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5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은 창조주 예수님을 가리키는 거고, 그 창조주 예수님은 말씀이시래요. 그죠?
그분이 다 창조했다. 그러잖아요. 말씀이래요. 그리고 생명이래요. <죠에>, ‘생명’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말씀, 그 예수는 그 무한의 하나님, 그 창조주의 신비를 온전히 대표하는 거예요.
그게 말씀이에요. 그게 예수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유한이 무한을 이해하거나 학습할 수 없어요.
유한의 영역에 있는 것들이 무한을 이해하거나 감지하거나 보거나 학습할 수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 유한과 이 무한의 그 간격, 그 담을 거기는 휘장으로 가려져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 담을 허물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유한이 무한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오신 거예요.
그래서 무한이 유한으로 관입된 게 ‘성육신’이란 말입니다. ‘incarnation’ 이란 말입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죠.
그러니까 무한이 유한 안으로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무한과 유한의 그 소통의 문이 열린 거예요. 연합의 문이 열린 거예요.
그게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사건이고, 십자가 사건이거든요.
그렇게 유한의 그 이 현상계에 무한이 내려오게 됐을 때, 그건 빛으로 밖에 표현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눈에 보이는 이런 빛이 아니라 이 유한의 현상계에 무한의 것이 이렇게 들어왔을 때 그걸 표현 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가 빛밖에 없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빛이라고 하는 거예요.
무한을 향한 그 깨달음이 이렇게 부재하는, 아니 그 깨달음에 접근조차 불가능한 이 유한의 영역에서 그 무한의 신비가, 이렇게 발출이 되는 빛처럼...
이렇게 발출이 된다고 그러죠? 빛이 여기서 이렇게 비춰 나가는 걸 ‘발출’이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이 유한의 영역에서 그 무한의 신비가 발출 되는 이 자체가 곧 하나님의 그 신비로서의 이 빛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빛이라고 하는 거지, 이렇게 밝히 비치는 이런 종류의 빛, 레이저 광선 같은 그런 빛이 아니란 말입니다.
또한 그 묵시의 무한의 신비는 이 창조의 영역을 담보하고 있죠.
‘담보한다.’라는 건 ‘반드시 창조를 이루어낸다.’라는 걸 ‘담보한다.’라고 해요.
그래서 이 무한의 신비는 창조의 영역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에 <죠에>, ’생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말씀을 ‘빛’이라고도 하고 ‘생명’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그 빛은 어두움의 영역, 이 땅의 영역인 이 현상계에서 이해 불가의 비밀,<무스테리온>이죠.
그래서 ‘그 빛이 왔는데 어두움이 이해 못하더라. 받아들이지 않더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 현상계에서 그 무한의 신비는 이해 불가란 말이에요.
그래서 빛이, 무한의 신비가 왔는데 이 어두움, 이 현상계가, 육의 세계가 그걸 못 알아먹는 거예요. 이해를 못한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