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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2월 2일 주일
[(백) 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교회는 성탄 다음 사십 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주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무리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여기에 초 봉헌 행렬이 덧붙여졌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시어, 복음 권고의 서원으로 주님께 축성받아 자신을 봉헌한 축성 생활자들을 위한 날로 삼으셨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맞이하는 이 축성 생활의 날에 축성 생활 성소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고, 축성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한편 한국 교회는 ‘Vita Consecrata’를 ‘축성 생활’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봉헌 생활의 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바꾸었다(주교회의 상임위원회 2019년 12월 2일 회의).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요셉 성인과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또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읍시다. 특별히 ‘한국 교회 축성 생활의 해’(2024년 11월 21일-2025년 10월 28일)를 맞아 교회 안에서 각별한 봉헌의 삶을 선택한 축성 생활자들을 위하여 이 미사 중에 함께 기도합시다.
말씀의 초대
말라키 예언자는 주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보내시어 주님의 길을 닦게 하실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에 유혹을 받은 이들을 도와주실 것이다(제2독서). 시메온은 마리아에게, 이 아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반대받는 표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복음).
제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교회는 예수님의 부모가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아기를 주님께 바친 일을 기념합니다.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히브 2,17) 하였던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백성의 다른 맏아들들처럼 부모의 손으로 성전에 바쳐지십니다. 아기 스스로 자신을 바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바칩니다. 실제로 그리스 말 원문은 ‘봉헌’과는 조금 다른 ‘나타내 보이다, 출현하다, 소개하다’(present)라는 뜻을 가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오늘 복음을, 드디어 오신 구세주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대표하는 두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 백성을 처음 만나는 자리라고 하십니다. 일종의 상견례인 셈이지요. 제1독서에서 구세주께서 “자기 성전으로 오[시]리라.” (3,1)라고 한 말라키 예언자의 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곧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뒤 처음으로 성전에서 아버지 앞에, 그리고 백성 앞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축성 생활’(vita consecrata)의 날을 꽤 오랫동안 ‘봉헌 생활’의 날로 불러왔기에 축성 생활자들이 주님께서 성전에 바쳐지신 것과 같은 의미로 봉헌된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5년 전 이를 ‘축성 생활’로 번역하여 쓰기로 한 주교회의의 결정은 이런 혼란을 바로잡고 축성 생활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축성’은 오늘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봉헌’과는 쓰인 낱말과 그 뜻이 다릅니다. ‘축성 생활’은 “서원을 통하여 …… 세 가지 복음적 권고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삶, 곧 “복음적 권고의 서원으로 이루어지는 신분”(교회 헌장, 44항)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수도자를 포함하여 복음 권고를 서약하는 모든 이가 축성 생활자입니다. 올해 ‘한국 교회 축성 생활의 해’를 지내면서 축성 생활 성소를 위하여 더 기도합시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존재 자체로 세상의 빛이요 등불인 축성 생활자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인 동시에 축성 생활의 날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마리아와 요셉은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시고 올라가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축성 생활자들, 수도자들을 각별히 사랑하셨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이 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셨습니다. 들이 더욱 신원에 맞는 걸맞는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하자고 초대하셨습니다. 그들이 각자 부여받은 고귀한 성소와 카리스마를 기쁘고 충만하게 실현하도록 기도하는 축성 생활의 날입니다.
‘축성(祝聖, consecration)되다’ 라는 말의 의미는 성화(聖化)되다, 성(聖)스럽게 변화되다, 거룩하게 되다, 신성하게 되다, 봉헌되다, 라는 말과 유사합니다.
오늘 축성 생활의 날은 맞아 세상의 모든 수도자들이 아기 예수님처럼 자신의 모든 시간과 미래, 삶 전체를 관대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히 선별되고 축성된 수도자로서의 신분에 걸맞게 하루하루 모든 순간을 거룩하고 향기롭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수도자로서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한 사도직 활동도 중요하겠습니다만, 그에 앞서 한 작은 수도자로서, 주님의 겸손한 종으로서, 기도 안에 기쁘고 환한 얼굴로 살아간다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을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수도자들이 자신이 발한 삼대 서원이 하느님 나라와 지상의 교회를 위해 얼마나 큰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살아간다면,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거룩하고 맑게 살아 존재 자체로 교회와 세상 앞에 큰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수도자들의 ‘존재’ ‘신원’은 마치 날카로운 날이 서 있는 양날의 검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비록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이지만, 매일 가슴을 치면서 거듭 자신을 갈고닦으며, 주님의 종이라는 수도자로서의 신원에 걸맞게 살고자 발버둥 칠 때, 우리는 존재 자체로 세상의 빛이요 등불이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존재 자체로 하느님과 동료 인간을 위한 멋진 이기(利器)로 변모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수도자로서의 신원을 망각한 채, 흥청망청, 빈둥거리며 살아갈 때, 세상의 고통과 절규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높은 수도원 담장 안에서 우리끼리만 희희낙락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느님과 세상과 교회 앞에 그 어떤 증거도 되지 않고, 그저 놀림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수도자라는 존재 자체, 신원 자체가 하느님과 동료 인간을 해치는 흉기(凶器)로 돌변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봉헌은 오직 하나뿐: 용서를 위한 봉헌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주님께 봉헌합니다. 아프지 않으면 봉헌이 아닙니다. 예언자 시메온은 성모님께서 장차 영혼이 칼에 찔리듯 아프실 것이라 예언합니다.
구약에서의 봉헌과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봉헌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 봉헌의 목적은 첫째, ‘저는 당신 것이고 제가 가진 것도 당신 것입니다.’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로 바쳤던 제물이 번제와 곡식 제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친교’입니다. 하느님과 이웃과의 친교를 위해 바치는 화목제가 있었습니다. 이는 오고 가는 것이 없다면 친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세 번째는 ‘속죄’입니다. 빚을 진 상태로는 친교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는 탕감해주더라도 그분을 바보로 만들지 않으려면 자신도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속죄제나 보상제가 이것입니다.
만약 이런 봉헌으로 구원이 가능했다면 예수님께서 오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신약의 봉헌은 반드시 ‘용서’가 목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골고타에서 당신 자신을 아버지께 봉헌하시며 이렇게 청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문신을 한 신부님’(2019)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다니엘이라는 청년입니다. 그는 소년원 겸 교정시설에서 생활하던 중, 우연히 본당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를 돕게 되면서 ‘사제의 길’을 꿈꾸게 됩니다. 하지만 살인 및 폭력 전과 때문에 “사제가 될 수 없다.”라는 답을 들었고, 결국 다른 직업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출소 후 노동 현장으로 파견되던 중, 다니엘은 시골 작은 마을에 들르게 되고, 우연히 그곳 본당 신부님을 만나야 할 상황이 생깁니다.
다니엘은 내면에 깊은 갈망과 불안, 그리고 죄책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 누군가가 “본당 신부님 맞나요?” 하고 묻자, 그는 순간적인 충동으로 “예, 제가 신부입니다.”라고 대답해 버립니다. 그리고 빈 사제관에 머무르게 되면서, 그 마을의 임시 ‘신부’ 역할을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의외로 진솔한 그의 모습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입니다.
알고 보니 이 마을에는 큰 상처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 끔찍한 교통사고가 발생해 여러 주민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운전자’ 역시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사고 당시 운전자가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야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 운전자를 철저히 미워했습니다. 마을 곳곳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표시가 있지만, 정작 그 ‘가해자’였던 운전자는 묘지에조차 들어오지 못한 채 쫓겨난 상태였습니다.
다니엘은 처음에는 이 사건에 깊게 관여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용서받지 못함의 고통”을 잘 아는 그였기에, 점점 그 가족과 죽은 운전자를 묻지 못한 채 애도하지 못하는 상황이 신경 쓰였습니다. 다니엘은 한 가지 결심을 합니다. “이 운전자를 위한 장례를 제대로 치러 주자.” 모든 마을 사람이 반대하고, 심지어 다른 사제나 경찰관도 “장난질이 너무 심하다.”라며 그를 몰아세우지만, 다니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장례식 당일, 분노로 가득 찬 마을 주민들은 장례식장에 몰려와 고성을 지릅니다. 이즈음에 그의 신분도 조금씩 들통이 나기 시작합니다. “가짜 신부가 무슨 장례를 치른단 말이야!” “이딴 식으로 저 인간까지 구원받게 해 줄 순 없어!” 다니엘은 위축되면서도, 용기를 내어 운전자의 관이 놓인 곳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들어 모두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 저 역시 용서받지 못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게 된 건, 하느님께서는 제게 기회를 주셨고, 저도 여러분께 기회를 드리고 싶다는 겁니다. 이 사람에 대한 증오가 우리를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죽은 이에 대한 복수나 증오는 우리 모두를 갉아먹을 뿐입니다.”
다니엘은 장례식을 시작하며 조용히 기도문을 읊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묵주기도(또는 해당 지역 미사 의전)를 이어 갑니다. 이 순간, 관 앞에서 울부짖는 운전자의 가족을 보고 몇몇 주민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사제가 아닌 저 사람(다니엘)이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까지 마음 돌리게 하나…” 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이미 그의 진심을 느꼈던 사람들은 묵묵히 참여하기 시작하지요. 장례식을 마치고 다니엘은 신자들 앞에서 사제복을 벗고 문신이 새겨진 몸을 드러낸 채 그들을 조용히 떠나갑니다.
그는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요? 그가 먼저 사제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당연하지 않은 우리 죄를 덮어주시기 위해, 곧 에덴동산에서의 가죽옷을 선물하시기 위해 아드님을 죽이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입고 그분의 의로움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제복은 그리스도의 용서를 위한 봉헌을 의미합니다. 그 용서를 받은 사람에게 합당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도 용서하고 덮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봉헌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봉헌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유다가 베냐민을 위해 자기 자신을 대신 감옥에 갇히도록 내어놓겠다고 말한 장면(창세기 44,33 참조)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십자가 형벌을 받으신 모습을 예표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당했지만, 되레 그들을 살리기 위해 양식을 베풀었고(창세기 50,19-21 참조),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벌주시는 대신 가죽옷을 입혀 주십니다(창세기 3,21 참조). 누군가의 죄를 덮어 주기 위해 다른 생명이 희생된 것은 최초의 봉헌을 상징합니다. 신약에서는 의로운 요셉이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깨닫고도, 세상의 조롱 속에서 그녀를 보호해 주려고 몰래 파혼하려 했습니다(마태오 1,19 참조).
구약의 유다와 요셉이 살아 낸 봉헌과 희생이,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완성해 주신 속죄와 사랑으로 이어지며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의 봉헌은 더 이상 의무적 제사가 아니라 서로의 죄를 짊어지고 가는 ‘그리스도의 봉헌’이 됩니다. 이 봉헌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새롭고 영원한 봉헌입니다. 나는 이웃의 죄를 덮어주는 봉헌을 하며 미사에 참례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참다운 신약의 예배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이며, 동시에 교회가 축성 생활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봉헌된 순간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드리는 의미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저는 봉헌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1991년 8월 23일 사제서품을 받을 때입니다. 서품 예식 중에 ‘모든 성인 호칭 기도’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 교구장님을 비롯한 서품식에 참석한 모든 분이 무릎을 꿇고 새 사제들이 주님이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사제가 될 수 있기를 청하면 모든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합니다. 서품 대상자들은 바닥에 엎드려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기도합니다. 그렇게 엎드려 있는 동안 신학교에서 있었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던 분, 은사 신부님, 함께 사제 성소의 꿈을 키웠던 동료, 갈등과 번민의 시간이 떠오릅니다. 모든 성인 호칭 기도가 끝나면 엎드렸던 서품 대상자들은 일어나서 주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합니다. 이는 단순히 유대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께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헌신의 표현입니다. 봉헌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갈망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위해 살고, 무언가를 위해 헌신하며, 더 큰 가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존재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자신의 책 ‘월든(Walden)’에서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해 숲에서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삶에서 본질적인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라고 말하며, 헌신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충만함을 찾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이러한 단순함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무엇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습니까? 저는 보스턴에 있는 월든 호수를 몇 번 다녀왔습니다. 미국의 위대함은 경제와 문화에 있는 것 같지만, 그 뿌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사상가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전은 단순한 물리적 건물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시메온과 한나는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며, 평생 기다려온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성전은 하느님과 깊은 만남과 이웃과의 관계를 성화하는 공간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성전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교회일 수도 있지만, 가정과 직장, 우리의 일상 속 관계가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나-너 관계" 이론은 성전을 관계의 공간으로 확장해 줍니다. 우리가 이웃과 진정으로 만나고 사랑할 때, 그곳이 곧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성전이 됩니다. 군대에서 군종 신부님은 전방 철책선을 찾아와서 병사를 위해서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때는 철책선이 제단이 됩니다. 찬 바람 부는 초소가 성전이 됩니다. 저도 광야에서 미사를 봉헌했던 적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께 예배드렸던 광야, 그 광야가 제단이고, 바위가 제대였습니다.
오늘은 축성 생활의 날이기도 합니다. 수도자들은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며, 세상에 사랑과 희망의 빛을 비추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축성 생활은 수도자들만의 특권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는 자기의 삶 속에서 하느님께 헌신하며 축성 생활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키우는 사랑의 헌신을 통해, 직장인은 정직과 성실로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습니다. 작은 일상에서 하느님을 기억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축성 생활입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작은 길(Little Way)"을 통해 일상의 작은 일들을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일상의 작은 일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축성 생활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에 우리는 초를 축성합니다. 촛불은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며, 소멸하면서도 다른 이에게 빛과 온기를 전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할 모습입니다. 2024년 추운 겨울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촛불을 넘어 응원봉을 들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우리의 작은 빛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희생과 헌신이 세상에 빛과 희망을 전할 수 있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맞아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우리의 삶을 누구에게 봉헌하고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성전으로 부르시며, 우리를 통해 세상에 빛을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사랑과 희망을 실천하며, 우리의 삶을 온전히 봉헌하는 축성된 삶을 살아갑시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오늘의 성인
성녀 요안나 드 레토낙(Jane de Lestonnac)
신분 : 과부, 설립자
활동연도 : 1556-1640년
같은이름 : 레토냑,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후아나
성녀 요안나 드 레토낙(Joanna de Lestonnac)은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에서 저명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당대의 유명한 인문주의 철학자였던 미셸 에켐 드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의 조카이다. 당시 프랑스는 국가의 분열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분열을 가져온 종교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혼란을 겪고 있었다. 성녀 요안나의 어머니는 칼뱅주의(Calvinism)에 빠져 그 누구의 권고도 듣지 않았다. 다행히도 성녀 요안나는 아버지와 삼촌 덕분에 자기 종교로 이끌고자 했던 어머니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성녀 요안나는 17살에 가스통 드 몽페랑(Gaston de Montferrant)과 결혼하여 여덟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그녀는 1597년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41살에 과부가 되었고 네 아이도 어려서 잃었다. 그녀는 나머지 네 자녀가 모두 자라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돌보았다. 그녀의 두 딸인 마르타(Martha)와 막달레나(Magdalena)는 보르도에 있는 수도원에서 서원을 했고 아들 프란치스코(Franciscus)는 결혼을 했다. 아직 어린 소녀였던 막내딸을 아들에게 맡기고 성녀 요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온 수도생활을 하기 위해 1603년 툴루즈(Toulouse)의 개혁 시토회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수도원의 엄격한 생활은 그녀의 건강을 해쳤고 그녀는 서원을 하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툴루즈 수도원에서 지냈던 마지막 밤에 성녀 요안나는 하느님의 특별한 비추임을 체험하였다. 그것은 설립자로서의 소명과 마리아 영성에 대한 직관이었다.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려는 그녀의 계획은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윤곽이 드러났다. 즉 청소년 교육이라는 과제와 자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에도 마음을 써야 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정리되었다.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젊은 소녀들을 모아 라 모드(La Mothe)에 있는 자신의 땅에서 2년 동안 준비의 시간을 가졌고, 보르도에 극심한 역병이 발생했을 때 용감하게 시민들을 간호하였다. 그러던 중 1605년에 새로 부임한 예수회의 요한 드 보르드(Joannes de Bordes) 신부와 라이문두스(Raymundus) 신부를 비롯한 몇 명의 사제들이 영적으로 그녀의 헌신을 알아보고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되었다.
당시 보르도에서는 특히 여자 아이들의 교육이 큰 문제였다. 대부분 칼뱅주의에 빠진 여교사들이 소녀들의 교육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당시 예수회가 소년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던 것처럼 가톨릭적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던 소녀들을 위한 교육을 맡아줄 여성 수도회의 설립이 절실하던 때였다. 요한 신부와 성녀 요안나는 이런 점에서 서로 뜻을 같이 하고 이를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곧바로 수도회 설립 작업에 들어갔다. 1606년 3월 6일 성녀 요안나는 요한 신부의 도움으로 보르도의 대주교를 설득하여 특별히 여자 아이들의 교육을 직접적인 사도직으로 하는 여성 수도회인 마리아회를 설립하였다.
성녀 요안나의 마리아회는 1607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1610년 마침내 보르도에 마리아회의 첫 번째 수녀원을 설립하고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수도회의 사도직을 실현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하여 소녀들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한때 그녀는 다른 수녀들의 음모에 휘말려 희생될 위험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모진 시련을 인내로써 극복하였다. 1640년 2월 2일 96세의 일기로 선종하여 보르도에 묻힌 성녀 요안나의 마리아회는 프랑스 전역뿐만 아니라 에스파냐를 비롯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녀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9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고르넬리오 (Cornelius)
활동년도 : +1세기
신분 : 백부장, 베드로의제자, 주교
지역
같은 이름 : 고르넬리우스, 꼬르넬리오, 꼬르넬리우스, 코르넬리오, 코르넬리우스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Caesarea) 주재 로마군 보병대의 백인대장이던 성 코르넬리우스(또는 고르넬리오)는 하느님께서 신비로운 영상 가운데 당신 천사를 통해 요빠에 있던 사도 베드로(Petrus)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오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사도 베드로를 모셔왔고, 그로부터 자신은 물론 온 집안사람들 모두 세례를 받았다(사도 10,1-48). 그때부터 성 코르넬리우스는 사도 베드로의 제자가 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성 코르넬리우스는 카이사레아의 첫 주교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역사적 근거는 희박하다.
성녀 가타리나 (Catherine)
활동년도 : 1522-1590년
신분 : 수녀
지역 : 리치(Ricci)
같은 이름 :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성녀 리치의 카타리나(Catharina de Ricciis, 또는 가타리나)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프라토(Prato)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원의 수녀이다.
그녀는 좋은 감각과 정성을 다하여 맡아온 수련장과 장상직을 사임하였는데, 그녀의 놀라운 신앙 체험들은 많은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면, 매주일 같은 시간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탈혼하였는데, 이때 그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수난에 흠뻑 취하곤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12년 동안이나 정기적으로 일어났다.
성녀 카타리나의 영향은 수녀원의 벽 안에서만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편지에서 나타난 그대로 교회의 개혁 운동에 최선을 다하였다. 성녀 카타리나는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와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 그리고 교황 성 비오 5세(Pius V, 4월 30일)와 함께 현대 교회의 개혁자로서 높은 칭송을 받아왔다. 성녀 카타리나는 1590년 2월 2일 선종하였고, 1732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46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복자 시몬 피다티(Simon Fidati)
활동년도 : 1295-1348년
신분: 설교가
지역 : 카쉬아(Cascia)
같은 이름 : 사이먼
시몬 피다티의 생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카쉬아에서 태어났고, 안젤루스 클라레노란 사람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면서부터 내면의 덕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가입하여 비록 짧은 기간 동안 공부하였지만, 1318년경부터 뛰어난 설교가로 등장하였다.
그에게는 자연적 은혜 외에도 초자연적 은혜가 충만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는 “주님의 행적에 관하여”란 저서를 펴냈는데, 이것은 친구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으로 된 교리서라고 한다. 그는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육체적 고행이라고 하였으며, 하느님의 명에 따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미리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설교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완성에 도달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33년에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