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시와 에세이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창비, 2022)을 읽고
독일 Suhrkamp 출판사의 20권짜리 헤세 전집에서 발췌한 텍스트들을 담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와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18편의 에세이와 21편의 시를 그림과 함께 읽는 시간”이라는 광고글이 표 3 지에 적혀 있다.
“나무는 언제나 내 마음을 파고드는 최고의 설교자다.” 첫 번째 글을 여는 글 「나무들」을 시작하는 첫 문장이다. 나무를 예찬, 경배,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글귀다. 마음 같아서는 「나무들」의 전문을 싣고 싶었지만 참기로 한다. 첫 글부터 자세를 바로잡고 나무들의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잎 빨간 너도밤나무」에서
나무에 대해 이토록 자세하게 관찰하고 나무의 모양새와 주변의 햇살, 나무의 생각까지 묘사할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싶었다. 편 편마다 나무들이 살아가는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마크 헤이머의 책 『두더지 잡기』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월든』을 읽을 때처럼 숲과 정원을 향해 생각이 뻗어 나가는 듯했다.
하루 이틀의 관찰로는, 그냥 스치듯 보는 것과는 질감이 다른 오랜 기간 동안 나무를 들여다보고 사유한 사람만이 써낼 수 있는 지적인 문체의 언어들이다. 과수원을 한다는 나도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들을 사랑으로 키운다고 하면서도 그토록 깊은 관찰과 애정을 주었던가를 반성하게 되었다.
「밤나무」에서
사람은 어떤 장소에 머물 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기억하게 되고, 부수적인 것은 잊힌다고 한다. 그런 중요한 것들이 작가에게는 나무들이었고, 나무가 없는 곳은 상상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런 의미의 상징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딱히, 특정한 것들이라기보다는 곳곳의 랜드마크가 되는 나무나 건물이나 그런 것들이다. 난 물을 무서워하지만, 바라볼 수 있는 물이 보이는 곳이 기억에 잘 남는다. 태생적으로 고향 마을에 예쁜 저수지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뿌리 뽑혀서」에서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정원과 나무들이 없어지고 삭막한 풍경으로 바뀐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나와 내 어린 시절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p74)
어린 시절의 추억은 정다운 풍경이지만 내 기억 속 풍경들을 지금 보면 자그마한 것들이라 어처구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나무들과 정원을 자신의 소중한 친구라고 스스럼없이 표현한다. 정원이 품고 있는 나무들의 종류를 호명하듯 하나하나 기억한다는 것 자체도 놀랍다. “믿음직한 진짜 친구”라고 말하는 부분도.
나무에 대해 숲과 정원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작가의 애정 가득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바람에 나부끼는 물결 같은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오소소 들리는 것 같다. 그 숲을 바라보거나 숲 속을 거닐며 나무들을 매만지고, 자라나는 모습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고 서 있는 작가를 상상하게 된다. 직접 나무를 심고 가꾸는 수고를 즐거워 한 작가라는 사실이 감동이었다.
나무들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말하고 싶어서 상기된 작가의 멈추지 않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작가의 말을 따라 수많은 나무가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숲과 정원의 모습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작가가 나무와 숲과 정원만 이야기했다면 그 글은 단순한 식물보고서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나무와 숲을 통해 삶과 사람, 인생을 말한다.
안개 속에서 걸으면 이상해!
삶은 홀로 있는 일이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하니
모든 사람이 저 혼자다.
- 「안개 속에서」 일부
모든 꽃은 열매가 되고자 하고
모든 아침은 저녁이 되고자 하며,
변화와 시간의 흐름 말고
지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 「시든 잎」 부분
작가는 나무에서 삶의 안정과 희망을 보았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자제하고 나무들이 가득한 숲과 정원을 벗 삼아 살았다. 작가가 들려주는 나무와 숲과 정원에서 정말 편안한 시간이었다. 가끔 등장하는 한수정 님의 그림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진짜 같은 세밀화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나무와 숲이 내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숲 속을 거닐며 정화된 느낌이다. 나무를 사랑한 작가 헤르만 헤세는 문학사에 우뚝, 위대한 나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