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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I Friday's 유감”
(제 4 계명에 관하여)
류호준 목사
직장인들에게 일주일 중에 어느 날이 제일 기분 좋은 날인가 하고 물어보면 대답은 모두 같을 것이다. “금요일!” 금요일 오후에 직장을 나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게 보인다. 헤어지면서 “좋은 주말이 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요즈음 영어로 인사를 하는 풍경도 간혹 눈에 띤다. “Have a nice weekend!" 집으로 돌아오면서 적어도 이틀은 직장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 편안함이 운전을 즐겁게 한다. 금요일 밤 9시 뉴스 시간을 마칠 때가 되면 TV 앵커들도 한결같이 “즐거운 주말이 되십시오”라고 인사를 한다. 주말이란 용어를 발명한 미국인들은 금요일이 제일 신나는 날이다. 월급을 주는 한국과는 달리 보통 주급으로 임금을 주는 그 나라에선 금요일 오후 일이 끝나는 동시에 주급을 받는다. 주급을 받아든 그 사람은 집으로 가기 전 먼저 슈퍼에 들려 6개들이 깡통 맥주 한두 박스와 스낵들을 사들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여 가족들과 함께 뒤 정원에서 야외 스테이크 파티를 벌인다.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금요일 저녁이다. 그래서 큰 소리로 외친다. “우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금요일입니다!”(Thank God, It's Friday).
주말과 주중
이미 수년전에 한국에도 상륙한 외식 산업체 중에 "TGI Friday's"가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이 레스토랑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덮어놓고 들어가 덮어 놓고 먹고 나오는 이 레스토랑의 이름(TGI Friday's = Thank God, It's Friday)은 세속화된 미국인의 가치관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멋진 상호다. 즐거운 주말이 시작되었다는 신호탄이다. 이렇게 해서 금요일 저녁부터 공식적인 주말이 시작된다. 그런데 주말(週末)이라? 지금은 당연시 여기는 '주말'(週末, weekend)이란 용어는 언제 생겨났으며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내가 어렸을 적에는 그런 용어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어쨌건 사전적 정의와 지내온 관습에 따르면 7일 일주일 중에 일하지 않고 쉬는 2일을 주말이라고 부르는데 토요일과 일요일이 주말이다. 주말(weekend)이라는 용어는 유럽 국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거의 번역되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되는 것을 보아서도 틀림없이 이 용어는 미국에서 나온 말이다. 주당 5일을 일하는 나라에서 만들어진 용어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아도 일과 휴식에 관한 한 미국인의 가치와 이념과 생각을 이 단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을 없을 것이다. 이 용어에 따르면 일주일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weekdays(주중)라 부르고 후반부는 weekend(주말)이라 부른다.
어느 날이 일주일의 첫날인가?
여기서 잠깐 집고 넘어가야할 사항은 어느 날이 일주일의 첫날인가이다. 흥미롭게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월요일을 일주일에 첫날로 여긴다. 적어도 유럽에서 인쇄되는 달력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이런 순서다. 그런데 weekend란 용어가 시작된 미국에서는 흥미롭게도 일요일이 일주일의 첫 날이다. 미국식 달력과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 역시 대부분의 달력이 일요일로부터 시작된다.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이런 순서다. 일주일을 전개하는 순서에 있어서 왜 유럽의 달력과 미국의 달력이 다른가에 대한 역사적 이유는 다른 곳에서 살펴볼 주제이고, 여기서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주말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신학적 신앙적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한다. 물론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용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정신을 어느 정도 들여다 볼 수 있고 또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문제를 짚어 볼 수 있는 표제어(catchword)이기 때문이다.
달력은 이렇게 걸어놓고, 살기는 저렇게 살고?
먼저 “달력”과 “weekend”라는 용어가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지? 우리 집 거실에 걸려있는 달력은 일요일이 일주일에 첫날이라고 가리킨다. 그런데 weekend라는 용어는 말하기를, 일요일은 주말의 두 번째 날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weekdays-weekend”라는 패턴으로 일주일을 도식화한다면 월요일은 일주일에 첫날이고, 일요일은 일주일에 끝 날이다. 달리 말하자면 월요일은 주중(weekdays)의 첫날이고 일요일은 주말(weekend)의 마지막 날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 집에 달려있는 달력 앞에서 주말(weekend)을 말하는 자체가 자기모순이고 자가당착적이다. 차라리 일주일을 월요일로부터 시작하는 유럽이나 북한의 달력을 걸어놓으면 앞뒤가 맞는다! 어쨌거나 여기서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주말이 되세요!”
지금은 날짜가 화요일로 바뀌기는 하였지만 내가 봉직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이전에 줄곧 월요일에 교직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곤 하였다. 어제 주일에 지역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월요일에 직장에서 또 예배를 드린다고 뒷전에서 중얼대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교직원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 매주 월요일 아침에 교직원 예배가 드려졌다. 그런데 예배 순서 중에 기도 시간이 있었다. 기도 순서를 담당한 분들은 대부분 교회에서 장로나 집사 직분을 갖고 있는 직원들이거나 아니면 교수 목사들이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항상 내 귀에 거슬리는 말이 나오곤 하였다. 목사건 장로건, 신학 교수건 상관없이 “하나님, 일주일의 첫 날을 주님께 바치게 되었습니다”라는 것이다. “아니 월요일이 일주일의 첫날이라고?” “그러면 일요일은 뭐야?” “아참, 저분이 지난 금요일에 헤어지면 ‘좋은 주말 보내세요!’라고 했지!” “그러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지”라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보곤 하였다. 이 말이 작은 문제인가? 생각 없이 덮어놓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교만한 마음이나 정죄하는 태도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과 신학은 단지 액세서리가 아니지 않는가?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 가지 신앙 패턴
일요일로 시작하는 달력과 월요일로 시작하는 달력은 두 개의 서로 상반된 세계를 보여주는 모형이다. 전자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신앙관을 보여주고, 후자는 유물론적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달력이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들어보시라. 성경의 창조 기사에 따르면 하나님은 첫 엿새 동안에 창조적인 일을 하셨다. 하늘과 땅과 그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다. 부지런히 일을 하셨으며 창조한 모든 것을 질서 있게 배열하시고 진열하셨다. 스스로 보시기에도 너무나 멋지고 좋아서, “와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라고 하시기까지 하셨다. 엿새 되는 날 모든 일과를 마치기 전에 아마 코끼리를 지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려는 마지막 순간에 그분은 자신의 최대의 걸작인 사람을 지으셨다. 첫 인류인 남자와 여자인 아담과 해와를 지으신 것이다. 그리고는 엿새 날이 저물었다. 어둠 가운데 첫 인류인 아담과 해와는 첫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날이 밝아오자 그들은 눈을 떴다. 그들은 놀라고 놀랐다. 경이와 경탄으로 전율을 느꼈다. 너무도 찬란하고 아름답고 평화롭고 멋진 창조의 세계가 그들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화, 영광, 질서, 조화, 안온함, 아름다움, 안식, 기쁨 등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지고(至高)의 행복을 경험하고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를 히브리어로는 “샬롬”(שׁלוֹם)이라고 부르는데, 그 용어의 뜻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로서의 평화가 아니다. 샬롬의 포괄적인 뜻은 그 용어 그대로 “가득함”(충만)이다.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여 가득한 상태를 가리킨다.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도 어제 모든 일을 멈추시고 끝내신 것(솨바트, שׁבת)이다. [참고로, 안식일을 영어로 Sabbath라 하는데 이것은 ‘멈추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솨바트’에서 유래하였다.]
첫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첫 밤을 보내고 맞이한 최초의 날은 하나님이 안식하는 날이었다. 그들은 안식의 날을 노력해서 번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았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이 행복한 상태(샬롬 = 안식과 평화와 안온)를 그들은 애쓰고 힘쓰고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공짜로 거저 받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샬롬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최초의 인류는 그것을 감사와 찬양과 경이로 받았다. 그렇다면 첫 인류는 쉼과 안식이 있는 날로부터 그들의 일생을 시작하였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쉼과 안식의 날을 보낸 후에 그들은 즐거운 노동과 일로 들어가게 된다. “안식과 일”이라는 창조의 리듬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나 안식이 먼저고 그 다음에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누리고 그로부터 얻은 힘을 가지고 일에 들어간다는 것이 창조의 원리이다. 신약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동참함으로 새롭게 태어난 인류(그리스도인들)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한 안식과 샬롬을 주신 일요일(주일)을 일주일의 첫날로 맞이한다. 일요일은 일주일의 첫날이다. 결코 주말의 둘째 날이 아니다!
한편 월요일부터 시작한 달력은 유물론적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위에서 말한 적이 있다. 왜 그럴까? 주중과 주말로 나누는 달력체계는 방금 위에서 말한 “안식과 일”이라는 창조의 패턴 대신 “일과 여가”라는 유물론적 대안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여가는 일과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선물은 아니라는 철학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닷새 동안 부지런히 일을 한 사람만이 주말(토요일과 일요일)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돈이 없는데 어떻게 주말을 즐길 수 있겠는가? 노동의 대가로 받은 주급이 있어야 TGI Fridays와 같은 레스토랑이라도 가지 않겠는가? 요즘처럼 우리도 서구사회처럼 주5일제 근무를 하게 되었지만 저축한 돈이라도 있어야 주말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주말은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만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일주일을 주중과 주말로 나누는 현대인들의 시간 구분법은 일하지 않는 주말을 즐겁게 지내려면 주중에 힘써 벌어놓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이 사실은 여가와 즐거움은 땀과 노력의 대가로 주어진다는 것을 가리킨다.
둥근 피자와 둥근 시계
이와 같은 사실을 좀 더 분명하게 보이기 위해 두 가지 은유를 사용해 보자. 하나는 둥근 피자이고 다른 하나는 피자처럼 비슷하게 생긴 둥근 대형 벽시계이다. 어떤 젊은 아빠가 있었다. 그는 주중에 직장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성실한 사람이다. 어느 금요일이 되었다. 길고 긴 주중이 끝나고 기분 좋은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이 되었다. 몸은 피곤하였지만 주말을 맞이한다는 사실에 기분에 좋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인근 피자집에 들려 큰 피자 한판을 주문했다. 집에서 기다릴 아내와 자녀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서류봉투를 거실에 던진 채로 아이들과 함께 피자 판을 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불청객이 온 것이다. “제기랄! 하필 왜 이 시간에…” 문을 열어보니 주말이라고 오랜만에 먼 친척이 어린 애 둘을 데리고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것이다. 즐거운 피자 파티가 파투가 나는 순간이었다. 둥근 피자 판에서 긴 역삼각형 피자 조각이 잘려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피자파티를 하려는 이 주말 저녁의 안온함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우리 가족만이 오붓하게 즐기려 했던 안식이 피자 조각과 함께 강탈당한 기분이었다. 여기에 두 번째 은유가 오버랩한다. 이 순간 둥근 피자의 모습이 슬그머니 둥그런 벽시계로 변해 간다. 11시에서 12시 사이의 바늘 침의 모습이 긴 역삼각형 조각 피자와 오버랩이 된다. 다시 6시에서 7시까지의 조각 피자 시간대가 떨어져 나간다. 아니면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의 피자 조각 시간대가 억지로 뜯기듯 떨어져 나간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풀어 해석하자면, 일요일(주일)의 대 예배시간(11시-12시)과 저녁 예배시간(6-7시) 혹은 주일 오후시간대(3-4시)에 각종 성경공부나 성가대 연습 시간을 교회가 우리에게 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만의 즐겁고 기분 좋은 주말시간을 불청객과 같은 교회와 하나님이 내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마지못해서 불청객에게 피자 조각을 주기는 했어도 뭔가 찜찜하고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어떻게 번 안식의 시간이고 어떻게 노력해서 번 나의 시간인데 교회는 그 시간을 달라고 하나? 여간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미 그런 사람들에게 각종 직분을 주었다. 그러니 체면상 겉으로 내놓고 불평만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 직분을 받았으니 일요일의 대예배시간과 오후 예배시간 및 각종 모임에 군소리 없이 참석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는 아닌가! 사실 얼마전만해도 아내에 성화에 못 이겨 교회 출석을 하던 그 남편은 집사 직분을 받은 후로 적어도 대예배 출석만은 하지만 왜 굳이 저녁 예배까지 출석해야하느냐고 뒤에서 구시렁댄다. 어쨌건 직분 수여를 통해 주일 예배 참석에 대한 불평을 어느 정도 입막음한 셈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핵심은 단 한 가지이다. 현대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크리스천들은 주중과 주말이라는 현대적 주간 구분아래 살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일요일을 주말의 둘째 날로 폐위(廢位)시켰으며, 그렇게 살다보니 자연스레 주말로 상징되는 안식과 평온은 주중으로 대표되는 노력과 노동과 일의 대가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가와 즐거움은 버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금요일 신드롬
위에서도 말했지만 미국이나 유럽처럼 한국에서도 금요일은 특별한 날이 되었다. 왜냐하면 금요일은 노동(work)과 여가(leisure)를 구분 짓는 날이기 때문이다. 외식업체의 이름인 TGI Friday's 이름 속에 잘 반영되었다. 먼저 이 문구는 “하나님 고맙습니다”라는 진정성이 없는 그러나 간절한 기도를 반영한다. 즉 “5일간의 의무적인 고역이 끝났습니다. 이제 개인적인 쾌락을 위한 이틀이 시작되었습니다!”라고 기도한다. “TGIF”와 “주말”(weekend)이라는 용어는 이제 우리가 삶과 인생을 두 개의 기본적인 범주로 나눈다. 일과 여가, 고역과 탐닉, 마땅히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는 것. 그런데 이게 무엇이 나쁘단 말인가 라고 반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째로, “좋은 주말 보내세요!” ― 매우 친절하고 다정한 인사말이긴 하지만 사실상 일요일(主日)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일주일을 주중과 주말로 나누는 이런 패턴은 기독교의 중요한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즉 기독교적 가르침은 나의 일(삶의 소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따라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해야 하고 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에 공헌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일하는 것이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노역(奴役)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일주간에 대한 현대적 패턴(주중과 주말, 일과 여가, 고역과 탐닉 등)은 일을 필요악, 혹은 저주, 혹은 공공의 요구, 혹은 이상적으로는 내 개인의 즐거움이나 자기실현을 위해 사용되어야할 시간이 그렇지 못한 곳에 빼앗기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달리 말하자면 사람들은 일은 내가 그 일에서부터 빨리 벗어날 때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과 노동은 오로지 내 자신을 실현하고 내 자신을 표현하는 곳일 때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의 가치는 나에게 유익이 되어야하지 나의 주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그리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이러한 패턴은 기독교적 휴식과 안식(rest)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현대적이고 세속적인 여가(leisure) 개념을 옹호한다. 여가 시간은 내가 나에게 빚진 시간이다. 즉 일하기 때문에 빼앗겼던 시간을 균형 잡히게 하는 시간이 여가 시간이다. 여가시간은 선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노력해서 버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탈취당하거나 빼앗기면 그 상실감이 너무도 크게 느껴진다(위에서 말한 피자 은유를 상기하라). 나는 매 주간 닷새를 내 시간과 내 에너지와 내 기술을 직장과 대중을 위해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일주일의 나머지 시간(주말)을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나와 내 가족과 내 친구들을 위해 사용할 권리가 있다.
이런 여가로부터 무엇을 빼앗는 것은 무단 침입이요 강도요 탈취요 불의한 일이다. 주말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기 위해 내가 벌어놓은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이 날들은 내 날들이다. 주말의 시간을 침입하거나 빼앗으려는 그 어떠한 사람도 그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 할지라도 - 나는 분노하고 기분 나쁘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주말 개념이며 현대적 크리스천들의 주일 개념이다.
도대체 일요일(主日)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일주일을 주중과 주말로 구분하는 이런 시간 패턴은 주일(일요일)에 대한 크리스천들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결과를 낳았다. 새로운 일주일의 첫날로 주간을 패턴화 하는 대신에 일요일은 주말의 둘째 날로 폐위되었다! 이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다. 일요일을 내 시간의 일부분으로, 특별히 내가 노력해서 번 여가 시간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주일의 예배와 그밖에 다른 교회 활동들은 내 여가 시간(내 가족의 여가시간)을 빼앗아 가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렇기 때문에 주일 오후예배나 저녁예배는 간섭이나 방해나 침입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간섭이나 방해란 말인가? 무엇에 대한 침입이란 말인가? 내 바쁜 스케줄에 대한 침입인가? 내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에 대한 간섭인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에 대한 방해인가? 도대체 무엇에 대한 간섭이란 말인가?
우리는 주일에 드리는 예배나 그 밖의 교회 활동들을 ‘일’ ‘의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주말에 자유로워지기 위해 억지로라도 일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주일의 예배나 교회활동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일요일의 요구사항들은 우리의 여가 시간을 내어달라는 반 강제적 요구처럼 들리게 된다. 성경적인 ‘휴식과 일’의 리듬 대신에 현대인들은 일을 휴가를 위해 마땅히 지불해야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주일(일요일)은 거룩한 날이다. 지난 주간 동안 받은 하나님의 선물과 은총에 대해 감사하고 축하하며, 그분의 은혜를 통하여 새로워지기 위해 특별히 따로 떼어 놓은 날이 일요일(주일)이다. 현대인들이 말하는 휴가란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에 대한 대용품으로 땀 흘리는 고역으로부터 도피하는 날들이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리고 가능한 많이 여가를 즐기는 것이 휴가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크리스천들은 일요일에 교회를 훌훌 털어버리고 비우는 것이다.
너무 바쁘다고요?
교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저는 참 바빠요!”라는 변명의 소리를 듣는가? 너도 나도 모두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 뭐가 그리 바쁜지? 누군가에게 교회의 일을 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교회 직분을 맡으라거나 혹은 교회의 모임들이나 제직회의에 참석해 달라고 해보라. 무슨 대답이 나오는가? “요즘 너무 바빠서요.” 마치 자기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가를 과시하기나 하듯이, 그래서 교회의 일이나 예배와 같은 사소한 것에는 신경을 쓸 시간이 없다는 듯이 그렇게 은근히 뻐기면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좀 더 끈질기게 물어본다. 뭐가 그리 바쁘냐고 말이다. 그러면 그들은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에 대해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런 대답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대꾸할 수 없는 대답인줄 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느냐고 대답한다. 혹시라도 주중에 교리공부라도 하면 어떠냐고 물으면 질색을 하면서 가정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 예를 들어 공직에 있는 분이나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분 - 직장에 다니거나 일하거나 학교에 가거나 집안일을 하는 전업주부나 모두 “나는 바빠서”라고 말한다면, 내가 보기에는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다음의 항목에서 무엇이 당신의 우선순위라고 생각하는지 번호를 매겨보라.
일과 직장과 학교
가족과 가정
교회
아마 교회는 초라하게도 세 번째가 될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과 직장과 가정이 교회나 교회의 활동들보다 더 중요할 뿐 아니라 더 신성하다고까지 생각하는 듯 보인다.
물론 우리 장로교인들(칼빈주의자들)은 일과 가정이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일과 가정은 우리의 소명이며 사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의 순서가 맞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가족을 위한 시간이나 일이라고는 말하지만 많은 경우는 개인적인 여가를 위한 위장전술인 경우가 아닌가 한다. 저녁 예배를 건너뛰는 것이 정말로 가족 구성원간의 연대감을 돈독히 하기 위함일까? 가족 간의 창조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 정말로 그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서 오후 예배나 저녁 예배를 건너뛰는 것일까? 아니면 결국 ‘바보상자’ 앞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인가? 희생하는 시간(일)과 번 시간(여가)이라는 시간 패턴에 따르면 교회의 일들과 활동들은 ‘나의 주말’을 방해하는 침입자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미국이나 유럽 사회를 따라 ‘주말 트랜드’를 계속할 경우 - 내가 볼 때 이것이 우리의 미래일 것 같은데 - 기독교인들의 주일 예배나 교제는 일요일(주일)이 아니라 주중에 간신히 생기는 틈바구니 날들 속에 가까스로 들어갈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개인의 탐닉이나 가족의 즐거움이나 스포츠나 여행이나 다른 쾌락적인 일들을 추구하기 위해 자유롭고 해방된 주말을 사용할 것이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주일)입니다!”
이제 우리 크리스천들은 TGIF(“Thank God, It's Friday!”) 대신에 TGIS(“Thank God, It's Sunday!”)라고 말해야하지 않을까! 16세기에 나온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 중의 하나인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Heidelberg Catechism)는 일요일은 주님의 날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악이 패배한 날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축하하는 날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일요일(주일)은 성령 안에서 사는 날이어야 하며,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교제하고 사귐이 있는 기쁜 날이다. 일요일은 새로운 시작의 날이지 일주일의 끝 날이 아니다. 일요일은 도피의 날이 아니라 새로운 임무로 벅찬 날이다. 일요일은 뒤로 물러가는 퇴수의 날이 아니라 새로운 헌신의 날이며 휴가를 가서 비우는 날이 아니라 가득 채우는 날이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가 써졌을 당시에는 5일간 일하는 주중과 이틀의 주말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따라서 제 4 계명(안식일 계명)을 다루고 있는 103번째 질문과 대답(“무엇이 제 4 계명 안에 나타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까?”)은 주중과 주말과 같은 삶의 패턴에 대해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신앙교육서는 제 4 계명의 중심 개념처럼 보이는 ‘일하지 않음’(여가)에 대해서도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신앙교육서는 일요일을 ‘안식을 축하하는 날’(festive day of rest)로 정의한다. 그 날에 우리 각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중(모임)’에 참석해야한다. 그날을 제정한 이유는 일주일의 나머지 날들을 어떻게 패턴화 시켜야하는 지를 가르쳐 주는 날로 의도되었다는 것이다. 즉 일요일이 안식을 축하하는 날이라는 뜻은, 그 날에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든 날에서 ‘악으로부터 안식(rest)’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날이다. 즉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을 반영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신앙교육서는 일요일과 그 나머지 날들을 대조하는 대신에, 이 둘 사이에는 연관성과 계속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즉 일요일은 지난 주간의 활동에서부터 휴식하는 날이 아니라 다가올 일주간을 견고하고 단단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영적 새로워짐’의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요일은 일로 가중된 반복되는 일상에 단순한 변화를 주는 날이 아니다. 일요일은 지금 여기 이 땅에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징표이며 사인(sign)이다. 일요일은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게 도래할 때 찾아올 영원한 안식(Sabbath)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이다. 일요일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에 거룩함을 가져올 거룩한 날(聖日)이다.
우리의 일요일이 주말에 의해 삼킴을 받도록 허락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 4 계명을 통해 그의 백성들에게 뜻하시고 의도하신 삶의 방식과 스타일을 현대적 삶의 패턴으로 대치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동료 크리스천들을 만나면 “멋진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have a nice Sunday)라고 말해야하지 않을까? 더 이상 ‘주말’은 크리스천의 단어장에서 없어져야 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