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천산 제석사(忉天山帝釋寺) / 전통사찰
- 경북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원효가 태어난 곳에 사라사란 절을 지었다.
원효 모친이 산기를 느껴 밤나무 아래에서 남편 옷을 걸고 출산하였다.
이 이야기기는 삼국유사에 나온다. 석가모니 탄생과 비슷한 면이 있다.
고려 때까지 융성, 조선 초에 폐사, 400여 년 전에 농부를 밭을 갈다가 불상과 탑신을 발견하였다.
1625년(인조 3) 유찬이 창건, 1802년(순조 2) 거사 손대권이 중창, 1910년 월파대사가 중창하였다.
1933년 만호가 중수, 1962년 용해가 대웅전 건립, 1965년 옛 대웅전 자리에 칠성각 건립.
2001년 적연이 대웅전을 중수, 삼존불을 봉안하고 대웅보전으로 고침.
2003년 원효성사전을건립, 칠성각을 삼성전으로 고침.
(제석사 안내문, 인터넷 찾아보기 등 참조)
주택가에 자리한 절이다. 원효가 태어난 곳이고 유래가 깊다면 조계종에서 이 주위 집들을 매입,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다.
원효가 한국불교에 끼친 영향과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제석사 주변을 문화 공간으로 바꾸어야 한다.
인터넷을 보니 원효가 태어난 곳은 사라사/제석사, 살던 집을 절로 바꾼 곳이 초개사, 어린 설총이 공부했던 곳이 반룡사.
원효가 수행한 곳은 불굴사 홍주암, 환성사(예전에 갔던 적이 있음)다.
반룡사는 전통사찰, 나중에 방문할 것이다. 초개사는 모르겠다.
원효성사전, 각도 아니고 전이다. 원효를 봉안하는 집이다. 원효를 아라한이나 보살로 여긴다는 뜻이다.
한국불교 최초라고 하니, 다니면서 승려의 상을 모신 절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해인사 백련암에 성철을 모신 집이 있지만 전이나 각을 쓰지 않고 당을 썼다.
비구니와 여신도들이 등을 만들고 있어 들어가 내부를 보지는 않았다.
구룡산 반룡사 (九龍山盤龍寺) / 전통사찰
- 경북 경산시 용성면 용전리
661년(문무왕 1) 원효대사가 창건.
우리나라 3대 반룡사 가운데 한 곳으로 삼국통일 위한 요충지인 압량부(경산)는 김유신과도 인연이 있다.
고려 중기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운문사를 중창한 뒤 이곳에 와서 신흥암(新興庵)이라는 이름으로 중창하였다.
고려 문신인 이인로가 이곳에 와서 시를 지었다.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내원암누각창건기문(內院菴樓閣刱建記文)」과 「반룡사사적비문 盤龍寺事蹟碑文」을 보면,
1623년(인조 1) 이후 1700년(숙종 26)까지 선당(禪堂)·승당(僧堂)·대광전(大光殿)·가허루(駕虛樓)·관음전·원음전(圓音殿)·
향적루(香積殿)·해탈문·영우전(影于殿)·해운당(海雲堂)·제월루(霽月堂)·명월당(明月堂)·만월루(滿月堂)·법성료(法性寮)·
원륭료(圓融殿)·천왕문·명부전·팔상각(八相閣)·홍려전(鴻蘆殿)·무상원(無常院)·극락전·내향각(內香閣)·외향각(外香閣)·
봉황문(鳳凰門)·금강문(金剛門) 등 25개의 전각을 지었다.
내원암(內院庵)·취운암(翠雲庵)·대적암(大寂庵)·은선암(隱仙庵)·안적암(安寂庵) 등 5개의 산내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사세를 짐작할 수 있으나 퇴락하였다.
1920년에 운학(雲學)이 중창하였고, 1989년에는 산신각, 1992년에는 용왕각(龍王閣)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반룡사 안내문 참조, 한국민족대백과사전 발췌하여 조금 수정함)
비 오는 날 오후, 절은 조용하다. 신도도 승려도 보이질 않는다.
반룡사 터는 넓다. 옛날에 규모가 꽤 큰 사찰이 있었음직한 곳이다.
해 질 녘 경치가 좋다고 하지만 오늘처럼 비가 오면 그런 호사는 누릴 수 없겠다.
대웅전 안
동곡당 일타, ?, 법정 등 세 분 영정이 있다.
화문면석부재 / 경북 문화재자료
반룡사의 과거를 말하고 있는 유산이다.
경산 반룡사에서 나와 청도로 가는 길에 본 경치
2024년 4월 29일
영천 수도암....경산 제석사..반룡사..청도 대국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