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예수님
본 문: 사 11:1-9
설 교 일: 2015年 12月 20日
설교구분: 주일 2부
설교제목: 예수님이 행하신 일
<말씀봉독>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야훼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야훼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야훼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삶의 첫째도 예수님, 둘째도 예수님, 마지막도 예수님. 그거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다른 거 보지 마세요. 예수님만 바라보세요.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다니면서 사람을 보면 흔들립니다. 왜? 완전한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고, 정말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우리가 변화되어지길 바랍니다. 여러분 옆에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예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예요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네게 축복 더하노라
한 해 동안 우리 예수님만 사랑하지 못하고 내 자신을 사랑하고 내 주장과 내 뜻대로 그리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다투고 싸우고 미워하고 갈등하며 살아왔던 우리들의 모습을 회개하고, 성탄의 계절에 낮아지시고 섬기시고 희생하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하며 우리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네게 축복 더하노라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큰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데, 늘 우리는 이기적이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늘 판단하고 정죄하고 분노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던 저희들을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은 아낌없이 다 주시고 희생하시고 섬기셨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 일생 살아가는 동안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모습으로 우리 삶을 드릴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사야서 11장 1절로 9절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함께 따라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행하신 일” “예수님이 행하신 일”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기적, 놀라운 사건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간의 몸으로 희생하시고 섬기시고 사랑을 베푸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희생하시기 위해서 섬기시기 위해서 사랑을 베푸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은혜로 구원받고 우리가 오늘 이 자리까지 있게 되었는데, 우리들의 삶은 정반대입니다. 한없이 높아지려고만 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만 하고, 늘 나는 옳고 남은 틀리고 다투고 분노하고. 왜 분노하는지 아십니까? 내 마음에 맞지 않으니까 분노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안 되니까 분노하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고받고. 우리가 주님 앞에서 주님 오시는 성탄절을 바라보면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어떠한 일을 행하실 것인가를 예언했습니다. 오늘 그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성령님과 함께하신 예수님
첫째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성령님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성령님과 함께하신 예수님. 이사야 11장 1절과 2절의 말씀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야훼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하나님의 영, 성령이 임해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동안 성령님과 함께하시며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라는 것은 곧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아,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아버지로 말미암아 태어납니다. 아버지로 말미암아 잉태되어져서 어머니를 빌려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셔서 처녀의 몸인 마리아의 몸을 빌려 우리 주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죄 있는 모습으로 오실수가 없으셔서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그 몸을 빌려 잉태되어져 태어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에 이와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예수님께서 서른 살이 되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성령이 임하시는 장면이 누가복음 3장 21절과 22절에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그 다음 주님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공생애 모든 사역을 잘 감당하셨는데, 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 나가셔서 40일을 금식하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이 임하여 40일을 금식하며 하나님께 그 귀한 사명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하나를 먹어서 그 불순종으로 죄가 인류에 뿌리를 내리게 됐는데, 주님은 사십 일을 금식하시면서 아담과 하와가 지은 그 원죄부터 주님이 짊어지시고 그 죄사함의 모습을 상징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1절과 2절은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은 예수님의 사역을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
위대한 부흥사 무디의 동역자이셨던 루우벤 아처 토레이 목사님, 무디 신학교 초대교장이셨던 토레이 목사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도 임하신 같은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이 땅에서 사시고, 생각하시고, 역사하시고, 가르치시고, 죄를 정복하시고, 승리하셨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힘입어 사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성령을 의지해야 하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역사하신 동일한 성령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함께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시고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주시고 야훼를 경외하게 하신 동일한 성령이 오늘날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여기‘ 와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범이 되신다. 따라서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 하신 일이라면, 오늘날 우리 역시 할 수 있다!”
여러분 모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함 받고 주님이 하신 그 일을 우리도 행하기 위해서 열심을 다하여 노력하고 주님 가신 그 길을 묵묵히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에게 권능이 임하고 그 결과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 지혜의 영이 임했습니다. 총명의 영이 임했습니다. 모략의 영이 임했습니다. 재능의 영이 임했습니다.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임한 것입니다. 이사야 11장 2절의 말씀입니다.
그의 위에 야훼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성령님은 지혜의 영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지식으로 주신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고 실천하게 하는 지혜의 영입니다.
또, 총명의 영입니다. 총명의 영은 분별하는 영입니다. 바로 이해하는 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총명의 영이 임했어요. 본인은 복음을 전하러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지만 성령이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시아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려 유럽으로 건너가서 온 유럽이 복음화 되는 놀라운 역사가 사도행전 16장에 나옵니다. 6절과 7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막으셨습니다.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결국 유럽으로 넘어갑니다.
또, 성령님은 상담하고 우리를 위로하고 치료하는 모략의 영이 되십니다.
또, 성령은 능력을 행하는 지혜의 재능의 영이 되십니다.
또, 성령은 하나님의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때 주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고, 또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귀한 역사를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신 예수님
첫째로 예수님은 성령님과 함께 사역하셨고, 둘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집에 할아버님을 모시고 우리 한 가정에 살았기 때문에, 물론 할아버님이 많이 사랑해 주셨지만, 늘 할아버님 앞에서 몸가짐을 조심했습니다. 식사할 때도 우리 할아버님이 수저를 들기 전에는 절대 수저를 들지 않았습니다. 자, 기도하고 밥 먹자, 기도가 끝나고 난 다음에 할아버님이 숟갈을 드셔서 입에 한입 떠 넣으시면, 그때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습관이 되어가지고 제가 식사를 할 때에 저보다 나이 많은 분이 있으면 제가 기다렸다가 식사를 합니다. 왜? 어릴 때부터 그렇게 습관이 되어가지고.
그래서 우리가 나이 많으신 어른들을 이렇게 존경하는 것입니다. 이 존경이 내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을 볼 때에는 내 마음에 두려움이 다가옵니다. 아이고, 내가 어르신 앞에 잘못했는데.
우리가 한평생 하나님 앞에 그런 모습으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 주여, 내가 사람들 앞에는 부족함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것 같지만, 주님 앞에서는 늘 부끄러운 모습뿐입니다. 허물 많고 내 삶의 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부끄러운 모습이 다 담겨있는 내 자신을 봅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교만도 있고, 탐욕도 있고, 미움도 있고, 너무나 부끄러운 것이 많은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사야 11장 3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야훼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판단하는 것이지,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저사람 잘못됐어”, 내 귀에 들리는 대로 “이사람 문제가 있는 사람이야” 평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늘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했다고 하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라고 잠언서 1장 7절은 말씀합니다.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몸가짐을 조신하고, 주님이 우리를 볼 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기 위해 노력을 해야 되고, 넘치는 감사와 찬양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금요일 날 저녁에도 우리 베들레햄 찬양대에서 이 메시야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아름다운 성극으로 은혜를 끼쳤는데, 이 찬양은 헨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지어서 주님께 드린 곡입니다. 우리 일생의 삶은 찬양과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100편 4절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러분 일생 살아가는 동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뜻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인가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여러분이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본인은 십자가에서 벌거벗긴 채 두 손과 두 발에 못이 박혀, 머리엔 가시관을 쓰고 피를 흘리며 고통 가운데 돌아갈 모습을 보면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할 수가 없습니까. 너무 고통스러운 것을 이미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조차도 주님의 뜻이라면 내가 받아들이겠습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것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일생의 고백이 어떠한 고백입니까. 시편 18편 1절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 주님만 사랑합니다. 주님만 의지합니다.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갑니다. 그러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염려할 것 없어요, 걱정할 것 없습니다.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주님께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그 말씀 주신 것을 마음에 품고 지금까지 쓰레기 줍는 사역을 하고 계신 유영규 집사님. 이 분은 신명교회 다니시면서 그리망 무역 회사 사장님이신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강서구에 있는 개화산과 치현산 일대에 있는 쓰레기를 줍습니다.
그 배경은 이러합니다. 결혼했는데 아이가 없었어요. 기도하는 가운데 8년 동안 아이가 없었는데 시험관 시술로 아들을 낳고 나서 ‘내가 무엇을 할까.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는데 내가 어떻게 해서 이 동네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새벽기도가 끝난 후부터 그 동네를 다니면서 그 개화산 일대를 다니면서 비닐봉지에 집게 쇠꼬챙이를 들고 쓰레기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오년만 하려고 했는데 12년을 하게 됐고요, 무거운 쓰레기를 옮기다가 무리가 와 탈장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불평하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감사한 마음으로 쓰레기를 주워서 온 동네가 깨끗해졌습니다.
개화산과 치현산 일대가 깨끗해졌고, 처음 그를 오해하던 사람이 지금은 그를 환경 대통령이라 부르며 존경합니다. 쓰레기 줍다가 산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신고해서 구해내기도 하고 2011년부터는 손양원 목사님 그 모습에 감동받아서, 추석 때면 여수에 내려가 애양원 일대의 쓰레기를 줍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얘기합니다.
“처음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을 때는 저를 ‘이상한 쓰레기 아저씨’라며 쳐다보더니, 365일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마다 쓰레기를 줍자, ‘쓰레기 선생님’, 몇 년 지나자 ‘쓰레기 박사님’, 십여 년이 넘은 지금은 ‘환경 대통령’이라고 부른답니다.”
2008년에는 하나님 은혜로 딸까지 낳게 되고 그의 선행이 중동에도 알려집니다. 중동 바레인에 출장을 갔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나가서 숙소 주변에 쓰레기를 줍는데, 이것을 우연히 바레인의 기자가 보고 뉴스에 내보냈습니다. 쓰레기 때문에 몸살을 앓던 중동인들에게 타국인의 자발적인 선행은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바레인 사람들이 말합니다.
“당신의 성실함과 겸손함, 이 아름다운 모습은 젊은이들의 진정한 롤 모델이 될 것입니다.”
그의 동영상은 youtube에 백오십만 회 이상 조회되고 일약 중동의 스타가 됩니다. 이게 뉴스에 나온건데요. 중동 22개 국가에서 그의 쓰레기 줍는 영상을 뉴스로 방영을 했고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를 여러 번 방영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VIP대접을 받으며 바레인에 초청되어서 바레인 정부로부터 환경 캠페인에 참여할 것을 요청받고, 태극기와 한국어, 아랍어로 된 쓰레기 줍기 표어가 적힌 표지판을 바레인 시내 곳곳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슬람국가에요, 그런데도 당당히 나는 기독교인인데 새벽마다 당신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당신들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하니까, 핍박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캠페인을 계속 벌여달라고. 그래서 온 중동지역에 쓰레기 줍기 캠페인을 벌이게 되었는데요.
사실 젊은 시절 리비아에 건설노동자로 10년 동안 일했을 때 글도 모르고 고생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위해 야간학교를 만들어서 글도 가르쳐주고, 덕분에 많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개종하여 한인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게 되었고요. 회사에서 준 10년 치 위로금을 귀국길에 선교사에 주어 헌금하기도 합니다.
새벽기도를 한 후에 쓰레기를 줍는 그는 고백합니다.
“저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에 따라 섬기기 위해 쓰레기 줍기를 시작했습니다. 교만해지지 않고 변함없이 이 일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약 7만 8,000여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믿음 생활을 하는 분들께서 각 교회 주변의 쓰레기만이라도 묵묵히 줍는다면,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동참해주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후로 우리 교회 주변 여의도 일대 쓰레기들이 다 없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냥 가지 마시고 쓰레기 줍고 가시기 바랍니다.
3. 공의와 정직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예수님께서 셋째로 이 땅에 오셔서 공의와 정직을 통하여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이사야 11장 4절, 5절입니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예수님은 사랑의 예수님이시면서 동시에 공의의 예수님이십니다. 공의의 예수님이란 건 뭐냐. 사랑의 눈으로 잘못 된 것을 바로잡는 것을 말합니다. 자식이 삐뚤어진 길을 갈 때 내버려둘 부모는 하나도 없습니다. 야단을 쳐서 바로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어릴 때 잘못할 때 그냥 내버려두면, 세 살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고, 어릴 때 손버릇 나쁜 애가 나중에 커서 도둑이 되고 전과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했을 때는 사랑의 마음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주님은 다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당시 사람취급 받지 않던 세리와 창기들이 주님 앞에 나올 때 사랑으로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하고 거룩, 거룩하면서 속은 죄와 탐욕으로 가득했던 종교지도자 바리새인들을 주님이 책망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겉으로는 너희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지만, 진정한 그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고 이중 인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너희들의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주님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성전의 장사꾼을 내어 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바로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여러분, 주님의 사랑의 사도가 되어서 온유와 겸손의 마음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아가서 성실해야 됩니다. 예배에 성실해야 되고 직장에서 성실하고 내 사업장에서 성실해야 됩니다. 절대로 게으른 사람이 성공할 수 없어요. 회사의 CEO들은 그 회사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되요. 어디 있든지 간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그리고 우리가 받은 복을 이웃에게 나누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0절, 11절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할렐루야. 시편 1편 6절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러분 주위에 악한 자들이 활개치고 다닙니까? 여러분, 그 길은 망하는 길입니다. 잡초가 빨리 자라잖아요? 단칼에 베어버리면 다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곡식은 오래 자랍니다. 알곡이 익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잡초는 거름을 안 줘도, 씨를 뿌리지 않아도 잘 자라요. 아스팔트도 뚫고 나가고. 또 강해요. 그러나 때가 되면 심판의 칼에 단번에 베어져서 불쏘시개가 되는 것처럼 지옥의 불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온유와 겸손한 마음으로 잘못된 사람들을 바로잡고 주님을 섬기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4. 평화의 나라를 가져오신 예수님
마지막 네 번째로 주님은 이 땅에 평화의 나라를 가져오셨습니다. 평화의 나라를 가져오신 예수님. 이사야 11장 6장과 8절, 주님이 이 땅에 가져오신 평화의 나라를 설명합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평화의 나라가 임하면 맹수에게 있던 모든 사나움이 다 사라져버리고, 아마 이빨도 뭉뚝하게 해주실 것 같아요. 틀니 한 것처럼 물어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 그렇게 만들어주실 거고. 독사에게도 독을 빼가지고 이빨도 없어서 어린 아이들이 손을 집어넣고 해도 그냥 간지럼 피는 것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만들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것이 진정한 평화입니다. 독이 사라지는 것, 악이 사라지는 것, 미움이 사라지는 것, 분노가 사라지는 것, 이와 같은 참된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 마음속에 독이 빠지게 하시고, 미움이 사라지게 하시고, 분노가 사라지게 하시고, 주님의 평화와 사랑이 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부활하신 날, 그 날 밤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거듭거듭 말씀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장 19절을 보면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할렐루야. 이게 샬롬입니다. 샬롬, 샬롬. 주여, 이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미얀마 난민들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의사이자 인권운동가인 신시아 마웅 여사를 소개합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데요. 미얀마의 양곤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집 옆 병원에서 근무하던 중에 미얀마 군사정권시절에 지식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하는데, 1988년 진료가방 하나만 들고 국경지대인 메솟으로 망명합니다. 이곳에 군사독재를 피해서, 굶주림을 피해서 건너온 100만 명의 난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그 다음해 작은 집에서 메타오 병원을 운영하면서 27년 동안 무료로 저들을 고쳐주고 있습니다. 헌신적인 노력으로 현재 메타오 병원은 17개 부서 약 400여 명의 의료인원을 가진 대형병원으로 발전했는데요. 하루에 400에서 500명, 연간 십사만 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습니다. 다 무료로 고쳐줘요. 무료로. 작년 한해 통계만 해도 그 병원을 통해서, 1년에 난민들이 와서 천막에 사는데 3천 명의 아이가 태어났고요. 2백 명에게 의수와 의족을 달아줘서 손과 발이 없는 사람들의 편의를 제공했고.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 2천 명 개안수술을 했고요. 그 난민 가운데 3백여 부족이 섞여있는데 그들을 누구고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을 베풀고 있어요. 그리고 현지 의료 종사자들, 간호사들을 교육시켜서 그 질병에 속수무책인 지역으로 파송해서 그들을 치료해주고 난민들을 위한 학생들, 자녀들 학교도 운영합니다.
이 때문에 미얀마 정부에서 반정부인사로 이렇게 분류가 돼서 미얀마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장례식도 가볼 수 없었고, 가족들을 만나보지도 못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이 주신 사명인 걸 알고 최선을 다해서 섬기고 있습니다. 말씀합니다.
"누구나 가족을 그리워하겠지만, 저만 겪는 고통은 아닙니다. 많은 난민이 부모를 잃거나 형제의 생사조차 알 수 없어 고통스러워합니다.“
그의 난민을 향한 열정과 헌신이 인정받아 2005년 노벨상 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2002년에는 아시아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탔고, 2008년에는 아웅산 수지 여사와 함께 카탈로니아 국제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 유명한 10여 개의 인권상을 받기도 합니다. 14살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그녀가 고백합니다.
“14세 때 침례를 받은 후 기독교 신앙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서로 사랑하는 것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된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평화와 정의가 없으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약자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지켜주고 그러한 삶을 살게 하는 것,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도록 돕는 것, 이것이 제 신앙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방법이며, 신앙인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모두 이분처럼 평화의 사도, 사랑의 실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령님과 함께 공의를 행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시며 사랑과 평화를 이 땅에 가져오신 것처럼 여러분 모두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공의를 행하고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이 땅에 희생하러 오셨는데, 섬기러 오셨는데 주님 우리는 반대의 삶을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희생보다는 내가 무엇인가 나의 유익을 위해서, 섬김보다는 섬김을 받기 위해서, 낮아짐보다는 높아지려고만 해서 교만의 모습으로 살았던 저희들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한번뿐인 인생. 살아가는 동안 이제는 사랑의 실천자로,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는 자로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