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가 상황을 알아보더니, 2017년에도 임시로 열어둔 것이라고 한다. 아직 석대자산성은 완전히 개방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직 발굴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차장까지 만들고, 화장실과 안내소까지 만들어 두고, 탐방로까지 다 만들어 두었는데, 다시 폐쇄라니 아쉽지만 빨리 이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9시 10분 철령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본래 계획은 석대자산성을 충분히 보고, 철령에서 일찍 점심을 먹고 최진보산성을 답사하는 것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저녁 시간이라도 충분히 확보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10시경 최진보산성에 도착했다. 심양 이북에서 가장 큰 성인 최진보산성은 2년 전 오후 늦게 방문한 탓에, 제대로 성을 감상하지 못해 늘 아쉬움으로 남았던 성이다. 둘레 5㎞가 넘는 거대한 최진보산성은 서쪽으로 7㎞ 떨어진 곳에 청룡산성과 함께 범하 주변의 넓은 평야 지대를 지키는 성이다. 아울러 북쪽으로도 진출로가 열려 있어, 고구려의 서북방 진출의 전진기지로서 큰 역할을 담당한 성이라고 생각된다. 고구려에 지방장관인 욕살(褥薩-5품 위두대형)이 몇 명이었는지는 논란이 될 수는 있다. 고구려에 욕살이 머물만한 성을 선정해보면 오골성, 요동성, 건안성, 신성, 부여성, 책성 등을 우선 거론할 수 있다. 최진보산성도 욕살이 머물만한 거대한 성의 후보다. 하지만 최진보산성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무순의 고이산성(신성)을 고려하면, 이곳에 욕살이 머물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최진보산성도 고구려의 대성으로 욕살에 버금가는 자가 있었을 것이다.
성의 남문으로 들어가, 내부에서 큰 저수지를 보고, 계속 북쪽으로 걸었다. 2년 전에 보았던 도교사원은 별로 가치가 없어서 그냥 통과했다. 물론 도교사원이 있는 자리는 과거에도 성의 주요 시설이 있었던 곳임에는 분명하지만, 발굴도 안 된 상태라 특별히 볼 것이 없다. 이번에는 성의 북문으로 향했다. 성의 북문을 본 후, 성벽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했다. 북문 옆쪽에 성벽 흔적이 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밭을 개간하면서 돌을 모아둔 것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북쪽 성벽이 보였다. 조금 나무와 풀을 헤치면서 올라가면 충분히 성벽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다 길도 없는 곳으로 가게 할 수는 없었다. 무릎이 아픈 분도 있었고, 어린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건안성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2팀으로 나누기로 했다. 산에 올라갈 팀과 그렇지 않을 팀으로. 12시까지는 내려올 수 있을 듯했다. 11명이 산에 올랐다. 이규삼 선생님이 앞장서서 길을 내주었고, 류가이드가 뒤에 오는 사람들을 챙겨주면서 그리 힘들지 않게 북쪽 성벽을 만날 수 있었다. 성벽에 만난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내 사진도 찍어달라고 류가이드에게 부탁을 했다. 그런데 류가이드가 카메라를 넘겨받아 사진을 찍더니, sd카드가 없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