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님이 준 선물(無路의 삶18-10)

[無路:이영주]

 

   햇님이 준 선물

             이 영주
 
  우리 동네는 팔십 정도 되시는 벙어리부부가 살고 있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화물차에 시멘트와 
목재 등 건축자재를 싣고 와서 데데 내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데데라는 이름이 있을까? 
요즘은 다문화 가정이 많으니 외국에서 온 분의 이름이겠지 
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를 채고 벙어리부부가 
사는 집이라고 재차 물었다. 
“아! 그 분요, 저 집인데요” 하고 집을 가리켰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외갓집에 왔을 때 마을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어린 마음이지만 신랑은 잘생겼고 신부가 예쁘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벙어리 부부라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그 부부를 ‘데데네’ ‘벙어리’라고 부르는 것이 듣기 싫어 
남자는 ’햇님‘ 여자는 ’달님‘으로 불렀다. 
교회에서부터 시작해 차츰 동네 분들도 ’햇님‘ ’달님‘으로 불렀고 
’햇님네 달님네‘ 집이라고 지금은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봄, 가을 한 해 두 번씩 마을 사람들이 모여 
대청소를 한다. 
오늘은 추석을 며칠 앞두고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집집마다 한 사람씩 나와서 마을 어귀부터 예초기로 풀을 깎고, 
길가로 나온 나뭇가지를 낫으로 처내고 길이 파인 곳은 
삽으로 흙을 퍼다 덮는다.
 한쪽에서는 빗자루로 잘라놓은 나뭇가지와 지저분한 길을 쓸어낸다. 
그런데 지난봄과 같이 이번에도 ‘햇님‘ 어르신은 댑싸리로 만든 
빗자루를 가지고 나오셔서 길을 쓸었다. 
다른 사람은 철물점에서 파는 라이론 끈으로 만든 빗자루나 
대나무로 만든 중국제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있다. 
그나마 동네 어른들이 산에서 베어다 만든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로 쓰는 분이 가끔 보이는데  ’햇님‘ 만은 커다란 
댑싸리로 직접 만든 빗자루로 쓰신다.
  댑싸리 빗자루는 돈으로 살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귀하기도 해 
햇님이 가지고 있는 빗자루가 제일 부러웠다. 
부러움을 참다못해 수화를 못하는 내가 한번 쓸어 봐도 되겠냐며 
손짓발짓 수화를 하니 환한 표정을 지으시며 한번 쓸어보라고 
댑싸리 빗자루를 얼른 건네주신다.
  정말 잘 쓸린다. 무엇보다 가벼우면서 빗자루가 2미터가 
조금 넘는 듯 길어 배를 수술한 나로서는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좋은 빗자루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어서 허리가 아프지 않고 가벼워 힘이 들지 않았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온 마을을 다 쓸어도 힘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최고라고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햇님도 환한 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하신다.  
 청소를 마치고 동내 분들이 막걸리를 한잔씩 하기 위해 
마을 정자에 모였지만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 차를 몰고 
집으로 올라오면서 아까 그 햇님의 댑싸리 빗자루만 있으면 
이 길을 다 청소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햇님이 가지고 있는 댑싸리 빗자루는 돈으로 살 수 없어 
더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88년에 한 달 정도 일본에 머문 적이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선물을 준다고 하기에 우리보다 잘 사는 
경제 대국이라 선물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삼색 볼펜 한 자루였다. 가는 곳마다 선물을 받았는데, 
그 지방 특산물로 열쇠고리를 만들어 주고, 도자기로 유명한 곳은 
젓가락을 올려놓는 아이들 장난감 같이 작은 것을 선물로 주었다.  
참 쫍세같은 놈들!  경제 대국이라면서 혀를 찰 일이다. 
시간이 가면서 일본 사람을 차츰 이해하기 시작했다. 
역시 한 수 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제주도가 아니라도  관광지에가면 ‘하루방’을 
살수가 있다. 남대문 시장에 가면 전국의 왼 만한 선물을 다 
살수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일본식으로 하자면 화천에는 산천어 열쇠고리, 춘천에는 닭 열쇠고리를 
만든다. 그 고장에서 사지 않으면 절대 다른 곳에서는 살수가 없다. 
그러니 먼 훗날 산천어 열쇠고리를 보면서 화천에 산천어 축제가 
생각날 것이며, 닭 열쇠고리를 보면 춘천에서 먹던 닭갈비가 
생각이 날 것이 아닌가? 세월이 흘러 옛일이 생각나면 손자들과 
다시 찾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며칠 있다가 길에서 ‘햇님’과 마주쳤다. 
반갑게 자기 집을 가리키며 내 손을 잡아당긴다.  
집으로 들어가니 글쎄 다섯 자루씩 모아 묶어놓은 댑싸리 빗자루 
한 다발을 나에게 주신다. ‘달님’도 식해를 한잔 주신다. 
아마 추석 때 하신 식해인가보다. 
생각지 않게 내가 제일 갖고 싶고 부러워하던 햇님네 댑싸리 
빗자루를 한 다발 들고 나오면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아침마다 햇님이 주신 댑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쓸면 
길이 다 환하고 깨끗하다. 
오늘 교회에 갔다 오다가 고마운 생각에 부부양말 
한 세트를 드렸더니  밤을 한바가지 듬뿍 담아주셨다. 

선물은 가격이 아니라 그가 필요한 것이 제일 좋다는 생각이 든다. 
햇님이 주신 댑싸리 빗자루는 돈으로도 살수 없는 귀한 선물이다. 
 이 댑싸리 빗자루로  내 마음의 더러움도  쓸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8.9>
 


  
 
 

 

♬배경음악: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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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추억의 빗자루 참 자네 글은 감동적이고 마음에 와 닫는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