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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꿈
제목 : 하나님의 꿈을 마음에 품는 인생
성경 : 창 37:1~11
찬송 : 435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41020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창 37: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창 37: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창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창 37: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창 37: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창 37: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창 37: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 37: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창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 37: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창 37: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힐튼호텔 창업자 콘래드 니콜스 힐튼은 꿈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호텔 사업을 시작한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1995년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3세 때부터 사무원, 상인, 증권대리인, 은행원, 군인 등을 거치며 안 해 본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힐튼이 자기 일을 해보겠다고 나섰을 때 그의 수중에는 단돈 50달러밖에 없었습니다. 힐튼이 텍사스주에서 처음 시작한 일은 은행이 아닌 호텔 사업이었습니다. 그는 오랜 고생 끝에 모오블리라는 노인이 운영하던 호텔을 인수했습니다. 호텔은 식당과 객실을 갖추고 있었지만, 늘 객실이 부족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번의 꿈을 꾸고 비전을 발견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힐튼은 다음날 목수를 불러 식당을 없애고 여러 개의 객실을 만들었습니다. 호텔의 수익은 날로 증가했습니다. 본격적으로 호텔 사업에 착수한 힐튼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힐튼 호텔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러나 날로 번창하던 호텔 사업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대 공황을 맞아 100만 달러가 넘는 부채를 떠안으며 위기를 맞았습니다. 당시 변호사는 사업을 포기하라고 종용했지만 힐튼은 “내가 파산선고를 하면 그동안 나를 도와준 친구들을 기만하는 것이오.”라고 하면서 배짱 하나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는 이 시기를 통해 겸손을 배웠고 신앙만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보증수표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벽이 사방에서 무너져 내려 짓누를 때 나의 앞을 비춰주는 빛이 있었는데 그 빛은 기도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꿈의 사람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난 앞에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오직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하는 모든 과정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일입니다. 나의 모습이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은 선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신실하게 인도하십니다.
창세기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중심으로 족장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37장부터 요셉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네 아내 중 야곱이 가장 사랑하던 라헬이 낳은 첫 번째 아들입니다.
√요셉을 편애한 야곱
√창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야곱이 요셉에게 지어 준 채색 옷은 요셉이 아버지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채색 옷은 여러 색깔의 알록달록한 옷이 아니라, 소매가 길고 발까지 덮는 옷을 가리킵니다. 다른 옷들과 기장이나 직조 방식이 다른 옷입니다. 당시 일반 사람들은 허리에서 무릎까지 대각선으로 감싸는 스카프를 두른 소매 옷을 입었습니다. 반면 요셉이 입은 옷은 당시 최상류층인 왕족이 입는 특별한 옷이었습니다. 길이가 긴만큼 유목민이 입고 활동하기에는 불편한 옷이었습니다. 사무엘하 13장에서 공주인 다말이 입은 옷을 가리킬 때도 등장하는데, ‘소매 긴 화려한 옷’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옷은 족장 시대에 족장이나 그의 후계자에게 입히곤 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야곱은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에게 채색 옷을 지어줄 것이 아니라 장남이 르우벤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르우벤과 형제들은 아버지가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히는 것을 보고 당연히 분개했을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편애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신분과 형제들의 출생 순서에 따른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었습니다.
이렇듯 요셉의 다듬어지지 않은 행동으로 인해 형들의 분노를 삽니다. 야곱은 노년에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 요셉을 사랑하는 데 눈이 멀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결국 형들이 요셉에게 말 한마디도 다정하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
가족의 연합을 가로막는 요인을 안고 계십니까? 어떻게 하면 자녀들이 불평불만 없이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자녀들이 싸우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어려울 때 서로 도우면서 살기를 바라는 것은 많은 부모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같은 불화는 때로 부모의 편애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부모의 편애를 받는 자녀는 다른 형제들에게 당연히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됩니다. 만약 야곱이 요셉이 아닌 르우벤에게 채색 옷을 지어 입혔다면 어땠을까요?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했을 때 야곱이 형들만 훈계한 것이 아니라 요셉의 태도를 지적하고 훈계했다면 형제간의 갈등과 정서적 격차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꿈 이야기를 할 때 야곱이 그 이야기를 듣는 형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도록 요셉을 훈계했다면, 아마도 요셉은 듣는 사람 편에서 말하는 방법과 설득에 대해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미숙함과 형들의 분노라는 갈등 사이에는 야곱이 간과한 아버지의 역할이 있습니다. 사실 부모가 자녀들을 편애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렵고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일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들을 양육하고 돌보는 데 있어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따르기 보나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요셉의 실수
편애를 받은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발합니다.
√창 37: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이것은 형들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한 양심적 행동이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과 다른 번역본을 참고해 보면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2절하)라는 구절에는 창세기 저자의 비판적 의도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요셉의 나이가 17세라고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 야곱이 밧단 아람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보도함으로(30:25), 17년이란 햇수는 야곱이 가나안에 도착하여 머문 기간과 상당 부분 겹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소년’(나아르)으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이 용어는 미성년이라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연령대를 가리킵니다(삼상 25:5). ‘그의 형들과 양을 칠 때에’라는 구절을 보면 요셉이 양치기(목동)로 활동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그가 양 무리에 있는 그의 형들을 치는데’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은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의 양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요셉은 양을 치는 형제들과 함께 있었지만, ‘양’을 치는가, 아니면 양을 치는 ‘형제들’을 감시하는가? 라는 질문을 낳게 합니다.
요셉이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개역 개정판의 번역은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 공동번역 개정판은 요셉이 형제들을 ‘좋지 않게’ 일러 바쳤다고 번역합니다. ‘좋지 않게’라는 말은 가나안 정탐꾼이 그 땅을 악평했을 때 사용한 단어로 보기도 합니다. 개역 개정판에 번역되지 않은 ‘악한’은 ‘잘못’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고려한다면 요셉이 형들의 행위 가운데 ‘악한 잘못’만 선별하여 아버지 야곱에게 일러바쳤다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렇다면 이 표현에는 요셉의 행위를 비판하고자 한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당시 17세 소년으로 아직 신앙과 인격이 미숙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요셉이 가진 조건이 아니라 당신의 주권에 따라 그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랜 세월, 다양한 사건을 통해 요셉을 단련하시고, 그를 통해 가족 전체를 구원하시며,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이처럼 신비롭고 광활함을 믿고, 인생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꿈
요셉은 비슷한 꿈을 두 번 꾸었습니다. 그 꿈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습니까?
창 37: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창 37: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 37: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창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 37: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요셉의 첫 번째 꿈은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단을 둘러서 절하는 꿈입니다. 여기서 야곱 가족이 목축만 아니라 농사도 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곡식 단 열한 개가 절하는 꿈은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모습을 떠 올리게 합니다.
요셉의 두 번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입니다. 해와 달까지 절한다는 것은 훗날 형들은 물론이고 부모 역시 요셉에게 절할 것을 예견하는 꿈입니다. 이 두 가지 꿈은 형제들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지탄을 받을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한 요셉은 자신의 꿈을 가감 없이 말했고, 이로 인해 요셉과 형제들의 갈등은 더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요셉이 그 꿈을 꾼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닙니다. 그것은 야곱의 가족뿐 아니라 온 세계를 구원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의 시작점입니다. 요셉과 형제들 그리고 그의 아버지 야곱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형들의 시기 질투로 인해 노예로 팔리게 하시고, 애굽에서 종과 노예와 죄인으로 지내다가 총리가 되는 큰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요셉은 꿈꾸는 소년이었습니다. 17세의 소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그 사람에게 꿈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길은 꿈꾸는 자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가진 17세 소년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비전을 가진 70세의 아브라함과 85세의 노인 갈렙과 함께 하셨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나이를 초월합니다. 칸트는 나이 74세에 유명한 철학 책을 썼습니다. 베르디는 85세에 “아베마리아”를 작곡했습니다. 시인 테니슨은 80세가 되어 “죽음을 향해”라는 시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또한 괴테는 80세에 ‘파우스트’를 완성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85세로 죽을 때까지 성 베드로 성당의 공사를 감독했습니다. 그리고 ‘피에타’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꿈은 나이를 초월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처럼 찾으시는 것은 꿈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족은 무엇 때문에 갈등합니까? 그 일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가 과연 무엇일까요?
아버지 야곱의 편애, 요셉의 특별한 꿈으로 인해 야곱의 가족 안에는 갈등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특히 요셉의 꿈을 들은 형들은 시기하고 질투만 할 뿐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요셉 또한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오랜 기간 자신이 당할 극심한 고난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를 주관하실 뿐 아니라, 각 사람의 일생까지도 세심하게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요셉을 택해 후일 가족과 여러 민족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 준비시키십니다. 때로는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고 갈등을 겪는 일들이 생깁니다. 믿음의 가정은 갈등과 불화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믿음의 가정은 가족의 갈등이 발생할 때 불평하거나 정죄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위해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쓰임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과거에 서로 갈등한 일로 인해 변화와 성숙을 이루었듯, 현재 겪는 갈등도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한 결과를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과 부어 주실 은혜를 믿고 구하며 믿음으로 갈등과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요셉의 삶에 계획하신 일을 꿈으로 보이셨습니다. 비록 미숙하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그에게 꿈을 주시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격려하십니다. 꿈이 성취되기까지 우리는 때로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시간은 믿음을 단련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하게 하는 준비 과정입니다. 험난한 광야 너머에는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한 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는 우리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 역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커다란 물줄기를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그러면 그 꿈대로 앞길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거대하고 광활한 역사를 이루어 가시면서도 우리 개인에게 온전히 집중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