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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추억】
월드컵이 맺어준 ‘특별한 인연’
― 2002 대전월드컵 경기장 ‘안전유지 경찰관’의 회고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2002년 대전월드컵 경기장 질서유지와 안전요원으로 근무)
■ 필자의 말
전 세계인의 뜨거운 열기 속에 월드컵이 카타르에서 진행 중이다. 필자도 TV 중계를 시청하면서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뿐만 아니라 주요 관심 국가의 축구 경기도 흥미진진하게 시청하고 있다.
월드컵을 시청하면서 필자는 남다른 감회와 추억에 빠져든다. 2002년 현직 경찰관 시절,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함께 ‘질서유지 경찰관’으로 근무했다.
당시 월드컵 경기장 근무 경찰관으로서 현장에서 체험한 잊지 못할 사연을 글로 썼다. 『월드컵 경기장 경찰관의 현장기록』 - 「노란 조끼에 대한 명상」이라는 제목의 연재 글이었다. ‘노란 조끼’란 월드컵 경기장 질서 유지 근무 ‘경찰관의 복장’을 말한다.
이 글이 사이버경찰청 게시판과 필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되자 언론에서도 관심 있게 취재했다. ‘대전 mbc 뉴스투데이’, 충청권 일간지 ‘중도일보’, 인터넷신문 ‘디트뉴스 24’ 등에서는 월드컵 기간 중 ‘특별한 뉴스’로 보도했다.
세월이 흘렀다. 옛 추억을 되새김할 겸 당시 TV 뉴스에 보도됐던 필자와 자원봉사 대학생과의 특별한 인연(녹화 테이프)을 재생시켜 보려고 하니 기계 자체가 불가능했다. 디지털 스마트 TV 시대에 구형 비디오 재생 장치가 없는 것이다.
20여 년 세월, TV와 오디오 시스템도 놀랍게 발전한 것을 실감한다. 그 옛날 구형 비디오테이프를 안타깝게도 다시 돌려 볼 수 없다.
▲ 필자가 출연한 TV 뉴스 테이프(대전MBC 뉴스투데이 / 『월드컵이 맺어준 특별한 인연』) - 비디오 테이프를 재생시켜 보려고 하니, 안타깝게도 재생 장치가 없다.
하지만 기사 내용은 인터넷에 고스란히 저장돼 있다. 당시 현장 경찰관인 필자와 함께 자원봉사자로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수고했던 대학생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할까?
그분들은 얼마나 변했을까? 대학생이었던 그분들도 어느덧 40대 초반의 나이가 됐을 것이다. 과거 남다른 인연과 추억을 회고하면서 안부 전합니다.
또 감사드릴 분들이 있다. 당시 필자를 방문해 취재했던 <대전MBC 신영환 기자님>, <중도일보 김원중 기자님>, <디트뉴스 24 주우영 기자님>께도 안부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참고 : 뜻하지 않은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의 ‘혼잡경비’ 개념이 강화됐다. 사전 치밀한 기획과 효율적인 경찰력 운용 등 대처 방식이 크게 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다중 집합 장소 경비뿐 아니라 국제적인 운동 경기장에서의 안전요원 활동 역시 <철저한 대비>라는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수많은 군중이 몰려들었던 2002년 월드컵 당시 현장 근무자로서 회고해 보니, 오늘날 여러 형태의 다중 집합 행사에 참고해도 좋을 몇 가지 대목이 있어 소개한다. 즉, 다중 집합 장소에서의 ‘근무자 자세’, ‘근무 방법과 요령’, ‘군중의 돌발상황 대비’, ‘근무자의 긴장된 마음가짐’, ‘관중의 바람직한 태도와 매너’ 등 현장 근무자 또는 관람객(군중) 모두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
대전mbc-TV 뉴스투데이 2002. 7. 1 방송
월드컵 기간 특별한 인연 맺어
/ 신영환 기자
대전월드컵구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 경찰관과 대학생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세대와 계층 간의 벽을 허물고 소중한 인연을 이어갈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됐던 한달 동안의 월드컵 대회를 통해 <특별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전 월드컵 구장에서 근무를 했던 한 경찰관과 대학생이 그 주인공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월드컵의 열기로 달아올랐던 대전월드컵구장.
대전북부경찰서에 근무하는 윤승원 씨와 충남대 3학년생인 송두영 군이 화려했던 축제를 뒤로하고 휴식에 들어간 월드컵구장을 찾았습니다.
경기장에서 검색요원으로 근무했던 윤 씨와 자원봉사자로 일했던 송 군은 경기장을 돌아보며 월드컵이 맺어준 특별한 인연을 되새깁니다. 윤 씨가 인터넷에 띄운 편지가 이들의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윤 씨는 항상 대립과 갈등 관계에 놓여 있던 경찰과 대학생이 한 자리에서 일했던 것을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밝혔습니다.
8시간 이상 서있어야 하는 힘든 일을 서로의 미소를 응원 삼아 견뎌냈던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바람도 담았습니다.
//경찰관 윤승원 : 월드컵 경기장 안전근무라는 힘든 일을 통하여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한 거죠. 경찰과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뛰어 넘고, 나이를 뛰어 넘어 대화
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아주 소중한 인연이죠.//
대학생인 송 군도 윤 씨를 통해 경찰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을 해소할 수 있었고 기성세대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 송 군 : 기성세대에 대해 어떤 문화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닫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졌죠. 그런 인식이 많이 달라지게 된 거죠. 경찰이라는 거리감이 안 느껴졌어요.//
윤 씨와 송 군은 이번 월드컵대회의 진정한 힘은 세대와 계층 간의 벽을 허물고 온 국민을 하나로 묶는 역할에 있었다며 <월드컵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 MBC뉴스 신영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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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일보》 2002년 6월 22일자(사회면)
“8시간을 대전구장서 서 있었어도 보람” ― 포돌이의 월드컵 뒷이야기 화제 - 대전북부서 정보과 윤승원 씨 인터넷에 글 올려 - 대전 월드컵 기간 동안 경기장에서 근무했던 한 경찰관이 인터넷과 소식지에 월드컵 뒷얘기들을 게재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대전북부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윤승원 경찰관(사진). 윤 씨는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와 ‘충남경찰문학회’ 소식지에 ‘노란 조끼의 월드컵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경찰과 자원봉사자의 만남’과 ‘붉은 악마가 보내준 편지’, ‘경기장 근무자의 특별한 느낌’ 등 벌써 9번째까지 써 내려간 이 글에는 특히 월드컵의 열기에 가려진 뒷얘기들을 담고 있어 숨겨진 ‘월드컵의 감동’을 전하고 있다. 윤 씨는 글에서 경찰을 곤혹스럽게 하는 관중도 일부 있었지만 “수고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그동안의 피로가 눈 녹듯 녹았던 기억, 한 금발의 외국인 미녀가 자신의 앞에서 바지의 앞부분을 두 손으로 움켜쥐는 시늉을 하며 화장실을 급히 찾았던 에피소드 등을 가감 없이 묘사했다. 또 경기 시작 6시간 전부터 현장에 배치되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서 있어야 했던 경찰과 자원봉사자의 고단함을 그린 대목에서는 읽는 이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특히 같은 장소에서 일했던 두 명의 자원봉사자 백현애, 송두영. 이상 충남대)에게 보내는 편지는 세대와 계층을 넘어 하나로 묶는 월드컵의 위력을 실감 나게 했다. 한편 윤 씨는 충남 청양 출생으로, 70년대 후반부터 경찰에 몸담고 있으며, 90년 ‘한국문학’을 통해 등단, 문인으로도 활동 중이다. / 김원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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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6. 디트뉴스24
글 쓰는 경찰관 화제 만발
- 대전북부경찰서 윤승원 수필가
- 월드컵 뒷얘기 써내
[사진] 청촌 윤승원 씨는 대전 월드컵 기간 중 자원봉사자와 경찰관이 겪은 월드컵 뒷
이야기를 수필로 써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주우영 기자
청촌(靑村) 윤승원 씨.
문인이나 화가들에게나 있을 법한 호(號)가 윤 씨가 쓴 글 말미에 항상 달려 있다. 그는 두 가지 인생을 살고 있다. 낮에는 경찰 윤승원으로 생활하고 그 외 시간은 ‘수필가 청촌’으로 살고 있다.
경찰과 수필가.
대전북부경찰서 정보과 23년 차 베테랑 경찰인 그에게 수필가는 어쩌면 ‘경찰과 도둑’만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기세 등등해야 할 범죄 현장과 관조하면서 조용히 쓰는 수필은 아무래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그는 사건을 다루면서 수필이라는 아름다운 글로써 자칫 건조해지기 쉬운 인생의 분위기를 중화시키고 있다.
‘청촌(靑村)’이라는 호(號)도 익살스럽다. 청양 촌사람이라는 뜻이다. 소박한 호(號)만큼이나 외모도 수수하다. 약간 벗어진 머리에 뭉툭한 코, 가늘지만 끝이 둥글게 마무리된 선한 눈매, 웃을 때마다 환히 드러나는 하얀 치아까지 그야말로 청양 촌사람을 대표하는 모습이었다. 청양의 이웃 아저씨의 모습 그대로이다.
■ 월드컵 뒷이야기 잔잔한 감동
“삶을 담담히 그려낼 뿐”이라고 수필가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며 밝히기를 꺼린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이다. 월드컵 대전경기장 안전요원으로 현장 근무를 한 뒷이야기가 인터넷 경찰문학회 소식으로 전해지면서 많은 시민과 동료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윤 씨는 개인 홈페이지 ‘청촌수필’과 충남경찰청 게시판에 ‘노란 조끼의 월드컵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경찰과 자원봉사자의 만남>, <경기장 경찰의 소망>으로 시작한 그의 글은 <자원봉사 대학생에게 보내는 경찰의 편지>까지 총 9편의 글에서 월드컵 열기 뒤에 가려진 진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현장의 생생함과 잔잔한 감동이 느껴지는 글들이다.
경기장 안 보이는 곳에서 묵묵히 안전 활동하는 경찰관과 자원봉사자가 겪었던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는 이 글은 경찰관으로서 안전유지에 대한 강한 의지와 근무 중 애로사항, 월드컵을 겪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또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함께 근무하는 과정에서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 담백하게 그려냈다. 물론 대표팀이 승리 후 열광하는 거리의 풍경, 그 열기 속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애국심을 잘못된 방법으로 표현하는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충고도 있다.
■ 월드컵 안전요원으로서 두려웠던 점
그는 “대전 월드컵 경기가 불미스러운 일없이 잘 끝나 다행이다. 사실 처음 경기장 근무를 배정받았을 때 두려움이 앞섰다. 한 사람 한 사람 가방 검사를 하면서 내가 혹시 빠뜨리고 넘어가는 것이 없는가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이런 그의 감정은 그가 쓴 첫 번째 글에도 잘 나타나 있다.
「...... 금싸라기 같은 52,144평의 방대한 규모에 우람한 형체로 우뚝 자리한 월드컵 대전경기장. 나는 이 경기장을 둘러볼 때마다 엉뚱하게도 영화 ‘쉬리’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일상적인 직업의식, 그러나 절대 기우(杞憂)이길 바라면서도, 만약에 그 영화의 끝 장면과 같은 돌발사태가 이곳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랴. 현장의 안전점검 경찰관들은 그런 까닭으로 수많은 '위해(危害) 요소'를 미리 상정하여 치밀하게 관찰하여야 한다...」
그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들은 월드컵 경기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 자원봉사자들이다.
윤 씨는 “나 같은 경찰관이야 직업이기 때문에 한 일이지만 자원봉사자들은 그야말로 애국심 하나로 아무런 보수를 받지 않고 월드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성공 월드컵을 만들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또, “열광적이면서도 성숙한 응원 문화를 보여준 붉은 악마들은 이번 월드컵을 세계가 대한민국을 새롭게 보도록 만든 주인공들이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따뜻한 악수를 건넸던 사람들은 자원봉사자와 경찰관들이 마지막까지 보람을 갖고 일할 수 있게 힘을 줬다”라고 말했다.
안전요원으로 북관 4층 출입구에서 일했던 두 명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한국외국어대에 다니는 큰아들(21, 준섭)과 내년이면 대학에 들어갈 둘째 아들(19, 종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는 듯한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 정식 등단한 수필가
윤승원 씨는 1990년 ‘한국문학’ 지상 백일장에서 수필 부문 장원을 차지하면서 등단했다. 그 후로 ‘삶을 가슴으로 느끼며(93)’ ‘덕담만 하고 살 수 있다면(97)’ ‘우리 동네 교장선생님(2000)’등 3권의 수필집을 냈다.
그가 수필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직업과 고단한 일상,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윤 씨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삶의 한구석에 묶어 두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또 글을 쓰면서 자칫 경찰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무미건조함과 거친 말을 정화하기 위한 자기 수양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힘들고 고된 하루를 시작하지만 “북부서로 출근하는 아침 시간 송강동 날망 고개 넘어 내려다보이는 신탄진 공단의 연기 속의 북부서는 녹색 일터”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의 카메라에는 아름다운 아침 풍경이다.
이런 그에게 글쓰기는 생활이다. 차에는 항상 메모지가 항상 준비돼 있다. 도로에서 신호 대기를 하는 잠깐도 작문의 시간이다. 범죄 현장에서 스쳐 지나가는 글감들도 그의 수첩을 벗어날 수는 없다. 또 저녁 시간 ‘밥상머리’에서 아내 원유순 씨와 막내아들 종운 군(19)에게 자신의 글을 읽어 주며 1차 품평회를 갖는다. 글을 읽고 밤새 그림을 그려오는 종운 군의 작품은 그의 글을 더 빛나게 해 준다.
윤 씨는 “오히려 저의 긴 글보다 아들 녀석의 그림 한 장이 더 가슴에 와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은 글을 함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저의 글을 누군가가 가까이에서 읽어 준다는 것입니다. 종운이가 그린 그림을 글과 함께 홈페이지에 올려놓을 때 글 쓰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런 그가 글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솔직함’이다. 그동안 낸 수필집과 이번 ‘노란 조끼의 월드컵 이야기’까지 생활인으로서의 경찰관의 삶과 가정, 고향 청양과 제2의 고향 대전에 대한 글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주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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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경찰청 / 【2002 좋은 글 선정】
2002 월드컵 경찰의 현장기록
‘노란 조끼’의 월드컵 이야기
- 화려한 경기장, 그 이면의 ‘안전 지킴이’ 이야기도 소중해요!
◎ 월드컵은 우리나라 오 천년 역사상 최대의 국제행사이자 지구촌의 축제라고 한다. 이러한 국가적인 큰 행사인 ‘2002 한 일 월드컵’이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전국 10개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필자는 그중 『월드컵 대전경기장』에서 안전검색 임무를 띤 경찰의 한 사람으로서 사전 여러 차례의 훈련 과정에서부터 경기가 최종 마무리되어 관중들이 무사히 다 빠져나가는 그 순간까지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소중한 체험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지극히 사소한 부분의 기록이 될지 모르나, 일선 경찰 한 사람의 시각과 그 삶의 단편적인 모습을 통하여 세계적인 월드컵 행사의 또 다른 이면(裏面)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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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록①
‘노란 조끼’에 대한 명상
― 월드컵 대전 경기장, 경찰관과 안전 자원봉사자의 만남
오늘은 뜻하지 않은 ‘노란 조끼’ 하나를 받았다. 이걸 받자마자 누군가는 ‘나라에서 준 것’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혀를 약간 꼬부려 ‘피파’라나? ‘월드컵 조직위’라나? 뭐 그런 데서 나온 것이라고 꽤 아는 체를 했다. 아무튼, 내게 중요한 것은 누가 준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내 돈 주고 사 입은 조끼는 분명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입게 된 ‘조끼’라고 할 수 있다.
■ ‘노란 조끼’의 의미
그렇다면 내게 왜 이런 조끼를 입게 했을까? 민생치안 현장을 지켜야 하는 사람에게 평생 입어 보지 못한 이런 노란 옷을 왜 입혔는지,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그냥 흘려버리기 아쉬운 하루 역사(歷史) 임이 분명하므로, 조끼 이야기부터 설명할까 한다.
이 조끼를 가만히 살펴보면 예사 조끼가 아니다. 등에는 영자로 ‘police’, 앞가슴에는 한글과 영자로 ‘경찰·police’라고 새겼다. 형태는 모기장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여름철 용 망사형 조끼다. 그런데 이 볼품없는 조끼가 딱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게 있다. 크고 작은 주머니가 좌우로 각각 세 개씩 모두 여섯 개로, 평소 내가 즐겨 입는 등산용 조끼보다 더 많이 달렸다.
■ 주머니가 많은 ‘노란 조끼’
왼쪽의 가장 큰 주머니에는 목침처럼 큼직한 경찰 무전기를 넣었다. “잃어버리면 기백 만 원 정도는 족히 변상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찰서 통신계 직원의 말처럼 가장 값비싸고 귀중한 물품인 까닭이다. 그 아래 자크 형의 겹 주머니 속에는 수갑(手匣)과 경적(警笛)을, 또 그 안의 주머니에는 월드컵 관련 책자, 오른쪽 위 주머니엔 열쇠, 휴대폰, 그 밑에 주머니엔 지갑, 수첩, 볼펜 등 필요한 물건이 모두 수월하게 잘도 들어간다.
이걸 입고 거울을 보고 있으려니, 어느 경찰 동료 ― 그는 나의 임무와는 달리, 관중석 안내자로서 경찰복이 아닌 가볍고 편리한 운동복과 운동화를 지급받았다고 은근히 좋아했다―가 “빗자루만 들면 마치 청소부 복장 같네!” 하면서 ‘노란 조끼’ 복장을 놀렸다.
나는 속으로 “그래, 이 옷이 청소부 조끼면 어떠냐. 나는 주머니가 많아 좋기만 한데? 더구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경찰이라면 이 역사적인 월드컵 경기장에서 경찰 마크가 선명한 이런 조끼를 입고 임무 수행을 해야 자긍심도 생기는 거 아냐?”
사실 그랬다.
주머니가 안 달린 운동복 차림의 관중석 근무자들이 노란 조끼를 입은 소위 ‘보미토리(출입구)’ 근무자들에게 ‘청소부 복장’이라고 한 것은 실수였다. 그 많은 주머니의 용도를 모르는 소치요, 자랑스럽고 당당한 이름 ‘POLICE’의 위상과 역할을 무시한 소리였다.
■ 자긍심 없이는 수행하기 힘든 근무
어쨌든 이런 특이한(?) 복장을 하고, 목에는 FIFA에서 제작해 준 분홍색 AD카드를 걸으니, 경찰 근무복을 입었을 때보다 더 큰 책임감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생전에 다시는 구경하지 못할 역사적인 한순간을 나도 이 경기장에서 작은 역할이나마 담당하는구나 싶어,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뿌듯한 자긍심마저 이는 것이었다.
나의 근무소는 월드컵 대전경기장 북관 4층 47번 출입구이다. 이 같은 경기장의 출입구를 일컬어 '보미토리'라고 배운 것도 이 촌놈에겐 월드컵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주어진 임무는 관람객들의 반입 물품 검색, AD카드 및 입장권 소지 여부, 비상시 통로 확보, 출입구 주변의 안전점검 등이다.
■ 갑자기 영화 ‘쉬리’의 한 장면도 떠올라
금싸라기 같은 52,144평의 방대한 규모에 우람한 형체로 우뚝 자리한 월드컵 대전경기장. 나는 이 경기장을 둘러볼 때마다 엉뚱하게도 영화 ‘쉬리’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일상적인 직업의식, 그러나 절대 기우(杞憂)이길 바라면서도, 만약에 그 영화의 끝 장면과 같은 돌발사태가 이곳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랴. 현장의 안전점검 경찰관들은 그런 까닭으로 수많은 ‘위해(危害) 요소’를 미리 상정하여 치밀하게 관찰하여야 한다.
벌써 네 차례에 걸친 경기장 안전유지를 위한 모의(模擬) 훈련을 통하여 경찰은 각자의 임무 숙지와 현장 정밀점검 등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태다.
그런데 주말 오후, 공사(公私) 간 모든 일을 전폐하고 왜 또다시 이 경기장을 찾았는가. 오늘은 다름 아닌 두 가지 임무 때문이다. 실제와 똑같은 모의훈련을 통해 다시 드러난 사소한 문제점이라도 미리 점검해보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경찰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와의 만남을 통해 협조와 역할을 당부하기 위해서다.
■ ‘안전 자원봉사’는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
여기서 '안전 자원봉사자'란 경기장 안전을 책임진 경찰관과 동일 장소에서 합동 근무하면서 안전활동을 하는 한편, 친절한 미소로 국내외 관람객들의 안내역도 겸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무런 보수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봉사 정신 하나로 이런 일을 자청했다. 그 자발적인 봉사 정신이야말로 순수한 우리 국민의 애국심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들과 4층 북관의 스탠드에 모여 얼굴 익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자리에는 마치 야전군 사령관처럼 붉은 모자를 쓴 현장 지휘자가 보미토리 근무 경찰관들을 일렬로 서게 한 다음, 함께 근무하게 될 자원봉사자들에게 일일이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는 이채로운 시간을 가졌다.
맨 처음 순서로, 뜻하지 않게 이 사람이 지목되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의 근무 장소는 N-47. 임무는 잘 아시다시피 출입구의 안전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이 역사적인 월드컵 경기에 안전 임무를 수행하게 돼서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현장 지휘관이 미리 주문하기를 ‘자기소개는 1분 이내’라는 토를 달았으므로, 나의 소개는 이 정도에서 끝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경찰서장이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방금 소개한 우리 윤 형사는 등단한 수필 작가로 책도 펴낸 바 있고…”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필자의 경력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하자, 자원봉사자 석에서 뜻하지 않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여러 사람 앞에 서 있는 필자의 얼굴은 그만 홍시가 되고 말았다.
이어서 경무과 李 순경은 “저는 총각 순경이에요.”라고 자신을 짧게 소개하자, ‘총각 순경’이라는 말이 신선하게 느껴졌는지, 관중석에서는 또 한 번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뜻하지 않게 박수를 받은 李 순경이 고개를 숙이며 수줍어하는 표정을 짓자, 수많은 여성 자원봉사자들로부터 또 다른 눈길을 끌었다.
“저는 도둑놈 잡는 게 업(業)이에요”라고 자신을 소개한 수사과 정 형사에게는 경찰서장이 느닷없이 “정 형사는 도둑놈만 잡나?”라고 마치 군대식(?)으로 호령했다. 그러자 “아니, 강도도 잡지 욧!”라고 큰소리로 외치자, 지금까지 다소 서먹한 느낌이 감돌았던 스탠드가 까르르∼ 폭소의 장으로 변하면서 서로 친밀감을 나타내는 장소가 되었다.
■ 모의 훈련장 스탠드에서 벌어진 진풍경
이때 관람석의 어느 나이 든 자원봉사자는 “이런 자리를 마련하여 경찰관들을 일일이 소개해 준 분에게 우리 박수 한 번 크게 칩시다”라고 제의하여 장내는 갑자기 박수 사태(沙汰)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안전 자원봉사자 앞에서 노란 조끼 입은 ‘보미토리’ 근무자만 소개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청소부 조끼'라고 놀렸던 관람석 근무 경찰관들도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이윽고 근무자들의 개인 소개가 끝난 뒤, 각자 근무 장소로 이동, 자원봉사자에게 현장 근무요령을 설명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필자와 함께 근무하게 될 안전 자원봉사자는 뜻밖에도 대학생이었다. 상냥하고 귀엽게 생긴 미모의 여대생, 그리고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얼굴은 갸름한 미남형 남자 대학생 등 두 명이었다.
■ 두 남녀 대학생과 뜻하지 않은 인연
알고 보니, 이들 두 대학생 모두 공교롭게도 이 지역의 명문 충남대학교 3, 4학년 학생들이었다. “역사적인 월드컵 경기장에서 이렇게 함께 근무하게 되어 좋은 인연으로 생각해요.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내가 근무 현장에서 인사하자, 두 학생도 활짝 웃는 얼굴로 “형사분들과 이렇게 함께 근무하게 될 줄 몰랐어요. 아까 소개받고 보니, 모두 좋으신 분들 같더군요.”
두 학생 모두 첫인상이 남달리 친숙하게 느껴지고 그 표정 또한 순수하게만 보여, 나는 문득 객지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아들이 생각났다.
“실은 우리 집 아이도 대학에 다닌다오. 아버지가 지금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모를 우리 아들에 비하면 이렇게 경기장 안전 자원봉사를 자처한 학생들이 대견하고 부럽구려.”
그러자 유난히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귀여운 여대생이 이렇게 말을 받아 주었다.
“연세가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여학생의 그 말은, 내게 ‘듣기 좋은 놀림’이라면 놀림이고, 그게 아니면 이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숨길 수 없는 지명(知命)의 연륜을 위로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씁쓸한 것은 “이런 고단한 근무는 이제 웬만하면 면제받을 나이가 되어 보이건만, 워낙 국가적인 큰 행사이다 보니, 부지깽이도 부리려는 북새통에 나이 든 한 두 사람 섞여 나왔나 보다.”
혹여 이렇게 여기지나 말았으면 하는 심사가 나도 모르게 드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흔히 ‘기왕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가 보다. 자칫 감동(?)으로 변할 그런 따뜻한 위로의 말씀은 이 사람도 눈물겨우므로 사양을 할 것이니, 앞으로 삼가시길…
■ 두 가지 유형의 ‘봉사’ 그러나 목적은 동일
제복을 입은 사람의 고단함은 허리 통증으로 나타난다. 찜질이라도 하면서 당장 몸을 뉘어야 할 시간에 이런 기록을 하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삶의 과정에서 만난 밝은 표정의 사람들이 소중하기만 하다. 그들은 내가 소망해서 이뤄지는 인연이 아니다. 오늘 나와 함께 한 그 인상적인 얼굴들이야말로 삭막한 내 정신세계를 보다 넉넉하고 풍요롭게 하니, 하늘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이 사람이야 애당초 국립경찰에 몸담아 ‘봉사’라는 사명을 걸머지고 20여 년 넘게 거친 길도 마다하지 않고 걸어왔으니, 이런 일쯤이야 기꺼운 마음으로 한다고 하자. 그러나 아무런 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국가적인 큰 행사에 동참하여 성심성의껏 도울 일을 찾아 ‘자원봉사의 길’을 자처한 젊은 대학생들의 그 순수한 마음과 ‘봉사정신’의 듬직함에 어찌 비견하랴!
앞으로도 함께 근무하게 될 안전 자원봉사자와 뜻깊고 보람 있는 시간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궁극적으로는 국민 모두 소망하고 염원하는 ‘안전 월드컵’이 이루어져 우리나라가 더 좋은 세상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소박한 마음으로 바라면서… / 2002년 5월 25일
♧ 독자의견
전 국민의 관심이 이제 모두 월드컵 경기장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그런 마당에 현장에 동원된 일선 경찰의 시각으로 살펴본 월드컵 경기장의 경찰활동과 자원봉사자의 모습이 생생히 드러나 좋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기장 출입구 근무자의 복장에서 좋은 점만 이야기하고, 실제로 불편을 느끼는 문제에 대하여는 의도적으로 지나친 듯합니다.
가령, 경찰 근무복에 ‘정모(正帽)’가 웬 말입니까? ‘정모는 그 무게로 보나 형태로 보나, 인파가 북적대는 현장 근무자에게는 적합하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단시간에 끝나는 어떤 신사적인 행사라면 몰라도, 적어도 8시간 이상 착용해야 하는 모자라면 가벼운 ’ 근무 모(勤務帽) 여야 합니다. ‘정모’의 그 불편스러운 점 몇 가지만 지적할까요?
출입구(보미토리)에는 대형 휴지통이 두 개씩 있습니다. 이 휴지통은 속이 깊어, 허리를 꾸부리고 손을 깊숙이 넣어야 안전검색이 가능합니다. 이때 착용한 정모가 자꾸 벗겨져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은 잘 압니다. 이런 모자를 쓰도록 지시한 분들은 단지 ‘정모’의 위엄과 경찰의 겉모습 즉, 전시 효과적인 면만을 생각했을 겁니다.
어쨌든 일선 현장 근무에 전혀 어두운 사람이 이런 모자를 착용토록 지시했다는 일선 경찰의 불만의 목소리를 좀 더 들어보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돌발상황으로 관중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온다든지, 또는 일부 행패 부리는 입장객과 실랑이라도 벌일 경우, 이를 제지해야 하는데, 크고 불편한 모자가 벗겨지거나 미리 벗겨질 것을 염려하여 몸을 사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뿐만 아닙니다. 그 무게로 인해 정모를 한 시간만 착용해도 두통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거추장스러운 정모를 쓰고 무려 8-10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자리에 서서 근무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번 훈련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고참 경찰이 이 무거운 모자를 잠시 벗었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참으로 씁쓸했습니다.
과거 경찰 ‘근무모’와는 달리 요즘의 근무모는 모양도 좋고 가벼워서 좋으니, 정모 대신 근무모를 착용토록 건의해 주십시오. / 일선 현장 POLICE.
♧ ♧ ♧
현장기록 ②
월드컵 경기장 근무 경찰의 소망
요즘 나는 사무실 옷장에 걸려 있는 ‘노란 조끼’와 AD카드를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과연 아무 일 없이 잘 치러 낼 수 있을까? 국내외 관람객의 수준 높은 ‘경기장 매너’를 정말 기대해도 좋을까?
지난 5월 26일 수원에서 벌어진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과 프랑스 팀의 평가 전에서 일부 흥분한 관중을 TV로 보지 않았던가. 그라운드로 집어던진 보기 흉한 두루마리 화장지며, 색종이, 페트병 같은 물품은 도대체 어떻게 반입된 것일까?
■ ‘노란 조끼’의 강력한 의지
경기를 보고 흥분하고 열광하는 것은 누가 나무라랴. 그러나 물건을 던지는 일만큼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면 애당초 ‘반입 금지 물품’을 소지하고 입장하려는 사람들을 '노란 조끼'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날카롭게나 뾰족하게 생긴 물건도 안 된다.
소지한 물건이 무엇인지 '노란 조끼'가 수색하기 전에 성숙한 시민이라면 먼저 꺼내 보여주었으면 한다. 모두가 즐거워야 할 축제의 마당에 입장하기 전부터 '노란 조끼'로부터 적발되어 기분 언짢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당부하고 싶다.
■ 자원봉사자 여대생의 방문은 반가움과 ‘감동’
오늘은 함께 근무하게 될 자원봉사 여대생 백 양(whitewiselove)이 내 홈페이지에 반가운 글을 남겼다. 지난 주말 경기장에서 처음 만나 상견례하고 내 앞가슴의 이름표를 확인하려고 할 때, 명함을 주었더니, 그 명함에 새겨진 홈페이지 주소를 보고 찾아 준 것이었다. 현장 근무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어떤 방문객보다 반가운 손님이었다.
안녕하세요?
월드컵 자원봉사자 여학생^^입니다~ 주신 명함을 통해 홈페이지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푸근한 인상의 청촌 윤승원 님의 얼굴이 생각나네요~ 우선 귀엽고 예쁘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4학년이라 졸업논문 준비와 얼마 남지 않은 기말고사 준비 등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예상치 않았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신선한 기분을 느끼고 갑니다. 종종 들러 좋은 글 많이 읽고 갈게요~ 다음 월드컵 교육 때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일선 경찰의 간절한 기도와 염원
저는 일선에서 근무하는 경찰로서 아무것도 내 세울 게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종교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매일 기도를 하는 것은 다름 아닙니다. 이 세상이 너무도 삭막하고 거칠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좋은 면만 보고 살려고 해도 그렇지 않은 면이 더 많이 보입니다. 우리 경찰이, 아니 한 인간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어쩌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마음속으로, 오늘도 내가 하는 일이 아무 탈 없이 무사하게, 그리고 원만히 잘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하고 염원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 ♧ ♧
현장기록③
‘붉은 악마’가 보내준 편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E-메일을 확인하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수년 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이른바 ‘열린 공간’도 운영하고 있으나, 나의 홈페이지는 다소 엄숙(?)해 보이는 분위기 때문인지, 방문자들이 자유로운 글쓰기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E-메일을 통하여 필자의 글에 대한 소감이나 의견을 보내주는 분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엄숙하게 느껴지는’ 홈페이지 분위기에 관해서는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필자는《청촌수필》이라는 아주 촌스러운 이름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고집한다. 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글은 수용하지 않는다.
가령, ‘건강한 상식을 가진 보통사람의 정서를 해하는 표현이 담긴 글’이 그런 부류가 될 것이다. 아마도 나름대로 이런 기준을 가지고 꼼꼼하게 게시판을 관리하는 까닭에, 글을 읽고 가는 분은 많아도, 흔적을 남기고 가는 분들은 적은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런 가운데 나의 글에 대한 좋은 이야기이든 섭섭한 이야기든 진지하고 성의 있는 소감이 올라오면, 아무리 바빠도 신속하게 답을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E-메일을 통해 받는 소감이나 의견도 마찬가지다. 거의 빠짐없이 답장을 해 드린다.
■ ‘붉은 악마’의 귀한 의견
서두가 길었다.
오늘은 매우 인상적이고 귀하게 느껴지는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렬히 응원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붉은 악마’다. 이 분은 지난 프랑스와의 평가전에도 참여한 바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이 분의 메일은 월드컵 관련, 나의 두 번째 글 《'노란 조끼'의 월드컵 이야기[2] - 경찰관의 소망 / 경기장 가시기 전에 알고 가세요!》 을 읽고 보내준 것이다.
월드컵 경기장 근무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분의 글을 진지하게 읽었다. 필자 혼자 읽고 답장을 보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장 근무 동료 경찰과 자원봉사자, 그리고 앞으로 월드컵 대전경기장을 찾게 될 많은 분과 ‘정보’를 공유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개한다.
▣ ‘붉은 악마’가 보내준 편지
윤승원 님께
월드컵을 맞이하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올리시는데 일조하고 계신 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저도 프랑스 전에 자랑스러운 붉은 악마의 일원으로 참가하였습니다. 물론 쓰레기 투척은 매우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신문지를 자른 (서포터들은 이것을 ‘꽃 종이’라고 부릅니다) 것이라든지 두루마리 휴지를 잘라 길게 잔디로 던지는 (‘휴지 폭탄’이라고 부르죠.)
행동을 많은 수의 자원봉사자들은 이해를 못 하시던데, 이것은 남미에서 시작되었으며 유럽으로 전파된 고 난이도의 응원의 하나로서 어웨이팀의 기를 죽이는데 주로 사용합니다. 아르헨티나 같은 경우에는 경기장의 잔디가 거의 안 보이죠.
휴지 폭탄 때문이에요. 물론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 일본 선수들 조차도, 그리고 그 나라의 국민들은 그런 것을 축구문화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뿐이지, 결코 공중도덕의 위반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골키퍼 바르테즈가 얌전히 휴지를 치웠던 것뿐이지, 결코 무어라 항의하거나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가 프로리그에서 뛰는 유럽에서는 그런 것이 일상화되었으니까요. 이 모든 것이 축구문화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월드컵을 개최한 데에서 기인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 많이 달라지긴 했습니다만, 어제 개막전을 시작으로 이제 한 달 여의 장정에 돌입하는군요. 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훌륭한 월드컵을 위하여 파이팅입니다.. ^-^ 항상 건강하시고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진정한 애국자
나는 이 분이 보내주신 메일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붉은 악마’가 어떤 분들인가. 이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가 한다. 어쩌면 경기장에서 우리 경찰과 함께 수고해 주시는 ‘안전 자원봉사자’와 같은 고마운 분들이 아닌가 한다.
이분들의 열정적인 몸짓과 함성을 보라! 국가의 명예를 가슴에 안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의 사기를 한껏 고양시켜 주는 이들이야말로 국민 모두 고마워해야 할 분들이 아닌가 싶다.
이분의 말씀 중에 ‘휴지 폭탄’이란 용어가 나온다. 경찰 신분으로서 어찌 들으면 섬뜩한 뉘앙스가 풍기는 물품이지만, 관중석에서 그런 물품이 얼마든지 만들어져 던져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미리 알려 준 점에서는 ‘좋은 정보’라고 생각한다.
물론 메일을 보내 준 분은 응원의 열기를 높이려고 도입코자 한 독특한 응원 방법을 경기장의 안전을 책임진 경찰과 자원봉사자들이 이해해 주지 못하는 부분을 아쉬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응원단의 그 열정을 충분히 헤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를 염려하는 경찰의 입장도 이해해 달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다.
■ ‘안전 월드컵’을 위한 이해와 협조
좋은 의견 주신 분에 대한 100%의 만족한 답이 되지는 못할 줄 알지만, 경기장의 안전임무를 띈 경찰관의 입장도 이런 기회에 이해해 주시길 바라는 뜻에서 다음과 같은 답을 보냈다. 성공적인 ‘안전 월드컵’을 위해 적극 협조해 주시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받아 주실 것으로 믿는다.
[답장]
‘붉은 악마’ 응원단 귀하
국가적인 큰 행사에 응원단의 일원으로 참여하시는데 대해 경의를 드립니다. 저의 글을 읽으시고 따뜻한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외국의 독특한 축구문화에 대해서도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이번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은 무엇보다 ‘안전 월드컵’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각종 테러에 의해 평화를 위협받고 있고, 그 공포심도 대단한 실정입니다.
FIFA에서 정한 <관중이 지켜야 할 것>들도 크게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잘 지켜서 모쪼록 ‘안전 월드컵’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좋은 의견과 따뜻한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
■ 관중이 지켜야 할 사항
FIFA에서 정한 ‘경기장 반입금지 물품’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설명드릴 필요를 느낀다. 여기서 <관중이 지켜야 할 사항>이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경기장 관람객 및 방문자 준수 규정』「제4조(반입금지 물품) - ‘두루마리 화장지’도 포함」, ▲둘째는 「제5조(금지행위 - ‘던지는 행위’도 포함)」, ▲셋째 「제6조 (준수 행위 - 안전을 위해 소지품 검사 등에 협조해야 함)」등이다.
그러니까 운동장으로 던지는 모든 행위는 허용치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축구 경기를 좋아하는 뜨거운 열정과 성공적인 월드컵을 기원하는 순수한 애국심으로 경기장을 찾을 분들은 앞으로 출입구의 ‘노란 조끼’ 근무자와 ‘자원봉사자’의 안전 활동에 적극 협조해 주시길 바란다.
■ 수준 높은 ‘관중 매너’
이제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의 경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자국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골을 넣는 그라운드의 화려한 선수들 못지않게, 경기장 이면에서 보게 되는 관중들의 아름다운 매너도 기대하고 싶다.
♧ ♧ ♧
현장기록 ④
‘열광’, 그 뒤편에선 진땀 흘리는 사람이…
열광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뒤편에서는 새벽까지 그칠 줄 모르는 괴성과 주먹질 등으로 경찰관들이 진땀을 흘려야 했던 사실을 아는가.
4일 밤. 젊음의 거리인 대전의 Y지역.
한국 대 폴란드의 중계가 끝나고 수 백 명 여명의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한국 팀 승리의 흥분을 술기운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 젊은이의 비틀거림과 괴성으로 골목은 밤새도록 몸살을 앓았다.
어느 학생은 주먹으로 사람을 때려 눈두덩이가 부풀어 오르게 하였다. “응원 방법이 틀렸다”라고 서로 다투다가 과도한 술기운으로 주먹을 날려 결국 경찰관서를 찾은 것이다. 어느 학생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심지어 세워진 경찰 순찰차 지붕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면서 "대-한민국"을 외쳤다.
■ 아, 저런 주체할 수 없는 애국심 이어!
고성은 인근 아파트 단지 주변 골목에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중에는 마치 산속의 어떤 짐승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방황하는 젊은이도 있었다. 이들로 인하여 경찰은 밤새도록 동분서주했다. 일선 파출소의 형편은 더욱 심각했다.
요즘 여기저기 동원이 많아 가뜩이나 경찰력이 모자라는데, 신고 전화는 그칠 줄 모른다. 자전거, 강아지 실종 신고도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니, 전후 사정 이야기까지 차근히 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소위 ‘친절 폴리스’가 된다.
이쪽 바쁜 줄 모르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들. 그러나 소소한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내 집안일처럼 다 들어주어야 하는 일선 근무자들. 그래서 경찰의 인내력은 그 한계가 없다고 하나보다.
월드컵은 국민적 축제여야 한다. 경찰도 그걸 원한다. 그러나 불필요한 경찰력을 빼앗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한다. 응원을 곱게 하지 않고, 왜 주먹을 날려 경찰관서를 찾아야 하는가?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그 흥분이 가라앉지 않으면 벌판으로 가라. 그리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그곳에서 밤새 짐승 울음을 낸 들 누가 무어라 하랴!
거듭 당부하거니와, 우리 팀의 승리로 그동안 잠재된 애국심이 폭포수처럼 용솟음하거든 마음껏 발산하라. 다만, 술기운으로 남에게 행패, 주먹질하거나, 혹은 그 틈에 남의 재물을 탐하는 야비한 일은 제발 없었으면 한다. 격무로 코피 흘리는 일선 경찰관들의 일손을 빼앗는 일은 과연 아닌지, ‘애국심이 충만한 젊은이’들이라면 한 번쯤 분별력을 가지고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 ♧ ♧
현장기록 ⑤
경기장 근무자의 ‘특별한 느낌’ 두 가지
■ “경기장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들”
토요일 오후, 또 대전 월드컵 경기장.
오늘은 연습 마지막 날이다. 선수도 아닌데, 무슨 ‘연습’이냐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연습은 선수만 하는 게 아니다. 온 국민의 기대와 성원을 한 몸에 안고 녹색의 그라운드를 누비는 자랑스러운 선수들 못지않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불철주야 노심초사하는 사람들―. 그들은 다름 아닌 경기장 안전을 책임진 ‘노란 조끼[경찰]’들이다.
토요일 오전부터 월드컵 관련 ‘직장교육’이 시작되어 오후 늦게까지 ‘경기장 현장 실습훈련’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막상 경기가 개최될 당일보다 더한 팽팽한 긴장감을 맛보았다. 여느 때와 다른 교육의 강도(强度)때문일까.
아무튼, 잇따른 집체 교육 때문에 자원봉사자와 합동 근무 연습시간이 조금 지연되었다. 내가 근무하게 될 4층 출입구에 도착해 보니, 벌써 자원봉사자인 두 남녀 대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맨 먼저 알아본 자원봉사 여대생이 반색하며 “어머, 안 나오시는 줄 알았어요!” 하는 게 아닌가. 여학생의 그 반가운 인사말 속에는 현장 교관의 설명을 듣느라 조금 늦게 근무 장소에 도착한 경찰관에 대한 염려가 들어있다.
아니, 자신들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경찰의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책망(?)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얼굴 마주하는 그 순간에 ‘반가움’ 하나로 모든 염려는 상쇄될 수 있었다. 오늘따라 더욱 듬직하고 멋있게 느껴지는 자원봉사 남학생 역시 초면이 아니라서 그런지, 친동기간처럼 반가워 나는 그의 손을 꼭 쥐었다.
■ ‘이심전심’의 동지애
이제 우리는 남남이 아니었다. 마치 한 직장의 동료직원처럼 동일 임무 부여에 대한 ‘이심전심의 공감대’가 마음속으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미 자원봉사자 교육을 통하여 명석한 이들 대학생은 주어진 임무를 다 익힌 터이지만, 나는 현장 안전책임 경찰로서 또 한 번 노파심의 일단을 드러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입 금지 물품’을 사전에 차단하는 일, 그리고 입장객을 친절하게 안내하는 일 등을 강조하면서, 특히 외국 관람객 안내 시 이 사람은 영어에 익숙지 않으니, 많은 도움을 달라고 이들 대학생 자원봉사자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그랬더니, 남달리 웃는 모습이 예쁘고, 말씨도 상냥한 여학생이 “최선의 노력을 다할게요”라는 말로 이 염려 많은 경찰을 안도케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여학생에게 얼마 전에 내 홈페이지에 올려준 글이 매우 뜻깊고 인상적이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러자 “경찰관 님의 답 글이 저는 더 멋있게 느껴졌어요”라는 과분한 찬사의 답이 돌아오지 않는가. 짧은 시간, 짧은 만남 ― 낯선 대학생들과 이런 대화까지 가능한 것은 대체 무슨 마력(?) 때문일까? 제복을 입은 사람과 대학생 간에 어느 낯선 거리에서 이런 인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 위대한 월드컵!
월드컵은 그래서 위대하다.
우리에겐 유례없이 고생스러운 국제적인 행사 월드컵!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이 있어 낯선 사람과도 남남이 아닌 것처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일까? '노란 조끼'들에겐 마냥 고단한 나날이지만, 그 보이지 않는 묘한 인연의 고리와 서로 돕고자 하는 동지애적 일체감, 그리고 순순히 잘 협조해 주는 관중의 따뜻한 마음과 시선 때문에 경찰과 자원봉사자들은 고달픈 줄 모르는 것이다.
“건강 먼저 챙기십시오.”
오늘은 유독「특별한 느낌」이 많아 다 기록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중에서 빼놓기 어려운「감동」이 하나 있어, 월드컵 경기장 안전을 위해 함께 고생하는 경찰 동료에게도 소개하고 싶다. 다름 아닌 제주도에 사시는 여류 수필가 K 선생님이 엊그제 필자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주신 글이다. 이 글은 일선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에게 보내준 편지글이지만, 거기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전국의 모든 경찰에게 보내는 격려와 위로의 말씀이라는 점에서 함께 나누고 싶어 진다.
◈ 윤승원 선생님께
오늘 아침에 제주 지방신문인 『제민일보』를 읽다 보니 경찰에 관한 기사가 실렸더군요. 문득 윤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윤 선생님도 늘 건강 먼저 챙기십시오. / 제주에서
▣ 『제민일보』2 002년 6월 4일자
[기자의 눈] “경찰도 사람인데…”
3일 오전 서귀포경찰서 정보과.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침울함이 사무실에 감돌고 있었다. 바로 곁에서 근무하던 동료가 격무에 시달리다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어서다. 동료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 주인공은 정 아무개 정보계장.
정 계장은 지난달 31일 오후 지방선거 유세현장과 음식점 등 곳곳을 돌며 선거사범 단속활동을 벌인 후 집으로 돌아가다 아파트 계단에서 쓰러졌다. 결국, 정 계장은 가족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고 수술까지 받았지만, 현재 의식불명 상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정 계장은 경찰 내부에서도 인정받는 정보통이다. 지난 80년 순경 공채로 경찰과 첫 인연을 맺고 정보 분야 근무 기간이 경찰 생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그의 정보능력은 인정받고 있다.
물론 남들과 다른 냄새, 흔히 말하는 경찰 냄새를 풍기지도 않고 모나지 않은 깔끔한 매너는 주위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힘도 가진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 그가, 인재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정 계장의 이번 사고는 단순한 개인 차원이 아닌 듯싶다. 사고의 원인이 바로 격무로 빚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 열악한 경찰 내부의 근무여건이 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월드컵 준비에 지방선거 감시, 각종 노조 집회 현황 파악, 발전노조 파업현장 점검 등 최근 몇 달 사이 정 계장이 처리해온 업무만 봐도 격무의 연속이었음을 쉽게 보여주고 있다.
기계가 아닌 이상 혼자서 이런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 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쾌유를 바라는 정 계장 동료들의 남긴 한 마디가 귓전에서 떠나질 않는다. ‘경찰도 사람인데…’
■ ‘스트레스’는 경찰관 단명(短命) 요인
필자는 제주의 K 선생님이 올려주신 위로의 글과 이 ‘특별한 기사’를 읽고, 무어라 답을 드려야 좋을지 몰라 한동안 망설였다. 단순히 과로로 쓰러져 병석에 누워있는 한 경찰관에 대한 동정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자기 몸 돌볼 수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평소 그 안타까운 시선이 아니고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네티즌들에게 “쾌유를 함께 빌자”는 말씀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목소리는 잔잔하지만, 파도처럼 쏴∼아 부딪는 그 영혼의 울림이 이 마음 여린 일선 경찰의 가슴을 그만 울컥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렇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한다. 우선 내가 건강해야 나라도 있고, 봉사도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스트레스받는 요인이 어디 한둘인가? 경찰은 그 직무의 특성상 외부적인 스트레스가 어느 직종보다 많은 직업이다. 각종 단속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그렇고, 한두 사람 실수로 전 경찰이 책망 듣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 서로 위로하고 아끼는 마음
그렇다면 경찰 내부, 또는 스스로는 어떠해야 하는가. 위아래 가릴 것 없이 서로 감싸주고, 힘들어하면 따뜻한 말로 위로해 주고, 자신도 모르게 여과되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면 그 심정을 헤아려 다독거려 주어야 하는데, 그런 인정과 넉넉함이 아쉽다.
돈이 드는 일도 아닌데, 덕담 한마디가 왠지 인색하다. 그런 풍토에서 받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인간의 수명을 더욱 단축시킨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는가? 필자의 마음 같아서는, 제주의 K 선생님이 진정으로 걱정해 주신 “건강 챙기십시오.”라는 이 귀한 말씀을 붓글씨로 크게 써 벽에 붙여 놓고 동료직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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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록 ⑥
경기장 근무 ‘POLICE’의 뿌듯함과 씁쓸함
6월 12일
대전에서는 스페인 대 남아프리카 경기가 열렸다. 필자는 이 경기장의 4층 출입구(보미토리)에서 근무했다. 자원봉사 대학생 2명과 함께… 나는 생전 처음 이 화려한 경기장의 출입구에서 말과 피부색이 다른 수많은 외국인과 스포츠에 깊은 관심을 가진 우리 한국인들의 특별한 모습을 보았다.
■ 고달픈 하루
출입구 근무자에게는 실로 고달픈 하루였다. 저녁 8시 30분에 개최되는 이 경기장의 안전을 위하여 경찰서 직원들은 오전 11시 30분에 점심 식사, 오후 2시 30분경에 때 이른 저녁 식사까지 서둘러 마쳤다.
당겨 먹은 점심밥도 소화가 덜된 상태에서 야간 경기를 대비하기 위해 배달된 도시락을 서둘러 먹고 나니 속이 거북했다. 어쨌거나, 오늘 하루쯤 생체리듬이 깨져 속이 다소 거북한 것쯤은 이미 각오한 일이니 못 참을 것도 없다.
그러나 경기 시작 6시간 전에 근무장소에 배치되어 관중이 다 빠져나가는 밤 11시 30분까지 안전을 지켜야 하는 일은 아무리 무쇠 체력을 가진 사람도 힘이 드는 일이었다. 무려 10시간 이상을 교대 없이 한 자리에서 고정 근무해야 하는 직업.
그 남모르는 허리 통증 등 개인적인 고충은 여기서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필자 못지않게 곁에서 시종일관 함께 고생한 자원봉사 대학생에게는 자칫 엄살로 비칠지도 모르니까.
■ 경찰을 두려워하는 외국인
출입구 근무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반입금지 물품을 차단하는 일이다. 여기서 나는 아주 대조적인 두 가지 현상을 발견했다.
경찰이 요구하는 대로 아무 말 없이 순순히 가방을 손수 열어 보이는 외국인 관람객들의 모습과 “저 아래에서 했는데 여기서 또 검색해요?”하면서 짜증과 거부감을 드러내는 우리 한국인들의 모습이 그랬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외국인들 중 내가 만난 외국인들은 나의 선입견(말이 잘 안 통하는)과 어떤 고정관념(과격함)과는 달리 한결같이 공손하고 부드러웠다.
이곳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POLICE’가 찍힌 이 노란 조끼의 경찰 유니폼이 외국인들에게는 적잖은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걸 알았다. 등에 메고 들어가는 가방을 손으로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그들은 얼른 자크를 열어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경찰이 요구하기 전에 미리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어느 외국인은 화장실을 가면서도 경찰의 허락을 얻고자 했다. 내가 환한 미소로 그들을 대하면 그들은 더욱 부드러운 얼굴로 접근하고 싶어서 했다. 내가 그들의 가방을 검색하고 나서 “오케이" 하면 그들은 "땡큐!”하면서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언어와 피부가 전혀 다른 그들이지만, 폴리스의 입에서 나오는 이 "오케이 땡큐!" 한 마디에 그들이 표하는 답례 “오, 땡큐!”는 진정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고마움의 표시로 내겐 느껴졌다.
경찰은 그러므로 이 경기장 내에서만큼은 그들에게 ‘두려움의 존재(?)’라는 사실이었고, 그것은 '노란 조끼'에게는 자긍심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방에서는 내가 찾고자 하는 반입금지 물품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FIFA에서 정한 반입금지 물품을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들어오는 걸까? 참으로 놀라웠다.
■ 일부 입장객의 실망스러운 모습
그런데 그와는 달리, 일부 우리 한국의 입장객 중에는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다. 남녀노소 이곳을 찾은 분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고, 경찰에게도 적극적으로 협조를 잘해주어 대체로 수준 높은 ‘관람문화’를 보여주어, 일선 경찰의 한 사람으로 고맙기 그지없지만, 예외인 분들도 더러 있었다.
다정하게 손잡고 들어오는 어느 50대 중년 부부는 소지한 가방에서 밀봉된 종이 팩이 나왔다. 물론 투척 가능 ‘위해 물품’이라는 점에서 엄격히 반입이 금지 물품이다. “죄송하지만 이것은 가지고 들어가시면 안 되는 물품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는 경찰관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매우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이미 경기장 반입금지 물품 정도는 공부하고 온 사람이오. 팩은 상관없는 줄 아오. 경찰이 정확히 알고서 근무를 해야지. 어디 한 번 ‘규정’ 좀 보여 주시오.”
이렇게 나오면 근무자로서는 어쩔 수 없다. 이런 일을 대비하여 관중에게 입장권 판매 시 배포한 <반입 금지 물품 홍보물>을 복사해 가지고 왔다. 경기장 반입금지 물품 중 '밀봉된 종이팩'이 분명히 포함된 규정을 보여주자, 중년 신사는 아무 말 없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동행한 그의 부인이 경찰관을 째려보면서 이렇게 대들었다.
“우리가 이런 걸 던질 사람으로 보여요? 안 던진다는데, 왜 못 가지고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 대체.”
■ 경찰의 인내력
경찰관에게 머리 꼿꼿이 쳐들고 이렇게 대드는 사람에게는 숫제 침묵해야 하는가? 아니면 친절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야 하는 경찰이니, 인내력을 가지고 이해가 가도록 끝까지 웃는 낯으로 설득해야 하는가. 우리는 힘이 들지만, 후자를 택했다.
“다소 불편하신 점이 있더라도 여러 사람을 위하는 일이니, 협조해 주십시오”라고 설득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입장객들은 밀물처럼 들어오는데, 이런 특이 기질(?)들과 더 이상 한가로이 말씨름이나 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화장실에 갈 여유도 없이 장시간 입장객을 살피고 안내해야 하는 경찰관과 자원봉사자들은 저리는 다리와 허리 통증보다도 이런 한 두 사람의 입씨름이 심신을 더욱 지치게 한다.
본시 우리 국민은 선진 외국인들처럼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말은 익숙지 않아 쉽게 던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금지된 물품을 제지하려는 경찰에게 항의하듯 대들어 힘을 빠지게 하는 모습에선 정말 실망하고 만다.
■ 어린 학생들의 귀여운(?) 질문
기왕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지적한다면, 단체로 입장하는 학생들과 이를 인솔하신 선생님들조차도 사전에 반입금지 물품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들어와, 출입구에서 일일이 가방을 뒤져보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었다. 이때 길게 줄을 선 어린 학생들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경찰 아저씨, 페트병은 왜 못 가지게 해요?”
“경찰 아저씨, 보온병은 괜찮나요? 도시락도 안 되나요?”
어른 뺨치게 영악하리 만치 똑똑하다고 하는 요즘 아이들이 아예 경찰 아저씨를 놀려 대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그렇게 놀려도, 이 ‘노란 조끼’ 폴리스는 너희들을 한없이 귀엽게만 봐주리라.
■ 성의 다하는 자원봉사자에게 고마움을…
어쨌든 대전에서의 첫째 날 월드컵 경기는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잘 끝났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능숙한 영어 구사와 상냥한 미소로 외국인들을 친절하게 안내해 준 자원봉사 대학생들이다.
환호성과 함께 녹색의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양국 선수들의 치열한 경기 모습을 지켜볼 겨를도 없이, 오로지 출입구만을 지키며 성심성의껏 관중을 안내하고, 심지어 손가락을 다친 어린 학생을 마치 학부모처럼 응급실로 데리고 가 치료해 주는 자원봉사 여대생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봉사'를 지켜보면서 고마움을 느꼈다. 어디 그뿐인가.
자원봉사자와 경찰은 쓰레기통 옆에서 관중이 건네주는 온갖 궂은 쓰레기도 다 받아주었다. 사실은 이것도 문제다. 자원봉사자와 경찰이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 주는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장애자라면 모르겠다. 양손에 무엇을 들고 있으면 모르겠다. 유니폼을 입고 서있다고 해서 쓰레기까지 건네주는 행위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하고 싶은 얘기 많으나 그럴 여유는 없고…
이렇게 경기장에서 하루를 살다가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었다. 눈을 조금 붙이고 나니, 직장에선 출근하라는 전화가 온다. 선거 날이라고 해서 이렇게 나와 보니, 간밤에 고생한 직원들의 표정이 어둡기만 하다.
경기장에서 보고 듣고, 모두 몸으로 느낀 바가 많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그럴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아니, 어딜 가나 월드컵 이야기가 홍수를 이루는 마당에, 점심시간에 잠시 적어보는 나의 이런 단편적인 월드컵 이야기를 과연 몇 사람이나 읽어 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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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록 ⑦
대학생 아들이 보내 준 월드컵 문자메시지
6월 14일 월드컵 대전경기장.
미국 대 폴란드의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시간, 인천에서는 우리나라 대표팀과 포르투갈 팀의 16강 전이 온 국민의 열광 속에 벌어지고 있었다. 이 시간, 필자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대표팀의 역사적인 16강 경기를 지켜볼 수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 경기장 근무 경찰관의 궁금증
미국과 폴란드의 大田경기장 4층 출입구 보미토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의외로 선전하는 폴란드 선수에게 우리나라 관중들은 아낌없는 환호를 보내며 일방적인 응원을 하였다.
함께 근무하는 자원봉사 두 대학생도 틈틈이 경기장의 대형 전광판과 그라운드를 번갈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폴란드 팀이 미국을 이겨야 우리 팀에게도 유리하다는 상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면, 이곳 대전경기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남의 나라 경기보다는 같은 시간에 인천에서 벌어지는 우리 대표팀의 경기 실황이 더 궁금해 못 견뎌하는 눈치였다. 그 조바심은 간간이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 아들이 보내준 문자메시지
혹시나 하고 휴대폰을 열었다. 그러자 객지의 대학생 아들에게서 뜻하지 않게 희열이 넘치는 문자메시지 한 통이 날아왔다.
“아버지! 우리나라가 한 골 넣었어요. 와~”
역사적인 우리나라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를 현장 근무 때문에 지켜보지 못하는 경찰 직업을 가진 아버지. 이 아비를 생각해 주는 자식의 그 같은 작은 배려(?)가 고맙게 느껴졌다. 이런 ‘특급 정보’는 무엇보다 같이 근무하는 경찰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먼저 전파해야 할 일이었다.
곁에서 궁금해하는 자원봉사자는 물론, 스치는 직원들에게도 나만 알고 있는 ‘특급 정보’ 인양 긴급히 알렸다. 경기를 TV로 지켜볼 수 없는 특별한 상황에서 아들이 전해주는 이런 휴대폰 문자메시지와 눈앞에 펼쳐지는 남의 나라 경기, 그리고 꼼짝할 수 없이 내게 주어진 경기장 임무 등 그야말로 내 위치를 도형으로 그리면 삼각 형태의 한 중앙에서 이것도 저것도 관심 가져야 하는 이 사람은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이 ‘몸으로 느끼는 월드컵’이 되었다.
■ 응원의 대상이 금세 바뀐 이유
바로 이때, 대전경기장에서는 뜻밖의 함성이 터졌다. 폴란드를 일방적으로 응원하던 우리나라 관중들의 함성은 “필승 폴란드”이었는데, 갑자기 “오!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으로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이 함성은 마치 대지진이 공중에서 폭발하는 것처럼 내게는 놀랍게 느껴졌다.
이렇듯 갑자기 응원 대상이 뒤바뀐 함성은 인천에서의 승전보가 이곳 경기장에까지 순식간에 전해진 때문이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폴란드 선수들도 관중들의 이런 갑작스러운 ‘자국의 응원’에 적이 놀라워했을 것이다. 어느 관중은 소형 액정 TV를 가지고 들어와 눈앞에 펼쳐지는 남의 나라 경기보다도 인천에서 벌어지는 우리나라 팀의 중계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나는 아들을 휴대폰으로 급히 불렀다.
“TV를 보는 데 방해가 될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누가 골을 넣었는지도 그런 정보도 속보로 알려 주어야 할 거 아니냐?”
이 아비가 언제 대학생 아들과 이런 정보를 교환했던가. 나 자신도 스스로 놀라워하며 아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헤헤, 박지성이에요.”하는 거 아닌가. 나는 이 중요한 소식도 옆에 사람들에게 긴급뉴스로 속보했다.
그러고 나서 아들에게 “이곳 대전경기장의 모습도 TV에 비치던?” 하고 물었다. 이 아비가 근무하는 곳을 아들이 얼마나 관심 있게 보고 있는지도 내겐 사실 궁금한 일이었다. 그러자 아들은 “폴란드가 오늘은 어쩐 일로 펄펄 나네요. 미국은 불쌍하게 되었고요.” 하면서 이곳 대전에서 벌어지는 경기 실황도 소상히 꿰고 있음을 말해 주었다.
■ 긴장 늦출 수 없는 ‘경기장 폴리스’의 임무
그러나 이 순간, 귀에 꽂고 있는 경찰 무전기에서는 더욱 ‘긴장 근무’를 당부하는 지휘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경기 결과에 대한 예측할 수 없는 군중들의 반응 등 만일의 불미스러운 상황을 염려한 주문이었다. 경찰은 이렇게 늘 예측 가능한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포츠이니만큼, 현장 근무자도 경기 결과 및 승패에 무관심할 순 없지만, 경찰의 눈은 늘 군중의 움직임에 두고 시종일관 빈틈없이 예리하게 살펴야 한다. 그래서 ‘예의주시(銳意注視)’라는 말은 어쩌면 경찰 때문에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경기는 다 끝나가고 있었다.
미국에는 실로 실망스러운 게임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는 거의 미국인 관중이었기 때문에 입장 당시부터 이들의 기대에 찬 모습을 눈여겨볼 수 있었다.
■ 경기장 이면의 또 다른 풍경
성조기를 모두 머리에 두르고, 어느 중년 부부는 아예 바지를 성조기 색상으로 맞추어 입고, 얼굴에는 자국의 우월감을 한껏 드러내는 페인팅도 하고 희희낙락 입장했다.
그러나 경기 결과 3:1이란 큰 스코어 차이로 패하자, 신나게 큰 소리로 함성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한결같이 침울한 표정으로 퇴장하는 모습이 딱해 보였다. 그런 가운데, 나는 경기장 내의 열광하는 관중 모습보다 더 재미있는 경기장 이면의 진풍경과 외국인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 한 사람은 경찰 유니폼을 입고 서 있는 내게 급히 다가오더니, 마치 어린애가 고추를 잡고 어른 앞에서 오줌 마렵다고 응석 부리듯 이 코 큰 파란 눈의 여인은 내 앞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짧은 바지의 앞 자크 부분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토일렛! 토일렛?”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굳이 영어로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의 다소 허풍스럽고 익살스러운 몸짓만으로도 다급한 요의(尿意)를 짐작하고 알아차린다. 내가 그에게 화장실 위치를 안내해 주니, 그는 볼일을 다 보고 돌아가면서 내게 또다시 다가와 조금 서둘지만 똑똑한 우리말로 "고맙습니다"를 연발하고 갔다.
■ 아쉬운 점은 제발 고쳤으면
이 특별한 행사의 현장에서 보고 느낀 바를 다 기록하긴 어렵지만, 이런 기회에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지적하고 싶다.
※ 경기장의 자원봉사자 애로사항 및 제언
경기장 각층 출입구에서 관중 안내역 등을 맡은 안전 자원봉사자 옆에는 대형 쓰레기통이 두 개씩 놓여 있으나, 우리 한국 관람객 중 일부는 일반 쓰레기통과 재활용 쓰레기를 구분하지 않고 버리는 것은 예사이다.
뿐만 아니라, 콜라, 사이다 등 음료수를 뚜껑 없는 큰 종이컵에 따라 가지고 다니면서 마시다 보니, 다 마시지 않은 음료를 화장실 등에 흘려버리지 않고, 무조건 플라스틱 용기인 일반 쓰레기통에 그대로 버림으로써 경기가 다 끝나고 자원봉사자들이 쓰레기를 비닐봉지에 옮겨 담는 과정에서 물이 흘러나와 처리에 큰 애로를 겪는 것은 물론, 바닥에 흥건히 흘러내려 몹시 보기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또한 대부분 끈적거리는 액체여서 잘 닦이지도 않고, 결국 복도 바닥에 얼룩이 져 미관상 아주 흉하다. 제발 먹다 남은 음료수를 쓰레기통에 마구 집어넣어 버리는 일은 ‘관람문화’가 성숙한 한국인이라면 다시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 위로의 말씀에 또다시 감동
경기장 근무 police에게 “수고합니다”라는 말은커녕, 일부 관중들은 경찰의 통제에 잘 따르지 않고 극소수지만 오히려 대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는 지난번 나의 글(‘경기장 근무 폴리스의 씁쓸함’)을 읽은 것일까?
오늘은 대전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우리 한국인들이 선진 외국인들 못지않게 밝은 표정으로, 이 경찰관에게 “수고하세요”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긴 시간 서 있어야 하는 고된 근무로 허벅지가 저려오고 허리 통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이분들의 이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쌓인 피로를 눈 녹듯 가시게 하니, 이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의 위로에는 약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새벽에 집에 들어와 그동안 쌓인 메일도 챙겨보고, 졸고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도 살펴보니, 경기장에서 입장객들부터 위로받았던 말씀 못지않게 전국에서 따뜻한 격려 말씀 주신 분들이 적지 않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끊어질 것처럼 밀려오던 허리 통증도 싹 가시는 기분이다. 이 자리를 빌려 경기장 폴리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의 눈길 주신 네티즌들께 진정으로 고마운 말씀드린다.
그리고 특별히 멀리 타국에서 저의 졸고(‘노란 조끼’의 월드컵 이야기(6)-경기장 police의 뿌듯함과 씁쓸함)를 보시고, 위로해 주신 한 분의 독자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의 글은 마칠까 한다. 짧지만 소중하기만 이분의 글은 제게 주신 글이라기보다 함께 고생하는 '경기장 폴리스' 모두에게 전해 달라는 위로의 글이라 여겨진다.
【독자 편지】
<‘노란 조끼’의 월드컵 이야기>를 읽고
안녕하세요? 캐나다에 사는 훈이라고 하는 교포입니다. 저도 캐나다에서 살면서 한국을 위해 많이 응원하고 있지만, 경찰 아저씨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제 미래의 꿈이 경찰인데, 이렇게 경찰 아저씨 이야기를 들어보니깐 존경스럽네요?^^ 아무튼, 힘내시라고 제가 감히 이런 글을 올립니다.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 / 캐나다에서 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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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록 ⑧
계룡(鷄龍) 정기받은 대전경기장에서 일선 경찰이 본 월드컵 안팎 풍경
6월 18일 대전월드컵 경기장.
4층에서 내려 다 보았다.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거대한 항아리! 한 사람 한 사람 여기 담아 놓은 군상(群像)들에게서 나는 폭발하듯 넘치는 기운을 느꼈다. 그 기운은 “오, 꼬레아!” “아, 대-한민국!”이라는 일치된 함성으로 표출되었다.
■ 거대한 항아리가 금(?)이 가지는 말아야 할 텐데…
이들이 누구인가. 입구에서 내가 하나둘, 그 모습 일일이 살펴 들여보낸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기에 이 걱정 많은 사람은 만일에, 그야말로 만일에 말이다. 이 거대한 항아리가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붉은 기운’의 함성으로 금이라도 간다면 어떡하나? 하는 부질없는 걱정까지 들었다.
그렇다. 우리 팀의 승리를 위해 기도하고, 경기장의 안전을 위해 염원하고, 군중들의 무사함을 간절히 기원했던 이 한 사람의 일선 경찰은, 그래서 보이지 않는 신에게 감사드려야 했다. 무엇 한 가지 신이 날 일이 없다고 푸념하던 사람들을 신명 나게 더덩실 춤추게 하고, 기쁨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 이 환희의 공간을 언제 우리가 꿈이라도 꾸어 보았는가.
■ 경기장 안과 밖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명당(?)
필자는 붉은 악마 응원단이 자리한 북관의 4층 입구에서 경기장 안쪽과 바깥쪽을 동시에 조망(眺望)할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월드컵 경기장이 어디인가. 신령스러운 계룡산 정기가 뻗친 유성 노은지역 아닌가.
더구나 인접한 곳에는 대전 국립현충원이 있어 애국선열들이 지켜보는 곳 아닌가. 그렇다면 이 경기장의 위치만으로도 우리의 승리는 이미 예감되고 있었다.
경기장 안팎의 다양한 모습은 이미 TV 화면이 샅샅이 훑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애초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경기장의 안전을 위해 일한 일선 경찰의 시각으로 지극히 단편적인 얘기만을 하고 싶다.
이 거대한 항아리 속의 ‘붉은 옷’들은 연장전까지 가는 그 길고도 짧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속을 시커멓게 태우고 있었다. 그걸 참다못한 어느 성질 급한 관중은 동점 골이 터지기 후반 10분 전에 삼삼오오 출구를 빠져나가면서 “에이 씨! 신경질 나서 가야겠네. 일진(日辰) 나쁜 안정환이를 왜 교체하지 않는 거야! 제기랄∼” 이렇게 씩씩거리며 아예 밖으로 나가 버렸다.
■ 성미 급한 사람들
출입구 근무자로서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터진다. 그 진득하지 못한 한국인의 성깔머리에 그저 웃음이 나온다. 그가 집에 돌아가는 길목에서 승리의 함성을 듣고 아무리 억울해한다 해도 우리는 조금도 딱하게 여기지 않으리라.
연장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승리의 골을 터트리는 순간, 나는 얼른 경기장 통로에서, 저 멀리 유성구 노은동 네거리 교차로에서 열심히 수신호를 하는 동료 경찰관들을 보았다. 그들인들 어찌 지근(至近)의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경기 결과가 궁금하지 않으랴. 그들인들 어찌 이 흥분의 항아리 속을 들여 다 보고 싶지 않으랴.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떻게 끝나는지, 월드컵 8강이 열리는 이곳 영광스러운 大田의 시민이면서 그 내용을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바로 옆에 위치한 <뜰에 봄 꽃집> 옆 공터에서 사정없이 쏘아 올리는 축포 소리에 “아, 우리 팀이 이겼구나!” 비로소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 축포(祝砲)의 또 다른 의미
나는 ‘한밭 벌’ 허공에 수놓아지는 그 수십 발의 찬란한 축포가 우리 선수들만을 위해 쏘아 올리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이 경기장의 안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지하통로에서 또는 모든 게 궁금하기 짝이 없는 바깥 출입문에서, 또는 혼잡한 어느 도로의 한 복판에서 묵묵히 진땀 흘리는 우리 '코리아 폴리스'들의 노고를 씻어주기 위해 쏘아 올리는 행복한 축포로 여겨졌다.
그것은 고단한 일선 근무자의 순간적인 위안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흥분한 일부 군중들은 각층의 철제 난간을 아슬아슬하게 딛고 함성을 지르고, 또는 집단으로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뛰어내릴지 모른다는 우려감을 자아내게 하는 상황도 있었다.
■ 경찰을 곤혹스럽게 하는 일부 군중
이때 지휘부로부터 무전 지시를 받고 극렬 응원단이 위치한 2층으로 급히 지원 근무 나갔던 동료 경찰들은, 흥분한 군중에게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도록 자제를 당부하자 “당신네(경찰)들은 대한민국 사람 아니오?”라고 항변하면서 삿대질까지 하여 실로 곤혹스러웠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경기가 끝난 뒤, 출입구에서 그지없는 행복한 순간을 맛보았다. 피부색이 검은 곱슬머리의 어느 외국인은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서툰 우리말로 “정말 수고했어요, 축하해요”하면서 껴안고 볼을 비비려고 해 몹시 당황했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였다.
■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한 마디에 피로가 눈 녹듯…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경기장 출입구를 빠져나가면서 이 ‘노란 조끼’의 폴리스 복장을 보면 너 나할 것 없이 “수고했어요”라는 말과 함께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바닥을 허공에서 서로 짝! 맞부딪게 하는 일은 이제 서먹하고 멋쩍은 동작이 아니었다. 경찰에 대한 그런 국민의 따뜻한 시선과 위로의 마음은 무려 8시간 이상 한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이 ‘노란 조끼’의 다리 저림과 허리 통증을 조금은 가시게 하였다.
관중들이 다 빠져나가고, 직원들이 2층 관중석에서 잠시 쉬는 틈에 낙수 거리를 찾는 TV 기자들이 느닷없이 카메라를 들이대어 토막 인터뷰를 하는 풍경도 보였다. 우리 과(課) 직원들은 늦었지만, 함께 모여 경기장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귀서(歸署) 차량에 몸을 실었다. 어디쯤 왔을까. 피로에 지쳐 눈이 스르르 감기는데, 차내 뒤편에서 느닷없이 합창이 터져 나왔다.
■ 임무 마친 경찰, 그 안도(安堵)의 중얼거림
노상 들어 귀에 익숙해진 탓인지, 입속으로는 온종일 중얼거렸으나, 차마 겉으로는 발설하지 못했던 폴리스들의 합창 - “오, 필승 코레아! 짝짝짝 짝짝, 아,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이 모두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김 형사는 차에서 내려, 깊어 가는 밤 경찰서 3층 계단을 오르면서도, 그 입에 달고 다니는 중얼거림을 계속하였으나, 조금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계적인 큰 행사를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끝냈다는 ‘노란 조끼’의 안도(安堵) 요, 가슴 밑바닥에 고여있던 있던 순수한 동심(童心)의 표현인지도 몰랐다.
※ 후기 : 경기장 근무 중 스트레스를 받았던 수많은 일들, 다소 눈에 거슬리는 관중의 모습 등등 필자의 현장체험 기록이 ‘노란 조끼’ 주머니의 메모장에는 깨알같이 적혀 있으나, 우리 대한민국 팀의 8강 승리의 기쁨으로 거슬렸던 것들은 모두 덮어두고, 가급적 좋은 느낌만 담고자 노력하였음을 이해해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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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록 ⑨
월드컵이 맺어 준 특별한 인연
― 자원봉사 대학생에게 보내는 경찰의 편지 ―
현애, 그리고 두영!
오늘은 ‘씨’ 자나 ‘님’ 자 안 붙일게.
아니, ‘군’이나 ‘양’ 같은 어색한 호칭도 모두 생략하고, 두 사람을 이렇게 부르고 싶어. 이런 ‘동지애적(?)’ 친밀감을 느끼는 이 사람을 이해해 줄까?
우린 헤어질 때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지 않았어.
뜻깊은 경기장에서 아쉬운 석별의 악수하며, 난 왜 그런 마음의 여유조차 가지지 못했는지, 그 점이 못내 아쉬워.
《N-47》- 대전월드컵 경기장 북관 4층 맨 끝쪽의 출입구(보미토리).
거기서 만나, 거기서 헤어진 우리들.
현애와 두영이!
난 그대들과 함께 거기서 세 차례에 걸쳐 근무하면서 경찰 경력 20년 넘게 경험해 보지 못한 아주 새롭고도 짜릿한 것들을 몸으로 많이 느꼈어. 대학생과 경찰이 동일 목적을 가지고 언제 이렇게 만나 한 자리에서 근무할 수 있겠어.
돌이켜 보면 그저 꿈만 같아. 뜻하지 않은 10. 26으로 시작해서 혼란의 5. 18과 격동의 6. 29라는 큰 변화를 거쳐오면서, 팽팽한 대립과 사회 구조적인 갈등의 한 복판에서 시대적 비극을 몸으로 겪어온 것이 경찰과 대학생이 아니었던가.
이제 내 나이 어느새 오십 줄. 대학생 아들도 두었으니, 내가 그대들에게 슬그머니 ‘씨’ 자를 빼고 불러도 큰 흉은 안 되리라 믿어.
그런데 말이야. 꿈만 같다고 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어.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렸던 월드컵. 그것도 우리 대한민국 팀의 8강 신화를 여기 대전의 ‘한밭 벌’에서 우리가 치러 낼 줄 언제 꿈이나 꾸어 봤어?
그 많은 관중을 내가 입구에서 샅샅이 살펴 안으로 들여보내면, 그대들은 친절한 미소로, 혹은 유창한 영어로 안내하여 단 한 건의 불미스러운 사고 없이 성공적인 안전 월드컵을 치러냈어.
그것은 순전히 그대들의 덕분이었어. 자그마치 8시간 이상 오래 서 있어 허리가 쑤시고 아파도 잠시 쉬지도 못하고, 관중석 난간에라도 잠시 걸터앉고 싶어도 그대들과 나는 끝까지 꼿꼿이 선 채로 버텼어.
남들이 열광하는 그 순간에도 현애는 손가락을 다쳤다는 어린애를 데리고 응급실에도 다녀왔고, 두영이는 자리를 못 찾아 헤매는 수많은 낯선 외국인들을 내 형제처럼 자상하게 안내해 주었어.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어. 현애가 내게 말했지. 식수는 어디에 있느냐고? 나는 어느 관중이 물이 먹고 싶다고 해 안내해 주려고 묻는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말했지.
“근처에는 없고, 매점에 가면 사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랬더니 현애가 부끄러운 듯 내게 말했지. “제가 먹고 싶어서요.”
그 말을 듣고, 얼른 매점에 가서 사이다 한 병 사다가 갈증 느끼는 현애에게 따라 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어. 이 경찰관이 아무리 근무가 바빠도, 그런 작은 마음조차 베풀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 자격 없는 어른이야.
또 한 가지 미안한 게 있어. 내가 기념으로 찍어 준 카메라 사진이 너무 검게 나왔지? 귀엽고 사랑스러운 두 사람의 얼굴, 좀 더 예쁘게 찍어 주지 못한 것 정말 미안해.
그리고 이탈리아와 경기에서 연장전이 막 시작될 그 무렵, 막간을 이용해 두영이가 건네준 새콤한 귤과 주먹밥 하나! 입술이 마르고, 허기가 졌던 이 경찰에게는 그 꿀맛을 잊을 수 없어.
이제 대전에서의 월드컵은 모두 끝났어. 경기는 끝났지만, 거기서 나눈 우리의 정은 오래오래 기억되었으면 해. 간절히 기원했던 것처럼, 성공적인 안전 월드컵을 위해 이 경찰관의 옆에서 시종일관 성심성의껏 도와주고, 따뜻하게 마음 써 준 현애와 두영이의 그 밝고 상냥한 미소,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그 뜨거운 봉사, 정말 고마웠어!
2002년 6월 20일
월드컵 현장 경찰 윤승원 씀
♧ ♧ ♧
현장기록 ⑩
월드컵 열광, 그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
[표정] 1
우리 한국 팀과 스페인의 월드컵 8강이 벌어지던
그 역사적인 순간,
더구나 승부차기가 벌어지던 그 가슴 졸이고
숨 막히던 황금 같은 시간,
대전의 한 파출소.
나는 거기서 한 여인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을
보았다. 그 울음소리는 파출소 안의 모든 소리를
흡수했다.
형사 사건 관련 이 여인의 복잡한 사연을 다 옮길
순 없다. 그러나 그 순간, 경찰에게 있어서 눈앞의
이 민원인을 상대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아주머니! 지금은 온 국민이 숨죽이고 TV를
지켜보아야 하는 중계방송 시간이니, 잠시
참았다가 이따가 울어 주시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파출소 경찰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더구나 이 시간 소내에 있던 20대 초반의 의경은
대학 재학 중 입대했다. 이곳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학교 친구들이 붉은 티셔츠 차림으로
북을 친다.
그러나 경찰의 표정도, 의경의 표정도 담담하기만
하다. 이 세상의 들뜸, 흥분, 열광, 동참....
뭐, 이런 말과는 정말 상관없는 사람들.
지금쯤 대학병원 응급실의 간호사가 저럴 것이다.
경찰관서 112 지령실 근무자의 표정이 저럴 것이다.
긴급 전화기와 함께 하는 119 소방관들도 저럴 것이다.
이 시간, 가족과 더불어 소파에 앉아 과일 깎아 먹으며
역사적인 중계방송을 지켜보는 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표정] 2
이 파출소의 문을 열고 10여 미터만 나가면
아파트 단지 골목에서 오이, 가지, 배추, 수박,
감자 등속을 파는 할머니들을 만난다.
거기에는 토마토, 수박 장사를 하는 한쪽 손을
못 쓰는 선천적인 40대 장애 가장도 볼 수 있다.
이들은 월드컵의 열광을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내 앞에 놓인 물건들의 주인만 쭈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 ♧
현장기록 ⑪
월드컵과 콜라, 그 숨겨진 사연을 아시나요?
6월 26일.
브라질 대 터키의 월드컵 4강 경기가 일본에서 벌어진 날이다.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벌어진 월드컵 경기지만, 일선 경찰관인 내게는 또 다른 느낌이 드는 매우 의미 있는 경기였다.
이날은 모처럼 국내에서는 경기가 없는 날이어서 일선 경찰인 나도 일찍 퇴근했다. 마침 여름방학을 한 대학생 아들과 편안한 마음으로 TV 중계를 볼 수 있었다.
월드컵이 온 국민의 축제라는데, 이곳 대전에서 경기가 열릴 때는 경기장 내의 출입자 검색 임무를 맡았고, 타 도시에서 우리나라 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리의 응원전 질서유지에 동원되어 밤늦도록 근무하느라 하루도 마음 편히 가족과 함께 이런 경기를 TV로나마 즐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비록 남의 나라 경기지만 이렇게 아들과 함께 TV 앞에 앉아 ‘콜라’를 마시며 월드컵을 느긋이 관전하는 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으로 여겨졌다.
그렇다. ‘콜라’다.
나는 콜라만 보면 목구멍이 갑자기 간지러워진다. 침이 저절로 넘어가는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현상도 다 생겼다.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근무할 때다. 어느 관중이든 경기장 내의 매점에서 큰 종이컵에 따라주는 콜라 한 컵씩 사다 먹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출입구에서 입장객들을 일일이 검색을 하면서 나는 콜라에 지쳐버렸다. 누구나 다 손에 들고 다니는 콜라! 잘랑 잘랑 넘치게 양손에 따라 가지고 들어가는 콜라!
엎질러질까 봐 기어가듯 조심스럽게 들고 들어가는 온 관중의 통일된 음료 ‘콜라’―! (※이 콜라는 FIFA가 정한 공식 음료라나요?)
먹다 남은 것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나중에 쓰레기통을 비울 때, 물이 질질 흘러 자원봉사자들을 애먹인 그 애물단지 콜라!
출입구 입장객 검색 근무 중에 목이 타, 한 모금 마시고 싶어도 이 ‘폴리스(POLICE)’ 마크가 선명히 찍힌 ‘노란 조끼’ 복장의 근무자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기만 했던 콜라!
그렇게 흔하디 흔한 음료 이건만, 누구 하나 ‘현장 폴리스’에게는 한 모금 마셔보라고 권해오는 사람 없었던, 야속한 콜라!
이날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집안에서 아들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제일 편안한 자세’로 TV 앞에 앉아 콜라를 마음껏 마셨다. ■
♧ 2002년 월드컵 현장 경찰관의 기록 / 윤승원 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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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에서
◆ 낙암 정구복(역사가, 문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2.11.27. 05:13
대단히 긴 글이지만 흥미 있게, 관심 깊게 끝까지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찰관의 숨은 어려움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 순간도 잠 못 이루는 경찰관, 소방관, 군인, 의료 종사자들
모두에게 들리지 않는 고맙다는 응원을 합니다.
그리고 경찰관과 자원봉사자와의 인연을 술술 풀어주신 윤승원 님에게
깊고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청촌 윤 선생, 아니 요즘은 장천 윤 선생으로 인생의 긴 소재를
술술 풀어내십니다, 정진, 동행합시다.
▲ 답글 / 윤승원 22.11.27. 06:25
요즘 카타르 월드컵 중계를 보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구나 서울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가 많이 모이는 곳에서의 행사는
안전 문제가 한국 경찰에게는 큰 과제로 부각하고 있습니다.
경험에 의하면 사전 모의훈련까지 하는 등 철두철미하게 대비한다고 해도
돌발 상황에는 완벽하게 대처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저의 회고담 <붉은 악마가 보내준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심지어 ‘휴지폭탄’도
등장합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놓쳐서는 안 되는 돌발 변수지요.
저의 추억담은 무려 한 달 동안 연재했던 것이기에 원고 분량이 깁니다만
각종 혼잡 경비에 대비하는 현장 경찰에게는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해서 소개했습니다. 일선 ‘경비 경찰의 숨은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경찰 교육기관에서도 이 같은 현장 경찰의 구체적인 체험담은 학습 자료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존경하는 정 박사님께서 장문의 글을 세밀하게 살펴주시고
따뜻한 격려 말씀 주셔서 글을 소개한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