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대 폭력의 이유? 교수들 ‘애들 왜 안굴리나’ | |
대학당국도 “교수 말 믿을 수 밖에…” 손놓아 ‘얼차려’ 견뎌낸 뒤엔 선배로서 ‘악습’ 되풀이 | |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현장에서 나온 이 말은 학생의 말이 아니다. 오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교수들끼리 나눈 대화의 일부분이다. 믿었던 교수한테 발등을 찍힌 신입생들은 기가 확 질리고, 저항할 힘을 잃게 된다. 체육 관련 대학에서 벌어지는 신입생 길들이기의 잘못된 전통이 뿌리뽑히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그 가운데 교수집단의 ‘인권 불감증’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신입생들이 ‘예절교육’이라는 이유로 새벽같이 학교에 나와야 하고, 아무런 권한도 없는 선배들로부터 머리 길이와 복장을 규제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윤우상 경희대 체육대학장이 “단체활동을 하는데 마음과 자세가 해이하면 훈련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런 정서를 대변한다. 교수-조교-상급생으로 이어지는 암묵적인 신입생 교육은 학생을 관리하는 데도 매우 편리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긴 학교 당국도 마찬가지다. 경희대는 지난해 3월 체육대학 신입생들의 강압적인 예절교육 실태가 보도된 뒤,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앞으로 잘 하겠다’는 체대 교수들의 말을 믿는 것 외엔 “특별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학교 차원에서 의욕만 있다면 문제 해결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부 체육대학에서는 부작용을 막고자 오리엔테이션 기간을 줄이거나, 공개적인 장소를 택하기도 한다.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고 선배와 새내기를 일대일로 묶는 멘토링 제도를 시행하는 곳도 있다.
학생 인권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도 신입생에 대한 폭력적 길들이기의 악습을 끊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학교라는 큰 조직과 선배그룹 앞에서 신입생은 약자다. 누구도 손을 뻗어 도와줄 수가 없다. 선후배 간 인맥이 학교생활은 물론 사회활동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체육계의 특성상, 신입생들이 이런 문화에 반기를 드는 건 상상하기 힘든 실정이다. 사회에 진출해 체육관 하나 열려고 해도 인맥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권단체나 언론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하지만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악습의 고리는 악습을 이어간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 넘는 집합과 얼차려의 기간을 참아낸 신입생들.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재학생이 돼 새내기들을 ‘교육’하는 위치에 오른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 없이, 단체행동에서 벗어나면 배신자·패배자 취급을 당하는 분위기 속에서 1년을 버틴 그들 가운데 일부는 ‘당했으니까 똑같이 해주겠다’는 선배로 다시 태어난다. 신체적 어려움을 이기는 방법으로 동기를 유발하던 지금의 교수들이, 과거의 방식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승용 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강압적 교육 외에 새로운 대안을 찾지 못한 현직 지도자들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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