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열왕 21,17-29; 마태 5,43-48
+ 찬미 예수님
우상을 섬기다가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부부, 바로 아합과 이제벨인데요, 우상 숭배에 빠지더라도 나라만 잘 다스린다면 죄과가 덜하겠지만, 우상 숭배에 빠지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라와 백성의 참된 주인은 하느님이신데,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엘리야, 이사야(이사 1,10-17), 아모스(아모 3,14) 예언자 모두, 왕들의 우상 숭배가 사회 정의를 거스르고 정치적 타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확히 지적했습니다.
어제 제1독서에서 아합은 나봇의 포도밭을 탐내지만, 나봇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아합에게 포도밭을 팔지 않자, 이제벨이 나섭니다. 이제벨은 편지를 써서 나봇을 모함하고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윗이 바쎄바를 차지할 때와 비슷한데요, 다윗은 남의 아내를 탐내고, 아합은 남의 재물을 탐냅니다. 왕들이 이처럼 앞장서서 십계명을 어깁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차지하기 편지를 보내는데, 다윗은 우리야를 죽게 만들고 이제벨은 나봇을 죽게 합니다.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은 일어나,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내려갑니다. 아합은 자신이 직접 나봇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의중을 읽은 다른 사람이 일을 처리하게 하고, 자신은 그 일에 책임이 없다는 듯 행동하는데, 이는 독재자의 전형적 특징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을 찾아가자, 아합은 소리칩니다. “나의 원수! 나를 찾아왔구려.” 엘리야는 말합니다. “찾아왔소. 당신이 당신 자신을 팔면서까지 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행하기 때문이오.” 이어서 엘리야는 아합과 이제벨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예언합니다.
아합에 대한 열왕기의 평가는 “아합처럼 아내 이제벨의 충동질에 넘어가 자신을 팔면서까지 야훼의 눈에 악한 짓을 저지른 자는 일찍이 없었다.”인데요, 하느님의 눈에 악한 일을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팔아넘겼다는 표현이 무척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카인이 아벨을 죽였듯이, 자기 동포 나봇을 죽이는데, 이로써 그가 얼마나 하느님을 거스르는 지를 보여줍니다. 나봇은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의미하는 ‘나비’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포도밭은 자주 하느님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나봇을 죽이고 포도밭을 차지한 것은, 예언자들을 학살하고 하느님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자기 소유로 만들어서 우상에게 바쳤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합의 이 일화를 바탕으로,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말씀하실 것입니다.
엘리야의 말을 듣고 아합이 참회하자, 하느님께서는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집안에 재앙을 내리겠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이는 아버지의 죄과를 죄 없는 아들들에게 묻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아버지의 죄악이 아들 대에서도 되풀이될 때, 그것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하겠는데요,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야에게 가서 “원수인 아합을 사랑하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그런데 사실 엘리야는 아합을 사랑했습니다. 예언자가 통치자를 사랑하는 방식은, 그가 더 큰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그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합이 ‘나의 원수’라고 부른 엘리야를 사랑했어야 하고, 자기 이웃인 나봇과 자기 백성을 사랑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여기서 ‘사랑’은 ‘너그럽고 따뜻하며 다른 이가 잘되도록 스스로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고 물으시는데요, 여기서 ‘인사’는 당신의 행복을 염원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어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여기서 ‘완전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닮기 위해 창조된 존재들입니다. 완전함은 하느님의 속성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완전함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복음서 안에 답이 있습니다. 악인이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악인을 벌하기 위해 선인에게 갈 은총을 거두지 않으시는 것, 이것이 하느님의 완전함이고 따라서 이는 하느님의 자비와 같은 말이 됩니다.
악인이 더 이상 악을 통해 의인을 핍박하지 않도록 회개를 촉구하는 것 역시 사랑의 한 방편입니다. 악인을 회개로 초대하시고 의인에게 자비와 위로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기를, 그리고 우리가 그 사랑의 도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합과 이제벨을 만난 예언자 엘리야
출처: Who Is King Ahab in the Bible? (christian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