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한복음 2:19-22
Jesus answered them, "Destroy this temple, and in three days I will raise it up." The Jews then said, "It took forty-six years to build this temple, and will You raise it up in three days?" But He was speaking of the temple of His body. So when He was raised from the dead, His disciples remembered that He said this; and they believed the Scripture and the word which Jesus had spoken. John 2:19-22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전서 3:16
Do you not know that you are a temple of God and that the Spirit of God dwells in you? 1 Corinthian 3:16
지나쳐진 많은 것들 중에 육체에 대한 것은 더 그러기 쉽습니다. 신앙인들에게는 종종 무시당하기 일쑤이고 불신자들에게는 마치 육체가 자신의 실상인 양 떠 받들어지곤 합니다. 몸에 좋은 것이라면 별 것을 다 잡아먹고 무병장수는 이제 일종의 국가적 종교처럼 여겨지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근심과 병이 몸을 피로하게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은 것은 아닙니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것이 신불신 간을 막론하고 좋아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Among many things excessive, it is easier to be related with flesh. For christians, it might be disregarded, while non-believers seem to worship it as like self itself. People would do anything for the sake of the body, while long live life looks to be religion. However, anxiety and illness must not look good. It is true to look good in healthy with vitality not regarding to believers or non-believers.
성경에 몸에 대해서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몸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지 말라 되어 있고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의 소욕을 따르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보려고 하면 자기 몸은 망가지거나 어쩌거나 하나님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몸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하다가 해를 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Thinking scriptures related with body, we can remember, “do not worry about your life, as to what you will eat; nor for your body, as to what you will put on.” Luke 12:22 “For the flesh sets its desire against the Spirit, and the Spirit against the flesh“ Galatians 5:17 So many christians might ruin their body in order to be enthusiastic in their mission.
몸은 아주 좋은 피아노나 목수의 손에 잘 익은 연장처럼 아주 훌륭한 도구입니다. 목수가 연장이 없으면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가구를 만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연장이 반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처럼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몸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믿음의 기쁨이나 풍성함을 느끼고 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몸은 결코 무시할 것도 떠 받들 것도 아니고 그 본래의 용도에 맞게 잘 가꾸고 보존하여 필요한 기능을 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Body is a good part like tools to a carpenter or a good piano for a pianist. Without tools, even a skilled carpenter can not make any furniture. So it is said, tools are a half of a job. So with weak body or with illness, even in good faith, it is not easy to enjoy the plentiful joy of faith. The body should not be disregarded not to worship, we’d better keep it as like the original meaning to do it well.
그래서 오늘은 몸의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과 어떻게 하는 것이 몸을 잘 보존하는 것인가를 성경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주님이 정의하시는 몸의 역할은 한 마디로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정의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 위하여 먼저 주님이 말씀하신 자기 육체 즉 주님의 육체에 대한 것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So today we are going to think about what the original meaning of the body and how we can keep it in good condition according to the teaching of the Bible. In one word, the Lord defines the work of the body as the Temple. In order to think about it, we would like to think the body of the Lord first.
주님은 출생이 우리와 달라 보여서 특별한 분이셨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상 주님의 출생은 성경에 나타난 모든 인류의 보편성을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창조되었고 해와는 아담으로부터 분리분식의 방법으로,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인류는 다 잉태와 해산의 과정으로 출생하였습니다. 주님의 출생은 이러한 창조와 분리분식, 그리고 잉태와 해산의 과정이 모두 포함되어 성경에 나타난 모든 인류의 출생의 과정을 다 포함하였습니다.
The birth of the Lord seem to be special and different from that of us, however, in fact, His birth had been happened according to the universality of whole people revealed in the Bible. Adam was created by God, Eve was separated from Adam, and the other were born by the way of pregnance and birth. The birth of the Lord contains every path of birth of the Bible, creation, separation and pregnance and birth.
한편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만드실 때 흙이 가지는 소멸성의 결과로 갖게 되는 보편적 특성입니다. 에녹이나 엘리야가 죽음을 보지 않고 들림 받은 것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하나님이 저들을 데려가신 초월적 능력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일이고 보편적 인간은 다 죽음을 맞습니다. 주님의 죽으심도 이러한 보편적 특성을 가지신 몸으로 오셨어야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실 수 있으셨기에 십자가가 아니었더라도 죽을 몸이셨어야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주님이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표현할 수는 있어도 다른 이의 생명을 대신하지는 못한다는 말이고 더욱이 몸의 죽음으로 영을 소생케 할 수는 없습니다. 영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라야 소생할 수 있습니다.
On the other hand, death is the common characteristic given to man made by God with the dust of the ground. Enoch and Elijah were lifted to heaven, where the transcendental power of God was included, while any other common people
이제 성전 된 육체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전의 주 된 역할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 또 실질적으로는 제사를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제사는 예배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오늘날 예배가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찬양과 기도를 드리는 의미라고 한다면 제사는 짐승을 잡아 바치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두고 헌금이나 시간의 제사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만 여기서는 몸에 대한 부분을 더 부각하여 말씀하신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주께서 제사의 원리, 혹은 십자가의 원리(이는 서로 같은 의미입니다.)를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복음 8:35 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목숨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인데 주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구원한다 하시니 이는 세상의 방법은 아닙니다. 이는 회복의 원리, 혹은 대속의 원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목숨을 위하여 염려하면 오히려 목숨에 끌려 다니게 되나 주와 및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몸을 대속하여 본래의 역할을 회복하고 가장 훌륭한 기관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물론 그 몸으로 영혼의 구원의 풍성함을 드러내 알게 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은 보조기에 의지하여 걷거나 활동을 해야 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보조기를 차고 다니면 오히려 건강하던 근육이나 기관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 몸이나 마음은 스스로 회복하는 속성을 가지게 창조하셨기에 조금의 곤란함을 느끼면서 스스로 회복하게 하면 몸이나 마음이 스스로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게 됩니다. 너무 자신을 위하거나 자기 몸을 위하여 염려하면 오히려 몸이나 마음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주를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얻는 원리를 터득해 봅시다.
자기다움과 몸에 대한
주일공과
요절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예수님께서 자신의 육체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듯이 우리의 몸도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와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죽고자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자신을 너무 위하거나 몸을 위하여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죽고자 하면 살아나는 원리로 지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