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4055]소총(篠叢)洪裕孫홍유손-題江石[제강석]
題江石[제강석]-강가의 돌에 쓰다.
洪裕孫[홍유손]
濯足淸江臥白沙[탁족청강와백사]
맑은 강에 발 담그고 흰 모래에 누우니
心神潛寂入無何[심신잠적입무하]
심신은 고요히 잠겨들어 무아지경일세.
天敎風浪長喧耳[천교풍랑장훤이]
하늘 전한 바람과 물결 귀에 늘 시끄럽고
不聞人間萬事多[불문인간만사다]
인간세상 많고 많은 일들이 들리지 않네.
題江石[제강석]= 강가의 돌에 쓰다.
소총(篠叢)= 洪裕孫[홍유손]의 호.
篠=조릿대 소. 叢총= 떨기. 풀이나 나무 등의 무더기.
총박(叢薄) : 무성한 초목(草木).
나무는 총(叢), 풀은 박(薄)이라 한다.
총망(叢莽) : 우거진 풀숲.
총림(叢林) : 관목(灌木) 무더기.
총죽(叢竹) : 대나무 숲.
洪裕孫=99세,출생1431(세종 13)- 사망 1529(중종 24)
濯足탁족= 발을 씻음
臥白沙(와백사)=흰모래에 누우니
潛寂 잠적= 고요히 잠겨들어
入無何(입무하)=무아지경일세
敎=가르칠 교.. 속자(俗字)教.
風浪 풍랑= 바람 소리 물결소리
喧훤= 떠들썩할 훤, 울어댈 훤
원문=篠䕺遺稿 下 / 詩
題江石
濯足淸江臥白沙。心神潛寂入無何。
天敎風浪長喧耳。不聞人間萬事多。
홍유손(洪裕孫)이라는 천민 출신의 문인은
99세까지 장수를 누린 조선 전기의 학자 홍유손(洪裕孫)은
국화가 늦게 피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하면서
너무 이른 성취를 경계하는 정신을 공부하였다.
출세가 늦다고 불평을 한 후학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국화가 늦가을에 피어 된서리와 찬바람을 이기고 온갖 화훼 위에
홀로 우뚝한 것은 빠르지 않기 때문이라오.
세상 만물은 일찍 이루어지는 것이 오히려 재앙인 법이지요.
빠르지 않고 늦게 이루어지는 것이 그 기운을 굳게 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이겠소? 서서히 천지의 기운을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억지로 정기를 강하게 조장하지 않으면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취되기 때문이 아니겠소?
국화는 이른 봄에 싹이 돋고 초여름에 자라고 초가을에 무성하고
늦가을에 울창하므로 이렇게 되는 것이라오.
대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이와 무엇이 다르겠소.
옛사람들이 일찍 벼슬길에 올라 영달하는 것을 경계했던 까닭도
이 때문이라오."
홍유손은 국화를 두고 조숙(早熟)보다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이
중요하다는 공부를 하였다.
빠른 성취를 이루려다 낭패를 당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화를 보고 오히려 그 늦은 성장을 배울 일이다.
하나 더, 국화의 노란빛을 보고도 공부할 것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화는 여러 가지 빛깔이 있지만
그래도 노란빛을 정색(正色)으로 한다.
황색은 중정(中正)과 중화(中和)의 상징이다.
임금이 황색의 옷을 입는 뜻이 여기에 있다.
조선의 선비들도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정신을
국화의 황색에서 배우고자 하였다.
이 땅의 고단한 백성을 다스리는 분들은 이 가을 국화를 보고
이리저리 배울 점이 많을 것 같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九十에 아들을 얻은 處士 洪裕孫
惠莊大王朝, 處士洪裕孫, 年九十無室. 爲後嗣求妻, 媒軀行莫不梃棒而毆之. 有一處子, 謂其父母曰 : 「雖嫁夫一日而孀, 願爲賢者妻.」 父母許之.
혜장대왕조, 처사홍유손, 연구십무실. 위후사구처, 매구행막부정봉이구지. 유일처자, 위기부모왈 : 「수가부일일이상, 원위현자처.」 부모허지.
[解釋] 혜장대왕 때의 처사 홍유손은 나이 90이었는데, 아내가 없었다. 후사를 위해 처를 구했는데, 중신할미는 가는 곳마다 몽둥이에 얻어맞거나 구박을 받았다. 어떤 처녀가 그 부모에게 말하기를, 「비록 시집가서 하루 만에 과부가 된다 할지라도, 현명한 사람의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고 하니, 부모가 허락하였다.
裕孫九十生子, 名志成, 博學多聞, 爲世聞人. 訓後進, 達官多出其門. 至昭敬大王朝丁酉年, 年近八十而終, 兩世八九朝, 歷年殆二百載, 豈不異哉? 一說八十六娶, 生二子, 志成第二子云.
유손구십생자, 명지성, 박학다문, 위세문인. 훈후진, 달관다출기문. 지소경대왕조정유년, 연근팔십이종, 양세팔구조, 역년태이백재, 기불이재? 일설팔십륙취, 생이자, 지성제이자운.
[解釋] 홍유손은 90세에 아들을 얻어, 이름을 지성이라고 하였는데, 박학하고 아는 것이 많아 세상에 유명하였다. 그는 후진을 가르쳤으며, 그 문하에서 현달한 관리가 많이 배출되었다. 宣祖 때 정유년에 이르러, 나이가 거의 80이 되어 죽으니, 두 세대가 여덟아홉 임금이 바뀌도록 거의 200년을 지냈으니, 어찌 기이 하지 않은가? 일설에는 여든여섯에 아내를 얻어, 아들을 둘 낳았는데, 지성은 둘째 아들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