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8월 28일 월요일 맑음
“우리 것도 거져가세요” 백제당 맞은 편 동남한약방 사장님께서 한약 찌꺼기를 직접 들어다 차에 실어준다. 문 앞에 놓아두면 가져가던 사람이 오지 않았나보다. 여름철에는 빨리 치워줘야 하는데, 신경이 쓰이셨을 테지.
“아녜요. 그냥 두세요. 제가 실을 게요. 냄새 나요” 내가 받아 들었다.
내가 한약 거리에 나타난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세월이 참 빠르지.
매주 한 번씩은 꼭 들렀으니까 모두 몇 번이나 될까 ?
정산에 있을 때도 빨리 치워 달라면 한 밤중이라도 달려가서 실어왔다. 신용이첫째고, 서로가 덕을 봐야 하니까.....
이제 이 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꽤 많다. 믿을 수 있는 청소부라고 생각할 테지. 밤에 실러 다닐 때는 차를 세우고 “쉬었다 가세요” 하던 아줌마들도 이제는 알아보고 반응이 없다. 이 제 관록이 붙었다는 얘기지.
거름을 싣고 돌아오니 충정이가 아직 학교에 안 가고 늦장을 부린다.
“충정아 아직도 안 갔어? 8시 10분이나 됐는데.... 빨리 서둘러야지” 학교생활이 재미있거나, 친구와 사이좋은 아이들은 학교를 빨리 가려 하는 데 이놈은 아닌가 보다. 밤에는 12시가 넘어야 자고, 아침에는 늦잠이니 맑은 정신은 아닐 테지. 몇 번을 재촉해서 떠나보내곤 사춘기가 빨리 지나가기만 바란다.
정형외과에 가서 일주일 약을 처방만 받고, 물리치료는 사양하고 서둘러 치과로 갔다. 정산이 눈에 선하다.
“충치가 세 개나 있네요” “예, 충치가요 ?” 깜짝 놀랐다. “아 하세요, 아프면 말씀 하세요” “쎄”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아릿짜릿한 아픔이 온다. 치과에 가기 싫게 하는 주범이다. 손가락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조금만 참으세요” ‘참아야지. 별 수 있나, 삼국지의 관우장군은 생으로 어깨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하면서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태연히 바둑을 두었다는데...’ 생각을 떠올리니 그래도 참을 만해 지더라.
간호사가 묻는다. “때우는 재료는 레진과 보험이 적용되는 재료가 있는데 어떤 것으로 하실래요” “얼만 데요 ?” “레진은 한 개 10만원아고, 보험이 적용되는 것은 한 개 만원에서 이만 원 해요” ‘그럼, 30만원 ! 놀래라’ 안 보이는 이니까 싼 거로 하죠” 그 때 이용화 원장님이 들어오시다가 그 소리를 들으셨나 보다. “그 건 안 돼요. 레진으로 해드리고 보험가격으로 처리해드릴 게요” “그럼 너무 미안한 데요”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그래두....”
계산을 하는 데 이만 구천원이래나. 내면서도 쑥스러웠다.
이용화 형제님의 덕을 너무 많이 본다. 운사모의 덕도 되지.
복 많이 받으시길....
정산으로 와서 서당골 맨 위 구역으로 갔다. 2년 전애 조생종 한가위 묘목을 심은 곳이다. 그런데 놀라 자빠질 정도다. 이 정도까지 우거질 줄은 몰랐었다.
주로 아카시아가 커서 뒤덮고 있다. 그 속에 묘목이 갇혀 있는데, 심은지 2년, 그러니까 3년생 묘목이라고 제대로 어깨를 펴지도 못한 밤나무가 밤송이를 두어개씩은 매달고 숨막혀 헐떡이며, 잔뜩 웅크리고 있다. 한가위 열매를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신품종이라고 첫 번 째로 분양할 때 사다 심었으니까.... 반갑기 짝이 없다. ‘에이그 이쁜 놈들....’
앙증스럽고 귀엽다. 밤송이 털도 짧고 실속 있어 보인다. 내년에는 제법 열릴 것 같다. 그런데 키가 더 커야지.
‘얼른 해방시켜 주어야지’ 예취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쳐도 쳐도,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다.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기능성 보호대를 했어도 울려서 아프다.
어둠이 깔릴 때까지 베어도 남은 것이 더 많다. ‘이 걸 어쩐다냐 ?’
비까지 쏟아지네. 청양군에 호우주의보가 내렸다고 문자까지 뜬다. 서둘러 돌아왔지. 하늘에는 시커먼 구름이 빼곡이 정말 빈틈이 없다.
‘죽어라 주어라 하는 구 먼’ “이래다간 모든 농사가 피농이겄어” 장모님의 한탄 소리가 빗소리에 묻힌다.
깊은 밤까지 추녀에서 떨어지는 굵은 빗소리가 적막을 깬다.
‘밤 사이애 무슨 일이 있을까 ?’ 걱정이 된다. 청양군은 모두가 비상이다.
자고 나면 어떤 아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