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먹물>/ 구연식
인쇄(印刷) 문화가 등장하기 전 대부분 한자문화권 나라에서는 기술(記述)하여 의사 표시의 방법 수단으로는 붓과 먹물이 필수적이었다. 5차원의 의식과 우주를 마당으로 살고 있는 현대에도 붓과 먹물은 긴요하게 쓰이고 있다. 서양의 펜과 잉크는 용도가 같아도 인간미보다는 기계문명의 산물인 것 같아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나 붓과 먹물은 인류 삶의 언저리에서 쉽게 구하여 만들 수 있어 친근감이 더한다.
그 옛날 붓과 먹물은 배타적 계층인 선비문화의 상징적 의미였으나,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어 대중문화의 한 장르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취미 생활 속에 서예(書藝)를 즐기는 동호인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퇴직 후 서예실에서 먹물에 붓을 담근 지 어느덧 10여 년이 훨씬 넘었다. 10년이면 인력을 도모하지 않아도 강산은 변한다고 했는데, 지금도 입봉(入鋒)과 출봉(出鋒)에서 머뭇거림과 손 떨림은 여전하여 나의 필력(筆力)은 제자리이다. 아무래도 서예의 기초 소양이 미흡했음을 성찰해 본다.
처음 서예실에 들어섰을 때 은은한 묵향(墨香)이 반겨주었다. 쪽 머리를 한 여자분, 상투 머리의 선비, 요조숙녀 같은 아낙, 꽁지머리를 하고 째진 눈에 메기수염을 기른 젊은이, 유치원 정도의 어린이 등이 누가 들어와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임서(臨書)를 하고 있었다. 사극 촬영장 아니면, 지리산 청학동 마을처럼 느껴져 나처럼 상고머리에 양복은 약간 겸연쩍었다. 그렇게 붓과 먹물은 문외한인 나는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서예 부문 심사 위원 및 초대작가이며, 익산시 100인 명인중의 한 사람인 서예계의 떠오르는 별 관촌 박 태평(官邨 朴泰坪) 원장님으로부터 서예(書藝)를 사사(師事)하고 있다.
항상 서예실 책상에 앉으면 처음 원장 선생님의 서예인 자세 말씀이 생각난다. 서예(書藝)는 무예(武藝)를 연마하는 무사(武士)와 같다. 무사는 자기의 생명과 같이 검(劒)을 소중히 여기며 검을 닦는 태도는 서예인의 자세와 같다. 벼루에 먹을 갈 때도 같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속뜻을 상기하면서 나의 붓은 무사의 생명과 같은 검(劍)처럼 다루고 먹을 갈 때는 명심하고 있다.
서예(書藝)는 붓으로 글씨를 쓰는 예술이다. 무사에게 검(劒)은 예봉이며 서예가는 붓이 예봉(銳鋒)이다. 중국에서 발생한 서예는 선(線)의 예술로서 선은 회화(繪畫)의 선과 같이 어느 물체의 형상을 표현하는 윤곽선이 아니고 비구상(非具象)적인 선이다.
공자는 예(禮)와 악(樂)으로 사람들을 교화함으로써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유가(儒家)의 가치 체계 즉, 도덕과 예술의 상호 보완성을 강조한 동양의 예악사상(禮樂思想)을 설파하였다. 예술은 미적 가치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치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함으로써 인격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그렇다! 서예(書藝)는 단순한 글씨를 쓰는 예술의 의미가 아니라, 붓을 들기 전 먹을 가는 순간부터 글씨 쓰는 기술자가 아니라, 인격 수양의 기승전결임을 명심하면서 마지막 화선지(畵宣紙)에서 붓을 놓으며 뒷정리에도 서예의 도가 흐트러짐이 없어야 진정한 서예인의 예와 악을 겸비한 자세란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품격을 높이고, 감동을 주며, 창의성과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과 문화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또한, 예술은 아픔을 치유해 준다. 훌륭한 예술작품을 감상하면 축 처진 마음을 추슬러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리고 때로는 욱하고 발끈하는 마음을 다독거려 준다. 이렇게 세상만사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서예는 제시해 주기도 한다.
서예는 가느다란 털끝에 먹물을 풍덩 적셔 붓끝을 세워 글씨를 쓸 수 있기까지는 정제된 심신의 내공(內工)과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외공(外工)인 붓과 먹물의 물리력과 정신의 결정체라고 본다.
내공을 더해주는 붓은 우리 주변에서 인간의 가축으로 평생을 같이 살던 동물들은 육체는 인간에 바치고 마지막 털끝에 넋을 모아 붓의 재료로 기부하고 떠난다. 먹물은 소나무가 마지막 땔감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육체를 불사르고 그을음의 영혼을 남긴 송연묵(松烟墨)이다. 서양의 잉크로 찍은 인쇄물은 쉽게 휘발하여 생명이 유한하나 우리의 먹물 속에는 탄소 성분이 함유되어 천년만년 유지한다고 한다.
붓은 모든 감각 기능을 가장 먼저 감지 조절하여 조화와 균형을 명령하는 말초신경과 같고, 먹물은 언제나 신선하고 정제된 영양을 공급하는 혈액과 같다.
그래서 서예(書藝)는 붓과 먹물 그리고 인간의 영혼이 어우러진 청아(淸雅)한 트라이앵글 소리처럼 자연과 인간 삶의 참 결정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