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이 또르르 구를 정도로 잘 달궈진 팬 위에는 밀가루, 달걀물을 곱게 입고 노릇하게 구워지는 명태전이 지지직 노래를 부른다. 바로 옆에선 오동통 동그랑땡이 손바닥 사이에서 토실한 모양새를 잡아가고, 탱글탱글한 당면은 당근 / 시금치 / 양파와 프라이팬 속에서 플라멩코 무용수보다 화려하게 잡채로 변신 중이다. 도라지 / 콩나물 / 고사리 / 시금치 / 무 나물은 볶고 익혀진 뒤 다소곳하게 자리 잡고 있고, 쫀득한 떡과 곶감, 그리고 산적, 노릇하게 구워진 생선, 든든한 갈비찜도 대령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 숟가락, 한 젓가락이라도 더 참으며 식탐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쾌감을 만끽하던 오리지널 모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소쿠리에 담긴 음식을 손가락으로 마구 집어먹고 있는 명절용 흥분 모드로 여지없이 전환된다. 이러니 명절 연휴며칠 만에 2~3kg이 거뜬히 느는 건 당연한 일! ‘먹고, 찌고, 후회하기’ 를 30년이 넘게 반복하면서도
명절 폭식을 끊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권혁태 교수는 우선 학습 효과를 든다. “명절뿐만 아니라 회식 때도 평소보다 많이 먹게 되죠. 이건 ‘이날은 맛있는 음식이 많았고, 늘 과식을 했었다’ 는 행동패턴이 학습돼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흥분해서 음식을 많이 먹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흥분하면 교감신경이 활발해져 식욕이 떨어지죠.” 그렇다면 이 모든 연결고리를 끊고 달콤살벌한 대명절을 현명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W바디센터 강은주 팀장의 조언을 들어보자.
“만들면서 먹고, 또 가족끼리 둘러앉아 경쟁적으로 먹다 보니 본인의 식사량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본인 그릇에 한 끼 식사 분을 덜어 먹도록 해보세요. 이왕이면 작은 그릇이 좋겠죠. 같은 양을 담아도 푸짐해 보여 심리적으로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까요. 절대 굶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너무 참진 마십시오. 오히려 이것이 스트레스를 유발해 이후 폭식을 조장하니까요.”식사 전 명절 음식의 칼로리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지닐 수 있다는 그녀의 조언에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이윤주 영양사를 찾았다. 결과는 상상했던 것보다 무시무시했다.
“설날 아침에 먹는 떡국 한 그릇은 500~600kcal 정도로 밥 두 공기와 비슷합니다. 갈비찜의 갈비살 4조각, 감자 작은 것 3개만 먹어도 밥 두 공기와 맞먹고, 큼지막한 빈대떡 한개는 200kcal, 생선전 작은 것 5개가 160kcal, 잡채 중간 크기 그릇 한 접시가 200kcal입니다.”
흠칫 놀랐을 당신에게 마지막 일격! 더 놀라운 명절 간 식칼로리를 공개하자면 곶감 4.5개, 약과 2개는 밥 한 공기(300kcal), 식혜 한 컵(200ml)은 무려 200kcal에 이른다! 또 마른 과일(곶감, 대추 등)은 같은 100g을 먹더라도 건조되어 있기 때문에 열량이 높아진다. 간식이야말로 명절 살찌기의 원흉이었던 것! 간식은 생과일 한 개를 반으로 나눠 오전, 오후 나눠 먹는 것이 좋으며 배 / 멜론 / 파인애플 등과 같이 수분이 많고 단백질 분해효소가 들어 있는 과일은 소화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명절 과식이 체중을 불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건강상의 문제까지 일으킨다는 것! 명절 풍경을 떠올려보자. 양껏 식사를 즐긴 후 당신이 향하는곳은 텔레비전 앞 소파. 푹신함에 몸을 맡기고 채 꺼지지도 않은 배를 두드리며 곶감, 약과 등에 무심코 손을 뻗친다. 이렇게 2~3일 끊임없이 주전부리를 입에 달고 지내다 보면 비만을 부르는 잘못된 식습관은 그대로 자리를 잡는다. 또 명절에는 평소 자주 먹지 않던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 기능성 위장장애,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복통, 설사, 소화 장애 등과 같은 일시적인 급성 위장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현저히 줄어드는 활동량도 주 원인 중 하나! 려 한의원 정현지 원장은 ‘식후 7보행’ 이란 말이 한방에 있을 정도로 식사 후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소화력이 떨어지고 잉여 에너지가 고스란히 지방으로 축적된다고 경고한다. 식사 후 바로 눕거나 앉는 것, 장시간 운전과고스톱 등은 대장 운동을 지연시켜 소화불량, 변비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나물! 우리가 먹는 명절 음식은 대부분 섬유질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물(50kcal로 열량도 낮다!)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섬유질이 부족해지기 쉽다. 변비 해결을 위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물! 섬유질은 수분이란 짝꿍을 만났을 때 부피가 팽창하면서 쾌변의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다. 하루 1.5~2L의 물을 잊지 말고 마시도록!
몸이 붓고 신진대사에 문제를 야기시키는 나트륨 과다도 명절 증후군의 악성 분자 중 하나다. “보통 한국인은 하루 평균 4,000~5,000mg의 나트륨을 섭취하는데 실제 권고량(2000mg)보다는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설날에는 한 끼(떡국 한 대접, 갈비찜 작은 한접시, 동태전 3조각, 쇠고기 산적 1꼬치=나트륨 2,428mg)에 하루 평균량의 1/2 이상을 섭취하는 일이 다반사로 설날 음식만으로 3끼를 ‘잘’ 차려먹으면 그야말로 나트륨을 폭식하게 되죠.” 이윤주 영양사는 명절 한 끼 정도는 일반 식단으로 섭취하거나 국 없이 식사를 하도록 권했다. 온 가족이 모여 어느 때보다 행복한 한가위 상차림을 마치 악성 바이러스라도 보듯 바라보라는 말이 아니다. ‘많이 먹어’ 란 푸근한 한 마디에 호탕한 식욕으로 보답하기보다는 자제력을 잃지 말고 ‘맛있게’ 먹으라는 것! 한가위가 끝난 후 두둑해진 뱃살이란 원망스러운 결말은 원하는 바가 아닐 테니 말이다. 무슨 일이든 끝이 좋아야 좋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