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온아로타리클럽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 송운 총재방 스크랩 미네르바에 대한 보수 언론의 보도 태도를 돌아보며
송운(이영호) 추천 0 조회 12 09.01.12 22: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카페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운영진이 팝업, iframe 태그를 제한 하였습니다. 관련공지보기

 

 

 

(사진 속 인물들은 아래 글의 의도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보수 언론들은 미네르바가 가진 상품성을 일찌감치 알아챘고,

그가 가진 상징성을 뒤늦게 간파했다.”

 

- 미네르바 체포를 계기로 본, 보수 언론의 미네르바 보도 태도 -


“생존 경쟁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배울 텐가? 아니, 우리의 모든 거품이 터져버릴 때까지 불살라 버릴지도 모르지?”


  2004년경에 누군가 이런 묵시록 같은 예언을 내뱉었다면 어떨까?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에 대한 사전 경고였다고 언론과 대중이 환호작약할지도 모르겠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 대중은 간절히 선지자들을 갈망한다. 언론은 그런 대중 심리를 파고든다. 그들의 그런 태도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것은 목이 마를 때 물을 찾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깊어지면, 그런 태도가 극단화 되기도 한다. 불길한 말을 한 적만 있으면 누구나 선지자 행세를 하려 든다. 당사자가 그러기도 전에 언론이 먼저 군불을 땐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사건을 생각해보자. 많은 언론들이 이 변고를 예언한 몇몇 역술인들을 거론했다. 입소문을 탄 이들 예언의 실체를 확인하는 작업은 부차적이었다. 언제, 어디서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를 검증하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그저 자신이 맞췄다고 주장하거나 맞춘 사람이라는 풍문만 전할 뿐이었다. 당시의 언론 보도 덕에 거론된 역술가들은 모두 유명인이 됐다. 돈도 많이 벌었다. 그 후 역술인들 사이에서는 국가의 명운과 관련한 예언을 하는 것이 유행이 됐다. 연초가 되면 그 해에 벌어질 법한 일을 예언하는 것이다. 그것도 변고(變故)라는 식의 애매한 표현을 써가면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엄청나게  많이 거론한다. 지난해 김정일 중병설을 적중시켰다는 역술가가 벌써 많이 출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리엘 루비니 vs. 미네르바

  미네르바의 경고를 역술가 수준으로 폄하하려는 뜻은 결코 없다. 실제 경고보다 언론의 의미 부여가 과했다는 지적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네르바의 글을 거의 다, 꼼꼼히 읽어본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미네르바에 관한 기사를 쓴 기자들은 과연 다 읽었을까? 미네르바 체포 소식으로 인터넷이 들썩거리는 상황에서, 불손하게도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글을 다 읽지 않고 미네르바에 관련된 기사를 쓴 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글을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면서 이런 판단을 내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네르바의 경고가 언론에 의해 지나치게 일반화 되고 과장된 면이 있어서다. 그의 경고는 실제로 일부 언론의 표현대로, ‘현재의 위기를 정확히 예고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금융 시장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정확했다. 금융시장 불안 요소와 메카니즘에 대한 그의 이해도 비교적 옳았다. 그렇다고 그의 불안감이 다 적중한 것은 아니다. 지난 해 9월부터 시작된 위기설은 그야말로 설로 끝났다. 주가 수준이 지금의 반토막 이하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은 더 두고 볼 일이다. 아직 그를 선지자로 추앙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현재의 경제 위기에 대한 경고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분명 그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을 만하다. 그나마 정확히 위기를 진단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대학원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비슷한 예다. 그는 평상시 늘 다른 경제학자들에 비해 미국과 세계 경제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하곤 했다. 그 때문에 ‘미스터 둠’(Mr. Doom·심판론자)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요즘 그는 미국 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 인사가 됐다. 그가 미국 주택 가격의 하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던 때는 2004년경으로, 실제보다 한참 앞섰다. 그러나 이제 와서 이 사실을 따지는 이들은 거의 없다. 경기 침체에 더해 유가 폭등으로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엄습할 것이란 전망도 빗나갔다. 그러나 그것을 문제 삼는 경우도 없다. 일단 적중했다는 명성을 얻고 나면, 구체적인 것은 모두 부차적인 문제가 되고 만다. 불길한 예언은 노스트라다무스의 경고 같은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비니 교수와 미네르바에 대한 한미 양국의 관심에는 차이가 있다. 그 핵심에 언론의 보도 태도가 있다. 루비니 교수의 위상이 전례 없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지난 몇 달 간 미네르바가 받았던 만큼의 찬사와 관심이 그에게는 쏠리지 않는다.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백과사전인 <위키디피아>에도 한 대목 등장하듯, ‘그는 유럽과 신흥시장 국가 같은 미국 외의 지역에서 오히려 인기가 더 높다’. 미국의 주류 언론들 상당수는 그를 선지적 예언자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무래도, 그가 불길한 예언을 종종 해왔다는 사실을 감안해서일 것이다.

 

  2006년께 미국에서 갓 제기된 서브프라임(비우량 장기주택담보대출) 부실 우려에 대해 취재할 당시였다. 당시 연재 기사를 쓰려고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두루 만난 적이 있다(이 사안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편집국 수뇌부와 부딪쳐, 연재는 단 두 차례만에 중단됐다). 돌이켜 보면 당시 전문가들 가운데 일부는 사안의 심각성이나 닥쳐올 위기의 형태에 대해 미네르바 못지않게 정확히 전망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파생상품의 파국적 성격에 대해 지적했고, 일부는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그리고 세계 경제의 불균형성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은 사전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위기가 실제로 닥치고서야 미네르바의 경고에 뒤늦게 주목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영웅에서 반영웅으로, 보수 언론의 보도 태도 변화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미네르바가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를 많이 갖고 있어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익명성이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인터넷을 통해 해박한 금융 지식을 동원해가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이.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소돔시의 악당들을 향해 돌진하는 배트맨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미네르바에 이런 영웅의 이미지를 덧칠한 것은 정작 우리 언론, 그것도 보수 언론들이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는 검찰이 정체를 공개하기 직전만 해도, 미네르바로 추정된다는 두 K씨의 인터뷰를 흥미진진하게 공개하기도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직접 나서서 미네르바를 공박할수록, 그가 가진 상품성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이 충돌을 가장 발 빠르게 전한 것이 다름 아닌 조중동이었다.

 

  미네르바가 가진 대중적 흡인력의 반대 지점에는 무기력한 우리 주류 경제 전문가들이 있다. 우리 언론들은 발 빠르게 그 점에 주목했다. 이름난 경제학자나 경제 전망기관 치고 이번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를 진지하게 전한 곳은 없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그랬다. 대중들은 이런 주류 경제 전문가들의 무능력에 대해 이미 크게 낙담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네르바는 마치 대안처럼 떠올랐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이미 자신이 주류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상태였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태동 교수(성균관대)가 미네르바를 격찬한 것 역시, 그런 대중들의 정서를 어느 정도 반영해서였을 것이다. 자신의 출신 배경과 무관하게, 그는 경제학계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미묘한 경계선상에 입지하고 있다.

 

  보수 언론들이 미네르바가 가진 이념적 상징성을 자각한 것은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포털 사이트인 다음의 토론 광장인 아고라에서 활동해왔다. 줄곧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해왔다. 더욱이 정부가 나서서 그의 말을 반박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미네르바는 정부 정책의 신뢰성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의 지위를 얻게 돼 버렸다. 최근 들어 보수 언론들은 미네르바에 대한 정부 관계자들의 입장을 수시로 보도하더니, 은근히 검찰 수사를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그에게 대중의 관심에 무섭게 집중되는 순간, 보수 언론은 그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한 순간에 미네르바는 영웅에서 반영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검찰과 보수 언론의 적반하장

  보수 언론의 달라진 태도는 검찰 수사와 동시에 공론화 됐다. 그들은 검찰 수사 결과를 인용해 미네르바가 자신의 공언과는 달리 30대 무직자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사실이라고 치자. 자신의 경력을 허위로 공표한 것이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학력이나 경력을 빌미로 그의 경제 전망을 흠집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 전망은 그것 자체로 평가받으면 그만이다.

 

  보수 언론들이 대서특필한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의 평가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미네르바를 신정아에 비유했다. 학력이나 경력을 속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미네르바는 그 점을 이용해 특정한 지위나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미네르바를 높게 평가한 진보 진영을 폄하하기 위한 논평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다. 정작 놀랍도록 비슷한 것은 미네르바와 신정아라는 두 개인이 아니다. 두 사안에 대한 보수 언론의 보도 태도다. 그들이야말로 허위 학력과 경력을 내세운 신정아에게 개인 칼럼을 줄 정도로 흠뻑 빠져 있다, 정작 사건이 터지자 그를 무서울 정도로 매도하지 않았던가? 탈법성과는 무관한 온갖 선정적 요소는 다 갖다 붙이면서.

 

  검찰의 적반하장도 보수 언론의 그것 못지않다. 미네르바가 마지막 칼럼에서 썼던 정부의 외환 시장 개입은 사실 입증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렇다고 외환 시장 개입 관행이 없다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는 외환 시장 종사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허위 사실 유포죄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난해 연말까지 주가지수가 3천까지 갈 거라고 전망했던 이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현실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많은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보수 언론들은 미네르바에 이어, 그의 활동 무대였던 포털 사이트 다음을 공격하고 있다. 미네르바의 글을 이용해 장사를 한 다음에도 죄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네르바에 대한 선정적 보도를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독자를 확보한 보수 언론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미네르바의 유명세를 이용해 장사를 한 죄를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네르바는 우리 사회의 첨예한 이념 대립의 일선에서 속죄양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실체보다 부풀려지고 우상화 됐는가 하면, 돌연 공공의 적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이 일의 선봉에 선 것은 단연 보수 언론들이었다. 그들은 미네르바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영향력을 안겨줬고, 동시에 감당할 필요가 없는 법적 판단을 안겼다. 그들은 그의 상품성을 일찌감치 눈치 챘고 그의 상징성을 뒤늦게 알아챘다. 이로써 우리 보수 언론만큼 언론의 가장 저급한 속성을 제대로 실행하는 집단이 없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해졌다. ‘언론은 영웅을 창조한다. 파괴하기 위해서(Media creates a hero, to destroy him).

 

  *마지막으로, 이 글의 첫 머리 인용구는 경제 위기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티어스포피어스’(Tears For Fears)라는 영국의 뉴웨이브밴드가 2004년 발표한 ‘비관론자의 시’라는 가사의 일부다. 현재의 경제 위기에 대한 경고로 오해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제 2의 미네르바가 탄생해서는 안 되겠기에.

 

>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