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정일우」와「로마서 8:37」
최 화 웅
깊어가는 가을에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부산 최초독립영화전용관인 36석의 아담한 ‘인디플러스’에서 10월에는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김동원 감독이 연출한 아일랜드계 미국인 신부(John Vincent Daly·1935~2014)에 관한 스토리,『내 친구 정일우』를 보았고 11월에는 우리 모두는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죄악과 나 자신의 죄를 직면하는 인간”을 연출한 신연식 감독의『로마서 8:37』이다. 영화사전에는 다큐멘터(documentary) 는 “허구가 아닌 사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현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기록영화로 풀이하고 이 영화들은 실제 사람과 공간뿐만 아니라 사건과 행동들에 관심을 갖게 했다. 영화에 현실을 넣으려는 행위는 현실을 어느 정도 바꾸어야만 하고, 현실로부터 선택한 것에 형태와 형식을 부여해야만 한다.”고 덧붙인다.
한 편의 영화는 ‘진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성직의 길을 벗어나 금품문제와 잇단 성추행으로 말썽이 된 교회목회자에 관한 기록영화다. 다음은 ‘가난뱅이가 세상을 구한다.“는 믿음으로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려고 했던 프랑스에 본원을 둔 예수회 소속 신부님의 행동하는 양심을 담았다. 아울러 한국교회에는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세속의 죄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올해도 어느 틈에 대림시기를 맞았다. 교회력으로는 대림 제1주일이 새해의 첫날이다. 대림(待臨)은 글자 내로 보면 그 의미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이지만 신앙적으로는 그냥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옷깃을 여미고 ’깨어 기다린다.‘는 의미다. 라틴어 ’앗벤투스(Adventus), 즉 도착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대림시기는 성탄절 전의 4주간이다. 그동안 교인들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스께서 하늘을 찢고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며 회개와 속죄의 새로운 다짐으로 거룩한 성탄절(크리스마스)을 맞으려는 마음이다. 이 좋은 때를 앞두고 본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우리 모두의 인생을 성찰하고 거듭 태어날 은총의 시기이었다.
지난 10월 26일 개봉한 다큐멘터리『내 친구 정일우』의 주인공인 정일우 신부님이 선종하지 3년 만에 제작한 영화다. 고(故) 정일우 신부님은 1935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나 예수회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한국으로 귀화한 그는 군부독제시절 예수회가 세운 서강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였을 때는 유신철폐 데모를 하다 끌려간 학생들을 위해 1인 시위를 하는 등 정의사회 구현에 앞장서는 현실참여를 서슴치 않았으며 한국인으로 귀화한 그는 우리에게 ‘복음을 입으로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1973년 청계천에서 생활하는 도시 빈민의 현실을 체험하게 된다. 그 뒤 88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도시환경정비의 일환으로 쌍계동 빈민촌 철거 당시 도시 빈민과 함께 먹고 자며 투쟁했던 행동하는 성직자의 삶을 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 가슴 어디선가에 자리 잡고 있던 학창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1986년 제정구 전 의원과 함께「막사이사이상」을 공동수상한 뒤 1994년부터는 충북 괴산 청천면에 ‘예수회 누리 공동체’를 이루고 농부로 살았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작이기도 한『로마서 8:37』은 11월 16일 개봉한 종교 다큐멘터리다. 종교개혁 500주년기념작으로 ‘자신도 모르는 우리 모두의 죄를 마주하게 하는 영화로 수많은 종교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개신교 성경 로마서에서는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 번역하였고 천주교의 성경은 바오로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통해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라고 번역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 모든 것‘이란 죽음과 삶도, 권위와 권세도, 현재와 미래, 권능까지를 일컫는 말이다.『로마서 8:37』에서 신연식 감독은 “이 영화를 제작한 목적은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공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평신도인 우리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바라볼 수 있는 담론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저 또한 끊임없이 흔들리고 두렵고 괴롭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는 의심을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바라보고 진정한 나를 알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라는 말을 제작노트에 남겼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추잡한 교회기득권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대림 제1주일 독서에서 우리 주님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시기를 청하면서 ”주님, 어찌하여 저희를 당신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십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나 영화『로마서 8:37』은 고발성 영화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죄악을 비추며 자신의 죄를 바라보게 한다. 전도사가 된 교회청년회장 출신의 ’기섭‘은 자신의 우상인 형 ’요섭‘을 돕기 위해 부순 교회의 간사로 일하며 목사안수를 준비하는 중 ’요섭‘을 둘러싼 무수한 의혹을 부정하던 인물을 찾아내기 위해 교인명부를 정리하면서 성추행 의혹의 피해자들과의 발굴과 대화를 통해 사실을 확인한다. 목회자는 믿음으로 죄을 기피한 채 숨기고 감추려고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죄인이고 기독교 신앙인이든 아니든 그 누구도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한국 사회와 기독교계가 가면을 쓴 채 어떻게 그토록 깊고 짙고 넓게 번진 변칙과 부정부패로 찌들었는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추잡한 교회 기득권에 맞서는 평신도의 시각은 거짓된 믿음으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쓰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놀라는 우리에게 이해와 용서를 요구하는 긴 여운을 남겼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삶을 돌아보며 간절한 참회의 기도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