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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성경에서 움튼 가르멜 영성
모든 성인의 삶에는 말씀이 깊이 깃들어 있습니다. 한 예로 말씀에 터를 잡은 가르멜 영성과 가르멜 성인들의 삶에서 하느님 말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봅니다. 가르멜 산을 중심으로 신심 깊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때는 중세 훨씬 이전, 멀리는 구약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순수한 야훼 신앙의 근거지 가르멜 산
일찍이 가르멜 산은 이스라엘 왕국 시대 아합과 이제벨 여왕이 통치하던 시절,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 사제에 맞서 경합을 벌인 곳입니다. 가르멜 산 외곽에 있는 성지 ‘무라카’에서는 지금도 그 사건을 기억하며, 당시 가나안 지역의 우상들에 맞서 야훼 하느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을 지켜 낸 엘리야 예언자의 기상을 기립니다.
엘리야는 순수한 야훼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가르멜 산 중턱 동굴에 예언자 학교를 만들어 제자들을 양성했습니다. 지금도 그 동굴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그리스도교 신자들뿐 아니라 유다인과 이슬람 신자들에게 큰 존경을 받습니다. 매년 7월 20일 엘리야 예언자를 기념하는 축일에는 가르멜 산 일대가 세 종교의 신자들로 북적이며 큰 축제가 벌어지곤 합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 가르멜 산에서 시작된 은수 생활
지금의 가르멜 수도회는 13세기 초, 현재 이스라엘 북부 항구 도시 하이파 일대의 가르멜 산을 중심으로 모여든 유럽 십자군 기사들에 의해 시작된 공동체입니다. 당시에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이 수차례 파병되었습니다. 특히 제4차 십자군 전쟁으로 성지가 탈환되고 그곳이 안정되자, 신심 깊은 일군의 십자군 기사들은 가르멜 산 어느 골짜기 동굴에 터를 잡고 살면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은수자는 점점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 ‘브로카르도’가 예루살렘 총대주교인 성 알베르토에게 공동체를 위한 수도 규칙을 만들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른바 ‘원(原)회규’를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공주(公住) 은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 이후 야훼 하느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신앙을 갖고 살고자 한 은수자들은 구약 시대 내내 가르멜 산을 찾아왔습니다. 신약 시대로 들어와서도 적지 않은 은수자들이 가르멜 산에서 주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을 불태우며 살았습니다. 가르멜 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런 영적 전통에서 엘리야 예언자는 은수자들의 시조(始祖)이자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아 왔습니다.
가르멜 영성의 시조인 엘리야 예언자
13세기 초 브로카르도 수사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만들어졌을 때 그들은 엘리야의 후예를 자처하였습니다. 그 후로 가르멜의 역사에서는 언제나 엘리야가 정신적 창립자로 공경받아 왔습니다. 또 가르멜의 은수자들은 엘리야의 정신을 이어받은 광야의 선각자 세례자 요한을 이러한 영적 맥을 잇는 중요한 인물로 공경해 왔습니다. 따라서 가르멜의 영적 전통에서는 ‘엘리야’로 대변되는 예언자 정신이 수도회 카리스마의 중요한 부분을 이룹니다.
가르멜 수도자의 전형(典型) 엘리사
엘리야에게서 시작된 가르멜 영성이 지닌 성경 전통은, 그의 직계 제자인 엘리사의 정신을 가르멜 수도자의 전형적 모델로 받아들이면서 심화되었습니다. 교부 시대로 들어와 적지 않은 교부들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표상으로 엘리야와 엘리사를 받아들였습니다. 나병 환자를 고치는 두 예언자의 모습과 많은 병자를 치유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계하여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또 교부들은 두 예언자를 주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파견된 동정자로 여겼습니다. 중세 가르멜 수도자들은 이 점을 발전시키는 가운데, 자신들을 동정을 지켜 주님께 축성된 첫 번째 사람의 전형으로 여겼습니다. 나아가 엘리야 예언자가 가르멜 산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하여 가르멜의 영적 산맥에 바탕을 마련했다면, 엘리사 예언자는 이를 바탕으로 가르멜 영성이 꽃피울 수 있도록 물을 대고 교회에 널리 퍼져나가게 한 핵심 인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성경의 전통을 바탕으로 시작된 가르멜 영성
가르멜 수도회는 성경의 전통에 바탕을 두고 성경을 근간으로 영성을 꽃피운 수도회입니다. 초창기 은수자들이 지향한 목표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그들은 자신을 엘리야의 후예로 인식하여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 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자신을 성모님의 아들로 여겨 성모 신심을 영성의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셋째, 그들은 삶의 중심에 ‘성경’을 놓고 늘 수방(修房)에 머물며 주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했습니다. 넷째, 그들은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는 가운데 자신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인식했습니다. 따라서 수도회 설립 초기부터 가르멜 영성에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전통이 깊게 뿌리내렸습니다.
성모님께 봉헌된 가르멜 영성
가르멜 산의 은수자들이 모여 예루살렘 총대주교에게서 원회규를 인준받을 당시, 그들은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형제들’로 불렸습니다. 수도회 명칭에도 나와 있듯, 가르멜 수도자들은 신약의 새 하와이신 성모님에게서 완전한 성성(聖性)을 보았습니다. 성모님은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실현되도록 하느님께 순명하며 그분의 말씀을 잉태한 여인이자 성교회의 어머니이십니다. 이 점을 간파한 가르멜 수도자들은 수도회 시작부터 그분의 형제이자 아들임을 표방하여 그분의 품 안에서 영성을 발전시켰습니다. 가르멜 수도자들은 성모님을 ‘여왕(Regina)’, ‘어머니(Mater)’, ‘누이(soror)’로 고백하며, 영성 생활의 안내자요 수호자로 공경해 왔습니다.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거룩한 독서와 가르멜 영성의 전통
초기 가르멜 은수자들의 ‘거룩한 독서’
가르멜 수도회는 창립 당시부터 성경의 전통에 뿌리를 둔 공동체였습니다. 가르멜 산에서 은수 생활을 하던 초창기 회원들은 ‘성경’을 자기 삶의 근본 바탕으로 여기며 밤낮으로 성경을 묵상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가르멜 수도회 영성의 근간이 됐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원회규(原會規)’에 다음의 규범이 있습니다. “각자는 다른 정당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 한, 자기 수방이나 그 근처에 머물면서 주님의 법을 밤낮으로 묵상하고 깨어 기도할 것입니다.” 이 성경 묵상 규범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즉 ‘거룩한 독서’라는 형태로 가르멜 수도회에서 구체화되었습니다. 초창기 회원들은 ‘묵상’할 때 큰 소리로 성경 구절을 반복해서 읽어 기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말씀을 마음 깊이 받아들여 하느님과 대화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거룩한 독서’는 가르멜 기도 전통의 바탕
가르멜의 초기 은수자들은 전통적으로 거룩한 독서를 위해 시편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수방에서 시편 전체를 하루에 다 낭송하는 가운데 이를 기도로 봉헌했습니다. 그러나 혼자 수방에서 거룩한 독서만 한 것이 아니라, 성찬례 때 공동체가 함께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1247년 새로 승인된 ‘원회규’에는 “주님의 법을 밤낮으로 묵상하고 깨어 기도하라”는 초기 ‘원회규’의 가르침을 자세히 풀어서 권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거룩한 독서에 전념하고 거룩한 생각으로 우리 마음을 다지며, 끊임없이 주님의 법을 묵상할 것이니, 이는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입술과 마음에 차고 넘쳐서 매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가르멜의 영성 전통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것은 성경에 대한 ‘거룩한 독서’를 말하며, 이를 통해 생각과 입술과 마음에 주님의 말씀이 가득 차고 그것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중세의 가르멜 성서학자들의 성경 연구
‘거룩한 독서’ 전통은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가르멜 수도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왔습니다. 이는 가르멜 수도회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유럽으로 유입되어 도미니코회나 프란치스코회와 같은 ‘탁발 수도회’로 교회에 받아들여지면서, 교회 내 여러 사도직에 투신하는 가운데 사도직 활동의 바탕이 됐습니다. 여러 본당을 맡아 사목하면서 말씀에 대한 묵상을 바탕으로 강론과 강의를 하는가 하면 여러 대학에서 성경을 강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14-15세기에 대학에서 성경을 강의하는 교수들 가운데 삼분의 일 정도가 가르멜 회원이었으며, 당시 교회 내에 널리 읽힌 성경 주해서의 상당수가 가르멜 회원들에 의해 집필되었습니다. 이처럼 가르멜 회원들의 성경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자연스레 가르멜 학파가 형성되었으며, 성경에 대한 독특한 해석 방식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가르멜 회원들의 성경 연구와 영성 생활에서 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시편이었습니다. 가르멜 회원들은 시편 구절을 전례와 기도에 자주 활용하고, 특히 교부들과 수도승 전통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바탕으로 이를 개인 차원의 묵상으로 심화해 나갔습니다.
근대 가르멜 회원들의 성경 독서
근대로 들어와 가르멜 수도회의 ‘거룩한 독서’ 전통은 점차 ‘묵상 기도’로 바뀌어 갔습니다. 성경 역시 회원들의 영성 생활에서 점차 중요성을 잃어 갔습니다. 이는 가르멜 수도회뿐 아니라 교회 전체가 겪은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성녀 데레사를 비롯해 십자가의 성 요한, 이탈리아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같은 경우는 자신의 영성 생활 중심에 언제나 성경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하느님에 대해 깊은 신비 체험을 하고 그 신비 체험을 성경을 기준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두 연인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가는 여정으로 비유하면서 이를 ‘아가’ 해설로 풀어냈습니다. 성녀 데레사의 《아가서 묵상》과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혼의 노래》가 그것입니다. 또 성녀 데레사는 기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특히 구송 기도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완덕의 길》 후반부 전체를 할애한 가운데 신약성경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주님의 기도’를 해설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두 성인의 작품 곳곳에는 다양한 성경 인물이 포진되어 영적 안내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현대 가르멜 성인들의 영성의 핵심인 ‘성경’
19세기로 접어들면서 가르멜 수도회를 비롯해 가톨릭 교회 전체에서 성경을 활용하지 않는 경향이 짙어 갔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실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예외는 있었습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와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이 그렇습니다. 두 가르멜 성인은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자기의 영적 여정을 개척한 영민한 사람이었습니다. 소화 데레사의 경우 특히 사도 바오로 서간 가운데 1코린 12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묵상하면서 교회의 모든 지체가 되고 싶어 한 자신의 거룩한 원의에 응답하는 천상의 빛을 받게 됩니다. 이로써 성녀는 교회 안에서 심장이 되어 교회의 모든 지체에게 생명을 전해 주겠다는 자신의 성소를 발견합니다. 소화 데레사 영성의 핵심인 ‘영적 어린이의 길’은 신구약 성경의 여러 구절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해 얻은 결실입니다.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도 사도 바오로 서간에 대한 묵상을 바탕으로 주옥 같은 영적 소품들을 집필했으며,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영혼이 되겠다는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습니다.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엘리야 예언자를 묵상하다
가르멜 영성의 정신적 시조 엘리야
가르멜 영성의 전통에서 엘리야 예언자는 정신적 시조(始祖)이자 가르멜 수도회의 창시자로 존경받는 분입니다. 수도회 창립 초기부터 가르멜 회원들은 엘리야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구약성경을 통해 전해진 그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묵상하며 거기에서 많은 자양분을 얻어 왔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등장한 때는 기원전 9세기경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합 임금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인접한 티로 왕국과 정치 · 경제 · 군사적 협정을 맺고 이스라엘 왕국의 기틀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계약의 하느님이신 야훼 대신 풍요의 신 바알을 섬겼습니다. 아합이 거짓 평안을 보장해 주는 우상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바알이 주는 평화는 그 이면에 엄청난 거짓과 불의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엘리야가 걸은 여정
1열왕 17장은 엘리야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우선 엘리야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우상을 택한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가뭄’의 저주를 내립니다. 그 후 하느님께서 그를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로 인도하시고, 그는 거기에서 까마귀들이 날라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시 그를 시돈의 사렙타에 사는 어느 과부의 집으로 보내십니다. 과부는 먹을 것이 없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아들과 함께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여인이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대접받고 힘을 얻어 여인을 축복해 줍니다. 그리고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자 아이를 살려냅니다. 이로써 그는 하느님의 예언자로 서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 엘리야의 여정을 보살피고 인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엘리야를 크릿 시내로 보내시고, 그는 주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거기로 갑니다.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전에 그가 해야 할 일은 말씀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는 먼저 그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했습니다. 그 뒤 엘리야는 시돈의 사렙타로 파견되어,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가난한 과부에게 음식을 청하고 그에게서 환대와 자비를 배워야 했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아합 임금이 아니라 바로 그 가난한 과부를 통해 주님의 예언자로 인정받습니다(1열왕 17,24 참조).
엘리야에 대한 교부들의 묵상
이런 엘리야의 모습은 교부들에게 좋은 묵상 주제가 되었습니다. 교부들은 1열왕 17장을 두 가지 차원에서 영성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첫째, 주로 그리스 교부들(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요한 크리소스토모, 바실리오, 요한 다마쉐노 등)은 하느님과 엘리야 예언자의 ‘투쟁’을 강조했습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운 분이시지만, 처음에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뭄에서 해방하는 일을 적잖이 내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과 엘리야의 ‘투쟁’이 일어난 무대는 엘리야가 걸은 크릿 시내에서 사렙타까지의 여정이었습니다. 이 본문을 묵상한 교부들은 엘리야를 통해 발설된 가뭄이라는 저주가 아합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긴 죄에서 유래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하느님께서는 왜 엘리야를 크릿 시내로 먼저 보내시고 그 다음에야 사렙타로 보내셨는가 하는 점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그리스 교부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엄청난 죄로 인해 야기된 가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숨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이 여정을 겪으며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둘째, 주로 라틴 교부들(암브로시오, 아를르의 체사레오)과 시리아 교부(에프렘)는 등장인물들을 예형론으로 해석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엘리야는 그리스도를 예시(豫示)합니다. 그가 그리스도처럼 광야에서 배고픔을 겪고 하느님에 의해 양육됐기 때문입니다.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고기를 가져다 준 사건은 하느님 말씀이 강생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사렙타의 과부는 교회를 예시합니다. 둘 다 신랑(그리스도)을 고대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밀가루 한 줌과 기름 그리고 땔감으로 쓸 나무(그리스도의 십자가 나무)를 조금만 갖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엘리야에게 마실 물을 주었습니다. 물은 세례를 상징합니다. 과부가 가진 기름은 병자성사, 하느님의 사랑, 영적 기쁨을 상징합니다. 밀가루는 하느님 말씀, 성체, 신앙을 상징합니다. 엘리야가 죽은 과부의 아들 위에 자기 몸을 세 번 펼친 것은 새 생명을 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행위를 보여 줍니다.
1열왕 17장에 대한 수덕적·신비적 차원의 해석 묵상
14세기경 가르멜 수도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초기 가르멜 수도승들의 규범>에 따르면, 가르멜의 오랜 전통은 1열왕 17장(특히 17,2-6)을 수덕적 · 신비적 전망에서 해석했습니다. 여기에서 엘리야가 크릿 시내를 향해 가는 영적 여정(1열왕 17,3)은 네 단계로 표현됐습니다. 우선 수덕적 차원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이곳을 떠남’ - 자신과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함(세속과 자신에게서 이탈해 가난하게 삶). 2단계: ‘동쪽으로 감’ - 무질서한 욕망을 포기함(하느님 현존 안에서 순명하며 삶). 3단계: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냄’ - 고독을 선택함(정결의 삶). 4단계: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 애덕 실천을 통해 죄와 결별함.
또 이 전통은 엘리야의 여정을 참된 자유에 이르기 위한 신비적 여정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해석했습니다. 1단계: 두 가지 자유를 얻기 위해 지상의 보화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질식시키는 모든 원의에서 자유로워져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자기 것으로 동화하기 위한 자유를 말합니다. 2단계: 더 높은 차원의 두 가지 자유를 얻기 위해 영적 이기주의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는 인간을 파괴하는 무질서한 욕망에서 벗어나는 자유와 그리스도의 뜻과 일치하는 가운데 성장하기 위한 자유를 말합니다. 3단계: 엘리야처럼 고요한 광야에 머물러야 하는데, 이 역시 다른 두 가지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불공평한 관계에서 벗어난 자유, 그리고 하느님을 비롯해 사람들과 더욱 참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가운데 성장하기 위한 자유입니다. 4단계: 이전 단계를 거쳐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하느님의 사랑을 자기 삶의 중심에 두고 그분과 온전히 일치하며 살게 됩니다.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야훼 신앙을 충실히 지킨 엘리야
엘리야는 바알 사제들과 경합하는 사건(1열왕 18장 참조)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종교 혼합주의에 빠져, 자신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고 약속의 땅을 선물해 주신 계약의 하느님을 잊은 채 가나안 사람들이 믿던 풍요의 신 바알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사렙타에서 과부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용기 백배한 엘리야는 아합 임금과 담판을 벌였습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카르멜 산에서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들과 겨룬 이야기와 가뭄이 끝나는 이야기(1열왕 18,20-46 참조)를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엘리야와 바알 예언자들의 경합
엘리야는 450명이나 되는 바알 예언자들과 경합하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을 섬기지 말고 야훼 하느님을 믿는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합니다(1열왕 18,21 참조). 그는 야훼 하느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길 수 없기에 회심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이제 경합이 시작됩니다. 수많은 바알 사제가 춤을 추고 칼과 창으로 스스로를 찌르며 온종일 바알을 불러 댑니다. 그러나 바알은 그들의 외침을 전혀 듣지 못하고 응답하지도 못합니다. 반면 엘리야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주위로 부르고, 그들 앞에서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돌로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습니다. 장작 위에 황소를 토막 내어 올려놓고 물을 세 번이나 흠뻑 부은 다음 야훼 하느님께 제물을 불살라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순식간에 제물을 살라버리고 맙니다.
그제야 온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야훼)이야말로 하느님”(1열왕 18,39)이시라고 고백하며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 후 엘리야는 모든 바알 사제를 붙잡아 키손천에서 죽입니다. 이로써 엘리야는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잘못을 대면하고 계약의 하느님께 돌아와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합니다.
1열왕 18,41-46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로 시작된 가뭄의 저주가 풀리는 과정을 전해 줍니다. 여기서도 엘리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는 카르멜 산에서 양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부복한 채 주님께 중재 기도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회심을 보신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교부들의 묵상
1열왕 18장의 엘리야 이야기에 대해 초대 교회 교부들은 크게 ‘영성적-상징적 묵상’과 ‘성사적-신비 교육적 묵상’을 제시했습니다. 우선 교부들은 가뭄으로 죽어 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엘리야를 그들 가운데 파견하신 것이 근본적으로는 그분의 자비에서 유래한다고 보았습니다. 크리소스토모는 해산하는 여인이 고통 중에 아기를 기다리듯, 주님께서 죄인들과 화해하기를 서두르셨다고 했습니다. 또 교부들은 죄에 얽매인 인류에게 구원 경륜을 드러내신 하느님께 온전히 순명한 사람, 구원을 중개한 사람 엘리야의 위상을 언급했습니다.나아가 교부들은 1열왕 18장의 이야기를 다른 성경 구절과 연관하여 폭넓게 묵상하기를 권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알 숭배를 조장한 아합 임금을 엘리야가 비난하는 부분은 파라오를 비난한 모세와 아론의 이야기(탈출 6,29-11,10 참조)와 함께 묵상하기를 권했고, 카르멜 산에서 불로 제물을 사르던 엘리야의 모습은 아브라함과 야훼 하느님의 계약 체결(창세 15,1-18 참조),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인류 구원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과 연관 지어 묵상하기를 권했습니다. 또 제물을 사르던 ‘불’을 예수님께서 세상에 가져오기를 바라신 ‘불’(루카 12,49), 오순절 때 임한 ‘성령’(사도 2,3 참조)과 연결 지어 보도록 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중재 기도를 통해 가뭄을 해소하는 ‘비’가 내린 것은 새로운 창조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반면 1열왕 18장을 성사적-신비 교육적 차원에서 해석하고자 한 암브로시오는, 1열왕 18장에 나오는 엘리야의 희생 제사를 세례성사의 예형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제물과 장작에 항아리로 물을 세 번 부은 행위를 세례와 연관지었으며, 시로의 테오도로는 그것이 삼위일체를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가르멜 영성의 전통에 따른 묵상
가르멜 수도회는 오랫동안 1열왕 18장 가운데 41-44절에 집중하여 신비적 · 마리아적 차원과 카르멜 산이 상징하는 가치를 묵상하고 전승했습니다. 《초기 가르멜 수도승들의 규범》 4권 1-4장에서 제시된 1열왕 18,41-44에 대한 해석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카르멜 산에서 엘리야에게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신 성자의 강생의 신비를 계시하십니다. 또 엘리야의 중재 기도 후에 나타난 ‘구름’은 동정 마리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작은 구름이 바다에서 일었는데, 그것은 동정 성모께서 죄의 무게로 인해 무겁고 왜곡된 인류로부터 탄생하신 것을 뜻한다. 그 구름을 ‘작은 구름’이라 한 것은 동정 마리아의 겸손을 상기시켜 준다. 또한 그 구름은 ‘감미로운’ 구름인데, 이는 동정 성모께서 하느님의 현존,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하셨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바닷가에 나가 비구름이 몰려오는지 확인하도록 제자를 일곱 번 파견합니다. 이 규범서에 따르면, ‘일곱 번’은 구원 역사의 일곱 단계, ‘바다’는 죄로 물든 인류를 상징합니다. 그가 비구름이 오는지 살펴보라고 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성자가 강생하시는 표징을 찾는 모습에 비견됩니다. 이 모든 일은 ‘기도’라고 하는 전체 맥락에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해석에 힘입어 우리는 엘리야가 수행한 예언자의 소명을 이해할 수 있고 그를 ‘신비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주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였습니다. 하느님 말씀의 씨앗 속에서 그분의 현존에 대한 징표를 발견할 줄 알았습니다.
중세 가르멜 수도자들에게 ‘카르멜 산’은 엘리야 예언자의 삶과 연관된 다양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야가 우상 숭배를 척결한 일, 야훼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쇄신한 일, ‘비’로 상징되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천상에서 내리도록 줄곧 기도한 일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중세 가르멜 회원 바콘토르페(J. Baconthorpe)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카르멜 산은 하느님의 풍부한 자비를 체험하는 곳이다. 엘리야가 ‘비’를 몰고 온 작은 구름 한 점을 보았을 때 하느님의 자비가 다시 내렸기 때문이다. 또한 카르멜 산은 살아 계신 하느님을 체험하는 곳이다. 그 체험은 엘리야의 중재 기도에 힘입어 불, 다시 말해 하느님 사랑의 불을 통해 계시됐기 때문이다.”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하느님을 향한 열정에 불탄 엘리야
이번 달에는 ‘엘리야의 하느님 체험’(1열왕 19,1-18 참조)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엘리야가 호렙 산으로 가는 여정’(1열왕 19,1-8 참조)과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하느님을 체험한 사건’(1열왕 19,9-18 참조)으로 나뉩니다.
호렙 산을 향한 엘리야의 여정
1열왕 19,3-5에서 우리는 목숨을 구걸하며 도피 행각을 벌이는 겁쟁이 엘리야를 만나게 됩니다. 수백 대 일로 바알 사제를 대적했던 엘리야의 기상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임금 아합과 왕비 이제벨은 엘리야가 바알 사제 수백 명을 쳐 죽이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엘리야를 붙잡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쳐나가 주님께 울부짖습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1열왕 19,4). 그는 이렇게 탄식하다 잠이 듭니다. 목숨을 거두어 달라 했지만 사실 그는 살고 싶어서 비굴하게 도망쳤고, 그래서 하느님을 향한 그의 부르짖음에는 역설적이게도 목숨을 살려 달라는 간절한 애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초라하고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며 절망 속에서 잠듭니다.
‘잠’은 인간이 가장 무력해지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하느님께 투정을 부리다 잠들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완전히 바닥을 쳤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절망의 끝에서 하느님 섭리를 체험합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그를 깨우며 빵과 물을 준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엘리야는 40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인 호렙에 도착합니다. 이런 엘리야의 여정은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여정을 함축하여 보여 줍니다.
엘리야가 도착한 호렙 산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여정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시나이 산입니다. 그러기에 호렙 산을 향한 엘리야의 여정은 우상 숭배로 인해 파기된 계약을 복원하기 위한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호렙 산에서 만난 하느님
1열왕 19,9-18은 엘리야에 관련된 사화 가운데 백미(白眉)라 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어떻게 하느님을 체험했는지, 그 체험을 통해 그동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주님에게서 파견되는지 보여 줍니다.
엘리야가 호렙 산 동굴에서 하느님을 체험한 시간은 ‘밤’이었습니다. 그 밤은 시간적 의미뿐 아니라 심리적·영성적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하느님께서 그에게 물으시고 그가 대답합니다(1열왕 19,9-10 참조).
그 후 엘리야는 하느님의 현현(顯現)을 체험합니다. 강한 바람이 일고, 지진과 불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주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1열왕 9,12)로 당신을 드러내시고, 엘리야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며 그를 파견하십니다.
교부들의 묵상
교부들은 이 이야기에서 두 가지 인간적 · 영적 체험에 주목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실패와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교부들이 엘리야의 실패에 주목한 이유는, 이제벨의 위협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우상 숭배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는 것과 엘리야만이 야훼 하느님께 충실한 예언자로 남았다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위(僞) 크리소스토모 같은 경우는 여기에 한 가지 해석을 추가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들에게 지나치게 냉혹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충만한 사람이지만 유배되고, 동시에 자신의 나약함과 완고함을 체험했습니다. 위 크리소스토모와 위 에프렘은 엘리야가 이러한 실패의 체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났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반면 시로의 테오도로는 하느님께서 인자하고 온화한 음성으로 당신을 드러내신다고 보았습니다. 나르세이는 하느님께서 친근한 벗의 음성으로 나타나신다고 했고, 가자의 프로코피오는 그것이 영(Spiritus)의 체험과 같다고 했습니다. 요한 다마세노는 이런 일련의 해석을 종합하는 가운데, 호렙 산 체험은 신비 체험으로 엘리야의 회심을 목적으로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엘리야는 이 체험을 통해 교만을 떨쳐버리고, 살아남은 이스라엘의 작은 이들과 더불어 형제애를 나누도록 초대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가르멜 영성의 전통에 따른 묵상
전통적으로 가르멜 수도회 회원들은 호렙 산을 향한 엘리야의 여정과 그곳에서 한 하느님 체험을 상징으로 해석했습니다. 교부들의 해석을 바탕으로, 엘리야가 머무른 싸리나무에서 인류를 구원한 ‘그리스도의 십자 나무’를 보았습니다. 또 뜨겁게 달군 돌 위에 얹힌 구운 빵에서 ‘성체’를 읽어 냈으며, 엘리야가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한 데에서 공생활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40일간의 광야 체험을 읽어 냈습니다.
“엘리아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1열왕 19,9)라는 하느님의 물음에 “저는 만군의 주 하느님을 위하여 열정에 불타고 있습니다(Zelo, zelatus sum pro Domino Deo exercituum)”(1열왕 19,10 참조)라고 엘리야가 대답한 구절은, 가르멜 수도회의 모토가 되었습니다. 이 모토는 불타오르는 칼을 잡고 있는 팔과 더불어 수도회의 정신을 상징하는 방패 위에 걸려 있습니다. 이 문장(紋章)은 1595년 당시 가르멜 수도회 총장인 스테파노 치촐라(Stefano Chizzola) 신부에 의해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가르멜 수도회를 대표하는 공식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가르멜 수도회 총장을 역임한 힐리(K. Healy) 신부는 이 문장에 ‘관상’과 ‘활동’의 조화를 표방하는 수도회의 정신이 담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원(原) 가르멜회는 1열왕 19,9-10을 ‘사도적 활동’으로 읽은 반면, 개혁된 맨발 가르멜회는 ‘관상적 소명’ 즉 하느님 현존에 대한 신비 체험이라는 소명으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맨발 가르멜 회원들은 그 말씀을 바탕으로 관상하는 삶을 추구했고, 그 길에서 성녀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성녀 소화 데레사, 성녀 에디트 슈타인, 복녀 엘리사벳 같은 관상가가 나왔습니다.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엘리야의 마지막 여정
이번 달에는 엘리야의 마지막 여정인 ‘엘리사를 제자로 부르는 이야기’(1열왕 19,19-21 참조)와 ‘승천 이야기’(2열왕 2장 참조)를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다
엘리야는 활동을 마칠 무렵 자신의 후계자를 물색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열심히 밭을 가는 엘리사를 눈여겨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의 곁을 지나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줍니다. 겉옷을 걸쳐 주는 행위는 단순히 자기 물건을 선물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엘리사가 자신의 영적 전통을 지속하도록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그에게 자신의 모든 카리스마를 나눠 준다는 의미입니다. 엘리야에게서 겉옷을 받은 엘리사는 그것이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며, 이는 엘리야를 대신해 예언자로 쓰시겠다는 하느님의 부르심임을 알았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스승으로 모시고 따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러 다녀오겠다고 청합니다. 이에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1열왕 19,20) 이 말은 문맥상 엘리사를 야단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가 받은 부르심이 뭔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이 뭔지 알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이 배어 있는 듯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바로 응답하지 못하고 핑계만 대는 제자들(루카 9,57-62 참조)을 상기시킵니다.
엘리야의 승천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가 예언자 수업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엘리사가 자신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커가자 엘리야는 하느님께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2열왕 2장을 보면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자신의 마지막 여정에 따라오지 말라고 명합니다. 엘리사는 스승을 끝까지 따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강을 건넌 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자신이 그에게 해 줄 것이 있으면 청하라고 하자,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의 두 몫을 자신에게 물려 달라고 청합니다. 그는 스승이 곧 자신을 영원히 떠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요청에 확답을 주지 않는 대신 곧 일어나게 될 신비로운 사건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되리라고 이릅니다.
결국 엘리사는 하늘에서 불 말이 끄는 불 병거가 나타나 엘리야를 태워 승천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로써 엘리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두 몫의 영을 물려받습니다. 그는 영적 아들로서 영적 부성父性과 예언자적 카리스마에 참여하게 됩니다(2열왕 2,12 참조). 엘리야가 승천해서 완전히 사라지자 엘리사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두 조각으로 찢습니다. 그러고는 엘리야가 남겨 준 겉옷을 취합니다. 이 행동은 스승이 떠나간 고통을 표현하며, 이제 그가 엘리야의 영을 온전히 물려받아 엘리야와 같은 권위와 능력을 갖추었음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교부들의 묵상
1열왕 19,19-21과 2열왕 2장에 대한 교부들의 성찰은 다음 두 가지 전망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곧 본문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이 지닌 영적 의미를 강조하고, 신약성경의 빛 아래서 사건이 갖는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교부들은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는 이야기(1열왕 19,19-21 참조)를 보면서 ‘예언자의 삶을 향한 부름과 따름’이라는 영적 의미를 부각합니다. 그에 따르면, 엘리야에게 겉옷을 받은 엘리사는 엘리야의 예언자적 영을 물려받게 됩니다. 그러나 엘리야를 통해 엘리사를 부르는 분은 하느님이셨습니다. 교부들은 이 이야기를 신약성경의 빛으로 재조명하는 가운데,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겉옷을 걸쳐 준 행위가 오순절에 사도들이 받은 성령의 선물을 예표한다고 해석합니다.
두 번째, 교부들은 2열왕 2장의 엘리야의 승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우선 교부들은 엘리야가 승천한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에 대해 다양한 숙고가 있었으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해답을 찾았습니다.
첫째, 그것은 하느님께서 엘리야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마음이 순수한 사람’으로 더는 사람들의 죄를 견딜 수 없었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를 하늘로 불러올리시고 그를 대신할 영적 아들, 즉 엘리사를 지상에 남겨 두고자 하셨습니다. 둘째, 엘리야의 겸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우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했기에 그를 천상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셋째, 교부들은 이 사건을 하느님께 향하는 영적 상승의 여정 가운데 정점(頂點)으로 보았습니다. 엘리야는 오랫동안 우상 숭배에 맞서 싸웠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영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엘리야의 수고를 어여삐 보시고 그가 당신 곁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가르멜 영성의 전통에 따른 묵상
가르멜 수도자들은 엘리사의 부름받음과 엘리야의 승천을 교부들이 가르쳐온 해석의 선상에서 묵상해 왔습니다. 거기에 더해 두 인물이라는 거울에 비춰 자신의 수도 성소를 새롭게 발견하고 깊이 있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우선 가르멜 수도자들은 엘리야 예언자의 제자 그룹들에 대해 전하면서 그들을 가르멜 수도자의 모태가 되는 수도승으로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엘리사를 으뜸가는 제자로 여겨 그를 예언자요 수도승의 전형(典型)으로 보았습니다. 또 엘리야와 제자 예언자 그룹을 가르멜 공동체의 원형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카르멜 산에서 형성된 첫 번째 공동체로서 가르멜 수도자들의 이상(理想)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르멜 수도자들은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를 당시 겉옷을 준 행위에서 형제적 계승(繼承)을 읽어 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두 몫의 영을 받는 것을 두고 ‘관상적 삶’과 ‘활동적 삶’의 카리스마를 받은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엘리사가 승천한 엘리야의 겉옷을 취한 행위를 두고는 관상적·활동적 삶에 더해 ‘신비 체험’의 선물도 받았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가르멜 수도자들은 예형론적 관점에서 엘리야의 승천을 ‘그리스도의 신비’와 대비하여 묵상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 엘리야가 승천하며 엘리사에게 겉옷을 준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하시기 전에 당신의 성체와 성혈을 제자들에게 나눠 주신 것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어 제자들에게 주신 ‘성령’의 선물로 해석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