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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운대이웃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배원규
채워주심
이상혁 지음
규장 / 2007년 7월 / 247쪽 / 10,000원
▣ 저자 이상혁
미국 남서부 애리조나 주州의 사막 한가운데에는 300개가 넘는 토착신 카치나를 섬기며 살아가는 인디언 호피Hopi부족이 있다. 이 마을의 한국인 선교사인 그는 소외되고 상처받고 척박한 이 인디언 마을 한가운데에 오직 하나님의 채워주시는 은혜로 교회와 미션센터를 세웠다. 사역 도중 교통사고로 순교한 그의 전임자 장두훈 선교사가 심령의 매임 가운데 억척스레 돌아다니던 반경 수천 킬로미터 거리의 드넓은 선교지를 그가 연이어 달리고 또 달려온 날들의 열매이기도 하다. 평생 강원도 산골에서 목회의 길을 걸었다는 할아버지 고故 이종원 목사와 44년 목회 후 은퇴하신 아버지 이영호 목사의 뒤를 이어 3대째 목사가 되었다. 육군 제8보병사단 군종목사, 서울 서초중앙감리교회 부목사를 거쳤으며, 2003년부터 기독교대한감리회의 파송을 받아 애리조나 호피족 인디언 선교사로 사역 중이다.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나왔고 미국 LA 클레어몬트신학교Claremont School of Theology, D-Min를 졸업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동기인 김부영 사모 사이에 아들 웅섭이 있다.
▣ Short Summary
한국인 목사로서 호피 인디언이라는 독특한 선교 대상의 사역을 하는 이상혁 선교사는 그의 체험을 기초로 한 이 책에서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비우면 채우시는 놀라운 하늘의 섭리를 입증해준다. 4년 이상 호피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비우고 헌신하고 충성하는 사역을 통해 호피 마을에 선교 320년 만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미션센터까지 마련되는 과정에서 저자가 누린 하나님의 특별한 채워주심이 얼마나 다채롭고 풍성했는지를 소개한다.
처음에는 선뜻 선교사로 나서기가 어려웠으나 자신을 내려놓고 안락한 환경을 떠나려 하니 준비 과정은 물론 현지에서 사역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채워주시더라는 것이 저자의 고백이다. 기독교가 백인들의 종교라며 배척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상처도 많이 받고 살아온 인디언들 가운데 교회와 미션센터를 설립한다는 것 자체도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하나님이 몇몇 인디언 교인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협력하는 교회들을 통해 역사하심으로써 채워주심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영화 늑대와 춤을의 주인공 덴버 중위처럼 이상혁 선교사에게도 진흙 묻은 발이라는 인디언식 이름이 있다. 비를 몰고 오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성령의 단비를 구하겠다고 설교한 이상혁 선교사에게 어느 인디언 할머니가 붙여준 이름이다. 진흙 묻은 발 이상혁 선교사가 누리고 발견한 채워주심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이란 채워주심의 복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헌신, 충성, 희생, 순종과 같이 우리가 벗겨내기 힘든 포장지에 싸여서 온다는 것. 하지만 그 포장지를 벗겨내기만 하면, 즉 100퍼센트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30배 60배 100배의 채워주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1부는 감동 넘치는 저자의 고백을 통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은혜를 말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채워주시려는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는 것들이 무엇인지 짚어주고 있다. 그리고 3부에서는 채워주심에는 물질뿐 아니라 동역자, 교회, 배우자 등 상상 그 이상으로 다양한 채워주심이 있다고 말하며 4부에서는 채워주심의 물줄기가 끊이지 않는 영적 사역의 비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녀 된 자들에게 채워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진정으로 당신의 삶에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싶다면, 이와 같은 채워주심의 비밀부터 발견할 필요가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 차례
1부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은혜
1. 목마른 삶이 소망해야 할 능력의 채워주심
2. 진흙 묻은 발이라 불리는 인디언 선교사
3. 채워주심의 은총으로 순종의 길을 나서다
4. 심령의 매임 없이는 성령의 뜻에 매일 수 없다
5. 카치나의 눈초리 속에 예배당을 건축하다
6. 교회의 기둥은 피의 헌신으로 세워지는가?
7. 320년 만에 열매 맺은 전능자의 장막
2부 채워주시려는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는 것들
8. 어려워도 아낌없이 순수하게 드린다
9. 비장한 가슴으로 매달리며 기도한다
10. 예수 날 위해 죽으셨으니 나 예수 위해 죽노라
11. 채워주시는 은혜는 언제나 낮은 곳으로 임한다
12. 종다운 자녀에게만 허락하시는 채워주심
13. 하나님 앞에 모두 맡기는 믿음의 사람이 된다
14.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때 채워주심이 있다
3부 상상 그 이상으로 다양한 채워주심
15. 동역자는 사역을 채워주는 축복의 통로이다
16. 예수님의 심장으로 긍휼의 성품이 빚어져간다
17. 교회는 삶의 부족함이 채워지는 생명의 방주다
18. 내 안의 그 사람을 통해 인생이 채워진다
4부 채워주심의 물줄기가 끊이지 않는 영적 사역의 비밀
19. 중대한 국면에서는 중대한 헌신도 마다하지 않는다
20. 채워주심의 첫 번째 그릇, 가정을 선교한다
21.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선교지를 입양한다
22. 진흙 묻은 발은 대리석과 양탄자 위를 걷지 않는다
23.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 나의 비전이요 채워주심이다
채워주심
이상혁 지음
규장 / 2007년 7월 / 247쪽 / 10,000원
프롤로그: 혼자 거두기 힘든 하나님의 채워주심
지구촌에는 260여 개 나라, 2만4천여 개 종족, 약 66억 명의 인구가 6천 9백여 개 언어를 쓰며 살아간다. 나는 그중에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살아가는 ‘호피’Hopi라는 이름의 부족 1만2천 명을 제대로 만났다. 그들을 변화시키지 못해 조바심치는 내게 호피 미션스쿨 교장직을 은퇴한 제인이 해준 말이 있다. 그녀는 크리스천이란 이유로 평생 부족 안에서 왕따로 살아온 여인이다.
“호피는 신체적 특징이 인종적으로 동일한 부족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닙니다. 민족적 개념도 아닙니다. 호피는 종교적 개념입니다. ‘호피 인디언 성인식’을 거친 사람에 한해서만 호피가 됩니다. 성인식을 거치지 않으면 호피 사람에게서 태어나 호피 땅에 살더라도 그 사람은 호피가 아니라 이교도일 뿐입니다. 호피는 삶의 방식이자 세례식 자체입니다. 따라서 성인식을 거친 사람이 기독교 세례를 받는 것은 호피로 사는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선교사님이 바라는 세례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두려움과 의심으로 출발했던 병아리 선교사 시절을 어느 정도나 벗어난 것일까…. 여전히 나는 수시로 깨지고 비틀거리며 나아간다. 어떻게든 나를 쫓아내려는 저들 틈바구니에서 좌충우돌한 지 5년째다. 저들의 ‘진’은 생각보다 견고했다. 내가 가진 빛나는 기독교적 자산에 대해서 저들은 단 1원의 견적도 쳐주지 않았다. 미국 개척 초창기 시절의 선교사들이 초토화시키며 지나간 십자군적 선교의 흔적은 인디언의 땅 여기저기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들이 쓸고 지나간 자리엔 원주민의 적개심과 공허감만이 남았다. 내가 지나간 자리조차 더 황폐해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그러다가 가끔씩 절망한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은혜
주일 아침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교인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교인들은 지난주에 미리 “다음 주일에 우리 마을에서 대규모 행사가 열리기 때문에 교회에 못 올 것”이라고 목사인 내게 말했다. 나는 호피 부족의 전통 종교의식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그렇지만 예배 시간에 잠깐만이라도 참석하고 가라고 신신당부를 해둔 터였다. 선교사가 눈물로 호소하기 일보직전에 이르자 교인들은 그러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내심 불안했는데, 정말 단 한 명도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니만 댄스는 호피 땅의 토착신 ‘카치나’를 섬기는 의식 가운데 절정에 해당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호피 사람들은 해마다 2월초에 호피 마을로 강림한다는 카치나가 이 행사를 마지막으로 자신의 고향인 샌프란시스코 픽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인 것이다. 호피 부족은 카치나가 돌아가기 전에 마을 사람들에게 복을 다 빌어주고 떠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복을 받기 위해 신령한 춤, 니만 댄스를 추면서 카치나를 환송하는 것이다. 전통에 따라 남자들은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분장을 하고 마을 처녀들까지 고운 옷을 차려입고 머리도 힘껏 꾸미고 나오기 때문에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이미 예배 시작 시간 20분 후.... 아내에게 교인들을 찾아보겠다고 말하고 의식이 열리는 마을 광장으로 갔다. 광장 어귀에서부터 축제 분위기가 역력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마을 주민들이 전부 모인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교인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 중 교인 하나가 나를 발견하고 이리 오라며 손짓한다. 광장 한가운데 신당 주변에는 각종 음식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 순간 카치나로 분장한 사람들이 둥둥 북소리에 맞춰 광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춤을 추기 전에 광장 중앙에 쌓여 있는 음식물을 관람객들에게 던져준다. 음식물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호피 사람들은 카치나 분장을 한 사람들이 춤을 추는 동안에 정말로 신적인 존재로 변한다고 믿는다. 단조로운 리듬을 한동안 들으니 묘한 최면의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카치나 의식에 참여하는 인디언 부족의 한 사람이 된 듯했다. ‘태양이 이리 뜨거운데 오늘은 몇 명이나 쓰러지려나.’ 시계를 보았다. 11시 45분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하는 자각이 들었다. 그러자 엘리야 생각이 났다. 엘리야 혼자 850대 1로 싸웠던 갈멜산이 꼭 이런 분위기였을까. 이 순간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전체 시선이 집중될 분위기다. ‘일어나, 말아? 미친 척하고 앞으로 가, 말아?’ 나는 일어나지도, 나가지도 못한다. 그날 나는 오도 가도 못한 채 맨 앞줄에 앉아 다음 휴식시간까지 꼼짝없이 두 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다.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왕상 18:24
엘리야는 정말 일찍 죽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분위기의 열 배가 넘는 상황에서 영적 맞장을 제안했던 그는 미쳤거나 죽음을 각오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도대체 엘리야는 어느 정도로 하나님의 권능에 사로잡혀 있던 것일까. 그는 갈멜산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이방 신들의 제사장들과 맞선 빛나는 영적 엘리트였다. 엘리야에 비하면 나는 그의 발뒤꿈치도 따르지 못할 위인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했다간 그야말로 주변에 수도 없이 널린 돌에 맞아 죽게 될 것이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얼굴과 팔뚝은 물론 머리 속까지 시뻘겋게 익던 그날, 나는 완전히 부서지고 으스러졌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교인 없는 주일, 오전 11시 예배를 드리지 못한 주일을 보냈다. 교인 없는 목사의 심정을 제대로 느껴본 날이었다.
나는 이 날의 경험을 가슴 깊이 간직하기로 했다. 그리고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 나 자신이 성령충만한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있는지 살피기로 했다. 내가 경험한 낙심, 좌절, 무기력의 감정은 이미 열조들이 경험한 것들이며, 별로 새로운 것도 없다. 그분들이 겪은 것에 비하면 부끄러워 어디 내놓을 만한 이야기도 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인디언 선교는 이처럼 바닥을 치는 경험과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내 스스로 믿음도 있고 능력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선교지에 와 보니 그간의 경험이란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엘리야보다 갑절의 능력을 구했던 엘리사 선지자의 심정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 엘리사는 자신의 연약함을 잘 알았던 사람이다. 동시에 그는 싸움을 이기게 하는 능력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았던 사람이다.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간구하고 그 힘으로 서는 자만이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사역의 출발선상에서 내 능력은 제로로 판명되었다. 문제 해결은 하나님께 달렸다. 하나님의 채워주심으로 나를 얼마만큼 충전시키느냐에 따라 추후 승패가 결정날 것이다.
‘진흙 묻은 발’이라 불리는 인디언 선교사
호피 마을에 처음 와서 예배 장소로 이용한 곳은 마리에타라는 할머니네 집 거실이었다. 전임 선교사 때부터 사용하던 집이라고 했다. 내가 예배를 인도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비와 관련된 설교를 한 적이 있었다. 비 이야기를 하니까 다들 갑자기 눈동자들이 호기심 가득하게 반짝반짝 빛났다. 아무튼 이 사람들은 비 이야기만 하면 눈과 귀가 번쩍 뜨이는 사람들이다.
“여러분은 비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카치나 의식이 기우제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비는 절대적이죠. 저도 농사를 짓고 사는 나라에서 온 선교사이기 때문에 비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비를 기다립니다. 여러분이 간절히 기다리는 것처럼 저도 여러분 못지 않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여러분이 기다리는 비는 아마 옥수수밭에 내릴 겁니다. 그러나 제가 기다리는 비는 옥수수밭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내립니다. 여러분이 기다리는 비는 아마도 카치나가 보내준다고 믿는 비일 겁니다. 그러나 내가 기다리는 비는 성령님께서 보내주시는 진정한 비입니다. 성령님은 곧 하나님입니다. 이 비는 메마른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적셔줍니다. 이 비가 우리 마음 밭에 내리면 우리의 성품 속에서 사랑, 기쁨, 평화, 오래 참음, 자비, 선행, 충성, 온유, 절제라는 이름의 열매들로 주렁주렁 열리게 됩니다. 기독교에 대해 닫힌 여러분의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만드는 비, 성령의 비가 바로 제가 기다리는 비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에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비를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렇게 말하고서 사람들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천천히 찬송가 ‘빈 들에 마른 풀같이’를 한국말과 호피말로 불렀다.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찬송을 부르고 나니 교인들이 박수를 치며 환하게 웃는다. 예배 후에 어떤 분이 나를 불러세웠다. 나의 외할머니를 똑 닮은 할머니였다. “이제부터 목사님을 ‘주까꾸꾸’라 불러야겠어. ‘진흙 묻은 발’이란 뜻인데, 그이는 ‘비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야. 우리 ‘물 문중’에 속한 이름 중에 최고로 좋은 이름이지. 이 목사님은 성령의 비를 몰고 오고 싶어 한다니까 썩 잘 어울리겠는걸?” 그날 이후, 우리 교인들은 나를 주까꾸꾸 목사라고 부른다. ‘늑대와 춤을’이라는 이름보다 훨씬 고상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인들로부터 이런 이름을 얻고 보니 내가 감당해야 할 소임이 더 확실하게 보였다. 나는 사실상 미전도 지역이나 다름없는 인디언 땅에 성령의 비를 몰고 와야 할 북미 인디언 선교사다. 내 발은 늑대와 춤추는 발이 아니다. 성령의 임재를 기원하는 발이다. 나의 인디언 이름은 곧 내 사역의 목표다. 이름값을 해야 한다. 메마른 이 사막 땅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게 해야 한다.
인디언들은 백인들로부터 땅을 빼앗긴 사람들이다. 저들의 심령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대지만큼이나 메말라 있다. 움켜쥘수록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푸석한 심령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살아가는 저들의 심령은 찢길 대로 찢겨 있고, 상할 대로 상해 있다. 목마른 그들에게 때로는 소나기 같은 비도 필요하고 가랑비 같은 잔잔한 사랑도 필요하다. 이 땅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 성령의 충만한 비가 이 땅 가득히 채워지기를 소원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을 간구하는 자에게 응답해주실 것을 확신한다.
심령의 매임 없이는 성령의 뜻에 매일 수 없다
선교사 발령을 받고 2002년 10월 27일, LA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10월의 마지막 밤 12시간이 걸린다는 호피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나는 지금 어디로 끌려가는 것인가.’ 뒤를 돌아다보니 아들과 아내는 부둥켜안은 채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얼마쯤 갔을까, 안내하시던 이중재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이 지점 어딘가에서 두훈이가 죽었을 거야....” 장두훈 선교사님은 후원이 부족했던 탓으로 고물차에 값이 싼 재생 타이어를 끼고 다니셨다고 했다. 한 해 평균 14만 4천 킬로미터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자동차 연료비도 감당하기 벅찼을 그 분에게 새 타이어를 끼우고 다니는 것은 아마도 사치였을 것이다. 나는 장 선교사께서 다니셨다는 선교지를 지도를 펴놓고 보다고 깜짝 놀랐다. 그 지역을 재생 타이어로 달리다니 그건 거의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분은 전에도 교통사고를 당해 물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와중에 블랙메사 지역에 사는 70명의 나바호 인디언 교인들이 목사 없이 예배를 드린다는 병원 관계자의 말을 듣고, 왕복 960킬로미터의 추가 운전을 간단하게 결심하셨다. 그때부터 물도 전기도 전화도 없는 그곳을 격주로 다니셨다. 선교사의 말을 기쁨으로 들어주며 굴뚝처럼 믿는 선교지 가족들이 있는데 어찌 쉽게 철수할 수 있겠는가.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가 들리고,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데 어찌 선교사가 도울 사람들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있겠는가. 14만 킬로미터가 아니라 140만 킬로미터라 할지라도 기꺼이 다니셨을 장 선교사님에게 교통사고는 어찌 보면 예고된 것이었다. 1998년에 쓴 선교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 사람들이 나를 보고 그만 좀 다니라고, 작작 좀 다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선교지의 작은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이 허락하신 마지막 구원의 한구석을 헤매고 다니며 주님의 일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의 몇 배나 되는 이 지역에 잡초처럼 방치되고 버려진 영혼들을 매일같이 만납니다. 그들의 생명을 잘 가꾸어 하나님 보좌에 올려 드리는 것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거룩한 제 의무입니다....”
해발 2,100미터에 위치한 시골 마을 플래그스태프에 도착하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장 선교사를 도우셨다는 김성곤 집사님을 만났을 때는 먹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살이 비치다가 쌍무지개도 떴다. ‘무슨 놈의 날씨가 이리 변덕이 심한가.’ 앞으로의 심란한 여정을 암시하는 듯했다. 김성곤 집사님은 우리 가족이 살 집이며 전화 등을 미리 마련해 놓고 기다리셨다. 아내와 아들을 텅 빈 아파트에 내려두고 김 집사님의 차로 갈아탔다. 다시 1시간 40분을 더 들어가야 ‘인디언 보호구역’이 나온다고 하셨다. 황량한 사막 길 양쪽 끝으로 거대한 전함이 침몰한 듯 우뚝 솟은 ‘메사’(테이블 모양의 독특한 탁상지형)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낯설기 짝이 없는 이 길을 앞으로 4년간 오고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착잡했다. 이런 길에서 이런 속도로 달리다가 사고라도 나면 그냥 끝이겠구나 싶었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장두훈 선교사님의 묘지였다. 무덤 앞에 꽃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눈을 감고 주님의 이름을 불렀는데 정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묘지가 생각보다 초라했기 때문일까,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으시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선교의 위대한 유산을 물려준 장두훈 선교사, 여기 잠들다!” 그 묘비를 보는 순간, 내가 선교사로 왔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장두훈 선교사님, 신고합니다! 제 이름은 이상혁입니다. 제가 오늘 부로 선배님이 하신 일들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이루어 놓으신 업적을 잘 계승할 수 있을지, 아니면 망쳐놓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구해주십시오. 후배를 긍휼히 여겨달라고 말입니다.”
장두훈 선교사님은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 재학 중에 인디언 선교사로서 소명을 받으셨다. 그 분은 공인 유도 3단의 풍채가 당당한 청년이었는데, 인디언 선교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다. 1991년, 미국에 선교사를 보낸다는 것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하던 때였으나 서른의 나이에 그는 몬태나 주의 ‘블랙푸트’ 인디언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거기서 한 기간을 마친 다음 1997년에 선교지를 옮겼는데, 바로 이곳 애리조나 주의 호피 인디언 마을이었다. 장 선교사님은 끊임없는 영토 분쟁으로 사이가 극도로 나쁜 나바호 부족과 호피 부족을 두루 다니며 신교하셨는데, 그의 나바호와 호피 부족의 선교는 그야말로 고생 그 자체였다. 선교지의 확실한 열매를 기대하는 후원 교회들에게 씨뿌리는 선교를 감당하는 선교사는 인기 없는 존재였다. 게다가 선교지가 미국이라 선교사 몇 년 하다가 영주권을 얻어 미국에 눌러 앉으려는 속셈이 아니겠느냐고 진정성을 의심하는 분들도 있었다.
갖은 억측과 냉대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열심히 다니시면서 씨를 뿌렸다. 그는 백인 선교사들이 들어가기 꺼려하던 오지 마을들을 찾아다녔다. 인디언들의 삶의 터전인 보호구역은 대부분 도시 외곽의 버려진 땅이거나 사막이라 열악한 환경이다. 장선교사님은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인디언들을 도와줄 수 있는 한인교회와 성도들을 찾아 다녔다. 애리조나 주, 유타 주, 뉴멕시코 주 3개 주에 폭넓게 걸쳐 있는 인디언 선교지를 누벼야 했던 그 분에게는 과도한 장거리 운전이 요구되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나 차에서 지내는 시간이 거의 비슷했다. 이렇게 버거운 선교를 감당해온 그에게 요구된 마지막 미션은 교통사고로 순교하는 게 아니었나 싶다. 그는 인디언들에게 나눠줄 물품들을 싣고 LA에서 돌아오는 길에 타이어 파열로 전복된 차량 안에서 유언도 남기지 못하신 채 돌아가셨다. 그때 그의 나이 41세였다.
나는 장두훈 선교사께서 헤집고 다니신 길들을 따라가면서 그 분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나는 그가 다니셨던 길을 다니면 되기에 어디를 향해 얼마만큼 가면 어떤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분은 그런 것을 모르고 다니셨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에 매여 이런 길을 다니셨을까....’ 경제적인 어려움과 육체적으로 피곤한 업무를 감당하시면서도 선교사님이 쓰신 <옥수수 마을> 소식지는 긍정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종으로서의 기쁨이 느껴진다. 그 분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러한 사역을 묵묵히 감당하셨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 채워주신 은혜가 ‘심령의 매임’이었다고 생각한다. 장 선교사님은 인디언 선교를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않으셨다. 그 분의 마음속에서는 성령님이 이끄시는 심령의 매임이 있었다. 아무도 이런 식의 삶을 살라고 등 떠밀지 않았다. 굳이 이런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다. 기도의 능력과 설교의 능력이 있었기에 인디언 선교가 아니더라도 목회를 잘할 수 있는 분이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분이 선교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강권적으로 그 마음을 주장하셨다. 그의 심령은 인간적인 생각에 매여 있지 않았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 매여 있었다.
이제 장두훈 선교사님이 눈물로 씨를 뿌리며 지나간 자리마다 인디언 선교의 싹이 움트고 있다. 그 분이 세우고자 했던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인디언 미션센터가 자리했다. 인디언 선교를 위해 새로이 선교사들이 파송되게 하셨고, 동역자들이 달려오고 있다. 그리고 인디언 선교에 동참하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선교 훈련을 받는 한국인 자녀들도 많아졌다. 이들 모두 심령의 매임을 받은 사람들이요, 자원하는 심령을 가진 이들이다. 이 모든 것은 장두훈 선교사께서 꿈꾸신 비전이며, 그 분의 피 위에 허락된 은총이다.
그 분이 기대하신 모든 인디언의 가슴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로 고백되는 순간이 언제일지 나는 모른다. 아직 씨를 더 뿌려야 하고, 움트는 싹에 물을 주는 과정에서 어떤 시련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분명히 말씀해주시는 증거가 있다. 그것은 지극히 작은 자를 택하셔서 심령의 매임을 주시고, 썩어지는 밀알이 될 수 있도록 자원하는 심령으로 채워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심령의 매임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또 다른 은혜가 바로 ‘자원하는 심령’이다. 하나님은 종들이 억지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또 다른 마음, 곧 자원하는 마음을 채워주신다.
사도 바울에게는 모든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은밀한 기쁨이 있었다. 그에게는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삼층천’에 다녀온 체험이 있었다. 남들이 알지 못할 비밀한 계시와 천국의 기쁨을 맛본 이후 그의 시각은 달라졌다. 사람들 눈에 귀하게 보이는 것들이 배설물로 보였고, 사람들 눈에 배설물처럼 보이는 것들이 황금 덩어리로 보였던 것이다. 그는 장차 자신에게 주어질 영광의 면류관을 보았기에 자원하는 심령으로 현재의 고난을 견딜 수 있었다. 바울의 이러한 모습은 십자가의 죽음을 예견하셨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거룩한 결단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이 억지로 사역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에게 고난 가운데서도 능히 기뻐하고 또 기뻐할 수 있는 은혜로 채워주신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시고 주의 말씀을 따라서 용감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의 일은 울면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며 감사로 행할 수 있는 일이다. 자원하는 심령은 성령충만한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거룩한 표징 중 하나다. 하나님은 다윗이 밧세바와 범죄하자 거의 마음속에서 세 가지를 거두어 가셨다. 그 세 가지는 주의 성신과 구원의 즐거움 그리고 자원하는 심령이었다. 다윗은 이 세 가지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임을 알았다. 그래서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하나님께 이것을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했다.
자원하는 심령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코뚜레에 꿰어 억지로 끌려가는 송아지 처지나 같다. 주인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코도 아프지 않고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열방에 흩어져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자원하는 심령이 있다. 춥고 굶주림의 위협이 있을 것이나 그들은 기쁨으로 사역을 감당한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알아주심을 알기에 그들의 마음은 늘 행복하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그들의 사역은 언제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다윗, 베드로, 바울 등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이들에게 있었던 심령의 매임이 우리들 사역의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심령의 매임으로 시작하는 이들은 자원하는 심령을 매일 간구해야 한다.
채워주시는 은혜는 언제나 낮은 곳으로 임한다
단기선교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 중심에 한국교회가 있다. 우리 호피 선교지 역시 많은 단기선교팀이 다녀간다. 나는 늘 단기선교 팀을 기다린다. 6년째 계속 오는 팀도 있고 처음 오는 팀도 있다.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반가운 얼굴을 또 볼 수 있어 좋고,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어 좋다. 그 중 우리 선교지를 해마다 방문하는 보스턴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단기선교팀이 있다. 그들은 다섯 번째 방문을 계획하면서 어떤 사역을 했으면 좋겠느냐고 내게 물어왔다. 이 팀의 능력을 믿었던 나는 가정방문 전도를 해보자고 했다. 팀원들에게 아무 집에나 들어가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빌고, 복음을 제시한 후 영접기도까지 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들을 교회로 초청하라고 했다. 전도를 받고 초청된 사람들과 저녁 집회를 한 후에 음식을 대접하기로 했다.
첫날, 가정 방문을 떠나기 전 그들의 모습은 정말 그리스도의 군사들처럼 보였다. 서로 손을 잡고 통성으로 기도하면서 내 가슴은 뜨거웠다. 오늘 저녁 전도집회는 눈물로 회개하며 손을 들고 나오는 인디언들로 교회가 차고 넘치게 되리라고 기대했다. 팀원들은 이번 단기선교 일정 중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인디언들은 단기선교팀이 휘두르는 성령의 검에 굴비처럼 엮여 교회로 오게 될 것이다. 팀원들의 사기는 충천했고 승리는 이미 우리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광, 영광, 할렐루야!
그러나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첫날의 결과는 참패였다. 팀원들은 자신들의 내공으로는 도저히 호피들과 상대가 되지 않더라고 했다. 선교지로 오기 전에 교회에서 3개월간 연습한대로 되지 않았고, 초청은 했으나 몇 명이 올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가정방문을 하던 그들은 이제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뙤약볕에서 하루 6시간씩 돌아다니며 쉴 새 없이 떠들었던 팀원들은 피로를 호소했다. 그들은 교회로 돌아와 픽픽 쓰러졌다. 저녁을 준비해야 했으나 피곤한 몸은 예배당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눕게 만들었다. 돌격대장 전도사님은 팀원들에게 넋 놓고 쉬지 말라고 다그치셨다. 영적 전투를 벌이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셨다. 이날 5명의 인디언이 교회에 나왔는데, 그들은 식사를 기대하고 온 사람들이었다.
다음날, 짝을 바꿔 파송했다. 그러나 전날과 다른 파트너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자매가 있었다. 어떤 자매는 복음을 제시하러 갔는데 인디언 꼬마가 카치나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보채기에 읽어주었다고 했다. 자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 영적으로 눌렸다고 말하는 지체들이 있었고, 복음 제시에 대한 강박 때문에 일상의 대화조차 이루어지지 않더라고 말하는 지체들도 있었다. 이날 집회에는 인디언 30명이 초청되었다. 이날 팀원 가운데 형제 하나는 인디언들 발아래 엎드린 채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셋째 날 아침, QT 나눔은 오전 내내 이어졌다. 서로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보듬으며 전열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팀원 가운데 예수님을 영접한 지 1년도 안 된 형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MIT에서 석사와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형제였는데, 둘째 날 호피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바로 그 형제였다. 그 형제는 단 두 번의 실험을 통해 호피들이 복음 앞에서가 아니다 크리스천 앞에서 완고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복음 제시가 아니라 이들 앞에서 회개하는 것이라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정말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팀원들은 호피들이 몇 명 오는지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보는 하루가 되게 하자고 했다. 하나님이 이 팀의 진심을 보셨을까. 셋째 날 집회에는 교회가 가득 찰 정도로 호피가 초청되었다. 호피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형제의 간증 순서가 있었는데, 그는 이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지난 시절의 크리스천들의 행동에 용서를 구하는 회개의 말을 전했다. 그 형제의 간증을 들은 호피들은 감동했다.
팀들이 돌아간 후, 나는 한동안 우울했다. 용병(단기선교팀)이 향토군(호피)을 상대하려면 10배 이상의 전력 우위가 있어야 한다. 왜 나는 이들에게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좀 더 세심한 조언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에 대한 방책과 전술은 선교사의 몫이었다. 팀원들은 큰 경험을 하고 간다고 말했으나 팀원들이 전투 수행 중에 필요 이상으로 흘린 시행착오의 피는 내 잘못이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듯 무모한 방식의 선교를 하자고 했을까. 내 마음의 저 바닥에는 십자가에 못박히지 못한 십자군적 태도가 아직도 숨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호피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회개하던 그 형제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 형제의 자세를 본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 모습은 내가 머리로만 생각하며 실행에 옮기지 못하던 바로 그 겸손한 자세였다. 하나님은 그 형제를 통해 나로 깨닫게 하셨다.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 나는 다시 깨닫는다. 선교는 태도이다. 선교에 임하는 이들의 자세는 겸손해야 한다. 우월의식과 교만은 하나님이 대적하시는 태도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우리는 어떤 지역의 선교를 계획하면서 그 지역을 오히려 망가뜨릴 가능성을 없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선교지는 돈의 힘으로 밀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 선교지는 무릎으로 들어가는 곳이 되어야 한다. 선교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가 ‘십자군적’인지, ‘십자가적’인지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는 구절이 있다. 영어성경에는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라고 되어 있다. 직역하면 ”당신의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와 똑같아야 합니다“이다. 명심하자! 하나님의 채워주시는 은혜는 낮은 곳으로 임한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대적하신다고 했다. 채워주시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중히 보시는 것, 그것은 겸손이다.
‘내 안의 그 사람’을 통해 인생이 채워진다
“오늘 당신 설교 병살타인거 알지?” “뭐가 어때서? 어니스틴은 좋다고 하던데…” “귀신을 속이셔!” “그럼 귀신이 한번 해보시지?” “20년 지기의 조언일세. 마누라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고깝게 듣지 말고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을 좀 하시게나…”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따가운 강평이 시작되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는 적이 없는 걸까. 집에 돌아가는 길이 유쾌하긴 다 글렀다. “잘하는 모습을 좀 보여주시죠, 선교사님?” “하나님은 잘하는 모습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더 좋아하시네, 이 사람아!” 패배를 예감하며 조금 더 버텨보지만 아내는 피식 웃는다. 아내가 쏘는 총은 늘 아프다. 저격수가 따로 없다. 오늘도 여지없이 가슴에 날아와 박힌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반성은 시작되었고, 손은 이미 가슴에 올라가 있다.
남편 모르는 아내가 있을까. 아내는 나와 신학교 학부와 대학원 동기동창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만난 게 벌써 20년 전이다. 이젠 피차 서로의 속을 넘나드는데, 아내는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까지 잘 알고 있다. 교인들은 좋다고 하는 설교가 아내의 눈에는 예전에 써먹었던 설교에 불과하다. 아내에게까지 나의 게으름을 숨길 수는 없다. 구구절을 옳은 말인데 왜 아내가 하는 말은 듣기가 불편한지 모르겠다. 고까운 마음에 나도 아내에게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받은 만큼 돌려주리라 총알 일발 장전한다.
물론 내 뜻을 포기하고 아내의 뜻을 따르면 두고두고 호회할 것 같은 일들도 종종 있다. 그럴 때는 나도 어쩔 수 없다. 내 뜻대로 밀어붙여야 한다. 내가 아내를 향해 쏘는 총알 역시 받아내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호피 마음에 예배당을 짓고 난 직후 플래그스태프 지역에 인디언 미션센터를 마련하고자 했을 때 아내는 강하게 반대했었다. 아내는 호피 마을에 예배당을 지었으면 되었다고, 이제 당신의 일은 호피 교인들을 세워 제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예배당을 지을 때보다 10배는 돈이 더 들어갈 일에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디언 미션센터는 호피 마을의 예배당 건축과 더불어 전임 선교사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것 중의 하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에서 일해 보니 이 두 건물은 인디언 선교에 반드시 필요한 베이스캠프였다. 나는 미션센터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기도하면서 이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남편이 피를 팔아서라도 추진하겠노라 장하게 결심한 것을 어찌 아내가 저리 콧방귀 하나로 무시할 수 있을까. 어느 날인가 아내와 이 문제로 다시 불같이 부딪쳤는데, 그때 나는 두고두고 후회할 말을 뱉어버렸다. “당신, 똑바로 들어. 하나님이 호피 선교지를 사랑하셔서 미션센터를 세우시는 날,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이곳에 올 거야. 그날에 당신은 저기 구석에 가 있어. 당신이 미션센터와 관련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분깃은 없을 줄 알아!”
아내는 이 말을 듣고 난 후, 밤새도록 서러워하며 울었다. 아내는 내 말 때문에 자기 수명이 10년은 단축된 줄이나 알라고 했다. 아내는 이후 몇 개월간의 기도에 들어갔다. 기도가 끝난 어느 날 저녁, 아내는 내 뜻에 동의해주었다. 이후 미션센터 추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물살을 탔다. 나는 아내에게 선교지를 맡기고 마음 편히 다닐 수가 있었다. 선교 사역을 시작하면서 아내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동양음식 드시러 한번 오실래요?” 하면서 살갑게 인디언들에게 매주 식사를 제공하는 아내의 수고가 있었기에 그들과 사귈 수 있었다. 어수룩한 내 설교로는 어림없었을 사람들이다.
미션센터를 위해 힘을 모아주실 수 있는 목사님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그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또한 목사님들의 요청이 있으면, 선교지는 아내에게 맡기고 다른 교회를 방문해 헌금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렇게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나는 한 달 내내 선교지를 비우고 돌아다녔다. 그 결과 북미인디언선교회에서 미션센터 설립을 결정한 후, 각 교회들로부터 헌금이 모이는 데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미션센터로 사용할 건물을 구입하고 리모델링을 했다. 드디어 2006년 5월, 단기선교팀의 베이스켐프이자 인디언 교인들의 교육 및 훈련의 역할을 담당할 미션센터를 감격스럽게 개관했다.
인디언 미션센터의 마련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채워주심의 역사였다. 나는 하나님의 급속한 채워주심 이전에 아내가 하나님의 뜻을 구한 몇 개월간의 기도가 있었음을 안다. 인디언 미션센터를 볼 때마다 이 건물은 아내의 수명 10년과 바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미션센터를 주시기 전에 아내와 나의 하나 된 마음을 확인해보려고 하신 것이 아닐까. 부부가 한마음을 품는 것은 선교사로 일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사역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부부가 아나 된 마음을 보여드려야 한다.
무슨 팔불출 같은 고백이겠지만 아내가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것은 최고의 칭찬이다. 아내의 동의가 없다는 것은 전부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반면에 아내만 동의한다면 천만인이 반대한다 해도 두렵지 않다. 아내가 동의해주는 일처럼 지속적이고 파워풀한 사역이 또 없다. 그런 때는 절로 흥이 난다. 아내는 내 안에 있는 사람이다. 아내는 하나님의 채워주심의 결정체다. 하나님은 나의 사역을 위해서 이미 14년 전에 아내를 준비해주셨다. 내 인생의 채워주심은 이미 14년 전에 아내를 만난 그때 거의 채워졌다고 믿는다. “잘하라는 말은 조금 더 노력하라는 말이에요. 사실 당신 요즘 조금 게을렀잖아요. 화나게 했다면 미안해요.” 아내는 해질 때까지 분을 품지 않는다.
중대한 국면에서는 중대한 헌신도 마다하지 않는다
호피 마을에 예배당 건축을 완료한 이듬해 우리를 후원해주셨던 북미인디언선교회 소속 목사님들을 초청해 선교대회를 연 적이 있었다. 전체 일정 중에 인디언 교인들과 선교회 목사님들이 만나는 시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북미인디언선교회 한국 측 회장인 전용재 목사께서 선교사를 잘 도와준 교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말씀을 전하셨다. 특별히 예배당 건축을 할 수 있도록 특별히 땅을 내주고 헌신하다가 하늘나라로 간 힐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에 힐다의 유가족과 남편은 다시 한 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때 그 자리에서 힐다의 권력을 승계한 여인 멜사는 애초에 4년 계약으로 쓰기로 한 땅과 건물에 대해 획기적인 발언을 했다. 호피들이 교회에 예배드리러 나오는 한, 기간에 상관없이 예배당을 사용해도 좋다는 말을 한 것이다. 찬물과 더운물이 콸콸 나오고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교회 건물을 둘러싸고 이해 당사자들 간에 의견대립이 심했던 시기였다. 그 예민한 시기에 그녀의 발언은 참으로 의외였다. 말 그대로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던 순간이었다. 참석하신 목사님들은 목례로 멜사의 뜻에 화답하셨고, 교인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감정을 자제하며 회의를 진행했지만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놀라운 발언이었다.
‘호피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나오는 한이라.’ 아직까지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병아리 걸음마를 하는 교인들이 내심 불안하다. 저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제자로 굳게 세워 이 예배당의 기둥과 같은 일꾼이 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충성스런 현지 사역자를 양육시켜 교회의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 평신도 대표인 호피 마을의 여자 판사 달린과 재정을 관리하는 어니스틴 그리고 총무 담당인 애너벨을 더욱 견고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이런저런 상념 끝에 LA에 사시는 김 권사님 얼굴이 떠오른 것은 왜였을까.
호피 마음에 교회를 건축할 때 가장 큰 걱정은 상하수도 공사였다. 어쩌다 찾은 인디언 배관공들은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했다. 그때 만나게 된 팀이 LA에서 온 동산감리교회 목공 봉사팀이었고, 팀원 가운데 한 분이 김 권사님이셨다. 권사님은 흙구덩이 속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셨다. 60이 훌쩍 넘으신 연세에 여자들이 쓰는 밀짚모자를 쓰고서 일하시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일정이 끝나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도 권사님은 일행들더러 먼저 가라고 하셨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아직 끝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어이 당신이 묻은 수도관에서 문제없이 물이 흐르는지 물방울이라도 보고 가겠다고 버티셨다. 자신의 일을 이을 사람이 없는 마당에 하던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권사님의 태도를 통해 귀한 영적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자세가 사역자들에게 꼭 필요한 태도다! 전체 공정 중에서 내가 손댄 일을 반드시 끝내야 할 어느 지점들이 있다. 그 일을 마치기 전까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안 된다. 우리는 가끔 하던 일을 거리낌없이 놓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하던 일이 짐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창 채워주시는 시점인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격이다. 일의 진행과정에서 피지 못하게 중단해야 하는 경우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잘 살펴야 한다. 내가 하던 일은 끝장을 보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그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판단할 과제다.
하나님은 호피 선교의 결실을 보는 기쁨을 내게 주실까.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오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땅 밑에 묻은 관에서 흐르는 물방울만이라도 보는 날을 허락하실까. 멜사의 발언으로 중대한 국면이 전개될 수 있는 시점이 되었다. ‘물방울은 안 보여도 물이 저만치에서 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국면인데....’ 도달할 것 같은데 저만치 물러가 있는 무지개처럼 하나님이 한 발짝 더 물러나신다. 그리고 저편에서 나를 부르신다. 이 길을 얼마나 더 가야 하나.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외칠 수밖에 없었던 투정이 들려오는 것 같다.
핏티타니 아도나이 비에파트!(렘 20:7)
O LORD, you deceived me, and I was deceived.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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