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0년 대한민국의 미래 ◇
1960년대 초 동양의 진주는 싱가포르가 아니었다. 레바논이 국제 물류·금융 중심지로 ‘중동의 파리’라고 불렸다. 하지만 중동전쟁으로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정치가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해 외세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 나라가 됐다.
과거 싱가포르는 강성 좌경 노조가 설치는 희망 없는 항구도시였다. 오죽하면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겨났겠는가. 그런데 리콴유의 훌륭한 정치로 번영하는 글로벌 허브가 됐다.
한때 버마(지금의 미얀마)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잘살았다. 그런데 1960년대 초 비슷한 시기 두 나라에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한국은 개방과 산업화의 길을 걸을 때, 버마는 폐쇄적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걸고 군부가 경제까지 좌지우지하다가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100세를 넘기는 2050년쯤이면 어떤 모습일까? 흥망성쇠가 엇갈린 나라들의 교훈을 보면 구국의 정치와 망국의 정치가 있다. 아무리 경제가 튼튼해도 정치가 멀쩡한 나라를 어이없이 말아먹을 수 있다는 역사적 경고다.
지금 우리 앞에 얼씬거리는 망국의 정치가 있다면 단연 포퓰리즘 복지병이다. 어찌 보면 포퓰리즘은 선거제를 가진 나라의 고질병(?)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차이는 ‘이 수렁에 빠지더라도 정신 차리고 빠져나오느냐, 아니면 계속 헤매다가 망하느냐’ 다.
불굴의 리더십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은 1945년 가을 경악한다. 선거에서 달콤한 복지를 내건 노동당에 패배한 것이다. 복지병을 앓던 영국은 대처의 개혁으로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슈뢰더 개혁으로 되살아난 독일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정권의 오일달러 퍼주기 복지에서 계속 헤매다가 국민의 80%를 극빈층으로 몰아넣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
국민의 주인의식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국가의 앞날에 대해 국민이 손님이 돼선 안 되고, 책임감 있는 주인이 돼야 한다.” 고 말했다.
지난 정권부터 국가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현 추세로 나랏돈을 퍼주다간 국민연금은 2050년대 중반에는 바닥이 드러난다고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2050년이면 ‘코리아’가 세계에서 제일 늙은 나라가 된다.
2050년에는 경제활동인구 4명이 3명의 노인인구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고된 재정 파탄과 초고령화 쓰나미가 동시에 덮치면 대한민국은 100세에 그냥 주저앉는다.
요즘 정치의 한심한 행태를 보면 별로 기대할 게 없다. 우리 모두가 결연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선거에서 포퓰리즘을 거부하고 복지병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포퓰리즘 대통령을 계속 뽑은 베네수엘라 국민은 지금 손님처럼 나라 밖으로 나가 수백만 명이 해외에서 떠돌고 있다. 반면 주인의식을 가진 그리스 국민은 좌파 포퓰리즘 후보 대신 개혁을 내건 미초타키스 총리를 선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에서 지더라도 재정 건전성을 강력히 추진하겠다 ”고 말했다. 아마 건국 이후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용기 있는 말을 한 대통령은 없었다. 그런데 국회가 요지부동이다. 무책임한 정치인에겐 나랏돈을 풀어 매표해서라도 총선에서 승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재정 건전화 개혁에는 당연히 고통 분담이 따른다.
우리가 달콤한 복지에 탐닉해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을 거부하면 이 나라의 손님밖에 안 된다. 2050년에 초고령화로 인한 폭발적 재정 수요로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도록 주인의식을 가지고 개혁의 수레바퀴를 같이 굴려야 한다.
구한말 조선 땅을 밟은 영국인이사벨 비숍 여사가 멋진 말을 했다.
“조선 민족은 우수하다! 무능한 권력 때문에 주인의식 없이 무기력한데, 앞으로 세상이 놀랄 일을 해낼 것이다.”
진짜 70년 후 한국인은 ‘하면된다’는 놀라운 주인의식을 가지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우리 민족에겐 묘한 저력이 있다. 평소 손님처럼 행동하다가도 정작 나라가 무너지면 특유의 주인의식으로 바로 세운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가 그 좋은 예다.
지금이야말로 오뚝이 같은 주인의식을 발휘해 포퓰리즘 망국의 정치에서 대한민국을 구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손님처럼 탈탈 다 털어먹은 정말 부끄러운 세대’로 역사에 각인될 것이다.
(안세영 /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