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355)... 안전 死角지대 ‘요양병원’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요양병원(療養病院) 난립 방치
오늘(6월 4일) 제6회 전국 지방선거를 통하여 광역단체장(시ㆍ도지사), 교육감, 기초단체장(시장ㆍ군수ㆍ구청장), 지역구 시ㆍ도의원, 지역구 시ㆍ군ㆍ구의원 등 3952명을 뽑는다. 유권자 수는 4129만6228명으로 지방선거 최초로 4000만명을 넘어섰다. 후보자 8904명 대부분은 세월호 침몰사고 등 사회분위기를 감안하여 ‘안전(安全)’을 선거공약에 우선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지난 5월 28일 21명이 숨진 전남 장성 요양병원(療養病院) 화재에 따른 후속 조치 차원에서 경찰청은 보건복지부와 합동으로 전국 1289개소 요양병원에 대한 불법행위 특별단속을 실시한다고 6월 2일 밝혔다. 즉 경찰청은 7월 말까지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 요양병원의 환자 관리 및 시설 안전, 화재 안전 분야 관리상 미흡한 점이 있는지를 정밀 점검할 계획이다. 또한 요양병원ㆍ시설 등 법령 위반과 부패비리(腐敗非理) 특별단속을 하기로 했다.
‘요양병원’이란 장기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돌보는 30병상(病床) 이상을 갖춘 병원으로 치매, 뇌혈관 질환 후유증(後遺症) 등을 앓는 환자를 장기간 입원 치료하는 곳이다. 한편 ‘요양원’은 의학적 관리 보다는 일상생활에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이 이용한다. 현재(2014년 4월) 전국의 요양병원(1284개) 입원 환자는 34만명으로 노인 요양원(4,724개) 11만명보다 2배 이상 많다.
요양병원은 급한 수술이나 집중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노인성 질환이나 만성질환 등으로 장기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다. 이에 병원 설립 허가를 내줄 때부터 장기 입원 환자를 위한 안전시설(安全施設)을 점검해야 하지만, 금년 4월 이전까지는 그런 기준 자체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인구 고령화(高齡化)로 요양병원 수요는 많은데 노인들이 장기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부족하다는 여론이 일자, 정부는 요양병원 늘리기에만 급급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요양병상 확충 지원 융자 사업을 2002〜2007년에 벌여 일반병원을 요양병원으로 전환하면 병상(病床)당 1000만원, 요양병원을 신축하면 병상당 2000만원까지, 약 300억원을 대출해 주었다.
일반병원과 요양병원 허가 기준은 일반병원에서 의사는 환자 20명당 1명, 간호사는 환자 2.5명당 1명을 확보해야 하지만, 요양병원은 환자 30명당 의사 1명, 간호사는 환자 6명에 1명만 두면 된다. 간호조무사는 간호사 정원의 2/3 범위 안에서 둘 수 있다.
이에 노인 환자가 많은 데다 정부가 지원까지 해주니 중소(中小)병원을 요양병원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모텔이나 여관, 유흥업소를 개조해 요양병원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비(非)의료인이 요양병원을 짓고 의사를 고용해 운영하는 이른바 ‘사무장 병원’까지 난립해 전국 요양병원의 30% 정도는 사무장 병원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가 대출해 주고 시설점검 없이 설립허가를 내주어 2004년 113개였던 요양병원이 우후죽순(雨後竹筍) 같이 늘어 지난 10년 동안 10배 이상 늘어 현재(2014년 4월) 1284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요즘 도심형 요양병원이 인기를 끌면서 모텔을 개조해 병원을 만든 곳이 수두룩하다. 경기도 광명시 소재 한 요양병원의 경우, 6층짜리 건물 가운데 지난해까지 나이트클럽으로 쓰이던 4ㆍ5층을 개조하여 병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1ㆍ2층은 식당과 호프집이 그리고 3층은 안마방이 쓰고 있다. 이 건물에는 어른 서너 명만 타도 비좁은 엘리베이터가 1대가 설치되어 있어 화재 발생 같은 비상시에 환자 이송용 침대는 들어갈 수 없다. 또한 침대가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傾斜路)도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2012년 3월 전국 937개 요양병원을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환자 이송용 침대가 들어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됐거나 침대를 밀고 내겨갈 수 있는 경사로가 있는 병원은 673곳(72%)뿐이었다. 나머지는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환자 이송용 침대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곳이 243곳(26%), 아예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는 병원이 21곳(2%)으로 조사되었다.
심평원의 요양병원(937곳) 평가 결과, 1등급(83점 이상) 112곳(12.0%), 2등급(75〜83점) 184곳(19.6%), 3등급(67〜75점) 251곳(26.8%), 4등급(59〜67점) 239곳(25.5%), 5등급(59점 미만) 123곳(13.1%), 등급 제외 28곳 등으로 나왔다.
건강보험에서 요양병원 입원 환자에게 지급하는 진료비는 일당 정액제(하루 2만〜5만여원)이므로 환자 1인당 진료비로 한 달에 최대 150만원들 받을 수 있다. 한편 환자 입장에서 보면, 요양병원에 입원해도 진료비에 간병비를 포함하여 한 달에 100만원 안팎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에 입원 환자 수가 2008년 18만명에서 34만명(2014년 4월)으로 증가하였다.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 3만1000여명은 특별한 치료가 필요 없이 노인 요양시설을 이용하면 되는데, 굳이 병원에 입원해 건강보험 재정을 연간 최대 2083억원을 축나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인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기능이 혼재되어 있어 역할 분담이 이뤄지지 않은데다, 요양병원에 입원해도 별로 큰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을 시설 좋은 숙박 시설로 알고 이용하는 경증(輕症) 환자들이 많아 장기 입원이 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장기 입원 폐단을 없애기 위해 180일 이상을 입원하면 병원에 지급하는 진료비의 5%를 깎으며, 1년이 넘으면 10%를 깎는다. 하지만 금액이 별로 크지 않아 2년 이상 장기 입원하는 노인들이 많다.
한편 일본은 180일 이상 입원하면 비용을 환자가 부담하게 하며, 미국은 장기요양보험도 60일까지는 보험 혜택을 주고, 61〜90일은 본인 부담금이 일부 있으며, 90일 이상 입원하면 본인이 전액을 내야 한다.
미국, 일본 등 의료 안전 선진국에서는 화재나 재난 상황에서 환자 대피를 위한 준비와 훈련을 한 병원이 아니면 병원 인증을 주지 않는다. 독일의 노인 요양시설 분위기는 수목원처럼 아늑하며, 주택가 한 가운데 소재하고 있는 일본 요양시설들은 동네 주민들과 가족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곳이 많다.
미국 병원들은 최소 일 년에 한 번 이상, 가상 시나리오로 화재사고 상황을 가정한 환자ㆍ의료인 대피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움직이려면 안전 매뉴얼을 갖고 평소에 실제 상황처럼 반복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되므로 요양병원 화재로 인한 참극(慘劇)은 우리 모두의 미래 문제일 수 있다. 요양병원의 질을 높이려면 인력ㆍ장비ㆍ안전규정 등을 상향 조정하고 관리도 엄격하게 해야 한다. 노인들이 안전하고 인간답게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노인시설, 인력 등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청송건강칼럼(355). 2014.6.4. www.nandal.net www.ptc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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