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위험한 땅 (7-1)
온천에 대한 열정
온천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일본, 일련의 화산섬의 나라 일본, 땅속 깊숙한 곳에서 지열에 의해 물이 데워지고 있다. 이 지열활동의 거대한 가마솥 때문에 이 나라 2천여 군데의 온천에서 더운 물이 솟아오른다.
일본온천의 역사는 역사서의 기록으로도 1,300년 이상, 전설로는 훨씬 오래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인 도고온천의 전설이 유명하다. 지금으로 3,000년 전, 상처입은 백로 한 마리가 이곳에 날아와 상처난 곳을 물에 담그기 시작했다고 한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하더니 상처가 다 아물어 날아가더라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이 물의 효험을 알게 되었고, 온천으로 개발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두 여행자가 이즈모에서 떠났는데, 이요지방에서 한 사람이 쓰러져서 생명이 위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 다른 한 사람이 쓰러진 사람을 온천물에 담가 따뜻하게 만들어 생명을 구하게 되었고, 그 기쁨에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이다.
일본 사람들이 온천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헤이안 시대(794~1192)쯤이라고 하는데, 이 때에는 주로 귀족들을 중심으로 이용하다가, 에도시대 때(1603~1868) 대중적인 온천이 등장하였다고 한다. 현재 온천의 기준 정립은 메이지 시대(1868~1912)때 이루어졌다고 한다.
일본의 온천에 대한 열정은 습한 기후가 아닐까 생각한다. 목욕의 치료적 사용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과학 쎈터인 벳부 온천요법 연구소의 한 직원은 말한다. "온천 목욕을 할 때마다 혈액순환이 잘 되고 호르몬선이 자극을 받습니다." 만일 일본인이 그들의 정사와 온천과의 관계에 어떤 이유가 필요하다면, 이것으로 족할 것이다. 이상적인 온도는 약 43도 정도이고 하루에 7회의 목욕을 추천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온천은 그 수에 걸맞게 일본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이미 온천은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고 있고, 또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으로 일본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고마키 원탕
고마키 온천
겨울이 되면 늘 머리속에 맵도는 눈 덮인 핫꼬다산의 풍경, 도와다 호수까지 가는 눈 덮인 산길이 그리워 진다. 마침 두 코스를 갈수 있는 여행사 자유여행 상품을 선택해서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오모리 공항에서 약 2시간 걸리는 22만평의 시부사와공원내 고마키 온천 고마키 아오모리야 호텔이 숙소였다. 고마키온천은 4개의 호텔 건물과 3곳의 온천탕이 있다. 이참에 그 유명한 온천 문회를 맛볼 기회도 되어 기대가 되었다.
이 온천호텔은 일본 관광전문주간지가 여행사들이 여행자를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온천호텔 100대 온천중 10년 연속 1위로 뽑혔다고 한다. 모회사인 도와다관광개발은 크고 작은 온천여관과 40개 호텔(도와다호 그랜드, 오이라세케이루 그랜드, 400년 역사의 하코다 연봉 중턱의 아치온천) 소유하고 있고, 자연속에 파묻힌 온천과 아오모라를 대표하는 자연관광지인 국립공원을 두루 둘러 볼 수 있도록 무료 순환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1,200평 넓이의 경치가 뛰어난 일본 제일의 큰 바위 노천탕을 갖추고. 그리고 22만평의 아름답고 고풍스런 시부사와공원을 뒤로하고 있다.
과연 일본의 온천문화는 이방인을 놀라게한다. 잘 정돈된 다다미 방에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고 넓은 실내는 쾌적하고 정갈해서 나그네를 편안이 맞아 주었다. 그들의 풍속대로 나도 유까다와 하오리로 갈아 입고 보니 영낙없는 일본인의 모습이다. 업무상 유까다를 입고 게이샤 파티를 한적은 있지만 항상 일본에 올때 마다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아 입지 않고는 했는데 온천의 습도와 방안 온도로 평상복으로는 감당하기도 어럽고, 99.9%가 일본인인데 평상복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고, 모든 사람들이 호텔 내에서 평상복으로 입는 것을 보니 나도 그렇게 함이 편할 것 같아서 입고보니 편하기도 할 뿐더러 영 낯설지도 않았다. 나이가 그렇게 변화시키고 같은 동양권 이웃 나라이라서 그런가 보다.이 호텔의 식당의 부페는 놀라울 정도였다. 80여가지의 다양한 일본 전통 음식들은 소식인 나에게는 당황스럽기 까지 했다. 그리고 종업들의 손님접대하는 예절의 깎뜻함이 좀 부담스럽다. 놀라울 정도로 음식문화를 즐기는 듯 했다. 나는 소화제의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온천여행은 휴식과 음식이다. 때론 달콤한 여행이 될 수 도 있다.
뗘나는 날의 고마키 원탕
고마키온천 아오모리아 탕 입구
난부소우죠우
시부사와 공원 캇파누마 호수에서 본 아오모리아 서관(12층)
시부사와 공원
시부사와 공원은 온천을 포함해 약 22만평의 광대한 면적으로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약 40분 이상 걸리는 아름다운 산책로, 약 만평의 캇파누마(인공 늪)를 비롯한 여러개의 연못, 서대문으로 들어서서 좌측 완만한 길을 따라 가면 시부사와 대문이다. 들어서면 프랑스풍의 시부사와 케우죠우의 저택과 하쿠요우 홀, 시부사와 신사, 시부사와 에이이치와 시부사와 케우죠우의 동상있다. 그리고 캇파누마 호변에 핫소우안 차실, 케이쇼우안 차실, 린코테이, 카부토우혼진, 난부마카리아, 스와고텐. 부견당(우키미도우), 풍면전(호우메이덴) 등 150년 전의 우아하고 고풍스런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캇파누마에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군데군데 놓여 있는 돌들이 그생김새 하며 위치, 크기 등이 아무리 보아도 범상치 않다. 일본식 정원의 특징인 공간과 여백의 조형미를 그대로 그늪에 잘 조화시키고 있다. 자연의 정수를 완전한 축적으로 조성한 것 같다. 해빙기에는 많은 비단잉어들이 볼 만하다고 한다.
시부사와 케우죠우(涉澤敬三)는 明治, 大正. 昭和의 三代에 걸쳐 이 나라 경제계의 거두(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涉澤榮一 翁의 후계로, 생전에 일본은행 총재와 大藏大臣을 역임했고 昭和 38년 10월 25일, 67세로 서거하였다. 그의 인물의 위대함은 작가인 井上靖 씨의 추도문에 요약되어 있는데, 그 한 귀절을 인용하면.그분이 돌아가신 것은, 현재의 일본으로서는 커다란 손실이다. 그는 재계인으로서도,학자로서도 으뜸였으나 그분의 진면목은 일본 지식인의 하나의 양심이었다는데 있다고 생각된다.그분은 정도로 예술과 학문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그는 인간에 있어서도 일에 있어서도, 참과 거짓을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는 많은 무명의 학자를 널리 찾아서 훌륭한 일을 시켰다. 그분의 원조와 격려를 바탕으로 큰 일을 한 사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나와 그분의 交際는 겨우 2, 3년 정도 였으나, 그분의 사람됨과 學識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서로 만날 때 마다 반드시 무언가를 얻게 되었다. 그 젊은 감수성과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그리고 학문과 예술을 사랑하는 큰 정신이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부사와 케우죠우( 涉澤敬)의 雅號는 祭魚洞이다. 雅號의 出典은 중국의 고전인 禮記에 있다고 한다.
고마키온천 시부사와공원 입구인 서대문
케이쇼우안과 케이쇼우안 차실 입구
차실 정원
차실의 뒷 정원
차실 뒤 뜰에서
부견당 (우키미도우)
캇파누마 호변에서
부견당
캇파누마 호수
핫소우안 차실
두 차실, 린코테이, 카부토우혼진
난부마가리야
캇파누마 오른 쪽 호변
캇파누마
캇파누마 오른 쪽 초입에서 본 풍경
나카노사마 (어린이 연못)
사랑의 교회(예식장, 일본의 기독교인은 1%미만이지만 젊은세대는 70%가 교회에서 결혼하기를 원다)
부견당
호변에서 본 스와고텐
Silver Pasture: Ralf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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