의 영향으로 좀 더 엄격하게 행정력을 펼치는 것 같다.
별동대 - 별동대는 어디든 간다.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촛대봉 (1,080 m)
대간길은 처음 저수령에서 촛대봉까지 급격하게 치고 올라갔다가 촛대봉, 투구봉, 솔봉 등을 지나는데 그 봉우리들 높이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데다 전형적인 흙산이어서 산행하기에 힘들지 않을거라 한다. 실제로 처음 800 미터 정도 촛대봉까지는 꽤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다. 애매한 날씨에 애매한 옷차림을 갖춘 회원들이 오르막 중간쯤에 이르러 옷을 한 꺼풀씩 벗는다. 정말 봄이다. 강원도 산간에는 아직 눈과 얼음이 남아 있지만 우리는 이제 봄의 한 복판에 서 있다.
산길 초입부터 봄 꽃이 쉼없이 얼굴을 들이민다. 우리는 그 예쁜 꽃의 얼굴을 밟지 않으려 조심해서 걸어야 할 지경이다. 다름아닌 <노랑제비꽃>이다. 누가 저 빛깔을 노랗다고 표현했는가. 붉은 기운이 살짝 감돌며 꽃잎이 두터워 야무져 보이는 꽃이다. 어짜피 잠깐 피었다 또 언제 피었냐는 듯 한꺼번에 사그러질 꽃이지만, 적어도 피어 있는 동안에는 온 정열을 불태워버리려는 듯 산길에 가득 피어 있다. 설마 저 강한 빛깔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하려고 생겨난 것은 아닐터, 저 빛깔 속에는 우리가 감히 알지 못하는 그러니까 꿀벌이나 곤충하고만 공유할 수 있는 큰 비밀의 암호가 들어 있을 법하다.
꿩의바람꽃 -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촛대봉 (1,080 m)은 예상보다도 더 일찍 우리 눈 앞에 나타났다. 몸속에 땀이 조금 배어날 만치 덥다고 느껴질 때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더니 우리 별동대가 곧 뒤따라 정상에 올랐을 때 선발팀은 금방 자리를 뜨고 몇 사람만 남아서 주변 경관을 감상한다. 주변에는 잡목이 우거져 있어 조망을 즐기 수는 없지만 정상석 가까이 큰 바위에 올라서면 흐릿한 공기지만 조망이 열린다.
투구봉에서는 멋진 조망이 열린다.
투구봉( 1,080 m )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김소월이 아니더라도 우리 조선인의 가슴속에 한처럼 자리잡은 <참꽃>이다. 참꽃이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꽃이라는 뜻이다. 저 옛날 봄철이면 양곡이 떨어져 배를 주려야 했던 시기에 산에 피는 아름다운 꽃마저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약간 새콤한 맛이 감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십리길을 걸어 집으로 오는 길에 장난삼아 따 먹곤 했는데 실제로 이 꽃은 화전으로 인기 있는 꽃이다.
흐린 날씨 탓에 <양지꽃>이나 <개별꽃>은 고민이 깊어 보인다. 햇볕이 있는 날 이 시간이면 활짝 펴서 날아 드는 벌과 곤충을 맞이해야겠지만 오늘 같이 흐린 날은 공치는 날이다. 그래도 비는 오지 않으니 햇볕이 날때날 때 고민해 보다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투구봉( 1,080 m )으로 가는 짧은 길 가에는 <꿩의바람꽃>이 작은 바람에도 온몸을 흔들며 피어 있다. 일부러 꽃산행을 가서 만나야 했던 꿩의바람꽃을 이런 대간길에서 조우하니 은근히 반가운 마음에 바쁜 걸음이 멈춰진다. <풀솜대>는 이제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고 있어 어쩌면 2주일 안에 하얀 솜 같은 꽃을 피워낼 양상이다. 만물이 마치 준비된 선수들처럼 봄을 맞아 여름을 향해 질주한다.
투구봉에서는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대간길을 걸으면서 울창한 나무숲속 오솔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땀흘린 뒤에 이런 조망처를 만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먼데까지 시선을 던질 수 있는 그 기분은 참 행복하다. 굽이굽이 펼쳐진 산 그리메 뒤로 또 다른 산이 보이는데 비록 산 이름은 몰라도 산 그 자체로도 좋다.
시루봉 - 한자로는 증봉(甑峰)이라고도 표현하지만 써리봉, 수리봉의 또다른 변형으로 높은 산을 의미한다고
시루봉( 1,110 m )
길가에는 <범꼬리>새싹이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8월쯤 이 범꼬리 꽃이 산길을 멋지게 장식할 것이다. <족도리풀>은 이제 한창이고 <현호색>은 끝물이다. 그리고 눈에 많이 익은데 이름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 풀이 보인다. 재작년 6월쯤 대구 앞산에서 본 적이 있는 <쇠멱채>다. 풀도 꽃이 피면 알아 보기 쉬운데 이렇게 꽃이 피기 전에는 그저 낯모르는 풀이다. 저는 나를 알아 보는데 내가 알아주지 않으면 얼마나 섭섭할까. 나도 아는척 하면서 사진에 얼굴을 담아준다.
시루봉( 1,110 m )를 지나고 한참 가다 보니 오른쪽으로 인공 조림한 잣나무숲이 나타난다. 앞서간 선두팀이 이 잣나무숲을 지난다고 연락한 지 꽤 지난 시간이라 뒤에 남은 꼬리는 마음이 급해진다. 그런데 어쩌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노랑제비꽃과 나뭇가지 사이로 산길을 핑크빛으로 물들여 놓은 진달래가 자기들도 봐 주고 가라고 팔다리를 잡아 끄는 걸. 임시 별도대장을 맡은 윤수님 마음이 급해지는 듯 하다. 우리의 위치를 무전으로 알려주려 하는데 무전기에서는 직~ 직 ~ 하는 잡음만 들릴 뿐 교신이 원활치 않다.
태백제비꽃 - 꽃속에 강한 털이 나 있고 향이 짙은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동자꽃 어린 싹 - 여름이면 멋지게 피겠지.
피나물 - 줄기를 자르면 붉은색 진액이 나온다.
조밀하게 식재된 잣나무 숲을 지나면
배재에 이른다. - 배가 넘나들어서 배재라고 ?
배재
잣나무숲길을 지나고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가니 ‘배재’라 쓰여진 이정목이 서 있다. 지금이야 넘나드는 사람이 없는 그저 이름뿐인 고개지만 이렇게 ‘재’자로 지명이 남아 있는 고개라면 한 때 꽤 많은 사람들이 넘어 다니면서 고갯마루에 앉아 짐을 내려 놓고 쉬어갔을 터이다. 배재라고 하면 배가 넘어 다녀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그 유래를 설명하지만 아무리 옛날 일이라고 하지만 너무 무리한 해석이다. 완주군 대둔산에 있는 ‘배티재’에 관해 지인이신 고인돌님께서 신선한 해석을 내 놓았다. 배티재나 배재 등의 이름은 그 고개를 넘으면 배를 탈 수 있는 포구(浦口)나 항구(港口)가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 해석을 따르자면 이 고개를 넘으면 배를 탈 수 있는 강의 포구가 있을 것이다. 단양에서 이 고개를 넘으면 낙동강에 닿을 수 있고 예천쪽에서 이 고개를 넘으면 남한강에 이르니 이래 저래 이 고개는 ‘배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능선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가끔씩 시원한 조망이 터진다. - 가까이 흙목정상이 보이고 멀리 소백산 줄기가 조망된다.
싸리재에는 싸리나무가 없다.
싸리재
12시 15분 싸리재를 지나면서 앞서 간 선두팀이 어디쯤 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사실 궁금하다기 보다는 걱정이 섞인 아쉬움이다. 원래 이쯤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어찌된건지 선두 뿐만 아니라 중간팀도 안보이고 매번 산행 때마다 별동대 핵심멤버들도 좀체 꼬리를 안보여준다. 평소 산행때는 조금 뒤쳐져 있다가도 앞팀이 쉬고 있는 사이 따라잡기도 했는데 오늘은 어찌된 일인지 마치 도마뱀 꼬리를 잘라 버리고 달아난 몸통처럼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사방은 적막강산이다.
산을 걷다 보면 ‘싸리재’라는 고개 이름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 어원은 ‘높은 고개’라는 의미로 붙여진 ‘수리재’가 변해서 생겨난 말이다. 높은 산을 의미하는 ‘수리봉’이나 새 중에 가장 높이 나는 ‘독수리’ 그리고 사람의 신체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머리 꼭데기인 ‘정수리’가 높은 곳이라는 뜻의 순수 우리말 ‘수리’에서 나왔으며 그 말이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여 ‘써리’, ‘싸리’, ‘수리’ 등 여러 형태로 불린다고 한다. 그러니 앞으로는 싸리재에서 두리번거리면서 싸리나무를 찾는 일은 없어야겠다. –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참조 -
이제까지 나무숲에 싸인 흙산이었는데 싸리재를 지나면서 작은 바위길이 나타난다. 그리 험하지 않아 조금씩 우회하면서 걸으니 오히려 재미 있다. 1천 미터가 넘는 고지에 피는 꽃은 색깔도 진하다. 진달래며 산괴불주머니꽃이 흐릿한 산길을 밝혀준다. 흐린 날씨에 입을 꼭 오무리고 있던 <개별꽃>도 정오가 지나면서 기분이 좋아졌는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한다.
싸리재에서 흙목정상으로 가는 길은 짧지만 가파르다.
산괴불주머니
12시 45분 마침내 앞서간 선두팀을 만나 점심을 함께 한다.
점심은 간단하게
별동대는 점심도 늦고 출발도 늦다.
흙목정상에서 점심
별동대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빠른거야 하면서 하염없이 산길을 걸어 오르는데 영묵 큰형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왜 이렇게 안오는 거냐면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빨리 오란다. 산행횟수가 쌓일수록 큰형님의 산행 노하우도 일취월장 발전하는 것 같다. 두 번째 독촉 전화를 받고 조금 더 올라 가니 마침내 시끌시끌 떠드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길가에 앉아 점심을 즐기는 자유인들을 만났다.
이제는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었으니 화기(火器)를 이용한 조리를 하지 않아도 되련만 영묵큰형님 별동대를 위해 무거운 장비와 물을 지고 오셨다. 커다란 코펠 가득 물을 붓고 라면을 끓이는데 우리는 원을 그리고 둘러 앉아 끓지도 않는 라면을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는 꼴이다. 못쓰는 우산 살을 다 떼어내어 만든 간이 밥상위에는 빵과 떡, 과일과 밥 반찬 그리고 커피와 소주까지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음식이 펼쳐져 있다. 라면이 끓을 때쯤 먼저 도착해서 밥을 다 먹은 선두팀이 벌써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갈 준비를 한다.
점심을 먹고 떠날 채비를 하는데 앞서 내려갔던 한문희 총대장님이 다시 올라 오신다. 뭔가 잊은 물건이 있는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점심먹은 자리가 바로 흙목정상 ( 1,070 m ) 이어서 우리 후미팀 사진을 찍어주고 여기서 샛길로 빠지려고 남은 거였다. 나중에라도 유사시 탈출할 수 있는 경로를 알아보기 위해 대간팀에서 벗어나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고 한다.
‘흙목’이라는 지명이 무척 특이하다. 이 일대의 지명에는 목(목덜미 항項)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이 꽤 많다. 우리 팀이 하산하는 고항치(古項峙)가 있고 저항령 가까운 곳에는 석항리(石項里)가 있다. 또 고항리 옆에는 초항리(草項里)가 있다. 여기에 하늘재에 이어지는 능선길에 있던 탄항산(炭項山)이 있고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속리산 지나 청화산 구간에 조항산(鳥項山)도 있었다. 이런 지명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목(項)이라는 글자가 모두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뭔가 연관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흙목이라는 지명은 어떤 의미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속리산에는 4증 8항, 즉 네 개의 시루봉(4 증甑)과 8개의 목(項)이 있다는데 이 흙목도 그 8항중 하나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흙목정상 아래 누군가 멋드러진 돌탑을 쌓아 놓았다. - 정신일도하사불성
송전탑을 지나고
뱀재에 이른다.
쥐오줌풀 - 뿌리에서 오줌냄새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불명예스러운 이름이다. 그래도 꽃은 예쁘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라.
오후 2시 45분 솔봉에 도착했다. - 발 아래 덜어져 있는 '묘적봉 1.7 km ' 거리표시가 혼선을 주었다.
솔봉(1,020 m)
산행중 점심을 먹고 나면 반은 더 지나온 것이니 앞으로 갈 길도 그리 길지 않을 터이다. 대간길에서 조금 벗어난 바위 절벽 위에 누군가 정성스레 쌓아 놓은 돌탑이 길가는 산꾼들의 눈길을 잡아 끈다. 대간길은 고압선 철탑을 지나고 완만한 내리막길에 이어 뱀재를 만난다. 누군가 어린애 머리통만한 돌에 매직으로 ‘뱀재’라 써 놓은 덕에 알아볼 뿐 그곳이 고개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어서 오래되어 수풀에 가려진 헬기장을 지난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헬기장 바닥은 곳곳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풀이 부성하게 자라난다. 원래 석회암을 좋아한다는 할미꽃이라서 그런지 요즘 들어 귀해진 할미꽃이 폐허가 된 헬기장 곳곳에 많이 보인다.
산길은 험하지 않고 한적한 흙길이다. 주변에 제법 울창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한여름이 되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 것 같다. 솔봉(1,020 m)에 이르는 작은 오르막에 발걸음이 자주 멈춰서는 것은 지나온 거리가 앞으로 가야할 거리보다 훨씬 길다는 뜻일게다. 솔봉 정상에는 누군가 정성스레 만들어 놓은 정상표시판이 두 개 서 있다. 대간길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덕분에 길이 뚜렷하여 헤맬일은 없겠지만 이렇게 스스로 수고를 아끼지 않고 표지판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가 길을 올바르게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솔봉 정상표지판 아래 떨어져 있는 방향표지판에 ‘묘적봉 1.7 km’라고 쓰여져 있어 우리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묘적봉이 1.7 킬로미터 남았다면 그 전에 있는 묘적령은 도대체 얼마나 남았다는 건가. 우리가 하산기점을 삼은 묘적령이 바로 코앞이라는 말이겠다. 오늘 산행이 너무 쉽게 끝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표지판은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그 표지판은 누군가 다른데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다 이 곳에 내려 놓은 것 같다. 오후 3시도 채 안되었으니 여유 좀 부리면서 걸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길가에 늘어진 꽃을 감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묘적령을 향해 걸었는데 솔봉에서 출발한지 한참만에야 그 이정표가 잘못 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정상적인 표지판 기둥 위에 ‘묘적령 1.7 km’ 라고 써 있었다. 이렇게 여유부리며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녀치마 - 길가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철쭉나무 군락지
노랑제비는 오늘 산길의 주인공이다.
진달래는 부주인공인가 ? 그러면 섭섭하겠지. 오늘 주인공은 아무래도 진달래다.
배낭털이 - 이제 하산길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배낭을 비운다. - 사과맛이 끝~~내줘요.
미치광이풀 - 뿌리를 먹으면 미친다고 한다.
치열한 삶의 현장 -
미역줄나무가 일본잎갈나무와 한판 승부를 벌여 마침내 목을 조른다.
일본잎갈나무는 싸움에서 졌다는 걸 인식하고 다른 동료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쓰러져 죽어버린다.
하늘말나리
오후 3시 50분 묘적령에 도착한다.
묘적령은 자구지맥의 분기점이다.
묘적령(妙積嶺 1,020)
1.7 km 면 금방 지나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긴 산행 끝에 달린 1 km 는 무척이나 길고 지루하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에도 ‘빨간불’이 자주 켜진다. 지자체에서 설치한 듯 긴 벤치가 있는 쉼터에서 가방털이도 하면서 한참을 가다 보니 그 동안 사진으로 보았던 ‘묘적령’이라 한글로 새겨 놓은 돌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대간길의 끝이다. 그리고 오른쪽 고항치로 내려가면 된다.
묘적령(妙積嶺 1,020)은 묘적봉 아래에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그러나 언뜻 보면 고개같지 않다. 고개라면 높은 산과 산 사이 잘록하게 들어간 부분을 일컫는데 이 묘적령은 그 높이가 1,020 m나 되는데다 산세를 봐도 불룩 튀어 나왔지 움푹 파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실제로 묘적령에서 고항치로 내려가는 능선길은 자구지맥의 시발점이다. 어쩌면 이 자구지맥을 타고 올라와 반대편 대강면 사동리로 이어지는 길이 있어 이 곳을 고개라 여기는 모양이다.
묘적령이라는 이름은 이 고개 아래 있었다는 묘적사(妙積寺)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한다. 대강면 사동리(寺洞里)는 달리 절골이라도 부르는데 이는 묘적사가 있던 동네라는 뜻이다. 고려시대에 축조되었다는 묘적사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 절은 한 때 수 백여명의 중들이 지낼 정도로 큰 절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많던 중들이 하나씩 둘씩 떠나고 거의 빈 절이 되다시피 했다. 그 원인은 절 안에 퍼진 빈대였다. 여기저기 온 집안에 퍼져 있는 빈대에 쫒겨 모두 절을 떠나고 젋은 중 3명만 남았는데 하루는 이들이 마을에 탁발을 다녀와 요사채에 들어가려 하니 또 빈대가 가득하다. 그러자 지난 세월 한 때 절이 번성했던 시절이 떠오르고 그런 마큼 빈대 때문에 폐허가 된 현재의 상황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한 회한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와 셋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 마음이 통하여 갑자기 웃통을 벗어 옷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빈대가 득실거리는 요사채에 던져 넣었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져 종국에는 절간을 모두 태워버리고 말았다. 빈대를 잡음으로써 살생을 저지르고 불자로서의 계율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참사다. 그 후 이 묘적사터는 부도만 남아 있는 상태였으나 그마저도 일제시대 누군가 들어가 버리고 지금은 공허한 벌판으로 남아 있다 한다.
하산길은 또 다시 진달래밭이다.
또 간간이 시원한 조망도 트인다.- 저 끝에 보이는 건 도솔봉이지요?
고깔제비꽃
저녁햇살에 비친 진달래가 참 곱다.
자구지맥을 따라 고항치로 내려서다
묘적령에서 고항치까지 내려가는 능선길은 자구지맥의 일부이다. 가끔씩 좌우로 트이는 조망과 진달래가 어우러진 능선길이 아름답다. 왼쪽 멀리 다음 구간에 걸어갈 묘적봉과 이어지는 도솔봉 그리고 그 너머 오른쪽으로는 소백산 줄기가 실루엣처럼 펼쳐진다. 모든 것이 다 아름답다.
고항치가 가까워지는데 철쭉꽃이 보인다. 한 송이 두 송이 점점 더 많아진다. 봄은 이 산 밑에서 시작해 산 위로 기어 오른다. 능선보다 한 뼘 더 앞선 계절이 이 고항치 고개에 철쭉꽃을 피웠다.
오후 5시 마침내 산행이 끝나고 고항치로 내려서니 앞서 내려온 회원들은 폐허가 된 펜션 뜰에 자리를 잡고 하산주를 즐기고 있다. 얼핏 보기에 꽤 많은 돈을 들여 지은 건물 같은데 아무래도 찾는 이 없는데다 관리비는 많이 들어 폐업한 것 같다. 버너에 불을 피우고 라면을 끓이는데 갑자기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가 뛰어 오더니 당장 불을 끄라며 혼자서 난리를 부리더니 또 혼자 제 풀에 지치는지 차를 타고 가 버렸다. 분위기가 식어 버리고 파티를 끝낸 회원들이 버스에 오르려는 즈음 경찰인지 산림감독원인지 주위를 기웃거리는 모양새가 아까 그 남자가 신고를 한 모양이다.
오후 5시 고항치에 내려섰다.
고항치 펜션 - 이 건물을 짓는데 상당히 공을 들인 듯 보이는데 문을 닫은 듯 뜰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고항치가 속해 있는 고항리는 경북 예천군 효자면에 들어 있다. 원래 이곳은 안동, 영주, 예천, 풍기 등 행정구역이 바뀌었으며 이전에는 상리면이었다. 2016년 명심보감에 소개된 ‘도시복’이라는 효자에 관한 이야기를 근거로 효자면으로 개명하였다. 도시복은 조선시대 철종 때 이 곳에 살았는데 효심이 지극하여 가난한 산림에도 나뭇짐을 지고 예천장에 내다 팔아 부모를 공양하고 또 한여름 6월에 홍시를 먹고 싶다는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이 호랑이를 감동시켜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홍시를 구해온 이야기, 엄동설한에 수박을 먹고 싶다는 어머니에게 수박을 구해다 드린 이야기 등 도시복의 효행에 관한 이야기가 명심보감에 실려 백성들의 귀감이 되었다 한다.
오후 6시 우리는 옥녀봉 생태 터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는 모두 버스에 올랐다. 서울을 향해 출발하면서 인원 점검을 하는데 한 명이 빈다. 총대장님이 확인하고 나서 최근에 합류한 회원 한 명이 묘적령에서 하산하지 않고 죽령을 향해 가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어찌할건지 결정하라 한다. 어찌할건가 묻는 것은 모두 죽령에 가서 기다렸다가 함께 갈건지 아니면 무리에서 이탈한 선량한 양을 두고 그냥 갈건지 그 결정을 우리에게 맡긴다는 말이다. 작년 꼭 이맘때 장수덕유 산행때가 생각난다. 그 때도 한 쌍의 회원이 이탈하여 삿갓봉을 넘어가는 바람에 나머지 회원들이 어두울 때까지 기다려야 했었다.
고항치와 작별하고
죽령가는 길에 사과 과수원에 들러 꽃구경하고
팔자에 없는 죽령(竹嶺)을 구경하고
길잃은 양을 데리고 밤공기를 가르며 서울로 출발했다.
모두의 동의로 우리는 죽령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사과 과수원에 들러 사과꽃밭에서 사진찍기 놀이도 하고 또 죽령에 내려 다음번에 갈 고개를 둘러보기도 했다. 술을 좋아하는 주류는 주막집에 들어가 고항치에서 덜 마신 술을 이어 마신다. 마침내 7시가 조금 넘어 송종만 씨가 피곤에 지친 몸이지만 안전하게 하산하였다. 묘적령에서 하산한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앞으로만 나갔는데 아무리 가도 앞에도 뒤에도 아무도 없어 당황한 발걸음으로 죽령까지 달려 왔다 한다.
착한 사마리아인들로 가득찬 버스는 고생한 회원에게 보내는 훈훈한 위안의 박수를 가득 싣고 어두운 밤길을 달려 서울로 향했다. 밤 10시 양재역에 도착하여 하루 일정을 마쳤다.
첫댓글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같이 못한 이 심정 얼마간이라도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글입니다!!2
멋지게 꾸며주신 산행기 잘보고,야생화도 잘 감상했고요,퍼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감사 합니다.
스스로 글을 쓰면서도 함께 한 사람만이 조금 감정을 함께할 정도라고 생각하면서 두 세 단락 읽다 보면 지루한 느낌이 들더군요. 글자는 조금 크게 했지만 여전히 재미는 없는데도 읽고 좋은 평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