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우리나라에서는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하여 동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신앙 공동체를 형성한 것을 한국 천주교회의 출발로 보고 있다. 그러나 초기부터 모진 박해를 겪었고, 박해는 신해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100년 이상 계속되면서 수많은 순교자를 냈다.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의 순교자들 가운데 103위가 1984년 성인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9월 26일에 지내던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을 9월 20일로 옮겨,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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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루카9,23-26)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save it
말씀의 초대 지혜서는 의인들의 삶에 대하여 말한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고난으로 생각되며, 파멸로 여겨지고, 벌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다. 그러므로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시기 때문에,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모두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하신다.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신 주님을 따르는 길이 곧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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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한국 천주교회는 하느님의 섭리가 순교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다시 신앙 선조들의 순교자적인 영성을 기억해 봅니다. 특히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에서는 박해 시대 때 순교한 분들을 발굴하여 시복 시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하루빨리 시복 시성될 수 있도록 기도와 관심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시고, 또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십니다. 이 땅에는 주님 때문에 치명한 순교자들이 참으로 산을 이루고도 남습니다. 그 많은 순교자들은 생명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증언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아낌없이 내놓으신 분들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러한 순교자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숭고한 신앙 정신을 기억하고, 그들의 모범을 따르고자 노력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서 그분들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낍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구성원인 우리 각자는 순교자들의 신앙적 용기와 결단을 본받아, 이 시대에 참된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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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선교하던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제자였던 ‘로드리고’ 신부는 사실 확인을 위해 일본 선교를 지원합니다. 잠입에 성공하지만, 그 역시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진 ‘성화’를 밟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로드리고 신부는 조용히 거절합니다. 하지만 그가 거절할수록, 그의 신자들은 더욱더 참혹한 고문을 받습니다. 자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교우들을 보면서 신부는 고뇌에 빠집니다. 배교해서 죽어 가는 그들을 살려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신앙을 위해 그들의 처절한 죽음을 묵인해야 하는가? 어느 것이 참된 사랑인가? 고뇌의 늪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그에게 예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한다. 밟는 네 발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다.’ 로드리고의 말이 이어집니다. ‘주님, 당신의 침묵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너와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다.’ 마침내 로드리고는 성화를 밟습니다(후미에).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선택한 것입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면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자신의 뜻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계획’보다 주님의 ‘이끄심’을 먼저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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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는 말씀이다.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일깨워 준다
하느님의 신비는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절의 변화 앞에서, 복잡한 일상사에서 그분의 신비를 체험합니다. 그냥 지나치면 평범한 일로 여겨지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 그분 힘이 닿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일을 인간적 계산만으로 파악하려 들면 힘이 듭니다. 은총이 들어올 틈새가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은 하느님의 뜻으로 인정하기 쉬우나, 궂은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짊어지라고 하신 십자가는 무엇이겠습니까? 하기 싫은 그 무엇입니다. 또한, 하고 싶지만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러한 십자가는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과연 망설임 없이 십자가를 질 수 있겠습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십자가 앞에 선뜻 나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순교자들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들을 기리며 그분들의 삶을 본받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일이 그만큼 힘들다는 가르침입니다
왜 우리는 자랑하지 못합니까?
손용환신부-
성인의 자손
저는 성인의 자손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성 손선지 베드로입니다. 그분은 1820년에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 괴인돌(현 지석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분은 17세 때, 샤스탕 신부에 의해 전라도 전교회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순교할 때까지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1886년 추수 때, 그분은 천주교인에 대한 수색이 심해졌다는 소문을 듣고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곡식을 키로 까불어서 검불과 분리시키는 것처럼 천주께서도 박해 때에 그렇게 하시는데, 나 같은 사람을 천주께서 당신 곳간에 받아 주실까?”
1866년 12월 5일, 전주지방의 교우촌이었던 대성동 신리골에 포졸들이 습격했고, 그분은 체포되었습니다. 그분은 사형집행 전날 함께 갇혀있던 김사집 필립보에게 입던 웃옷을 벗어 주며 말했습니다. “나는 내일이면 죽으러 가네. 죽을 사람에게 이 옷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옥에 남아 있을 자네 옷이 시원찮아 추울 테니 자네가 입게.”
그분은 1866년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 그분은 죽으면서도 예수 마리아를 끊임없이 외쳤고, 희광이의 칼이 두 번 빗나가자 칼을 가지고서 장난하지 말라며 꾸짖으며, 세 번째 칼에 목이 끊어져 순교했습니다.
그분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처형장에서 얼마 안 떨어진 부엉바위 아래에 가매장되었고, 이듬해 3월 6일 천호성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분은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분의 자손임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겸손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제가 그분의 삶을 본받지 않아서입니다. 그분은 목숨보다 신앙이 소중함을 증명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분은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 목숨을 구한 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을 위해 아무것도 바치고 있지 않기에 그분을 자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제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입니다. 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물었습니다. “나 죽으면 어디 가.” 사제인 제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하늘나라에 간다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할아버지 계신 곳에 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부연설명을 하시더군요. “당신의 아버님은 신앙적으로 훌륭한 분이셨고, 당신 아버님의 할아버지께서는 성인이시니까 천국에 계시고, 당신도 착하게 사신 분이니까 하늘나라에 가실 거예요.”
만일 제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확신했다면 그렇게 대답했을까요?
만일 제가 신앙이 생명보다 귀하다고 믿는다면 성인의 후손임을 자랑하지 않을까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루카 9,26)라는 그분의 말씀이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성인의 자손임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제가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저는 누구입니까? 성인의 자손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103위 순교성인들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것을 자랑하지 못합니까?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서 8,35.37)
성인들은 확신했습니다. 삶도, 죽음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그들을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도 확신합시다.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들을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 임숙희-
시작 기도 하느님, 아빠 아버지, 성령의 이끄심으로 세례로 부름 받은 ‘제자의 길’?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충실히 가게 해주소서. 독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후?(루카 9,?18???21) 예수님은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당신이 겪어야 할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22절) 이 예고가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23절, 26절)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가르치는 오늘 말씀의 배경을 이룹니다. 첫째, 누구든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려면 먼저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9장 23절에서 예수님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왜 먼저 ‘자신을 버리라.’?고 가르치시는지 생각해 봅니다. ‘버리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avrne,omai)?는 문자 그대로는 “‘아니요’?라고 말하다, 부정하다, 거부하다”?라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 동사의 목적어는 ‘자신’?입니다. ‘자신’?에 대해 강하게 도리질하며 ‘No?!’?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을 어떤 협상을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 전적으로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버리는’ 목적은 단순히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도움이 될 좋은 일을 하겠다는 인간적인 동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바로 이어서 나오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자신을 버린다.’?는 것이 그리스도와 관련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예수님이 갔던 것과 똑같은 방식의 길, 그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길을 제자들도 똑같이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정한 시대에 교회가 박해 당할 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순교의 길을 택한 사람들한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누구든지’)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 받고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모두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분과 함께 ‘무덤에 묻히는’?(로마 6,?4 이하)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 그 외에 다른 제자직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누구든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려면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26절) ‘부끄럽게 여긴다(evpaiscu,nomai)’?라는 동사는 초대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 고백과 관련되는 말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의 사도직과 자신의 삶의 표어처럼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서두에서 소개합니다.?(로마 1,?16) 바오로의 굳은 확신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예수님에 대하여 자신이 갖고 있는 체험을 당당하게 증언하고, 나아가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2티모 1,?8)?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영광에 싸여 다시 오실 때, 지금 우리의 인간적인 사고로는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분과 함께 빛나는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지상에서 온갖 박해와 시험 가운데에서도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그분을 믿고 그들의 운명을 걸었기에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서 살 것입니다.” (지혜 3,?9) 오늘 제2독서에서?(로마 8,?31?ㄴ??39) 사도 바오로의 말씀은 ‘제자직’?에 대한 오늘 복음 말씀이 실현하기 힘든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생애 내내 수많은 고통과 시험을 당하며 사도직분을 수행했던 바오로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을 버리고’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지면서’ 자신을 남김없이 “비우신 분”?(필리 2,?7)?을 따랐던 자신과 다른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을 우리와 함께 나눕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그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6???39)
성찰 하느님, 매일 맞닥뜨리는 온갖 형태의 죽음 앞에서, 인간적인 한계와 마음의 어두움의 시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삶으로 가는 변형 과정이라는 것을 믿기에 그 모든 어려움에도 저는 이 밤에 바오로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찬미하겠습니다.
기도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 126,?5???6)
세상의 사막에서
꿋꿋이 신앙을 전파한 순교성인들
-양해룡신부-
언젠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 수사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몇 년 동안 미국 남서쪽의 어느 사막 한가운데 있는 수도원에 살면서 진정한 수도승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디비디(DVD) 하나를 주었습니다. 다름 아닌 그가 살고 있는 사막 수도원의 전경과 하루 일과,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수도승들의 모습 등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아직도 저런 곳이있구나!’ 저는 감탄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고독한 모습 속에 기도와 노동으로 세상을 정화시키는 수도원의 모습이 정겨웠습니다.
세상과 스스로 격리된 삶, 고독과 적막 속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막 한가운데의 수도승 삶은 현재 우리의 생활과는 꽤 다른 삶이었습니다. 그 후 일 년 정도가 흐른 뒤, 그에게서 메일 한통이 전해 왔습니다. 사막 체험 3년을 마치면서 사막은 공간적이고 지리적 사막이 아니라, 마음의 사막이라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국 수도원으로 와서, 또 다른 사막에서의 삶을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은 얼마든지 고독하고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사막에서 주님께 바치는 기도는 참으로 절박하고 힘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한국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순교자들도 역시 당시 박해라는 고독과 고난의 사막체험을 뼈저리게 했습니다. 그들은 박해하는 자를 피해, 산골짜기에서 옹기를 구워 생기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묵묵히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박해라는 사막에서 그것을 피하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사막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서슬 퍼런 칼날 속에서도 순교자들은 신앙을 전파하였습니다. 친척들을 입교권면하고, 나아가 촌락을 선교하여 ‘교우촌’을 형성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자녀들에게 구전으로 “성경직해”, “천주가사”의 교리를 가르치면서 굳건한 신앙을 이어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박해라는 사막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수도승처럼 사막 속에서 살면서 고독을 인내하며 하느님을 찬미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 수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마음의 사막”이 오늘날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박해입니다. 세상살이 속에서 체험되는 고독과 소외 그리고 아픔 등은 우리의 사막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피하기 위해 주님께 기도합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그 속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박해시기에 그것을 피하지 않고, 신앙 전파에 온 힘을 쏟으신 순교자들처럼 말입니다. 세상의 고독과 아픔이라는 사막 속에서 우리는 더욱 하느님을 찬미하고 더욱 열심히 전교하여, 우리 신앙을 빛내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미국의 사막에서도, 박해라는 사막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만 체험되고 아파하는 사막이 아니라, 나를 위안하고 보호하는 수도승들의 공동체가 있었고, 같은 신앙을 나누었던 선조들의 신앙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그 사막에서 주님께 의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현대의 사막에서 나 혼자 느끼는 적막감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와 함께 그 사막속에서 주님을 체험하고 만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공동체 속에서 주님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명품 신앙인
-전삼용신부-
요즘 직장도 없으면서 2억짜리 목걸이를 비롯해 몸에 4억 명품을 휘감고 다닌다는 소위 ‘명품녀’가 항간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명품녀는 자신이 치장하고 다니는 비싼 명품들을 정말 자랑스러워하고,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먹이며 자신의 사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부러우면 부럽다고 솔직히 말하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부자여서 자신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운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에선 무엇이 가장 자랑스러울까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지니신 것 중에 버리지 않고 하늘나라까지 자랑스럽게 지니고 올라간 것이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하시는 당신의 ‘다섯 상처’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도 당당히 이 다섯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상처를 누구와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의 유일한 명품은 순교의 상처들이기 때문입니다.
이태리 라떼란 대성전에 가면 베르니니가 조각한 열 두 사도들의 동상이 커다랗게 기둥마다 장엄하게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리석을 비누조각처럼 다룬 베르니니의 솜씨를 감상하다가 문득 열두 사도가 각자 들고 있는 물건들을 보게 됩니다. 요한은 물론 복음서를 썼고 늙어서 돌아가셨고, 토마스 사도는 기술자였기에 자를 들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자신들이 죽을 때의 수난도구들을 들고 있습니다. 사실 요한도 끓는 기름에 던져졌었고, 토마스 사도도 순교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 중 순교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각자의 명품인 칼, 톱, 방망이, 엑스 십자가 등을 들고 있습니다. 그것들로 순교하여 그리스도와 비슷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명품에는 비길 수 없지만 하늘나라에서 가장 자랑스러울 것은 믿음 때문에 당한 희생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언제까지 부러워할 수만은 없습니다. 한 인생 사는데 자신의 인생을 좋은 명품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말 세상에서 명품의 삶을 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축구 황제 펠레가 찍어 놓은 발 프린트와 그의 사인과 함께 사진을 찍고 왔습니다. 명품의 삶을 산 사람들은 발 프린트도 귀한 명품이 됩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명품 운동선수도 있고, 예술가도 있고, 건축가도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입니다. 왜 우리만 평범하게 살아야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 능력의 한계에 부딪힙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공부를 골고루 다 잘 했었는데, 늘 성적표에 ‘미’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미술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린 그림이 교실 뒷면에 걸리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미술에 재주가 있는 아이들은 뭐를 그려도 그렇게 잘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저보다 그림을 잘 그렸던 친구 중에 위대한 화가가 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그림을 잘 그리는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 되어있겠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저는 아르헨티나에서 조각가요 화가로 활동 중이시고 아직도 꽤나 유명하신 김윤신 자매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수수한 그 모습에 그렇게 유명한 분이신 줄 몰랐습니다. 그 분이 직접 당신 미술관에서 당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시는데 당신 예술의 주제는, “분이분일(分二分一) 합이합일(合二合一)” 혹은, “팽창과 응축, 집중과 확산”이라고 하셨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삼위일체나 영혼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여 그것의 신학적인 면을 설명해 드렸더니 당신이 표현하시려고 하시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고 좋아하셨습니다.
미술에는 전혀 재능이 없던 저였지만, 세계적인 예술가와 말이 통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였습니다. 다른 것에 아무런 재능이 없더라도 하느님의 진리를 깨달아간다면 모든 위대한 분들과도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세상 모든 것은 하느님의 진리 안에 있고, 인간이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그 진리를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인간적인 능력엔 한계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도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노력하면 그것은 절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에디슨이 98%의 노력과 2%의 영감으로 그 수많은 발명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분명히 하느님께로부터 그런 재능을 더 받았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재능이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명품이 되려면 미친 듯이 노력해야합니다. 옛날 영화 ‘샤인’일 보셨을 것입니다. 주인공은 피아노에 미쳐서 피아노를 정신없이 치다가 밖으로 나오는데 자신이 바지를 입지 않고 윗도리만 입고 나온 것을 모릅니다. 자신을 보고 놀라는 동네 아주머니를 보고 자신이 나체로 밖에 나왔음을 알아차립니다. 무엇에 미친다는 것은 이만큼 자신의 일에 몰두하여 다른 것은 신경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두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재능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이클 조단은 농구의 천재였습니다. 농구를 그만두었을 때 미국의 주가가 급락하였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는 골프를 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골프실력도 대단해서 조금만 열심히 노력하면 천재적인 운동감각으로 타이거 우즈와 같은 위대한 골프선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골프계에서 조단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골프에만 전념해 온 사람들을 이길 수는 없나 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재능도 있지만 그 재능을 명품으로 만드는 노력의 한계도 있다는 뜻입니다. 김연아가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이면서 동시에 박태환과 같은 세계적인 수영선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박태환이 지금 피겨를 시작하여 김연아와 같이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분야에만 전력을 다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명품이 되려면 한 분야에 미쳐야합니다. 저도 제 마음 한 구석에는 ‘세상에 한 번 태어나고 단 한 번 사는 것이라면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세상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사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사제로서 갖추어야 하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주셨다고 생각하고, 저도 다른 것보다는 이 분야에 재능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그 일을 위해서 미친 듯이 모든 힘을 다 쏟고 있는가?’를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직도 기도하다가 테니스 치는 생각을 하고 영화보고 텔레비전보고 인터넷 하는 등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음을 봅니다. 나의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많이 흘러가고 있으니 나의 분야에서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일은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백삼위 순교성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신앙에 목숨을 거셨던 분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가족도 재산도 명예도 또 목숨까지 버리셨던 분들입니다. 그만한 열성이 있으셨기에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또 교회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만큼 그분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영원한 걸작으로 남기고 가신 분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위대한 걸작 인생을 살았더라도 구원받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늘나라에서 걸작은 성인들뿐입니다.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히 남을 걸작 인생을 살아갑시다. 성 프란치스코나 마더 데레사처럼 자신이 위대한 작품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것에 눈 돌릴 여지도 없이 신앙에 미쳐야합니다.
유대철 베드로는 어린 나이에도 배교를 강요하며 그의 입에 붉은 숯덩이를 들이댈 때 당당히 입을 크게 벌렸습니다. 이것이 영원한 걸작입니다. 휘광이가 어머니를 한 칼에 자르자 자신들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위로 집어던지며 네 아이는 기뻐합니다.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가 천당 갔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걸작입니다. 많은 재능을 지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회유하려하지만 당당히 죽음을 택합니다. 이것이 걸작입니다.
우리가 가장 부러워해야 하는 영원한 걸작의 삶은 바로 우리 성인들의 삶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양승국신부-
<눈물로 쓴 편지>
저희 살레시오회 회원 가운데 중국에 선교 오셨다가 순교하신 두 분의 회원이 계십니다. 베르실리아 주교님과 카라바리오 신부님이십니다.
두 분 가운데 카라바리오는 아주 젊은 나이에 순교하셨습니다. 갓 스물이 넘은 신학생 시절, 아직 앳되고 감성이 풍부하던 한 젊은이가 고향땅을 등지고 이역만리 떨어진 중국으로 떠나왔습니다.
큰 바다를 건너오던 배위에서, 도착해서, 낯선 언어를 배우느라 고생하면서, 나름대로의 작은 성취에 행복해하면서, 카라바리오는 사랑하는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그가 순교한 이후 수도회에서는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영적독서로 그 책을 읽게 되었는데, 정말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젊은 선교사는 어머니께 보낸 매 편지 말미에 언제나 작별인사를 했는데, 그냥 작별인사가 아니라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멀지 않아 다가올 죽음을 예견이라도 했었는지, 편지마다에는 “사랑하는 어머니, 천국에서 만나요.”라는 인사가 적혀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순교자 대축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우리 땅에 오셔서 순교하신 선교사들의 삶과 죽음도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조선 선교사 파견’이란 말은 ‘예견된 죽음’이란 말과 동의어였습니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의 길과 100% 일치하는 길이었습니다.
파리 외방선교회 본부를 떠나오면서 그들은 미리 부모님들께 마지막 하직 인사를 올렸습니다. 동료사제들과 주교님께 힘찬 포옹을 건네면서 용기를 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장한 각오로 유서를 남기고 그렇게 한국 땅으로 건너오셨습니다.
이 땅의 순교 성인들, 그들은 오랜 박해의 나날들, 눈물로 열심히 씨를 뿌렸습니다. 결국 멀지 않아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환호하며 곡식을 거둘 것을 확신했습니다.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그들, 승리를 향한 여행길이 너무나 험난하고 고통스러웠지만, 오래 가지 않아 눈물길은 향기로 가득 찬 꽃길로 변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특별한 인생,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버림받은 인생으로 비춰졌겠지만 사실 그들의 나날은 ‘지상천국’이었습니다. 살아서부터 하느님을 뵈었으며, 그들의 두 눈은 불사불멸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 옛날 끔찍한 박해 이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참으로 혹독한 현실을 기꺼이 감내해내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 어쩌면 이 시대 순교자들입니다.
부디 힘내십시오. 그 고통의 끝이 멀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실 영광의 상급이 멀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다가올 하느님의 크신 상급 영원할 것입니다.
그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십시오. 그 고통을 예수님의 고통에 일치시키십시오.
이것이 바로 오늘 이 시대, 순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위해 자신을 버려라
-배광하신부-
불사의 희망
도움에 힘입어
금년은 한국의 103위 성인들께서 시성 되신지 25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103위 시성식 강론에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에 더 깊이 들어가기를 갈망하던 여러분의 선조들은 1784년에 자기들 중 한 사람을 북경으로 보냈고, 그는 거기서 영세하였습니다. 이 좋은 씨앗으로부터 한국에 첫 그리스도 공동체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신도들 자신에 의해서만 세워졌다는 점에서 교회 역사상 유일한 공동체였습니다. 이 신생 교회는 아직 어리면서도 믿음에는 그토록 굳세어, 몹시 사나운 군란을 거듭 견디어 냈습니다. 그리하여 한 세기도 채 못되어 1만 명을 헤아리는 순교자를 자랑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는 1791년 신해, 1801년 신유, 1827년 정해, 1839년 기해, 1846년 병오, 1866년 병인 등의 해가 순교자들의 피로써 영구히 새겨져 있습니다. 그분들은 혈통으로나 언어로나 문화로나 여러분의 조상입니다. 아울러 그분들은 피로써 증거한 신앙에 있어서도 여러분들의 부모들이십니다. 열세 살 난 소년 유대철 베드로로부터 일흔 둘의 노인 정의배 마르코에 이르기까지 남자, 여자, 사제, 신도, 부자, 빈자, 상인, 양반 할 것 없이 모두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죽어 가셨습니다.”
한마디로 한국 천주교회는 선교사 없이 자생으로 태어난 세계 유일의 교회라는 점과 갓 태어난 신생 교회는 곧바로 수없이 끔찍한 박해를 굳건히 이겨냈고, 진정 짧은 세월 안에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계층의 장한 순교자들을 배출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순교자들의 후손이며, 그분들이 피로써 지킨 신앙의 유산을 물려 받았습니다. 순교자들은 끊임없는 고통 중에도 늘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해 내셨고, 그 사랑으로 희망을 사셨던 분들이셨습니다. 이는 오늘 사도 성 바오로의 말씀을 상기시켜 줍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5.37)
자신을 버리고
예전에 <프린스>라는 전자오락 게임이 있었습니다. 마술에 걸려 높은 성채에 갇혀있는 공주를 구하는 게임인데, 10여 개의 장애물을 통과해야만 하는 어려운 게임입니다. 거미줄 같은 미로를 통과하는 과정은 너무 어려워 많은 이들로 하여금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풀 수 있는 해답은 아주 간단한 곳에 있습니다. 그냥 성채 앞에서 그대로 뛰어 내리면 하나 둘씩 다리가 생겨나 공주를 만나게 됩니다. 공주와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대로 자신을 버리고 뛰어 내리면 되는 것입니다. 한 인간을 사랑하는 데에도 자신을 포기해야 한다면,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 사랑 안으로 뛰어 내릴 때 분명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때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잃은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이탈리아의 영성가 ‘카를로 카레토’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오, 그분의 선물의 충만함이여! 오,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뛰어 넘음이여! 오, 모든 것을 극복하는 사랑이여! 이에 비교해 볼 때 다른 모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성 토마스는 하찮은 것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오늘 우리에게 자신을 버려야 당신을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카 9,23)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우리의 순교자들은 진정 주님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릴줄 아셨던 분들이셨습니다. 그분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한다 하여도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비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성 정하상 바오로 순교자는 자신의 글 「상재상서」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털끝만한 것도 모두가 하느님의 힘입니다. 낳으시고 기르시고 도와주시고 보호하시어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죽은 후에 받을 상은 그만두더라도 현재 받고 있는 은혜가 이미 무한하여 비할 데 없으니, 우리가 일생을 다하여 어떻게 하느님을 받들어 섬겨드려야만 그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글자 몇개를 통해 진리이신 하느님 만난 유진길"
-이기양신부-
"순교자 믿음 본받아 죽도록 충성하리라∼" 우리는 9월 순교자성월 내내 순교자 믿음을 본받자고 노래하고, 죽음을 넘어선 그들의 신앙을 생활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본받자는 것일까요? 순교자성월이라고 해서 꼭 집어 무엇을 실천해본 적이 드물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우선 한 가지를 제안해 보고 싶습니다. 신심서적을 통해 진리에 대한 열정을 키워가자는 제안입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의 가장 자랑스러운 점을 꼽으라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드문 일입니다. 대부분 나라들은 선교사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났지만 우리 선조들은 책을 통해 진리이신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한국 천주교 신앙의 역사는 책으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을 왕래하던 동지사들에 의해 신문물이 유입되었고 그때 함께 들어온 책이 「천주실의」, 「칠극」 등 천주교 관련 서적들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과 문화를 갈망하던 선비들은 그 책들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알게 되면서 진리에 대한 더욱 깊은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권철신, 권일신, 정약전, 이승훈, 김원성, 권상학, 이총억, 이벽 등 당대를 풍미하던 유학자들은 북한강 상류 앵자봉에 있는 천진암에서 일주일도 넘게 강학회(講學會)를 엽니다. 처음에는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학문으로 접하게 된 것입니다. 천주학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었던 그들은 마침 중국으로 가는 이승훈에게 천주학에 관한 자료 수집을 부탁합니다. 이승훈은 중국에 있는 예수회 그라몽 신부를 찾아가 3개월간 왕래하며 필담으로 천주교에 대해 배우고 조선 천주교의 반석이 되라는 뜻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1784년 귀국합니다. 드디어 이승훈이 돌아왔고 이벽은 그가 가져온 책들을 받아들고 미리 얻어두었던 외딴 집에 들어가 수개월 동안 두문불출합니다. 몇 달이 지나 세상에 나온 이벽은 이승훈과 정약용을 만나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겨서 구원의 은총을 내려주시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무도 이 소명을 외면 할 수 없습니다"고 감격의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대대로 역관(譯官)을 지낸 부유한 가문에서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한 뒤 사역원 당상역관에 올랐던 유진길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특히 우주의 시작과 종말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만권의 책이 움직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해박했던 그는 불교, 유교 서적을 섭렵하지만 더 깊은 회의에 빠져들게 됩니다. 특히 1801년에 신유박해가 있었는데 천주학쟁이들이 큰 기쁨에 넘쳐 죽어간다는 말을 듣게 되고 천주교에 관심을 가져 보지만 박해로 인해 아무도 그에게 길을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어느 날, 기진해서 집에 돌아와 쓰러져 누웠는데 귀퉁이에 놓여 있는 궤짝에 발라놓은 각혼(覺魂), 생혼(生魂)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자세히 정돈해서 보니 「천주실의」 일부분이었던 것입니다. 그 책을 구하려 했지만 구할 수 없었고 어렵게 만난 신자를 통해 들은 천주교에 관한 몇 마디가 그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는 1823년에 마침내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듯 신심서적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그 귀한 신앙을 목숨 바쳐 후손에게 물려 주었습니다. 순교자성월을 지내며 순교자들의 진리에 대한 열정을 본받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순교성인들이 목숨 바쳐 읽고 공부해 진리이신 주님을 만났듯이 우리도 신심서적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이웃에 전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이름도 찬란한 순교자들이시여!
-안병철신부
금 년은 피비린내 나는 박해가 자행되었던 순교의 현
장인 이 땅에서 103위 시성식이 거행된 지 만 25년
이 되는 감격스러운 해입니다. 특별히 이 땅에 사는 가톨릭
신자인 우리 모두는 벅찬 감격과 환희를 안겨주었던 그날
의 감동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오늘은 참으로 행복한 날입니다.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25년 전 시성 되신 103위 성인들은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집요한 회유와 모진 박해의 순간들을
이겨내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결코 불의와 타협하거나
정치적 압박에 굴하는 일 없이 당당하게 믿는 바를 고백하
며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진리를 위해 목숨
까지도 흔쾌히 내어놓는 위대한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
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
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라고 진술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분들은‘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
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기에 드높이
올려지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신 그리스
도처럼’(필리 2,8-9 참조) 지금 영광의 자리에서 영원한 행
복을 누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유혹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신앙을 절대적 가치
로 여기고 그 가치를 위해 온 삶을 투신한 분들이 오늘 우리
가 기리는 순교 성인들입니다. 그분들의 위대한 삶을 뒤따
르는 것이 후손들인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할 가장 본질적
인 삶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조들이 사셨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환
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가치가 마
치 절대 가치인 양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
다. 그러기에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싸워나가
야 할 적은 선조들이 겪었던 박해라는 물리적인 고통이 아
닙니다. 오히려 장밋빛으로 위장된 갖가지 물질적인 유혹
들입니다. 다양한 형태로 유혹의 범위와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 오늘이라는 현실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신앙인들
에게 근원적인 선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근원
적인 선택을 위한 우리 모두의 내면적인 투쟁은 그 어느 때
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치열한 싸움의 순간
이 우리에게는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절대 가치를 살아가기 위해 내려야 할 선택의 순간은 어
떤 이유에서든 미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복음이 가
르치는 바가 그 점입니다. 그러한 주님의 말씀 앞에서 위선
과 가식의 탈을 뒤집어쓴 채 자기 기만적인 신앙의 삶을 살
아갈 것인가 아니면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선조들의
삶을 본받기 위해 진정성이 담겨 있는 당당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선택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이고 선택의 순간 역시 지금
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 정애경 수녀-
십자가는 본래 사람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형틀이었습니다. 십자가라는 처형 방법은 예수님 당시 가장 무서우면서도 가장 흔한 사형 제도였습니다. 특히 페르시아와 셀레우코스 왕조, 유다인·카르타고인·로마인들 사이에서 기원전 6세기경부터 기원후 4세기에 널리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십자가는 사람을 죽이던 잔인한 사형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구원이 있습니다. 십자가 이후에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없는 예수님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십자가에 수난당하시고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이시기에 예수님과 십자가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23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자신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권력가가 주님께 “선하신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8,?18)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18,?2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권력가는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왜 그 권력가는 영생의 길을 묻기만 하고 돌아갔을까요?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했지만 권력가는 세상의 지위와 명예, 그에 따른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 재물에 대한 그 모든 욕망을 온전히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온전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리 3,?8)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온전히 자신을 버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자기중심의 생활을 청산하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차지한 자리를 예수님께 내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를 버리는 것은 자기의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자기를 위하는 이기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없으면 삶의 의욕도 없고 성취 욕구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자기중심적 삶이나 자기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또한 자기를 버리는 것은 곧 자기를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계획을 포기하고, 명예나 욕심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마르 1,?18) 따랐고, 세리 마태오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돈 잘 버는 직장을 그만두고 “일어나 그분을”(마태 9,?9) 따랐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을 따르려면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루카 9,?23)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십자가란 희생의 짐을 말합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이 내적 문제라면 십자가를 지는 것은 외적 문제입니다. 고통도 죽음도 각오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자기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각 사람의 개성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듯이 각자의 십자가는 크기도 모양도 무게도 모두 다릅니다. 사람은 어차피 고통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 고통과 고생이 의미 있는 고통인가, 무의미한 고통인가 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도 고생이고, 직장 생활도 고통의 연속입니다. 사업을 해도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 십자가가 가장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남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라면 남을 위한 희생, 남을 살리기 위한 죽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참고 져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십자가를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를 벗어버리려고 다른 길로 피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가는 선교여행 길도 핍박과 질병이라는 십자가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도 바오로는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14)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 앞길에 십자가를 두셨지만 결코 억지로 지우시지 않고 또 억지로 지는 것도 바라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앞에 십자가를 두셨습니다. 그러나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눈앞에 놓인 십자가를 보시면서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만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뭇사람의 비방과 조롱을 받으며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향해 올라가셨던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은 힘들고 외로운 길입니다. 그래서 쉽게 지칠 수도 있고 중간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가신 예수님은 한번도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브 12,?2) 신앙생활은 평생을 달려야 하는 장거리 경주입니다. 이 먼 길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잘 살펴보고 그대로 따르도록 은혜를 청합시다.
학창시절에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 운동을 잘하는 친구,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 대인관계가 너무 좋아서 인기가 많은 친구……. 모두가 제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친구들에 비해 저는 한없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한가? 나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는가? 나는 도대체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생각들로 힘들게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능을 물려주지 않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고, 더 나아가 부족하게만 만들어주신 하느님이 미웠지요.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던 저를 변화시켜 주었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친구의 모습을 통해서였지요.
고등학교 때 완벽에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정말로 무엇 하나 못하는 것이 없었고, 또한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친구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장가도 남들보다 일찍 갔습니다. 무척 부러웠지요. ‘이 친구가 도대체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면서 약간의 시기심도 가졌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이 친구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만났는데, 죽고 싶다는 말만을 계속해서 늘어놓는 것입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겨서 이혼을 하게 되었다면서, 가정을 꾸리지 않고 혼자 사는 제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긴 결혼하지 않았으니 이혼할 일 없지, 더군다나 하느님께서 나를 먼저 배신할 일은 절대 없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맞습니다. 그렇게 부러웠던 친구였지만, 사실은 제가 더 행복했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의 불행이 자기에게는 큰 감사와 교훈이 된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부족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랍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나눔과 희생을 베풀면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여유 있는 사람, 많은 재산과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 바라보는 사람은 초라한 자기 모습을 발견하면서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이 십자가는 황금, 돈, 명예, 지위를 상징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고통과 시련의 십자가, 죽음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앞서 이 세상 것들을 바라볼수록 자기 자신이 초라했던 것처럼, 이러한 십자가를 짊어질 때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면서 오히려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의 순교성인들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정말로 피하고 싶은 십자가의 고통이지만, 참된 기쁨과 행복을 전해주는 십자가이기에 그들은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우리 순교성인들의 십자가에 비해서 나의 십자가는 너무 작고 초라한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도 힘들다고 주님께 하소연했던 이기적인 나는 아니었을까요?
우리의 십자가는 짐이 아닙니다. 바로 행복을 잡을 수 있는 커다란 선물임을 기억하면서 십자가를 기쁘게 짊어졌으면 합니다.
인내는 희망을 품는 기술이다(보브나르그).
순교자의 피는 산고의 피
-전삼용신부-
어머니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셨고 아버지는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처음에는 결혼하기 위해서 세례도 받고 성당을 다니려고 했으나 부모님과 하나밖에 없는 누이를 실망시킬 수 없어 결혼하고 나서는 성당에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어머니도 불교 집안으로 시집오셔서 성당에도 다니시지 못하고 갖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같은 해에 돌아가셨는데 할머니는 임종하시는 순간에 하나밖에 없는 딸을 보려하지 않으시고 며느리인 어머니를 찾으셨습니다. 그러고는 하느님을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마리아란 세례명을 주시고 대세를 주셨습니다. 이에 어머니와 고모와의 관계가 더 안 좋아졌고 중간에서 아버지만 난처하게 되셨습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본격적으로 우리들부터 성당에 내보내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엔 미사를 안 가면 혼나니까 일단 나가서는 봉헌금으로 오락을 하다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어쨌건 억척스럽게 우리 삼형제를 다 견진까지 시키셨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저를 사제로 만들고 싶어 하셨습니다. 저는 사제가 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가 결국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직 고모는 불교를 믿고 계시지만 어머니는 고모까지 성당에 나오게 하시려고 무단히 기도하고 계십니다.
저는 어머니를 보면서 작은 교회의 시작을 보았습니다. 결혼 초기 종교가 다른 집안에 시집 오셔서 다니시던 성당도 나가지 못하시던 당신의 희생 위에 한 가정이 작은 교회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아기를 낳을 때 산고가 따르는 것처럼 좋은 것이 세상에 탄생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희생은 필수적입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려면 반드시 피를 흘려야합니다. 아이를 낳을 때 어머니는 피를 흘립니다. 이는 커다란 상징입니다.
신명기 12장 23절에는 “피는 곧 생명이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피를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생명과 고기를 함께 먹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주인공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죄의 종살이인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나라로 인도한 예수님의 전형입니다. 이런 구원자가 세상에 태어나려하는데 악의 세력이 가만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분노하여 모세를 죽이려고 합니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 이집트인들은 많은 이스라엘 아기들을 죽였습니다. 인구가 너무 불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오묘한 섭리로 모세만은 살려주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는 어땠습니까? 모세 때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태어났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에 분노한 헤로데는 베들레헴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요셉에게 가족을 데리고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이집트로 피신하라고 합니다. 역시 예수님도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빛으로 세상에 오실 때 피와 함께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태어날 당시는 어땠을까요? 교회도 분명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지긴 했지만 더 많은 피가 필요했습니다.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증거하다가 목숨을 잃습니다. 역시 교회도 피 위에 세워졌던 것은 예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하여 만 명이 넘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서 꽃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얼마나 굳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무수한 고통 끝에 피를 흘리셨는지 잘 알고 있고 오늘은 그분들 위에 세워진 교회에 편하게 다닐 수 있음에 그분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만약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때 피를 흘리는 것처럼 교회가 탄생할 때도 많은 순교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악의 세력의 질투 때문이라고 한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첫 째는 희생 없이 어떤 좋은 것도 태어날 수 없음을 가르쳐줍니다.
성인 세례 교리를 마치고 면담을 하는데 한 자매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저는 성당에 다니면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교리를 받은 이후부터 안 좋은 일만 자꾸 생겨요. 그래서 세례를 받을까 안 받을까 고민이에요.”
저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자매님, 그건 당연한 거예요. 엄마가 아기를 낳을 때 고통스럽죠? 그건 세상에 한 생명을 나오게 하는 고통이에요. 고통 없이 이루어지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자매님은 이제 하느님의 자녀로 탄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귀들이 시기해서 그것을 막으려고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들겠습니까? 만약 어머니들이 해산의 고통을 두려워하여 아기를 안 낳는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고 나면 새로 태어남의 큰 기쁨이 있을 겁니다.
자동차나 비행기나 처음에 출발할 때 가장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속도가 나면 큰 힘이 들지는 않아요. 힘이 든다고 출발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매님은 잘 받아들이셨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순교는 이렇게 우리에게 희생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둘째는 앞으로 태어날 새로운 세대에게 자극이 되고 양식이 됩니다. 교회가 세상 것들에 의해 흔들릴 때 신앙인들은 항상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때는 순교도 가혹했지만 그만큼 믿음도 불탔습니다.
달구어진 석쇠 위에서 뒤쪽은 다 구워졌으니 뒤집어 달라고 했던 라우렌시오 성인이나 달구어진 숯을 입에 대며 배교할 것을 강요할 때 당당하게 입을 벌렸던 유대철 소년이나 어머니의 목을 단칼에 베어 주십사고 휘광이에게 배를 곯으며 구걸해서 얻은 떡을 주었던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예를 들어서 주차장이 비좁아서 짜증내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미사 한번 드리기 위해서 부산서부터 서울까지 옹기장수를 가장하여 순례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더위와 추위, 배고픔과 맹수, 산적들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고해성사 한번, 미사 한번 참례하기 위해서 며칠을 밤을 틈타 산을 넘나들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죽어서 이 신앙의 선조들을 어떻게 떳떳이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박해가 가혹했던 만큼 믿음도 불탔지만 요즘은 편안해진 만큼 믿음도 미지근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선조들이 생명과 바꾸며 우리에게 물려준 신앙을 우리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물론 지금 피를 흘리며 신앙을 증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혈의 순교를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은 지금도 할 수 있고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느님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순교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과연 순교자들은 우리들의 눈으로는 고통을 겪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평화를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평화였기 때문에 순교를 택하였던 것입니다. 고통을 받는 것은 고통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는 필수조건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현세를 시험의 장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한 사람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현세의 고통이 영원한 행복을 여는 조건이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도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복권에 당첨이 되려고 해도 적어도 복권을 사는 노력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당신 수난의 상처를 그대로 지닌 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수난이 영광의 원천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순교하신 이들은 그것으로 인해 하늘에서 행복을 누리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순교이면서도 영광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의 순교도 각 개인의 영광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아기를 낳는 고통 후에 그 새로운 생명을 보는 즐거움을 얻는 것처럼 우리도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작게나마 순교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결심합시다
새벽을 열며
며느리들이 명절 때 시어머니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떤 사이트에서 추석을 앞두고 기혼여성 1천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명절 때 시어머니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가장 많은 응답자인 33.8%가 “더 있다 가라. 벌써 가게?”를 꼽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2위는 동서 지간에 비교하는 말(20.2%), 3위는 음식 준비할 때 잔소리(12.7%)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시어머니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준비하느라 수고했다.”(31.3%)와 “어서 친정에 가야지.”(22.1%)가 각 1,2위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더 있다 가라. 벌써 가게?”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이 결코 나쁜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그래서 명절 제사가 끝나자마자 자기 집으로 떠나려는 가족이 아쉬워서 한 말인데 이 말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이라니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도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오랜만의 만남으로 갖게 되는 즐거움보다는 일하는 어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나 만약 일하는 어려움보다 만남의 즐거움이 더 크다면 이러한 말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로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에 대해서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는 날입니다. 그들의 삶이 과연 평안했을까요?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린 것은 물론 육신의 고통까지 겪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순교자들은 세상이 아닌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었고, 예수님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참된 행복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는 하느님 나라를 굳게 믿었기 때문에 피의 순교를 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날 그러한 피의 순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현재도 순교와 배교의 생활은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이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반대하는 것으로 현대 사회에서의 배교자의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반대로 세상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한다면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가장 원하는 삶으로 현대의 순교자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 듣기 싫은 말을 하기 보다는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 그리고 남들이 모두 꺼리는 일들을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웃음 지으며 행하는 것 역시 현대의 순교입니다. 또한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자랑스러워하고 남들 앞에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순교입니다. 지금 나는 과연 우리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아 그들처럼 살고 있을까요?
현대의 또 다른 순교자가 되도록 합시다.
빠다킹신부
내가 받은 사랑의 무한함
-배광하 신부-
한국 초대교회 신앙의 선조들의 영성을 이야기하라면 저는 당연히 겸손을 꼽습니다. 선조들은 참으로 대단한 겸손의 삶을 사셨습니다.
계급의 구분이 뚜렷했던 시대였는데, 어찌 그토록 자신을 낮출 수 있으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자 선비이며 양반이었던 신앙의 선조들은 일단 신앙을 받아들인 다음에는 무한히 내려오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비천한 백정들까지도 품에 안으셨고 같은 형제자매로 대하셨습니다. 배운 자가, 있는 자가, 기득권을 가진 자가 내려오니 복음은 일사천리로 퍼져 나갔습니다.
윗물이 맑고, 윗물이 모범을 보이니 아랫물 역시 맑게 되었고, 그야말로 신명난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 같은 끈끈한 정이 있고 서로가 낮추며 애덕의 신앙생활을 하니 박해 중에도 서로를 격려하며 용감히 순교의 길을 함께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초대 교회의 모습은 분명 사도행전의 첫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빼어 닮았습니다. 샤를르 달레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당시 교우들의 삶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가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아주 아무 것도 없는 형제들에게 도움을 베풀어 줄 줄을 알았고, 과부와 고아들을 거두어 주니, 이 불행한 시절보다 우애가 더 깊었던 일은 일찍이 없었다.
이 일을 목격한 노인들은 그 때에는 모든 재산이 정말 공동으로 쓰여 졌었다고 말한다. 신입교우 중에서 남보다 학식이 많은 이들은 자기 집안이나 이웃에 있는 무식한 이들에게 기도문과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
그리스도교는 시작부터 내려옴의 신앙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비천한 인간 세상에 내려 오셨는데, 우리가 무얼 그리 잘났다고 내려오지 못하는 것입니까? 신앙의 선조들은 분명 겸손 되이 내려오실 줄 아셨던 분들이셨습니다.
순교는 자신의 뚝심이나 고집, 자신이 내세우는 주장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느님의 은총이며, 그 은총을 지키며 겸손되이 더불어 나누며, 지금 바로 이곳에서 천국을 만들어 나갈 줄 알았던 이들이 순교의 영광을 입었던 것입니다. 미래에 주어질 영원한 삶의 희망을 바로 현세에서부터 만들어 나갔던 이들이 천국 영생의 행복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힘으로 이겨냅니다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 때 순교자들의 행적 기록에는 당시 천주교인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했던 형구들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읽노라면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또한 그 같은 무서운 형벌을 선조들은 어떻게 이겨내고 순교의 길을 걸으실 수 있으셨을까를 생각하면 숙연해지며 저의 안일한 신앙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 당시 고문 몇 가지를 소개해 봅니다.
1. 곤장 - 곤장 서너 대를 맞으면 살이 터져 피가 흘러나오고 살점이 잘게 찢어져서 사방으로 튑니다. 열 대쯤 맞으면 곤장이 속뼈를 후려쳐서 몸서리치도록 끔찍하게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맞는 자나 때리는 자나 땅바닥이나 온통 튀는 피와 떨어져 나가는 살 조각 등을 뒤집어 쓰게 됩니다.
2. 주뢰 - ‘주리’, 혹은 ‘전도주뢰’라고도 하는데, 양편 발의 엄지발가락을 끈으로 한데 꼭 묶습니다. 망나니들이 정강이 사이에 두 개의 주릿대를 끼우고, 정강이 뼈가 활처럼 휠 때까지 서로 양편에서 주릿대를 힘껏 잡아당깁니다. 이 형벌은 너무 끔찍하고 잔인하다 하여 1732년(영조 8년) 금지령을 내렸으나 이후에도 계속 사용됐습니다.
3. 다리비빔(삼모장) - 삼각형의 몽둥이로 양다리 앞부분(정강이)을 세게 마찰합니다. 살가죽과 속살이 즉시 문드러지고 뼈가 드러납니다.
이밖에도 끔찍한 형벌이 많지만, 이렇게 피투성이 된 신자들을 감옥에 쳐 넣게 되는데, 감옥은 그야말로 더 끔찍하였습니다. 겨울은 너무도 춥고, 여름은 지독히 더웠습니다. 더구나 너무 좁고 옹색하여 거기에 갇힌 신자들은 다리를 뻗을 수조차 없습니다.
또한 매 맞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고름 등이 멍석자리에 젖으면, 이내 썩어서 악취가 코를 찔러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굶주림은 신자들을 더욱 가혹하게 괴롭혔습니다. 깔고 누운 멍석을 뜯어 먹거나, 이, 벼룩, 빈대 등을 잡아먹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같은 상황에서도 신자들은 망나니들의 칼이 자신들의 목을 자르기 전에 감옥에서 목숨이 끊어질 것을 더욱 걱정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103위 성인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무명의 순교자들이 이 끔찍한 길을 함께 걸으신 것입니다.
그분들은 어떠한 환난, 역경,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 등도 자신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힘으로 이겨 내신 것입니다.(로마 8,35~39 참조)........◆
죽음 넘어선 순교자들의 신앙
-이기양 신부-
순교자 성월인 9월이 무르익어가는 오늘은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을 기리는 대축제의 날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최초로 한국인 사제가 되신 분으로 26살에 돌아가셨고,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박해시대 때 신부님들을 모시고 다니면서 복사도 하고 길 안내도 했던 훌륭한 평신도로서 45살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오늘은 이 분들과 1만여 명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며 한국 천주교회의 뿌리를 생각해보는 날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천주교가 들어올 때는 선교사들이 앞장을 서지만 우리나라에는 먼저 천주교 관련 서적이 들어왔습니다. 중국을 왕래하던 사람들 틈에 마테오 리치 신부가 중국인들을 위해 예비신자 교리서로 쓴 「천주실의」라는 책이 들어왔고, 당시 내로라 하는 학자들은 이 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천진암 '주어사'에 모여 강학회를 열게 됩니다.
천주학은 공부를 할수록 이들에게 놀라운 세계를 제시해 주었고 새로운 우주관, 신관, 인간관을 접하면서 이들은 점점 천주학에 매료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 공부할 책을 구할 수 없게 되자 마침 그들과 함께 했던 '이승훈'이라는 사람이 중국으로 가게 되었고, 그는 그라몽 신부를 찾아가 천주교에 관련된 지식과 신앙을 배우고 한국 천주교의 반석이 되라는 의미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이승훈 베드로는 세례를 받고 교회에 관한 많은 서적을 가지고 1784년 봄에 귀국을 했고 이제 학자들의 모임은 천진암에서 지금의 명동 성당 자리인 김범우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명례방'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합니다. 당시 유명한 학자들이었던 이벽, 권일신, 정약전 형제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천주학은 이들을 사로잡아 이제 학문의 차원을 넘어서 신앙의 차원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목자 없이 신앙생활을 시작한 학자들은 교리 연구에 더욱 노력하는 가운데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또 한 가지가 바로 제사에 관한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았습니다. 이 문제로 고심하던 그들은 북경에 있는 주교에게 문의를 하기로 하고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시행하고 있는데 계속해도 무방하겠습니까?"
주교는 두 가지 모두 안된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이에 순종한 신자들은 이제까지 행했던 '가성직제도'를 폐지하고 성직자의 파견을 애타게 요청함과 동시에 조상제사 문제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사건이 전라도 진산에서 발생합니다.
윤지충과 권상연 형제가 제사를 지내려고 온 가문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하느님 뜻에 어긋난다며 신주를 불살라 버리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조정에서는 국가의 기반을 흔드는 천주교를 엄격히 금지하게 되고, 조상의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거부한 이들 형제는 대역 죄인이 되어 귀향을 가고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조정에서는 조상제사를 거부하고 남녀노소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천주교를 나라의 기강을 흔드는 사학으로 규정해 대역죄로 엄하게 다스려 뿌리 뽑으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1791년 신해년에 처음으로 박해가 일어나 이승훈, 권일신이 귀향을 가고 죽게 되면서 100여 년간의 박해동안 1만여 명의 신자들이 처형당하는 아픔을 겪고서야 마침내 1886년 한불통상조약의 체결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게 됩니다. 1893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약현성당이 들어서고 이승훈 베드로 한 명으로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는 지금 500만 명이 넘는 신자수를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한국 천주교의 역사입니다.
그토록 엄청난 박해 속에서도 끊임없이 신자 수가 늘어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죽음을 넘어선 신앙을 선택하게 했을까요? 비신자들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희광이의 칼날 아래에서도 기쁘게 주님을 찬양하는 순교자들의 모습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3-24).
오늘 복음 말씀대로 순교자들은 교회의 초석이 되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졌고, 목숨을 잃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습니다. 순교자들의 목숨을 넘어선 신앙이 우리 신앙으로 뿌리내리길 기원합니다............◆
김신부님의 열정과 철저한 투신
-홍금표 신부 -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라"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대축일입니다. 신부님은 충청도 솔뫼에서 1821년 출생하여, 15세가 되던 1836년 멀리 마카오로 유학해 1845년 8월 17일 서품 되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제가 되신 분입니다. 서품된 후 약 8개월 동안 활동하시다 체포되어 서품 된 지 1년 1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사제로 계시다가 만 25세의 짧은 생애를 사신 분입니다.
이러한 신부님의 생애를 생각할 때 필자의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열정」과 「철저한 투신」이란 두 단어입니다.
물론 「열정」이라는 말과 「철저한 투신」이라는 말은 때로는 비인간적으로 들릴 수도 있고 항상 선일 수만은 없는 단어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들이 지향하는 바가 「공동선」이나 인류가 추구해야할 「보편선」 또는 「하느님」을 지향할 때 이러한 단어들은 참으로 가치 있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러한 가치 있는 단어들을 살지 못할까요? 아마도 자신의 욕망과 게으름, 그리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고자 하는 마음과 내 안의 유혹과 타협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마지막까지 신부님이 선택한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많은 갈등들을 경험하였습니다. 혹독하게 가해지는 육체적 고문이 그것일 수 있고, 신부님에게 당근으로 주어지는 세상의 재물과 권력도 그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욕구가 그것이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떠오르는 의심과 갈등도 또 하나의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 영복씨도 이런 말을 합니다. 고문보다도 침묵과 내면의 갈등이 더 무서웠다고. 아마 신부님도 감옥 안에서 이러한 내면으로부터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인간적이고 본능적인 유혹은 쉽지만은 않은 이끌림이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유혹들은 하나같이 견디기 힘든 유혹이었고, 조금만 한눈을 판다면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너무나 무거운 것들이었지만 신부님은 그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그 힘은 신부님만이 가졌던 주님께 대한 열정과 철저하고도 타협 없는 투신의 정신, 그리고 오늘 복음 말씀처럼 걱정하거나 두려워함 없이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신앙의 힘이 적절히 조화된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유혹은 마성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유혹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혹과 대화를 시작하면 이 유혹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유혹을 이기기 위해선 단호한 거절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그 유혹과 대화를 시작하면 대부분은 유혹에 넘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유혹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자세가 김 신부님과 같은 자세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김 신부님처럼 자신의 길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타협 없는 신앙만이 유혹을 이겨 나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물론 이러한 삶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삶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매일의 삶에서 연습과 실습 그리고 실패를 통한 자기반성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것도 어쩌면 오늘날 이 땅의 사제들이 사제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근본적인 것이 바로 신부님이 가졌던 이러한 정신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실 현대는 김대건 신부님이 사셨던 시대의 국가 권력처럼 직접적으로 하느님을 방해하는 방해물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 한 사실은 오늘날 하느님의 길을 방해하는 적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더 교묘해졌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아름다움과 선의 모습을 띠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인간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하고 때로는 과학과 학문의 이름을 통해 하느님의 길을 방해합니다. 그러기에 자칫하면 무엇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김 신부님의 열정과 투신을 본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길을 방해하는 오늘의 장애물들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이고 이와 더불어 자신이 선택한 가치에 대한 때로는 맹목적이다 할 만큼 철저한 투신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 없이는 순교도 없다
-유영봉 몬시뇰 -
묵상 길잡이 : 선조들은 스스로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신앙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평신도들의 힘으로 교회를 세우고 키우며 지켰다. 자신의 인생을 걸만한 확신이 없는 우리의 삼은 신앙생활이라기보다 취미생활이 아닌가? 반성해볼 일이다.
1. 스스로 깨달은 진리
18세기 주자학(朱子學)에 젖어 있던 조선 사회는 갖가지 병폐와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새로운 학문과 사조를 갈망하던 학자들은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천주실의(天主實義), 칠극(七極)등의 서적들을 통해 신앙에 눈뜨게 되었고, 단순히 학문의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축일표도 없는 상황에서 초이레, 열나흘, 스무 하루 등 7일마다 육신 일을 파(罷)하고, 상제(上帝)이신 하느님을 섬기며 기도하고, 이웃에 봉사하며 나름대로 주일을 지키며 삼종기도와 아침 저녁기도를 하며 살았다. 그들은 교회의 계명을 지키며 수계생활(守誡生活)에 전념하였다. “하느님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반상(班常)의 신분차이가 뚜렷하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가슴 벅찬 깨달음이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1784년 이승훈이 영세하고, 1836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할 때까지 50여 년을 중국인 사제 두 분이 잠시 사목했을 뿐, 평신도들이 스스로 교회를 일으키고 박해 중에서 신앙을 지켜나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순교는 믿음의 증거이다.
‘순교자(martyr)’는 원래 ‘증거자’란 뜻이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하느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백여 년 동안 만여 명의 순교자들이 신앙을 위해 생명을 바쳤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일에 있어서 엄숙하고 비장하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순교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장면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나라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토마) 신부의 부친 최영환(프란치스꼬)는 1839년 7월 아들을 유학시킨 사학죄인으로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하며 100대가 넘는 곤장을 두 번 이상 맞고, 고문을 당한 끝에 장독(杖毒)으로 9월12일 돌아가셨다. 그 어머니 이성례(마리아)는 최도마 신부의 동생들인 5명의 자녀들과 함께 옥에 갇혔다. 둘째 12세 최희정(야고보), 셋째 최선정(안드레아), 넷째 최우정(바실리오), 다섯째 최신정(델네시포로)는 나이 어려 석방되었고, 세 살짜리 젖먹이(최스데파노)만 옥에 남았다. 그런데 굶주림과 고문으로 몸이 쇠약해지자 유도(乳道)가 막혀 젖이 나지 않아 젖먹이가 어머니 무릎에서 굶어죽기에 이르렀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자기 자녀가 무릎 위에서 굶어죽자 이 마리아는 한 때 관장에게 배교(背敎) 한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수감 중인 여러 교우들의 위로와 격려로 다시금 순교의 뜻을 굳힐 수 있었다. 옥에서 풀려 나온 둘째인 ‘최 야고보’는 동생들과 함께 푼푼이 동냥한 돈으로 음식을 마련하여 옥중의 어머니를 면회하고, 동생들을 잘 돌볼 것을 약속하며 격려하였다.
순교의 때가 가까이 오자 어머니 목을 벨 휘겡이 ‘회자수(?子手)’를 찾아가 구걸한 돈을 건네고, 어머니의 모습을 상세히 일러주면서 ‘칼을 잘 갈아 어머니가 고통을 많이 받지 않고 죽을 수 있도록’ 한 칼에 목을 베어주도록 부탁하였다. 이렇게 순교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혹독한 고통 가운데서도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생명을 바쳤던 것이다.
3. 취미생활인가? 신앙생활인가?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내 놓을 각오로 신앙생활을 하였던 선조들에게 비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이라기보다 차라리 취미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우리시대엔 똑똑한 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자기 진리나 신념을 지닌 사람을 보기는 힘들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이권에 눈먼 철새 정치인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자를 찬양하기에 바쁜 매스컴과, 실직한 남편과 자녀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자기 행복을 찾아 떠나는 세태는 신앙을 위해 칼 앞에 목을 내민 순교자들의 대열을 ‘바보들의 행진’으로 비웃기에 충분하다. 만일 우리나라에 “천주교 신자는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없다.”든가, 이스라엘처럼 “그리스도교 신자는 국가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법이라도 있다면, 그래도 성당에 나올 신자가 몇 명이나 될까?
우리와 순교선열들과 근본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이 없고, 부활한 예수가 들어간 그 영원한 생명을 믿는 믿음도 없다. 이 세상이 전부인 이들이 어떻게 생명을 바칠 수 있겠는가?
양극화로 인한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자들의 자녀들을 자기 친자식처럼 돌보며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듯이, 독거노인들과 소년 소녀가장들 그리고 갖가지 이유로 고통 받는 이웃의 아픔을 지극 정성으로 함께 나누어보자. 그 안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토록 하자. 그리하여 죽음도 두렵지 않는 참 믿음을 가꾸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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