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너 자신을 알라.
숙론 진행자는 자연스레 두 유형으로 나뉜다.
어쩌면 숙론에는 두 유형의 진행이 필요하다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숙론의 방향에 관해 확고한 신념을 품고 모종의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 진두지휘하는 유형과,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보다 다양한 의견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는 조정자 유형이 있다.
숙론의 주제와 성격에 따라 그에 걸맞은 유형의 진행자가 필요하다.
오랜 경험으로 숙련되지 않는 한 그때그때 적절한 유형으로 변신할 수 있는 진행자는 그리 많지 않다.
물론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면 단기간에도 숙론 진행의 달인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유형이 나뉜다.
변신의 귀재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쏟아붓는 걸 반대할 사람은 전혀 없으나 자신이 어떤 유형의 진행에 더 적합한지 파악한 후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전략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숙론 수업에는 '카리스마형 리더'보다 이른바 '서번트형 리더'가 적합하다.
학교 수업은 목표 달성과 성과 추구보다 관계 중심적이어야 한다.
학급 전체의 생산성보다 참여하는 학생들의 개인적 성장이 중요하다.
따라서 숙론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에게는 섬김과 존중의 리더십과 전체를 꿰뚫는 통찰력, 그리고 온갖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과 더불어 융통성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칼 세이건의 이 말을 들려줘도 좋을 것이다.
"질문에는 순진한 질문, 지루한 질문, 부적절하게 들리는 질문, 지나친 자기비판을 앞세운 질문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질문은 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이 세상에 멍청한 질문이란 없다.
엑스(구 트위터) 팔로워가 300만 명이 넘는 필리핀의 방송인 라몬 버티스타는 더 간단하게 마무리했다.
"진짜 멍청한 질문은 묻지 않는 질문이다."
전설적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와 남긴 말과 흡사하다.
"시도하지 않은 골은 100퍼센트 실패한다."
언뜻 이상하게 들리는 아이디어가 결국 정곡을 찌르거나 우연치 않게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숙론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내가 강의한 대학 여섯 곳 모두에서 숙론 수업을 진행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려 여러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야 했지만 완벽하게 예외인 대학이 하나 있다.
하버드대 숙론 수업에서는 몇몇 학생의 독과점을 막는 게 가장 큰 숙제였다.
하버드대는 세계적인 명문 대학 중에서도 학생들의 언어 능력을 특별히 중시한다.
"우리는 리더를 기르는 대학"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으며 거의 모든 수업에서 읽기, 글쓰기, 그리고 말하기를 강조한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대표로 고별사를 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인 대학이라 워낙 언변이 좋은데다 말하기가 성적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다 보니 숙론 수업의 분위기가 어떨지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버드대에서는 숙론 수업에 들어가기 앞서 반드시
"더러운 양말을 준비하라"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쉬지 않고 떠드는 학생의 입을 더러운 양말로 틀어막으라는 조언이다.
수줍음이 많거나 순발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대단히 불리하기 때문에 각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하버드대의 경우는 오히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회적 논쟁 현장에 가까운 편이지만, 대부분의 학교 수업에서는 서번트형 진행가 적합하다.
숙론 중에서
최재천 글
첫댓글 질문의 유형도 이렇게 나눌 수 있다니 확 와 닿네요
나는 어떤 질문을 하고 살고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되네요~
숙론 최교수님 신간을 벌써 읽으셨네요. 울 카페지기 멋지십니다
날 돌아 보는글 감사합니당^^
베스트셀러 "숙론" 많이 배울수 있는 까페 글 부지런히 올려주시는 까페지기 새록새록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