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샘 (푸른제천 10월호)
아, 훈민정음의 미학 “월인천강지곡” (1)
최길하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아름다움 중 한 부분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연재하던 '제천 선사시대 문화'는 잠시 쉰다.
한글은 세계 문자 중 단연코 가장 우수하다는 것이 문자전문가들의 평가다. 모든 소리를 발음기호 없이 쓸 수 있고, 하루면 터득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는 점(자연의 소리 리듬과 같이 순행하는 자소의 모형을 그렸기 때문). 디지털시대를 내다본 것처럼 키보드 조작이 간단하다는 점. 초,중,종 3성의 음소로 글자가 이루어지므로 음운이 정교하다는 점. 한꺼번에 많은 백성들에게 글을 읽히기 위해 출판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 그래서 고딕체 자형으로 조형했고 매우 미학적이라는 점. 찬양 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나는 초기 훈민정음 자형체 미학에 깜짝 놀랐다.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의 문학성을 연구하다가 엉뚱하게(?) 문자의 미학성에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이다.
우리가 같이 쓰고 있는 한자는 그림문자다. 미학성이 뛰어나다. 그래서 여러 서체와 전각예술로 발전했다. 내가 본 초기 한글(훈민정음)의 미학은 한자 훨씬 이상이다. 모음과 자음의 음소(音素)들이 어울리며 글자를 이루는 형태와 음악성까지 깊이 들여다 본다면 그 미학은 거룩한 경지다. 나는 이를 응용하여 회화나 조소로 전개할 생각을 한다. 철학성, 음악성, 미학성 문학이 어우러진 훌륭한 창작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글은 하늘 땅 사람(생명) 우주의 셋 근본 뿌리를 모체로 했다. 홀소리 모음을 건물구조로 하고, 구강마찰음인 자음의 내외장재를 결합하여 자형을 만들었다. 음소인 소리글자와 화소인 그림글자가 함께 어우러진다. 그래서 천상의 관음악, 땅의 변화음, 하늘 땅의 조화로 태어난 온갖 생명들의 소리(구음)를 품는다. 천상의 관음과 삼라만상의 소리와 운율을 품었으니 얼마나 기운생동하고 철학성이 깊겠는가? 이를 회화나 조소로 응용한다면...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월인천강지곡>을 현미경 같은 눈으로 통해 본 세종대왕은, 우주율인 천상의 음악을 그린 대 음악가였다. 천상의 음악을 알았기에 <영산회상>과 <종묘제례악>을 작곡할 수 있었다. 하늘 땅 사람을 모두 망라한 화성과 화엄(오케스트라)을 하늘에 바치는 음악이다. 영혼도 달래고 하늘의 음과 인간의 호흡이 공명되게 율을 맞추었다. 이 철학과 과학의 음악성은 훈민정음 창제로 이어졌다. 소리글자이니 운율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으나, 하늘 땅 사람을 모음(어머니)으로 한 문자는 세상에 한글 밖에 없다.
<월인천강지곡>
<용비어천가>는 세종대왕의 할아버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찬양한 노래다. 그러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무슨 뜻을 품고 있을까? 하늘의 달은 하나지만 이 세상 삼라만상을 두루 비친다는 뜻이다. 이 아름다운 노래가사와 그림을 새종대왕이 직접 그려냈다. 아니 그림을 그렸다니? 노래가사가 그림이라니? 텍스트잖아? 그런데 나는 그 글자가 너무 아름다워 그림으로 읽게 된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흔들릴 세, 꽃 좋고 열매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아니 그칠 세 내를 이뤄 바다로 가느니” 이 가사는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바로 용비어천가에 있는 명문이다.
내가 특히 주목한 것은<월인천강지곡>이다. 우리 혈류(血)에는 모든 생물학적 분자와 무기질 원소가 다 녹아있다. <월인천강지곡>엔 문학 철학 음악 미학이 다 녹아 있다.
세종대왕의 아버지 태종(이방언)은 왕권강화를 위해, 외척인 자신의 처가를 숙청하고, 아들 세종의 처가 사돈집안도 모두 숙청한다. 세종대왕의 형제들인 자기의 아들까지 모두 왕실에서 그림자를 지웠다. 함께 목숨을 걸고 혁명 한 동지까지 정리한다. 정도전 등 조선건국 동지들의 세력에 의해 왕권이 흔들리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태종 이방언은 피로 찬탈한 정권이다. 그래서 태종 이방언은 아들인 세종의 큰 치세를 위하여 주변에서 힘쓸만한 세력은 모두 정리를 해 준 것이다.
태종 이방언이 이렇게 힘쓸만한 세력들을 정리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 세종은 대왕이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되옵니다"가 여기저기서 메아리치는데 천문과학기나 한글창제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최만리가 새로운 문자제조는 중국에 노여움을 받을 수 있다고 "아니되옵니다" 했지만 최만리를 지지 하는 우군은 극소수였다. 태종 이방언이 다 정리를 했기에 이 정도 반발의 허들은 가볍게 넘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천문과학 기기도 중국의 천자(하늘의 아들)만이 다룰 수 있는 분야다. 제후국에서 이를 연구하는 낌세가 발각되면 형벌을 받게 된다. 중국 왕 천자만 하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농사에 필요한 절기와 하루에 시간을 알 수 있는 "앙부일귀"는 만들수가 없었을 것이고 측우기나 도량형기 우리의 음악 음정(우리나라에서 나는 기장과 곱돌로 편종을 만들어 음정을 정함)은 없었을 것이다. "동지사"는 년말인 동지 때 중국에 바칠 우리 특산물을 바리바리 싣고 가는 행사였다. 바로 새해 달력 한 장 얻어오기 위해서다. 세종은 우리 달력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 기후를 예측하여 농사를 짓게 했던 것이다. 농사직설 농가월령가 앙부일귀가 그것이다.
태종 이방언이 골육상쟁의 부도덕함의 대명사이지만 태종의 카리스마와 혜안이 없었으면 세종도 없었다. 세종이 없으면 한글도 없고 오늘 우리나라의 급속한 발전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의 현대화 산업화는 교육의 힘이다. 모든 백성이 교육을 받고 우리글자로 소통하게 된 것은 "한글에 힘"이다. 한글이 이 나라 교육의 뿌리고 산업화는 그 힘으로 압축성장을 할 수 있었다.
<월인천강지곡>은 세종대왕이 먼저 돌아가신 부인 소헌왕후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바친 찬불가다. 부처의 공덕을 왕후에 비유하여, 달이 즈믄(千)강에 비추는 것과 같음을 노래한다는 뜻이다. 소헌왕후 심씨 집안은 왕의 처가라는 이유로 멸문을 당한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시아버지 태종 이방언이 사돈집안을 멸문지화로 만든 것이다. 소헌왕후의 친정아버지는 사약을 받아야 했고, 아들 형제도 모두 죽임을 당했고, 어머니와 며느리들은 하루아침에 사가의 노비나 직물을 물들이는 최하의 천민 염장이 된다. 그 분들이 물들인 옷감은 코스모스처럼 애잔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소헌왕후의 속이 어떠했겠는가. 애간장이 다 녹았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한 많은 부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월인천강지곡> 583수를 지어 출판한다.
이 절절한 내용을 나는 문자향(文字香)의 그림글자로 본 것이다. 발칙한 생각이지만, 글자를 보면 알게 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문자향(文字香)은 문자(글씨)에 향기가 실려 있다는 뜻이다. 문자향은 서권기(書卷氣)에서 나온다고 했다. 수많은 생각과 문장의 내용은 보이지 않는 내재율(內在律)이 되고, 그 DNA 내재율은 외형의 문자로
드러난 것이다.
<월인천강지곡>을 바라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향념(向念).
<월인천강지곡>
<월인천강지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