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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화백' 트레킹 문화답사-북경주변(산시성)
2026.7.30~8.5 (6박7일) 44명
2일차 - 거용관, 화엄사, 대동(다퉁)박물관
1. 거용관(居庸關, 쥐융관)은 중국 베이징시 창핑구(昌平区)에 위치한 만리장성 의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관문이자 요새입니다. 산해관(山海關), 가욕관(嘉峪關) 과 함께 만리장성의 3대 관문중 하나로 꼽힙니다.
1.1 이름의 유래와 군사적 위상
• 이름의 의미: '용(庸)'은 '평범하다'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이 지키고 있더 라도(居) 능히 적을 막아내는 요새(關)가 된다"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만큼 지형이 험준하여 방어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곳입니다.
• 천하제일웅관(天下第一雄關): 웅장하고 험한 요새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군사 적 요충지이자 '난공불락의 아홉 요새' 중 하나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 베이징의 최종 방어선: 몽골고원에서 화베이 평원(베이징)으로 진입하는 협 곡 길목에 위치하여, 북방의 침입으로부터 도성을 지키는 핵심 관문
1.2. 구조와 건축적 특징
• 순환형 구조: 양쪽 산등성이를 따라 성벽이 이어져 있어, 전체가 완벽하게 연결된 둘레 약 4km의 순환 코스(원형 성곽)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 삼관(三關) 시스템:
거용관은 남구(南口), 관성(關城), 상관(上關)의 3개 관 문 체계로 겹겹이 쳐진 복잡한 방어선. 현재 우리가 주로 방문하는 중심 요새는 명나라 초기(1369년) 명장 서달(徐達)이 개축한 관성입니다.
• 가파른 경사: 베이징 인근의 또 다른 장성인 팔달령(바다링)에 비해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계단이 높아서 등반할 때 상당한 체력이 요구되지만, 정상 봉수대에 올랐을 때의 장엄한 풍경이 일품입니다.
1.3 핵심 문화재:
운대 (雲臺, 위안타이) 거용관 남문 안쪽에는 원나라 시기(1342~1345년)에 백대리석으로 축조한 '운대 (雲臺)'라는 돌문 구조물이 보존되어 있다. 거용관 예술의 정수로 꼽히는 핵심유적 Ÿ 원래는 이 돌문 위에 불탑이 세워져 있었으나 유실되었고 현재는 하부의 돌 기둥과 터널만 남아 있습니다. Ÿ 정교한 석각 예술: 터널 내부 벽면과 아치에는 티베트 불교 양식의 사천왕 상, 보살상, 천인 등이 매우 입체적이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Ÿ 6개 민족의 문자: 불교 경전과 주문이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파스파 문자(몽 골), 위구르어, 서하 문자, 한자 등 6가지 언어와 문자로 새겨져 있어 고대 아 시아 언어학 및 교류사 연구에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1.4 수려한 자연경관:
거용첩취 (居庸疊翠) 거용관 주변의 산세는 병풍처럼 겹겹 이 둘러싸여 있고 수목이 무성하여, 금나라 시절부터 베이징의 아름다운 여덟 가 지 풍경을 뜻하는 '연경팔경' 중 하나인 '거용첩취'로 불렸습니다.
2.다퉁 화엄사(大同 華嚴寺):
산시성(山西省) 다퉁시에 위치한 사찰로, 운강석굴과 함께 다퉁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승지입니다.
《화엄경》사상에 따라 건립 되었으며, 중국에 현존하는 요(遼)·금(金) 시대의 사찰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 상태가 완벽한 유적입니다.
2.1 역사적 배경과 독특한 특징 내부 오방불(명나라 선덕연간(1426~1435년)에 진흙으로 빚어낸 뒤 개금)
•요나라의 황실 사찰 (1062년 건립):
북방 유목민족인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시기에 황실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아 지어졌습니다.
단순한 종교 사찰을 넘 어 황실의 조상 제사를 지내는 원찰(願刹) 역할을 겸했습니다.
•동향(東向) 배치: 일반적인 중국 사찰들이 남쪽을 바라보는 구조인 것과 달 리, 화엄사는 문이 동향입니다. 이는 태양을 숭배하고 동쪽을 가치 있게 여 겼던 거란족 고유의 민속 신앙과 전통이 반영된 매우 독특한 사례입니다.
2.2 상하(上下) 화엄사의 구조 화엄사는 크게 상화엄사(上華嚴寺)와 하화엄사(下華嚴寺)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 며, 각각 요·금 시대 예술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① 상화엄사의 중심: 대웅보전 (大雄寶殿) •중국 최대의 대웅전: 금나라 시절(1140년) 중건된 대웅보전은 건물의 넓이 가 전면 9칸, 측면 5칸에 달하는 중국 현존 최대 규모의 단층 목조건축물중 하나입니다. 지붕 거대한 장식(치미) 중 하나는 요나라 때의 진품이다.
•불상과 벽화: 내부에는 명나라 때 조성된 다섯 구의 거대한 여래좌상(오방 불)과 불제자 상들이 모셔져 있으며, 벽면을 가득 채운 청나라 시기의 대형 벽화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② 하화엄사의 중심: 박가교장전 (薄伽敎藏殿) •요나라 건축의 기적: 1062년 요나라 때 지어진 원형 그대로 보존된 전각으 로, '박가(薄伽)'는 부처(Bhagavan)를, '교장(敎藏)'은 불교 경전을 뜻하므로 즉, 황실의 불경을 보관하던 장경각입니다.
•벽면 목조 감실 (천궁누각): 전각 내부 벽면을 따라 2층 구조의 정교한 미 니어처 목조 건물이 가구처럼 짜 맞추어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경전을 보 관하던 감실입니다. 11세기 요나라의 세밀한 목조 건축 기술을 완벽하게 보 여주는 최고의 걸작입니다.
•합장 로사나불 (동방의 비너스): 이 전각 안에는 요나라 때 진흙으로 만든 31구의 채색 조각상(소상)이 있습니다. 그중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모으고 서 있는 '합장로사나불상'은 유려한 몸의 곡선과 생동감 넘치는 표현 덕분에 중국 불교 미술의 최고봉이자 '동방의 비너스'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2.3 현대의 랜드마크: 화엄탑 (華嚴塔): 상세 설명은 https://peaceofman.tistory.com/26 참조 (다음페이지 사진& 설명)
3. 대동박물관
중국의 유명 건축 디자인팀이 설계한 이 건물은 다퉁의 대표적 지형인 용암 대 지와 운강석굴의 거친 암벽, 그리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용(龍)의 형태를 현대 적으로 재해석하여 구부러진 비정형의 웅장한 곡선으로 완공되었다.
현대 화엄사 경내에 정교하게 복 원된 화엄탑(대형 목탑)-순수 목조 탑: 못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 공법으로 높이 43m 의 웅장한 탑으로, 탑 내부 지 하에는 약 500톤의 순동(純銅) 을 녹여 만든 거대한 지하 청 동 불전이 조성되어 있어 관람 객들에게 압도적인 시각적 경 험을 선사한다.
-천불지궁(지하궁전): 탑의 지 하에는 약 100톤의 순동을 사 용하여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꾸민 '천불지궁(千佛地宮)'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에 고승 의 사리와 수많은 동불상이 안 치되어 있습니다. 황금 사리보탑(舎利寶塔)도 있ek.
요약- 다퉁 화엄사는 한족 의 문화와 북방 거란족(요)·여 진족(금)의 문화가 불교라는 종교 속에서 어떻게 융합되었 는지를 웅장한 스케일과 정교 한 조각으로 웅변하는 '살아있 는 불교 건축 미술관' 대동박물관은 시대별로 총 4개의 핵심 상설 전시장을 운영한다.
1) 박물관의 핵심 주제:
'융합(融合)' 다퉁은 조나라 시절부터 국경 요새였고, 북위(선비족)의 수도였으며, 요(거란족)· 금(여진족)나라의 부수도(서경) 역할을 했던 북방 민족 교류의 중심지. 따라서 박 물관의 전시 역시 전쟁과 무역을 통해 유목민과 농경민이 어떻게 융합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 천하위도(天下魏都) - 북위 시기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1965년 발굴된 북위 무덤(사마금룡묘, 474년)으로 출토 된 수백점의 채색도용군대가 압권. 군인, 악사, 낙타와 말 등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에서 당시 북위의 군사력과 국제무역의 활기를 그대로 느낄수 있다
북위 시대의 정교한 기와, 석조 조각, 그리고 유목민 특유의 금속 장신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서경풍운(西京風雲)-
요·금 시기:화엄사를 지었던 거란족(요)과 여진족(금) 시절의 유물을 다룹니다. 한족의 문화를 흡수하면서도 자신들의 기상과 독자적 5 인 미감을 유지했던 요·금 시대의 화려한 도자기, 금은보화, 그리고 장례 문화 (금속 가면 등)를 볼 수 있습니다. 3)창상무주(滄桑武周) - 선사시대~한나라: 다퉁의 뿌리가 되는 고대 유물과 한 시기 북방 흉노족과의 경계에서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청동기 등이 전시 4)명청중진(明清重鎮) - 명·청 시기: 만리장성의 거용관 등과 연결되어 베이징을 지키는 최전방 군사 도시이자,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명청 시대 다퉁의 모 습을 성곽 모형과 생활 유물로 보여줍니다. 대동박물관 외관 3일차 : 운강석굴, 구룡벽, 현공사(조망), 비호곡 1.운강석굴 : 별첨 참조 2.구룡벽 : 중국 최대·최고(最古): 다퉁 구룡벽 (大同 九龍壁) 산시성 다퉁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것으로, 중국에 현존하는 구룡벽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입니다.
•역사적 배경: 명나라를 건립한 주원장(홍무제)의 13번째 아들이자 대동 지역 을 다스리던 대왕(代王) 주계(朱桂)의 저택(대왕부) 앞에 1392년에 세워졌습 니다. 대왕부는 소실되었으나 구룡벽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규모: 길이 45.5m, 높이 8m, 두께 2m로 베이징 자금성의 구룡벽보다 훨씬 큽니다. •예술적 특징: 아홉 마리의 용이 요동치는 아래로 수중 세계의 기이한 생물들 이역동적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벽 앞에는 기다란 수로(거울못)가 있어, 물에 비친 용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왕의 신 분이었기에 자금성과 달리 용의 발가락이 4개(사조룡)로 표현된 것이 특징
3. 현공사
- 조망 ONLY 중국 5대 도교 명산 중 하나인 항산(恒山)의 가파른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3.1- 이름의 의미와 절묘한 위치
•이름의 뜻: 원래 이름은 도교의 심오한 진리를 뜻하는 '현(玄)'과 불교의 공 (空) 사상을 합친 '현공사(玄空寺)'였으나,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모 습이 마치 하늘(空)에 매달려(懸)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지금의 현공사(懸空 寺)로 굳어졌습니다.
•지상 50m 위의 요새: 계곡 아래에서 보면 지상 약 50m(건물 높이 기준으로 는 약 20층 높이) 위의 수직 절벽 한가운데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3.2 천년을 버틴 건축공학의 비밀 (491년 건립~) 현공사는 북위(北魏) 시대 후기인 491년에 처음 지어져 무려 1,500년이 넘는 세 월동안 수많은 지진과 풍파를 견뎌냈습니다. 여기에는 조상들의 놀라운 과학적 지 혜가 숨어 있습니다.
•절벽 속으로 박아 넣은 보(Beam): 눈으로 보면 사찰 아래를 받치고 있는 얇 은 나무 기둥(독골목)들이 건물을 지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진짜 비 밀은 절벽 바위에 깊숙이 구멍을 파고 박아 넣은 '철삼목(독목보)'이라는 단 단한 가로지르기 들보에 있습니다. 아래의 가느다란 기둥들은 나중에 추가된 보조 장치이거나 착시를 주는 용도에 가깝습니다.
•자연의 차양막: 절벽이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지형에 자리 잡고 있어, 홍수가 나도 비를 맞지 않고, 햇빛도 하루에 서너 시간만 들어와 목조건물이 썩거나 색이 바래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3.3 종교 화합의 공간: 삼교합일 (三敎合一) 현공사가 종교사적으로 매우 독특한 이유는 불교, 도교, 유교가 한자리에 모인 사 찰이기 때문입니다. 사찰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삼교전(三敎殿)'내부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 왼쪽에 노자(도교), 오른쪽에 공자(유교)의 상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서로 격렬하게 갈등하기도 했던 세 종교를 하나의 전각에 평화롭게 모신 것은 중 국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상생과 화합의 상징입니다.
4. 비호곡
---> 다음 날(4일차)로 옮기는 게 동선상 맞는듯 비호곡(飛狐峪, 페이후위)은 중국 산시성 다퉁시 광링현과 허베이성(河北省) 라이 위안현· 위현의 경계에 걸쳐 만리장성 안팎을 연결하는 험준하고 유서깊은 협곡. '비호(飛狐)'는 날아다니는 여우를 뜻하며, 협곡의 양쪽 절벽이 너무나 가파르고 험준하여, "오직 날아다니는 여우만이 넘나들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협곡 드라이브 및 하이킹 (비호곡 풍경구):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중간중간 형성된 계곡길을 트래킹. 웅장한 규모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백석산 연계 트레킹: 비호곡과 인접한 백석산은 태항산의 대표적인 명소로, 해발 1,600m 이상의 고산 지대에 설치된 유리 잔도와 아찔한 절벽길을 걸을 수 있어 비호곡 트래킹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코스
4일차 : 공중초원, 청서릉
1.공중초원 공중초원(空中草原, 콩중차오위안)~
비호곡(飛狐峪)협곡을 통과 해 해발 약 2,158m 정상에 다다르면 거짓말처럼 펼쳐지는 거대한 고원 초대지.
1.1 지형적 특징: "산꼭대기에펼쳐진 평원 •일반적인 산 정상은 뾰족하거나 험한 바위로 되어 있지만, 공중초원은 거대 한 산의 꼭대기가 마치 칼로 잘라낸 듯 평평한 대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면적이 약 36㎢(약1,100만 평)에달할 정도로 광활하여, 높은 하늘 아래 구 름과 맞닿은 초원이라는 뜻에서 '공중초원'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1.2 기후와 자연경관: 여름철의 천국 •서늘한 기후:해발고도가 2,000m를 넘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2 0℃ 안팎에 머무를 정도로 서늘합니다. 예로부터 북방 유목민들과 황실의 여 름철 피서지로 사랑받았습니다. •야생화의바다:봄부터 가을까지 이름 모를 수십 가지의 야생화가 계절에 따 라 색을 바꾸며 피어납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초원 전체가 천연 화원으로 변 모하여 장관을 이룹니다. •만년빙(일년 내내 녹지 않는 얼음):초원 한편에는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어 있는 기이한 동굴이나 그늘진 계곡(빙굴)이 있어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1.3 역사적·문화적맥락
•유목 문화의 흔적:이곳은 고대부터 한족의 농경 문화와 북방 민족(선비, 거 란, 여진, 몽골)의유목문화가 충돌하고 교류하던 천연목장. 지금도 초원위에 서 유목민의 후예들이 말을 몰고 가축을 방목하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요새의 배후지:밑에서는 험준한 비호곡 협곡을 통해 적의 침입을 막고, 일단 이 정상에 오르면 대규모 군사가 주둔하며 진을 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기 도 했습니다.
깊고 어두운 기암괴석 협곡인 비호곡을 차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직후,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이며 끝없는 초원이 나타나는 시각적 경이로움이 백미
2. 청서릉 청서릉(清西陵, 칭시링)-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바오딩시 이현(易県)에 위치한 청나라 황실의 거대한 공동묘역. 베이징 동쪽에 있는 청동릉(清東陵)과 함께 청나 라 후기 황실 무덤군을 이루고 있으며,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2.1 조성 배경: 옹정제의 '풍수지리'와 서릉의 시작 원래 청나라 황실은 베이징 동쪽의 '청동릉'에 대대로 묻히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청나라 5대 황제인 옹정제(雍正帝)가 자신의 무덤 자리를 찾던 중, 청동릉 의 풍수가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베이징 서쪽인 이곳 이현 지역에 새로 무덤을 쓰면서 청서릉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 소목장제(昭穆葬制)의 도입: 이후 옹정제의 아들인 건륭제는 한 곳에만 무덤 을 쓰면 한쪽 묘역이 황량해질 것을 우려해, "아버지가 동릉에 묻히면 아들 은 서릉에, 아버지가 서릉에 묻히면 아들은 동릉에" 교차 매장 원칙을 세웠 습니다. 이로 인해 청나라 황릉은 동릉과 서릉으로 양분되게 되었습니다.
2.2 규모와 안장된 인물들 청서릉에는 총 4명의 황제와 황후, 후궁, 왕자 등 총 70여 명이 안장되어 있다.
• 태릉(泰陵): 청서릉의 시초가 된 옹정제와 황후의 능. 청서릉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며, 진입로에 세워진 거대한 백대리석 패방(대문)과 신도(神道) 조각들 이 압권입니다. • 창릉(昌陵): 7대 황제인 가경제(嘉慶帝)의 능. 대전 내부의 기둥과 보가 브라 질산 자단목과 황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모릉(慕陵): 8대 황제인 도광제(道光제)의 능. 국력이 쇠해지던 시기라 겉보 기에는 규모를 대폭 줄여 소박하게 지었으나, 내부 천장과 부조를 값비싼 향 나무(난목)에 수천마리의 용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숨겨진 화려함을 자랑.
•숭릉(崇陵): 청나라의 사실상 마지막 황제이자 비운의 군주인 광서제(光緒帝) 의 능입니다. 중국 현존 마지막 황제릉으로, 지하 현궁(석실)이 개방되어 있 어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2.3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의 묘 청나라의 진짜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푸이는 황제의 신분을 잃고 평민으로 살다 동관공묘(민간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1995년 그의 유골이 청서릉 경내에 있는 민 간 재단 묘역(화룡공묘)으로 이장되어, 청서릉은 청나라의 시작(옹정)과 끝(푸이)을 함께 품은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예술 및 자연적 가치: 청서릉은 수백 년 된 수만 그루의 고송(古松)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황량한 느낌의 다른 능묘들과 달리 거대한 수목원이나 삼림공원 같 은 고즈넉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인위적인 건축물과 천연의 산세가 풍 수지리 사상에 따라 어떻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가 보여주는 중국 황실 조경 예 술의 정수입니다.
5일차
-십도 (十渡, Shidu) 트래킹
•위치 및 개요: 베이징시 팡산구(房山区) 스두진에 위치하며, 대청(大清)河의 지류인 거마(拒馬)河가 타이항산맥(太行山脉) 북단을 절단하며 형성한 약 20km 길이의 협곡이자 하천 계곡입니다.
•이름의 유래: 이름은 과거 나룻배를 타고 강을 열 번 건너야 협곡을 지날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
•지형 및 특징: 중국 대륙 북방에서 유일무이한 대규모 카르스트(Kars) 암용 지형이자 화북 최대의 대협곡으로, '북방의 소계림'으로도 불립니다.
1) 고산채 코스 (孤山寨, Gushanzhai) – 초·중급 추천 •특징: 가장 대중적이고 정비가 잘 된 트레킹 코스. 유려한 폭포와 아찔한 외 나무다리, 좁은 바위 틈새 길인 '일선천(一线天)' 등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소요 시간: 왕복 약 3~4시간/ 난이도: 하 ~ 중
2) 동호항 코스 (东湖港, Donghugang) – 중급 추천
•특징: 기암절벽과 가파른 잔도(절벽 길)를 따라 걷는 코스. 체력 소모가 있지 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협곡 전체의 파노라마 뷰와 시원한 폭포 경관 일품
•소요 시간: 왕복 약 4시간 /난이도: 중
6일차 : -동링산 (東靈山, Donglingshan) 트래킹
•위치 및 개요: 베이징시 먼터우거우구(门头沟区) 서북부 산악지대에 위치하 며 장자커우시(주오루, 화이라이)와 경계를 이룹니다.
•해발 1,650미터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으며, 이곳에 주차장과 6월부터 10월 까지 운행되는 체어리프트가 있디.
이 리프트는 430미터를 더 오르며 정상까 지 걸어서 약 한 시간이 걸립니다.
•베이징 최고봉: 해발 2,303m로 베이징시에서 가장 높은 제1봉입니다.
•링산의 구분: 링산은 동링산, 북링산, 서링산, 남링산으로 나뉘는데 이 중 동 링산만 베이징에, 나머지는 허베이성에 속합니다.
•특징: 여름철 피서와 고산 등산·트레킹을 즐기려는 여행객들이 찾는 명소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나무그늘 하나 없고 말똥천국이지만 야생화 천국
#북경 경산공원 ~
베이징(북경)의 중심에 위치한 경산공원(景山公園, 징산공원)은 자금성(고궁) 바로 북쪽에 맞닿아 있는 유서 깊은 황실 정원이자 공원입니다. 자금성을 비롯한 베이징 시내 전체를 360도 파노라마로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여행자들에게 필수 코스인 곳입니다
- 자금성을 지키기 위해 만든 '인공산'
•풍수지리의 산물:경산공원의 중심인 경산(해발 94.2m)은 자연적으로 생긴 산 이 아니라 100% 사람이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만수산)입니다.
•원나라와 명나라 시절 자금성의 해자(인공 강)를 파면서 나온 흙과 옛 궁전 을 허문 잔해를 쌓아 만들었습니다. 이는 "산은 북쪽에 두고 물은 남쪽에 둔 다"는 전통 풍수지리의 배산임수(背山臨水)원칙에 따라 북쪽의 사악한 기운 매서운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되었습니다.
- 최고의 관람 포인트: 만춘정 (萬春亭)
•경산공원 정상에 서 있는 정자인 만춘정은 경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자, 과거 베이징 성 전체를 통틀어 중심축(중축선)의 가장 높은 지점이었습니다.
•자금성 직관 명소: 이곳에 오르면 황금빛 지붕이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자 금성의 전체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날씨가 맑은 날 일출이나 일몰 때 방문하면 붉게 물드는 황궁의 장엄한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고대의 시간 알리미였던 고루(鼓樓)와 종루(鐘樓), 서쪽으로는 북 해공원의 백탑까지 막힘없이 조망할 수 있습니다.
\3 스차하이 야경
•과거와 현재의 공존: 전해(前海), 후해(后海), 서해(西海) 세 개의 호수로 이 루어진 스차하이는 명·청 시대의 귀족 저택과 오래된 골목인 후통(胡同)이 잘 보존된 곳입니다. 밤이 되면 이 고풍스러운 기와지붕 아래로 라이브 바 (Bar)와 카페의 네온사인이 불을 밝히며 독특한 야경을 만들어냅니다.
•수면에 비치는 반영
-호숫가를 따라 늘어선 상점들의 화려한 불빛과 붉은 홍 등이 잔잔한 호수 표면에 그대로 투영되어 일렁이는 모습이 야경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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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석굴(雲岡石窟) 소개
중국 산시성(山西省) 다퉁시(大同市)에 위치한 운강석굴은 돈황의 막고굴, 낙양의 용문석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꼽히는 세계적인 불교 유적이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오호십육국 시대(304 년~439년) 화북을 통일한(439년) 탁발선비 북위(北魏)왕조(386년~534년)의 주도로 조성되었다. ※5호16국: 전조(전한/흉노),후조(갈),전연(선비),후연(선비),남연(선비),북연(한족),전량(한 족),후량(저) ,남량(선비),북량(흉노),서량(한족),전진(저),후진(강),서진(선비),하(흉노)
1. 역사적 배경과 건립 (5세기 중엽~)-북위 왕조의 후원: 460년경, 북위의 문성제(文成帝)가 고승 담요(曇曜)에게 명 하여 개착을 시작했다.-황즉불(皇卽佛) 사상: "황제가 곧 부처(왕즉불)"라는 관념을 바탕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앞선 시기의 폐불 사건(태무제의 폐불)으로 실추된 불교를 부흥시키 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했다.-조성 시기: 주로 460년부터 북위가 낙양(뤄양)으로 수도를 옮긴 494년 사이에 핵심 석굴들이 완성되었다.
2. 구조 및 규모 무주산(武州山) 남쪽 암벽을 따라 동서로 약 1km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현재 주요 석굴 45개를 포함해 총 252개의 대소 석굴이 남아 있으며, 불상의 수는 5 만 1,000여 구에 달한다. 운강석굴은 동부, 중부, 서부의 세 구역으로 나뉜다. 동부 석굴은 불탑 중심의 구조로 ‘불탑 석굴’이라 불리며, 중부 석굴은 운강석굴의 핵심으로 직사각형의 방형 구조와 뒷방을 가진 구성이 특징이다. 중앙에는 대형 불상이 배치되고, 상 부 벽면에는 정교한 부조가 새겨져 있다. 승려 담요(曇曜)의 지도아래 조성된 다 섯 개의 석굴은 가장 오래된 대표작으로, 그 예술적 완성도가 특히 높다.
3. 시기별 양식의 변화 (3단계) 운강석굴은 조성 시기에 따라 불상 조각의 스타일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15 4. 예술적·역사적 의의 인도의 간다라 미술, 마투라 미술,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양식이 중국 전통 조각 과 어떻게 융합되었는지(중국화 과정)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최고의 이정표이다. 또한 운강석굴의 거대한 석불 양식과 세부 문양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 대 불교 미술 및 일본의 아스카 미술의 모태가 되었다. (예: 석굴암의 구조적·도 상적 흐름의 원류 중 하나)
♣여행가기 전에 꼭 보고가야하는 영상, 세계유산 윈강석굴 Yungang Grottoes, 雲 岡石窟 몰아보기/https://www.youtube.com/watch?v=MMpT6qAVKDg 그리고 평면적인 것보다 입체적인 느낌의 동영상을 볼려면 아래 사이트가 비 교적 잘된 것으로 보임
♣ 운강석굴,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 불교가 전파된 고대의 흔적 SeiuTravel 유튜브 동영상참조 구분시기대표 석굴주요 특징 초기 (담요굴) 460~ 465년 제16~20굴북위 초기 다섯 황제(도무제,명원제,태무제,경목제, 문성제)를 상징하는 거대한 주존불이 특징. 선이 굵고 강인하며, 역동적인 북방 유목민의 기백을 풍 기며 서역(인도·중앙아시아) 양식의 영향이 강함. 각 석굴마다 높이 13~17m에 달하는 거대한 주존 불이 중심을 차지한다. 중기 (전성기) 465~ 494년
제5·6,7· 8, 9·10굴 한족 문화와의 융합이 시작됨. 석굴 구조가 복잡해 지고, 벽면 전체를 작은 불상과 부조로 빼곡히 채 우는 화려하고 정교한 양식. 후기 (낙양천도 이후) 494~ 525년 제11굴이후 주변 석굴 민간 주도로 조성됨. 불상의 체구가 왜소해지고 옷 자락이 길고 넓어지는 '포복대대(褒衣博帶)'의 완 연한 중국 한족 스타일로 변화. 16 윈강석굴 여행 가이드|대동에서 꼭 봐야 할 문화유산 https://www.eastchinatrip.com/ko/yungang-grottoes-travel-guide/2026년 안녕하세요, Michael Zhang입니다. 중국에서 국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조각을 시작한 최초의 대형 석굴군인 윈강석굴(雲岡石窟)은 중국 불교 예술의 출발점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동서 문명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인도의 우아한 조각과 중원 지역의 엄숙한 분위기가 함께 존재하며, 그리스의 소용돌이 무늬 장식이 서역 무사의 조각과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운영 시간: 08:30–16:30/ 권장 관람 소요 시간: 약 3~4시간
*주요 명소 : 령암사 령암사는 윈강석굴의 역사적 시작점으로, 본래 석굴 전체를 통칭하는 이름이었 으며 북위 시대에는 황실이 불교 의식을 거행하던 장소였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령암사 건축군은 명·청 시대에 옛 자리에 재건된 것으로, 불교 의례성과 중원식 사찰 건축이 어우러진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순례지가 아니라, 윈 강석굴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첫 관문이기도 하다. 사찰은 산기슭에 세워졌 고, 본전은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찰 앞 계단에 서서 멀리 바라보면, 우 뚝 솟은 암벽에 새겨진 천년의 불상이 대퉁 서쪽 외곽의 이 불국정토를 수호하 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윈강석굴 영암사 내부 목조 불상과 수호신상 윈강석굴의 핵심 구 역은 현재 45개의 주요 석굴이 남아 있 으며, 그중에서도 제 3호와 제5호 석굴은 가장 대표적이고 예 술적 가치가 뛰어나 방문해야할 곳.
▶관람 루트: 입장 → 담요우 광장을 따라 직진 → 예불대로 → 령암사(천불전–대웅 보전) → ‘입불지견’ 산문을 지나면 석굴구역 진입 → 석굴구역(전체 45개 석굴, 1호 부터 시작해 북위 무명 승장탑까지 이어짐) → 출구(담요우 광장 서쪽의 식품 거리) -> 평균 3~4시간 정도 소요 시간이 부족하다면 핵심 속성 코스 (약 2시간) 셔틀버스를 타고 곧바로 메인 석굴 구역으로 이동해 핵심 석굴(5·6·12·20굴)관람
•제3호: 윈강 최대 석굴
•제5-6호: 대불굴, 높이 17미터 불상. 제5·6호는 쌍굴이며 주존은 삼세불. 각 석굴 외부에는 청대 목조 누각 존재 • 8굴: 힌두교의 신을 수호자로 새긴 독특한 굴
• 9굴: 방 전체가 정교한 부조 스토리 •제12호: 전실에 다수의 악기 연주 조각이 있는 음악굴 •제13호: 높이 13미터 미륵교각보살 •제15호: 만불굴, 수천 개의 단독 불상 조각
•제16~20호: 담요굴 -16호: 높이 13미터의 석가 입상, 17호: 윈강 초기 석굴 중 유일한 교각보살 대상-19호: 주존이 삼세불, 높이 16.8미터로 윈강 두 번째로 큰 불상
20호: 윈강 대표 노천 대불, 윈강석굴 동구, 1굴부터 4굴까지 전경 1굴과 2굴 전경 19 보살상아래 양측에는 무릎을 꿇고닜는 공양자상 2구가 있음 1굴 서벽 감실 20 중심탑주 높인 6.2m 로 탑기좌, 탑신, 탑천정 돔 세부분으로 나뉘어짐 2굴 3굴은 건설중 미완성으로 폐기됨,
4굴도 중도폐기된 석굴임 전체 탑기좌는 1963년 보수한 것, 탑신은 3층으로 구성 각층의 3면에 불감을 설치
제 3굴 황실 석굴의 위엄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윈강석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장식이 가장 복잡한 석굴로, 흔히 ‘대상굴’이라 불립니다.
북위 문성제 시기에 조성된 것 으로 추정되며, 석굴 중앙에는 높이 17미터에 달하는 석가모니 좌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위엄 있는 얼굴과 당당한 풍채는 강력한 황실의 이미지 투영으로 간주 됩니다. 그러나 다른 대형 석굴처럼 내부를 모두 조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완성 된 예배 공간이라기보다 공사가 중단된 현장의 모습을 일부 간직하고 있다.
북위는 494년에 수도를 다퉁(평성)에서 뤄양으로 옮겨 황실의 후원 감소등으로 인한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오늘날 내부에 남아있는 거대한 좌불, 협시보살 등은 초기 운강 조성기와는 시 기가 다르며, 일부는 요나라의 불교 중흥(10~12세기)에 다시 조성되거나 보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의좌불상(의자에 앉은 자세)은 풍만하고 사실적인 조각양식, 얼굴은 둥글고 어깨가 넓음 좌우 보살상도 둥글고 풍만한 얼굴 .
☞ 제 6굴: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의 극치 2층 구조의 장엄한 중심 탑주(中心塔柱), 탐묘굴 내부로 들어서면 공간 한 가운데를 가득 채우고 있 는 거대한 사각형기둥(높 이~15m)과 마주한다. 석굴 자체가 하나의 탑이 되는 탑묘굴(塔廟窟)구조
※제8, 9·10굴:중기석굴 화려한 장식 석굴 제11~13굴: 후기석굴 신앙 중심 석굴 불교신 연재사진(2026년 6월 23일) 목조건축물은 1651년에 세워진 것 25 제 5굴은 약 471년~494년사이에 북위의 전성기를 이끈 효문제(孝文帝)와 그의 할머 니인 문명황태후(풍태후) 시절에 조성되었다. 중앙에는 높이 13.7미터의 불좌상이 있고, 양쪽 협시상은 생동감 넘치며 균형 잡힌 비례를 보여줍니다. 특히 천정의 조정 장식과 벽면 조각의 복잡도와 미적 수준은 고대 그리스 신전과 견줄 만큼 뛰어나다.
초기 담요 5굴(16~20굴)의 불상들이 어깨를 드러내거나 얇은 서역풍 옷을 입은 것 과 달리, 5굴 대불은 중국 한족 사대부들의 예복 스타일인 '포복식 가사'를 묵직하게 걸치고 있다. 효문제가 추진한 한화 정책이 불교 미술에 완벽하게 정착했음을 증명 하는 표준 유물이다. 불상의 겉면에 입혀진 화려한 금박과 채색은 청나라 때(1651년) 대대적으로 중수되 면서 덧칠해진 것으로, 북위의 거친 돌 조각 위에 화려한 색채가 더해져 묘한 장엄 함을 풍깁니다.
대불의 뒤편과 사방 벽면, 그리고 천장까지 빽빽하게 불상과 불교 설화가 조각되어 만불(萬佛)이 벽면을 따라 크고 작은 불상 수천 개가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다.
6굴 : 탑주1츻 4면중 남면: 석가모니불좌상,서면: 아미타불, 북면: 석가·다보 이불병좌상, 동면에는 교각미륵보살을 배치
2층: 중국 목조다층탑 양식을 모방. 4모서리 9층탑,처마를 받치는 공포,추녀마루,기와 4면 불상을 넣은 탑주
7-8굴 입구쪽 바위를 그대로 깎아 만든 이 팔각형 기둥들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전 기둥 및 고대 인도의 거대한 석주 양식을 강하게 풍긴다. 서역풍의 헬레니즘 문화와 간다라 양식이 북중국 황실석굴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8굴 후실부분: 힌두신을 수문장으로 채택한 독특한 굴-> 마지막 페이지보강 입구벽 안쪽 좌우측공간에 힌두신 시바(푸른타원형, 좌측확대)와 비슈누(or 스칸다) 9굴과 10굴 외관 30 제 9굴: 북위의 천재 정치가였던 문명태후(풍태후)와 손자 효문제의 치세를 상징 하거나, 혹은 문명태후사후 효문제가 조부모의 명복을 빌기위해 대규모 국가재정 을 투입해 만든 것으로 추정 교각보살상(주존불): 미래에 중생을 구제할 미륵보살을 표현 건축형 감실:불상이 모셔진 감실(방치형 공간)의 윗부분을 보면, 중국 전통 건축 의 지붕모양인 '오진정(五脊頂)' 형태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서역의 불교도상 이 중국 현지의 건축 양식과 자연스럽게 결합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역동적인 신장과 비천상: 문틀과 벽면에는 사자를 타고 있는 신이나 힘이 넘치는 인왕상, 그리고 비천상들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
제9굴은 방 전체가 정교한 부조 스토리로 엮여 있어, 불상 개개의 크기보다는 벽면 전체의 조화와 천장의 문양을 넓게 둘러보시는 것이 좋다. 특히 입구 기둥의 이국적 인 형태를 먼저 감상하신 후 내부의 중국식 건축 요소를 비교해 보시면 문화 융합의 재미를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다.
제 10굴: 약 471~494년에 조성(효문제시기) 중앙에 본존불을 배치하고 주변 벽면에는 수많은 작은 불상과 보살상, 그리고 천장에는 연꽃과 천인(飛天) 장식, 벽면에는 다양한 불교설화와 공양장면이 조각 불교신문연재사진,
운강석굴에는 유난히 부처님 두분이 나란이 앉아있는 이불병좌상이 많다. 특히 운강 중기 석굴들은 2명의 성인체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여기서 말 하는 2분의 성인(二聖)은 효문제와 문명태후 풍씨(문성제의 황후) 풍씨는 5살에 즉위한 효문제의 섭정을 오래했고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魏書》에는 아예 “이성 의 밝은 지혜가 100년능 덮는다. 장엄하도다 이성의 인덕은 ...”
10굴 전실북벽 동측 불감 불 의좌상 위 이불병좌상배치: 법화경 '견보탑품'의 이야기: 부처님이 영취산 에서 법화경을 설법하고 계실 때, 갑자 기 땅속에서 거대하고 화려한 보탑(다 보탑)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탑 내부에 서 과거의 부처님인 '다보여래(多寶如 來)'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탑의 문을 열자, 다보여래는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양보하며 "이 자리에 와서 같이 앉으십시오"라고 청한다. 그리하여 현 재의 부처님(석가모니)과 과거의 부처 님(다보여래)이 한 탑 안에 나란히 앉 아 함께 설법을 이어가게 되었다.
제11굴(접락동,接引洞),12굴(음악굴),13굴: '중기(470~494년)' 서막을 여는 석굴 11,12,13굴 : 동시개착, 모두 낙양천도(494년) 이전시기 석굴 34 제11굴 중심 탑주& 중국 목조 탑 형식을 모방하여 층층이 감실을 파고 불상을 새긴 민간과 하급 관리들의 애틋한 신앙심이 바위벽 전체에, 483년 현지 불교 신도 54명이 돈을 모아 석굴 안에 수많은 불상과 보살상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중심탑주는 3층이며 1층 남면의 불입상과 협시보살상은 요대에 보수, 원형두광도 후 대에 채색된 것 (불교신문연재 사진, 2026년 3월3일)
12굴: 효문제 태화 연간(470~494년)조성 석굴 전체를 통틀어 가장 흥겹고 화려한 에너지 공간으로, 일명 '음악굴(音樂洞)’ 이곳에는 하늘의 선녀와 천인(伎樂天)들이 저마다 다른 악기를 손에 들고 연주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완함(琵琶류), 소(퉁소), 피리, 생황, 북, 쟁, 거문고 등 당시 북 위 궁중과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에서 들어온 다양한 악기 14종이 사실적으로 고증 깊숙한 실내 구조 덕분에 당대의 화려한 채색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있는 석굴 중 하 나이다.
12굴의 음약굴 공양자상의 대부분 선비족 전통 복식을 착용, 녹야원 초전법륜이야기(우측 상불감) 등등 . 12굴 전실 서벽불감 2층엔 목조건축물을 모방한 집 모양의 불감배치 3층 북측에는 아육왕(아쇼카) 전생이야기(아래사진 글 참조) 기타 연등불 수기 이야기 등이 조각되어 있음
※미륵신앙: 당시 5호16국의 혼 란을 수습한 북위는 미래에 사바 세계로 내려와 도솔천 정토를 열 고 중생을 구원한다는 미륵 신앙 이 황실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뜨겁게 유행했다.
미륵보살상은 주로 교각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쿠샨왕조와 중앙 아시아와 북위시기 유행한 자세 (서기 2세기~6세기)
13굴 : 475년~485년시기 조성 높이 12.9m에 달하는 거대한 미륵교각보살상(彌勒交腳菩薩像) 주존불 , 그리고 하중을 분산시킨 기발한 설계(오른팔 아래: 역사(力士)의 팔받침) 현존하는 많은 불감과 그림들은 후대에 보수되거나 채색된 것임 (불교신문연재,5월12일)
담요5굴 : 16~20동(문성제(440-465) 재위 중 460년경부터 착굴시작)
원래는 대불을 보호를 위해 전면에 목조지붕을 얹은 입구를 만들었으나, 목조구조물 소실 16굴: 도무제 (북위의 기틀을 닦은 초대 황제) 담요 5굴의 다른 대불들이 대부분 좌상인 것과 달리, 서 있는 거대한 불상(입상)
17굴: 명원제 (2대 황제, 교각보살상) 바닥을 지면보다 훨씬 더 깊게 아래로 파 내려가서 대불을 안치. 동쪽 벽면에는 당당하게 서 있 는 석가모니 입상이, 서쪽 벽면 에는 가부좌를 튼 좌상이 배치 되어 있어 석굴 전체가 거대한 미륵 삼존(三尊)의 세계를 입체 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북위 초기 담요 5굴 특유의 거 칠고 힘있는 선으로 새겨진 천 인상과 소형 감실들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어 초기 불교예술의 순수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18굴: 태무제 (불교를 탄압했으나 사후 참회의 의미를 담음, 파격적인 가사 조각) '만불(萬佛) 가사‘(옷감 위에 새겨진 수천의 작은 부처)로 유명, 풍화가 심하다. 주존불 좌우 벽면을 보면 부처님의 제자들이 상반신을 쑥 내밀고 걸어 나오는 듯한 19굴 외관
19굴 : 경목제 (황제가 되지 못하고 요절한 태자, 문성제의 아버지) 주존 석가불은 높이가 16.8m에 달하는 거대한 좌상, 서역풍의 통견 가사 좌우에 2개의 동굴을 더 파서 세 개의 동굴이 하나로, 독특한 '삼세불(三世佛)'구현 천불로 가득찬 작은 불상들
20굴이 보이는 외관: 문성제(文成帝), 주존불은 대부분 선정인 서쪽벽면이 무너져 원래 모습은 알 수 없지만 동쪽처럼 불입상이 있었을 것으로 보임 원래 다른 석굴들처럼 동굴 내부에 모셔져 있었고, 앞쪽에는 불상을 보호하는 목조 전각 이 있었지만 동굴 앞쪽의 암벽과 전각이 통째로 붕괴하는 재해가 일어나 노천대불에 됨
제21굴~제45굴 구역: 국가적 대공사였던 앞쪽 황실 석굴들과 달리, 주로 지방의 하 급 관리, 부유한 평민, 승려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만든 석굴들(494년 이후) 운강석굴이 있는 대동(大同) 지역은 훗날 요나라(916~1125년)와 금(1115~1234년)시기 서쪽 수도인 '서경(西京)'으로 격상되어 다시 전성기를 맞아 기존의 석굴들을 보수함
39굴: 북위 말기(5세기 말~6세기 초)에 조성이 시작되어 훗날 요·금 시대까지 명 맥이 이어진 대표적인 '시대 혼존' 석굴 가장 지배적인 특징은 동굴 한가운데에 바위를 깎아 만든 거대한 5층 사각형 탑 (탑주, 塔柱)이 우뚝 솟아 있다는 점입니다.
석굴 자체가 하나의 탑: 동굴의 사방 벽면을 감상하는 일반적인 석굴과 달리, 39 굴은 중심 기둥 자체를 화려한 5층 목조 탑 모양으로 정교하게 깎아냈습니다. 이 러한 형태를 불교 미술사에서는 '탑묘굴(塔廟窟)'이라고 부릅니다
북위 시대 목조 건축의 타임캡슐: 각 층마다 중국 전통 목조 탑 특유의 기와지붕 구조, 처마를 떠받치는 공포(두공), 그리고 난간 등이 아주 세밀하게 깎여 있습니 다. 당시 북위 평성(대동)에 실제로 존재했던 화려한 목조 다층탑들의 모습을 그대 로 바위에 박제해 놓은 형상이어서, 고대 건축사 연구에 없어선 안 될 최고수준.
층마다 네모난 감실(방)을 깊게 파고, 그 안에 좌상과 입상을 번갈아 가며 빽빽하 게 새겨 넣었습니다. 신도들이 이 중심 탑주를 시계 방향으로 돌며 예배(탑돌이)를 할 때, 매층, 매면마다 새로운 부처의 세계를 마주하도록 입체적으로 설계
요(遼)·금(金)나라 터치가 가장 짙은 배후 벽면 동굴 사방의 벽면과 일부 대형 불상들은 요나라와 금나라 시기의 흔적을 강하게 풍깁니다. 풍만하고 귀족적인 거란풍 불상: 벽면에 새로 안치되거나 덧깎인 불상 들은 북위 초기의 서역인 같은 날카로운 콧날 대신, 둥글고 살집이 넉넉한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복식 또한 훨씬 두껍고 풍성하게 흘러내려 유목 왕 조인 요나라 황실이 추구했던 풍요롭고 당당한 미감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만불(萬佛)의 바다: 탑주 주위의 벽면 역시 수천 분의 작은 부처들이 빼곡하게 부 조로 새겨져 있어, 동굴 내부로 들어섰을 때 중심 탑주의 화려함과 만불벽의 장엄 함이 시각적으로 결합되어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 8동 천정부분: 화려한 격자형 천장과 '비천(飛天)' 조각의 향연 제8굴의 천장과 상부 벽면은 빈틈없이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 차 있다. 격 자형 천장(천정, 藻井): 천장을 사각형 격자 모양으로 나누고, 그 칸칸마다 연꽃무늬와 하늘을 나는 천인인 비천(飛天)들을 역동적으로 새겨 넣었다.
▶ 입구 안쪽 좌우측에 인도의 수호신격-동쪽 벽면 마해수라 천(摩醯首羅天, 시바 신): 놀랍게도 얼굴이 3개, 팔이 8개 인 다면다비(多面多臂)의 형상을 하고 있다. 황소를 탄 채 손에는 해와 달, 화살 등 을 들고 있어 기괴하면서도 신비하다. (앞서 8굴 소개에서 언급 참조)-서쪽 벽면 구마라 천(鳩摩羅天, 비슈누 또는 시바의 아들 스칸다): 얼굴이 5개, 팔이 6개인 형상으로, 공작새를 탄 채 새를 손에 쥐고 있다.(다음페이지 사진 참조)
제8굴은 효문제 태화 연간인 470년 대 후반에서 480년대 초반에 개착 된 대표적인 중기 황실 석굴. 운강석굴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이국 적이고 파격적인 힌두교계 신상(神 像)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석굴이다.
제8굴을 들어설 때 관람객을 가장 놀라는 것은 아치형 입구(문측) 좌 우 벽면에 새겨진 두 명의 독특한 수호신 부조이다. 인도 힌두교의 최 고 신들이 실크로드를 거쳐 불교의 수호신(신장)으로 흡수된 모습이다.
※ 위 도상의 신화적 배경: 악마의 왕을 굴복시킨 전리품 인도 신화(스칸다 푸라나)에 따르면, 전쟁의 신 카르티케야(구마라천)는 신들 을 괴롭히던 강력한 악마의 왕과 거대한 전쟁을 벌였다. 카르티케야가 신성한 창을 던져 악마를 내리치자, 악마는 거대한 거꾸로 선 망 고나무로 변신해 저항한다.
그가 창으로 그 나무를 정확히 반으로 쪼개버리자, 쪼개진 악마의 몸 한쪽은 공작이 되었고, 나머지 한쪽은 수탉이 된다 악마는 카르티케야의 신성한 힘에 굴복하여 자비를 구했고, 카르티케야는 이를 거두어 공작은 자신의 탈것(파하나)으로 삼고, 수탉은 자신의 손에 들거나 군 대의 깃발(번기)에 새기는 문장으로 삼았다. 또한 불교의 위대한 논서인 구마라집저《대지도론(大지도론)》제2권에는 구마 라천의 모습이 아주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구마라천(鳩摩羅天)은 닭을 높이 들어 올리고 요령(방울)을 잡고 붉은 번기 (깃발)를 쥐고서 공작을 탔다.
이들은 모두 하늘의 대장들이다."
(편저자-박경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