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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리지 (連理枝) -
맞닿은 두 나무의 세포가 서로 합쳐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연리(連理)라고 부른다.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이다. 연리목은 흔히
나무를 심을 때 너무 가까이 심은 탓에, 세월이 지남에 따라 지름이 굵어진 줄기가 맞닿아 생기는 현상이다.
줄기가 붙은 연리목은 가끔 볼 수 있지만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을만큼 드물다.
가지는 햇빛이 많이 받도록 서로 피해 뻗으니 우선 서로 맞닿을 기회가 적다. 운 좋게 맞닿았더라도 바람에
흔들리면 서로 상대방의 세포와 사귀어보고 결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연리는 두 몸이 한 몸이 된다 하여 흔히 남녀 간의 사랑에 비유되며 나아가서 부모와 자식, 가족 사이,
친구 사이의 사랑까지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하나로 이어진 두 나무로 형상화된다.
바로 '사랑나무'다.
▲ 송면 소나무 연리지
화양동계곡 상류지역인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에 있다.
수령 100여 년의 적송으로 2004년 12월 괴산군 보호수 112호로 지정됐다. 이 연리지는
2008년 봄부터 원인 모를 병으로 솔잎이 마르기 시작, 현재는 나무 전체가 고사되고 있어
지역주민들과 내방객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 충남 외연도 동백나무 연리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에는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사랑나무라 부르는 동백나무 연리지가 있다.
마을 뒤 천연기념물 136호 상록수림 안에 자란다. 나이는 100~120년 정도로 보이며 지름이
한 뼘이 채 안 된다. 높이 2.5m에서 약간 비스듬하게 옆 나무와 이어져 있다.
마을 노인들의 이야기로는 자신들이 어릴 적부터 서로 붙어 있었다니
아마 태어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천생연분 나무로 보인다.
동백나무는 핏빛 꽃잎과 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섬뜩함 때문에 흔히 비극적인 사랑에 비유된다.
그러나 이곳 동백나무 연리지는 그 사이로 남녀가 지나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널리 알려질 만큼 변치 않는 사랑나무로 알려지고 있다.
▲ 모악산 소나무 연리지
전북 김제 모악산 금산사 뒤쪽,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길가에 서서
모악산을 찾아드는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 청도 지촌리 소나무 연리지
2001년 7월, 경북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라는 운문호 옆의 작은 마을에서는
오랜만에 귀향한 몇 사람과 동네사람들이 모여 앉아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누군가가 '이상한 나무'를 보았다는 말을 꺼냈다. 전설처럼 알려져 오던 신비스런 연리지의
진짜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나란히 선 두 그루의 나무가 가지를 내밀어 서로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이 연리지 소나무는
차도에서 1시간 정도 걸어올라가야 하는 깊은 산속 북쪽 비탈진 곳에 나란히 서 있다.
▲ 속리산 수정봉 소나무+신갈나무(참나무의 일종)연리지??
경북대 임산공학과 박상진 교수의 이론에 의하면 소나무와 참나무처럼 종류가 전혀 다른 나무는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을 같이 붙어 있어도 그냥 맞대고 있을 따름이지 결코 연리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세포의 종류나 배열이 서로 달라 부름켜가 연결될 수 없으며 양분 교환은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연리란 종류가 같은 나무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감나무와 고욤나무처럼 아주 가까운
친척 사이이어야 한다. 대체로 접붙이기가 가능한 나무는 연리가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박 교수의 이론대로라면 속리산 수정봉의 나무는 엄밀히 말하여 '연리'가 아니라,
김건모의 노래 제목처럼 '잘못된 만남'인 셈이다.
숲속의 나무들은 좁은 공간을 나눠 갖고 살아 간다.
가까이에 있는 어린 두 나무의 줄기나 가지가 자라는 동안 지름이 차츰 굵어져 서로 맞닿게 된다.
두 나무 모두 각각 해마다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면서 세월이 흐를수록 서로를 심하게 압박한다.
처음에는 자기가 먼저 살겠다고 발버둥치지만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면
함께 협조해야 살아 남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맞닿은 부분의 껍질이 압력으로 벗겨지면 맨살끼리 접촉이 이루어지고 남남으로 만난
둘 사이에는 사랑의 접촉이 이루어지면서 생물학적인 결합을 시작한다.
처음에 지름생장의 근원인 부름켜가 조금씩 이어지고, 다음은 양분을 공급하는 유세포(柔細胞)가
서로 섞인다. 나머지의 보통 세포들이 공동으로 살아갈 공간을 차지하면 두 몸이 한 몸이 되는
연리의 여정은 끝이 난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두 가지가 하나가 되기도 하고
줄기나 뿌리가 붙어 하나 되기도 한다.
- 연리목 (連理木) -
▲ 제주도 절물자연휴양림 고로쇠나무+산벚나무 연리목
이쯤해서 연리지에 관한 故事를 공부해 보자.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송나라(420~479) 범영이 쓴 역사책 <후한서> 채옹전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후한 말의 대학자인 채옹이란 사람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를 하다가,
돌아가시자 무던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켰다. 얼마 후 채옹의 방 앞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마주보면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차츰 두 나무는 서로의 가지가 맞붙어 마침내 이어져 연리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두고 그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칭송했다.
이때부터 연리지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을 나타내는 孝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 청풍 문화재단지 소나무 연리목
세월이 한참 지나... 비극으로 끝난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는,
양귀비가 죽고 50여 년이 지난 서기806년, 당나라의 시인 白居易(자는 樂天772~846)에 의하여
七言古詩, 120구 840자에 달하는 <장한가(長恨歌)>라는 대서사시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여기에 '기나긴 恨의 노래'의 처음과 끝 부분을 소개 한다.
長恨歌장한가 - 백거이
漢皇重色思傾國 한황중색사경국 한황제 색을 즐겨 경국지색 찾았으나
御宇多年求不得 어우다년구부득 오랜 세월 구하여도 얻을 수 없었네
楊家有女初長成 양가유녀초장성 양씨 가문에 갓 성숙한 딸이 있어
養在深閨人未識 양재심규인미식 집안 깊이 길러 누구도 알지 못했네
天生麗質難自棄 천생려질난자기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一朝選在君王側 일조선재군왕측 하루아침 뽑혀 황제 곁에 있게 됐네
- 중략-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일 장생전에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비익조比翼鳥는 눈도 날개도 한쪽만 있는 새다. 암수가 합치지 않으면 날 수 없는 신화 속의 새다.
연리지連理枝는 물론 두 나무의 가지가 합쳐 하나가 되어야 만들어지는 나무이다.
이후 수많은 중국인들의 사랑 이야기에 연리지는 단골손님이 된다
▲ 함지산 소나무 연리목
우리 역사 속에도 일찌감치 연리지가 등장한다. 남녀의 사랑에 한정시키지 않고
상서로운 조짐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때로는 선비들의 우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서민들 사이에선 이 나무에 빌면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는 믿음이 유행했다. 또 연리지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속 연인이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바로
그 연인에게 상사병이 옮겨가기 때문이다.
▲ 곡성 도림사 단풍나무 연리목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내물왕 7년(362) 4월에 시조 묘의 나무가 연리되었으며, 고구려
양원왕 2년(546) 2월에 서울의 배나무가 연리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사>에도 광종 24년(973) 2월에
서울 덕서리에서 연리지가 났으며, 성종 6년(987)에 충주에서도 연리지가 생겨났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연리지의 출현은 일일이 역사책에 기록할 만큼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로 생각한 것이다.
▲ 청천 용추폭포 소나무 연리목
고려 중기 이규보는 그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고율시(古律詩)에
친구 사이의 우정(友情)과 부부 사이의 연(緣)과 혈육의 정을 연리지에 비유했다.
그대 비록 후배라 공부는 함께 아니 했으나
연리지 나무처럼 한집안 형제 같네…
난새는 짝 잃으면 못 떠나 방황하고
초목 중엔 연리지가 의좋기로 소문나니
꽃 마음은 한가지나 꽃답기는 다르도다
부부가 없다면 짝이 어찌 될 것이며
형제 또한 없다면 기러기 어이 줄서 가랴…
* 東國李相國集=고려시대의 학자 이규보(李奎報)의 시문집. 53권 13책. 1241년 저자의 아들 함(涵)이
편집· 간행하였다.〈동명왕편〉등의 고율시(古律詩), <몽비부(夢悲賦)〉등의 고부(古賦),
〈국선생전(麴先生傳)〉등의 소설이 실려 있어 사료적 가치와 아울러 국문학적으로도 귀중한 문헌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판본은 18세기 영· 정조 연간의 복각본(覆刻本)으로 여겨진다.
▲ 속리산 오리숲 소나무
김시습의 <금오신화> '만복사저포기'에는
저승에서 나누게 되는 사랑의 슬픔을 연리지에 비유하는 구절이 있다.
一層樓在碧山中, 푸른 산 속에 다락이 하나 높이 솟아
連理枝頭花正紅. 연리지(連理枝)에 열린 꽃은 해마다 붉건마는
却恨人生不如樹, 한스러워라. 우리 인생은 저 나무보다도 못하여
靑年薄命淚凝瞳. 박명한 이 청춘에 눈물만 고였구나.
*《금오신화(金鰲新話)》는 김시습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집이다. <만포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등 5편이 전하며,각 편들은 현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이다.
특히 유가적(儒家的) 선비의 처지를 견지하던 주인공들이 불교적(佛敎的) 인연을 통해서 만나지만
결국은 죽음이나 부지소종(不知所終-일생을 어디서 마쳤는지 아무도 모름)의 도가적(道家的) 모습으로 사라지는
공통점은 유·불·도 3교에 두루 통하고 화합을 지향했던 작가의 정신세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영천 은혜사 느티나무+굴참나무 연리목
- 연리근 (連理根) -
▲ 해남 두륜산 대둔사(대흥사)의 1000년 된 느티나무 연리근(連理根)
'연리지'나 '연리목'에 비해 뿌리가 엉겨붙어 하나가 된 연리근(連理根)은 비교적 많아
'천 년의 인연'으로 불리는 두륜산 대흥사 느티나무 연리근을 대표로 소개한다.
느티나무 아래에 늘어 선 것은 '기원등(祈願燈)'이다.
초를 작은 컵에 넣어 불을 붙이고, 祈願燈 안에 있는 유리관에 넣은 후
소원문을 걸어두는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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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
《금오신화(金鰲新話)》는 김시습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집이다. <만포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등 5편이 전하며, 전부 몇 개의 작품이 더 실려 있었는지는 모른다. 판본도 김시습이 돌방에 감추어 내놓지 않아서 나머지 것이 없고, 필사본만 전하던 것을 일본에서 간행했는데 최남선이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알려졌다.
각 편들은 현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이라는 점에서 명(明)의 구우(瞿佑)가 쓴 《전등신화(剪燈新話)》의 모방작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첫째, 최랑(이생규장전)과 같은, 굳건한 의지와 기상을 지닌 한국적 인물형의 창조,
둘째, 조선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주체의식,
셋째, 비극적 결말을 통한 작가의 기구한 운명의 투영,
넷째, 애민적 왕도정치사상의 표출 등은 작가적 개성과 창조성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유가적(儒家的) 선비의 처지를 견지하던 주인공들이 불교적(佛敎的) 인연을 통해서 만나지만 결국은 죽음이나 부지소종(不知所終:일생을 어디서 마쳤는지 아무도 모름)의 도가적(道家的) 모습으로 사라지는 공통점은 유·불·도 3교에 두루 통하고 화합을 지향했던 작가의 정신세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 만포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줄거리
죽은 여자와의 사랑을 그린 명혼소설(冥婚小說)이다. 전라도 남원에 양생(梁生)이라는 노총각이 있었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만복사라는 절에서 방 1칸을 얻어 외롭게 살고 있었다. 젊은 남녀가 절에 와서 소원을 비는 날 그는 모두가 돌아간 뒤 법당에 들어갔다. 저포를 던져 자신이 지면 부처님을 위해 법연(法筵)을 열고, 부처님이 지면 자신에게 좋은 배필을 달라고 소원을 빈 다음 공정하게 저포놀이를 했는데 양생이 이기게 되었다. 양생이 탁자 밑에 숨어 기다리고 있자 15, 16세 정도 되는 아름다운 처녀가 외로운 신세를 한탄하며 배필을 얻게 해달라는 내용의 축원문을 읽은 다음 울기 시작했다. 이를 들은 양생은 탁자 밑에서 나가 처녀와 가연을 맺은 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얼마 뒤 양생은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딸의 대상을 치르러 가는 양반집 행차를 만나 자신이 3년 전에 죽은 그집 딸과 인연을 맺었음을 알게 되었다. 양생은 처녀의 부모가 차려놓은 음식을 혼령과 함께 먹고난 뒤 홀로 돌아왔다. 어느 날 밤 처녀의 혼령이 나타나 자신은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니 양생도 불도를 닦아 윤회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양생은 처녀를 그리워하며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혼자 살았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⑵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줄거리
송도에서 사는 이생이라는 총각이 학당에 다니다가 노변에 있는 양반집의 딸인 최씨녀를 알게 되어 밤마다
그 집 담을 넘어 다니며 애정을 키워갔다. 아들의 행실을 눈치챈 이생의 부모가 이생을 울주의 농촌으로 보내 버리자 둘은 서로 만나지 못해 애태우다가 최씨녀의 굳은 의지와 노력으로 양가부모의 허락아래 혼인을 하였다. 이생이 과거에 급제함으로 써 행복이 절정에 달하였으나 홍건적의 난으로 양가 가족이 죽고 이생만 살아남아 슬픔에 잠겨 있는데 죽은 최씨부인이 나타났다. 이생은 그가 이미 죽은 여자인 줄 알면서도 열렬히 사랑한 나머지 의심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 수년간을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 날 최씨부인의 뼈를 찾아 묻어준 뒤 하루같이 그리워하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⑶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 줄거리
개성의 상인 홍생이 달밤에 술에 취하여 대동강 부벽루에 올라가 고국의 흥망을 탄식하는 시를 지어 읊었더니 한 아름다운 처녀가 나타나 홍생의 글재주를 칭찬하면서 음식을 대접하였다. 홍생이 처녀와 시로써 회답하며 즐기다가 신분을 물었더니 처녀는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자의 딸로서 천상계에 올라가 선녀가 되었는데, 달이 밝자 고국 생각이 나서 내려왔다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기씨녀는 홍생의 청을 받고 긴 시 한 수를 더 읊었는데, 그 내용은 자기들의 사랑의 아름다움과 고국의 흥망성쇄에 관한 것이었다. 그 뒤 기씨녀는 천명을 어길 수 없다며 사라지고 홍생은 귀가하여 기씨녀의 주선으로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는 내용의 꿈을 꾸고 세상을 떠났다.
⑷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 줄거리
경주에 사는 박생은 유학으로 대성하겠다고 포부를 지니고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과거에 실패하여 불쾌감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뜻이 높고 강직한 데다 인품이 훌륭하여 주위의 칭찬을 받았다. 그는 귀신·무당·불교 등의 이단에 빠지지 않고자 유교정전을 읽기도 하고, 세상의 이치는 하나뿐이라는 내용의 철학 논문 「일리론(一理論)」을 쓰기도 하여 뜻을 더욱 확고하게 다졌다. 어느날 꿈에 저승사자에게 인도되어 염부주라는 별세계에 이르러 염왕과 사상적인 담론을 벌였다. 유교·불교·미신·우주·정치 등 다방면에 걸친 문답을 통하여 염왕과 의견일치에 이름으로써, 자신의 지식이 타당한 것임을 재확인하였다. 염왕은 박생의 참된 지식을 칭찬하고 그 능력을 안정하여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선위문을 내려주고는 세상에 잠시 다녀오라고 하였다. 꿈을 깬 박생은 가사를 정리하고 지내다가 얼마 뒤 병이 들었는데, 의원과 무당을 물리치고 조용히 죽었다.
(5)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 줄거리
글에 능하여 그 재주가 조정에까지 알려진 한생이 어느 날 꿈속에서 용궁으로 초대되어 갔다. 용왕이 새로 지은 누각의 상량문을 지어주었더니, 용왕은 그 재주를 크게 칭찬하고 잔치를 뻬풀어 대접하였다. 잔치가 끝난 뒤 용왕의 호위로 한생은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물건들을 골고루 구경하였다. 하직할 때 용왕은 구슬과 비단을 선물로 주었다. 꿈에서 깬 한생은 이 세상의 명리를 구하지 않고 명산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첫댓글 사진 잘 봤습니다. 언뜻 샴쌍둥이가 생각났어요. 그동안 신기하기만 했던 연리지가 갑자기 아프게 와 닿네요.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화양동집에 오셨을 때, 그곳에 있는 연리지를 열심히 찍던 한샘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고성의 님의 수필 '연리지'을 읽고 이참에 그동안 모아 놓았던 연리지 사진에다 이것저것 조사해서 함께 올렸습니다. 극성이지요? ㅎㅎㅎ
극성이라니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선생님의 열정에 늘 박수를 보냅니다.
선생님, 파이팅~!!!
선생님의 열정은 알아들여야 합니다. 글 읽으시고는 바로 사진을 찾아 올리실 생각을 하시다니...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첫 번째 나오는 '송면 소나무 연리지'가 시골집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어요. 언젠가는 그 연리지 주변에서 일아나는 이야기를 쓰려고 枯死 되고 있는 모습을 해마다 필름에 담으면서 자연히 우리나라 이곳저곳에 있는 연리지 소식도 알게 되었답니다. 이번 기회에 <장한가>와 <금오신화>도 다시 한번 읽게 되었지요. 이런 작업하면서 공부하는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제가 자주 산행하는 근교산에도 연리지가 있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고 모르던 내용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처럼 글을 써시면 공부를 안하고는 깊은 글이 되질 않겠습니다.
이 정도 분량과 내용이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보다 우선해서 그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식지 않는 열정에 찬사도 잊지 않고 보냅니다.
멋집니다. 선생님!^^
동란님 감사합니다. 제가 수필 쓰는데는 '느림보'지만 조사하는데는 '날쎈돌이' 아닙니까 ㅎㅎㅎ. 한 작품 꾸리려면 보통 일주일은 걸립니다. 이곳저곳을 뒤져 정리하고, 완성해서 올린 후에도 계속 보완하지요.
사랑의 나무 연리지! 참으로 신기하고 올리신 글도 잘 읽었습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네요. 이민혜선생님! 감사합니다.
유성숙님, 여기서 만나니 한층 반갑네요. 슬쩍 나가지 않고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랫만입니다. 저는 외국 어디에선가 둘의 몸통이 하나가 된 나무를 보며 신기해 했는데 한국에도 곳곳에 있었군요. 자료 감사합니다. 그덕에 공부했어요. 늘 건강 하시고 평안 하세요.
야생화님 반갑습니다. 건강하시지요? 어느 산속엔가 숨어 있는 연리지는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시달림을 받거든요. 감사합니다.
에세이스트 가족들 모두가 수필나무의 연리지입니다. 선생님 덕택에 연리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게 되어서 고맙습니다. 연말 잘 보내세요. / 고성의
고성의 선생님 작품 '연리지' 덕분에 에세이스트 가족들이 전국의 연리지를 구경하게 되었지요? 선생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연리지만 알고 있는데 연리목, 연리근으로 구분이 되는군요. 지극한 사랑과 우정을 연리지로 표현하기도 하지요. 감사히 봤습니다. 여혜당 선생님.
연리지는 드물지만 연리목은 그런대로 종종 볼 수 있고, 특히 연리근은 노거수들이 나란히 서 있는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요? 감사합니다.
'연리지'라는 단어는 90년대 초에 동대문구 마장동(?)에 있는 연리지예식장에서 처음 접했었습니다. 그 땐 아무 생각없이 결혼식장에서 쓰는 단어이니 연(宴)자로 시작되는 무슨 말이겠구나 하고 바로 사전을 찾아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귀한 자료 올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미고님이 봐 주시고 댓글까지 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세상에나~ 이렇게도 아름다운 사연들이 널리 있었음에도 모르고 살았군요~~이민혜 샘, 넘넘 감사함다~~frog in a well! 나무끼리도 알러지가 있어요~~?! ㅎㅎ 수종이 다르면 '넌 아냐'할 줄 안다니 참 신기혀라~
김종길 선생님 감사합니다. "넌 아냐" 하는 마음이 아플 것 같아요. 사랑해서 하나가 되었는데 완전하게 하나가 되지 못하니 얼마나 속이 아프겠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