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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음성과 불화의 상징
이돈형의 신작시
조동범
물때
선의의 거짓말이 우리를 조금 편히 두게 한다면 그 말로 네 말과 다르게 내 말이 어디든 가서 기대도 된다면
내일이 조금이고 모레가 무시라서
낚시하기에 좋지 않은 물때인데 그래도 갈 거야?
응,
가 봐야 아는 일은 감추지 않아도 되는 가벼움이 있다 내가 한 선의의 거짓말처럼
낚시가방을 챙길 때는 녘에 기댄 날이다
풀어 놓은 맘을 거둘 녘이거나 그 글귀가 떨어져 내 기슭에 닿을 녘이거나 생의 낯설음에 보호색을 입히고 한동안 길렀던 머리카락을 자를 녘이거나 해거름에 바라본 민달팽이의 검은 점들이 짙어 보이는 녘이거나
어쩌면 이 모든 장면을 깨끗이 지운 녘인지도 모른다
바다는 어떤 녘도 유순하게 받고 선의의 거짓말도 가볍게 빠뜨릴 것 같아
조금 때는 들고 난 맘이 같아질 때라서 아무렇지 않게 되돌아오게 할 것 같아
첫사랑은 다른 남자와 조금만 살아보겠다고 가고 나는 다른 여자와 조금 더 살아보겠다고 했던 것처럼
조금은
멀리가지도 못하고
가까이 데려오지도 못하는 때라서
너에게 조금의 물때여도 내일은 잘 잡힐 거라는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선약
길고 지루한 폭염이었다
조조영화를 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입천장이 데인 것처럼 감정이 너덜거린다
찬물에 손수건을 적시며 해도 그만인 일과 안 해도 그만인 일의 목록을 뒤적였다 다 더딘 일들이었다
손을 놓기가 쉬웠다
이를 악물어도 폭염은 지루하게 죽은 감정을 가둬 둘 것이다 검고 긴 기름띠를 두른 안식처처럼
담장 밑 수국은 스무 날이 되어도 흰 색이었다
무너지는 것이 소원이 될 수 있겠냐 물어도 담장은 비웃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무너지려 할 것이다 간단한 일처럼
스무날을 기억한건 커플백팩을 메고 나간 너의 뒷모습을 보지 못하고 흰 수국만 보았기 때문이다 그날
신발을 꺾어 신고 나갔지만 수국을 보아서 반짝였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수국의 잎사귀를 만지며 믿었던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 흰색이길 바랐다
백팩에 넣어둔 선크림을 다 쓰고도 너는 더디 올 것이다
할 말이 많아서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았다 손끝에 닿았던 잎사귀들은 일제히 출렁거렸다
반성
나는 죽었다
비좁은 방에서 좀생이처럼 굴다 헐렁한 새벽에 끼어 죽었다
날마다 죽겠다는 거짓말을 하며 수많은 거짓말에 파묻혀 죽었다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누구나 흔드는 생의 손 한번 흔들지 못하고 죽었다
죽고 싶다고 외치다가 죽어도 죽기 싫다고 외치며 죽었다
두 다리를 흔들며 복, 복, 복 거리다 복에 겨운 줄 모르고 죽었다
불행한 생을 흉내 내다 다정한 생의 지퍼를 열고 죽었다
독설을 뱉으러 비 내리는 한탄강을 찾아가 독설에 빠져 죽었다
육체를 사랑한 여인의 배꼽 위에서 그녀의 위로를 견디지 못해 시들어 죽었다
죽지 않으면 죽을 만큼 살고 싶어질까 봐 미안해 죽었다
짜장면을 시킬까 짬뽕을 시킬까 수없이 고민하다 죽었다
공짜 좋아하다 공짜로 얻은 죽음이라 좋아 죽었다
아주 긴 죽음에서 깨어나듯 그렇게 기지개를 켜고 죽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꾹꾹 눌러 받고 나는 죽었다
드링크
의견을 내랄 때마다 불려나가지만
성실한 사람 뒤에서 성실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만 했다
쉬운 사람이 되기까지 어려움이 많이 뒤따랐다
경쟁의 세계에선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않듯 의견을 낸다는 건 오늘도 지루해질 수 있다는 거
커피 거름망에 물을 붓고 기포를 세거나
나무에 물을 주고 잎사귀의 물방울을 세는 일처럼 성실을 시시각각 끌어들여도 경쟁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물방울을 세고 하루는 그 물방울을 한데 모아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화되는 일이 종종 생겨났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에 흠집을 냈군요 이를 어쩌죠 흠집을 제거해야겠군요
성실하게 타당한 의견을 제시한 듯하였다
가벼워진 맘을 토해내듯 밖으로 나왔을 때 비둘기 떼가 편의점 주변을 일제히 날아올랐다
타고난 말이라도 있었으면 오후는 조금 어렵겠지만 날아다니는 비둘기를 세며 지루했을 것이다
편의점에 들렀다
나에 대한 의견을 폭넓게 구하려는 성실함이었다
지하실에 내려온 것은 비 때문이었다
냄새에 민감하면 바깥이 그리워진다
바깥이라는 말이 지하실 바닥에 떨어진 불빛에 지근지근 밟힌다
그러는 사이 바깥은 세상 밖으로 밀려나 최소한의 뒷모습만 보이고 내 어께는 공기의 힘으로도 흔들린다
누구나 왕년은 있지만
‘왕년엔 말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쏟아진 물처럼 상실감이 생겨나고 계단에 미끄러진 내게선 물비린내가 난다
누구의 부름 없이도 힘껏, 또는 맘껏 쏟아지는 비
들여다볼수록 바깥은 컴컴하다 간혹 지하의 서늘함을 내다보면 위로는 혼자의 일처럼 다녀간다
낡은 철제 의자를 끌어와 앉힐 수 있는 것을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나는 비를 끌고 비는 나를 끌어 염원이 생겨나지만
냄새에 민감할수록 바깥은 부적을 뗀 손들로 북적이고 나는 비의 마지막 에피소드처럼 추방당하고 싶었다
온몸에 비 문신을 새기고 탁본을 뜨기 위해 불을 끄고 컴컴함을 쏟아 붓는다
내가 태어난 어느 날처럼 왕년에 엿들은 나쁜 예감처럼 그래서 데려가야 할 미안처럼 몸에서도 떨어지는 빗방울이 있다
서로 다른 지점을 호명하는 이의 음성이 있다. 하나의 세계 안에 있는 두 개의 음성은 다른 대상을 우리 앞에 제시하려고 한다. 시인이 보여주는 것은 일치하지 않는 두 개의 세계이지만 그것들은 하나의 세계로 수렴되며 시적 상징을 드러낸다. 이때 하나의 작품 안에서 충돌하는 두 개의 음성은 불화의 양상으로 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시 속의 불화는 충돌을 통해 더욱 강렬한 시적 상징의 지점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시의 언어인 기표는 가장 먼 곳으로부터 기의를 가져오려고 한다. 기표와 기의는 둘 사이의 거리감으로부터 시적 상징을 제시하게 되는데, 둘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시적 상징은 강하게 제시된다. 시인은 언제나 자신이 말하려고 하는 세계를 숨기려는 자이다. 그러나 반대로 숨어있는 세계를 우리 앞에 드러내려는 자이기도 하다. 시적 상징은 시인의 의지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고 하지만 시적 상징은 시인이 만들어놓은 단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기를 희망한다.
시의 언어는 두 지점의 간극을 통해 시적 비유와 상징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것은 기표와 기의 관계이거나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일 수도 있고 시어와 시어 사이의 관계일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의 언어가 두 지점의 거리를 통해 시인의 의지를 극대화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돈형의 작품은 치밀하게 조직된 세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치밀하게 조직된 세계는 수준 높은 시적 상징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나는 죽었다
비좁은 방에서 좀생이처럼 굴다 헐렁한 새벽에 끼어 죽었다
날마다 죽겠다는 거짓말을 하며 수많은 거짓말에 파묻혀 죽었다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누구나 흔드는 생의 손 한번 흔들지 못하고 죽었다
죽고 싶다고 외치다가 죽어도 죽기 싫다고 외치며 죽었다
-「반성」 부분
의견을 내랄 때마다 불려나가지만
성실한 사람 뒤에서 성실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만 했다
(중략)
가벼워진 맘을 토해내듯 밖으로 나왔을 때 비둘기 떼가 편의점 주변을 일제히 날아올랐다
타고난 말이라도 있었으면 오후는 조금 어렵겠지만 날아다니는 비둘기를 세며 지루했을 것이다
편의점에 들렀다
나에 대한 의견을 폭넓게 구하려는 성실함이었다
-「드링크」 부분
이돈형의 시는 하나의 작품 안에 두 개의 지점을 말함으로써, 불화를 통해 드러나는 상징을 시 전반에 배치한다. 이때 두 개의 지점이 관계를 맺는 방식 중에 병치 은유의 방법이 있다. 물론 이돈형의 모든 시가 병치 은유의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성」과 「드링크」와 같은 시에서 병치 구조가 더욱 눈에 들어온다. 아울러 병치 구조를 취하고 있지 않은 작품의 경우에도 제목과 시의 내용이 한 몸을 이루어 직접적이고 선명한 양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시의 제목과 내용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하나의 시적 대상으로 집중하지 않는다.
「반성」과 「드링크」는 병치 구조를 통해 만든 낯선 풍경을 우리 앞에 제시한다. 「반성」은 무수히 많은 죽음의 양상을 보여준다. 죽어버린 나는 “새벽에 끼어” 죽었으며 “거짓말에 파묻혀” 죽거나 “독설에 빠져” 죽거나 “위로를 견디지 못해 시들어” 죽었다. 시에는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죽음의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죽음의 가운데 반성을 연상할만한 단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반성”과 “죽음”은 서로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반성과 상관없는 죽음의 풍경은 낯선 구조 속에서 치밀한 상징이 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물론 시 안에 반성의 직접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면, 죽음 이후이기 때문에 삶을 반성할 수 없는 “나”는 삶을 반성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혹은 반성조차 할 수 없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회한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반성」은 제목과 내용의 유사와 차이를 통해 하나의 시적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때 이렇게 구축된 세계는 병치 은유의 관계 속에서 낯선 매혹을 만들어낸다.
병치 은유는 두 지점의 서로 다른 부분을 연이어 배치하여 그 사이의 유사성을 제시하는 방법론이다. 병치의 관계는 서로 다른 세계를 드러내야 하지만 그것 사이의 의미와 감각이 완전히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병치의 관계는 두 지점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의 유사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병치의 관계는 연과 연 또는 행과 행, 문장과 문장의 대비구조이다. 각각의 연과 연, 행과 행, 문장과 문장은 서로 다른 것을 말하지만 두 세계 사이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병치 은유는 낯선 구조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병치 은유의 관계는 시의 제목과 내용 사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시의 제목과 내용을 다르게 조직함으로써 두 지점의 유사와 차이로부터 발현되는 낯선 감각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제목은 시의 내용이 언급하는 것을 지시하지 않음으로써 시 속에 숨어 있는 시적 비유를 제시할 수 있게 한다. 「드링크」의 경우에도 병치 관계가 낯선 장면을 만들고 이와 같은 낯선 장면은 드링크의 상징적 의미를 극대화하게 된다.
“편의점”과 “커피 거름망”이라는 시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드링크”의 속성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아울러 “드링크”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시적 상징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물론 “편의점”과 “커피 거름망”이 “드링크”와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편의점”과 “커피 거름망”만으로 “드링크”가 재현하고자 하는 상징을 유추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이 작품은 드링크를 마시는 어느 순간의 청량감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의 내용은 긍정의 감각이 아니다. 「드링크」는 오히려 부정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 비애를 드러낸다. 드링크를 마시는 순간의 모든 긍정과 대척점에 있는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드링크」는 특별한 상징을 부여받게 된다.
신발을 꺾어 신고 나갔지만 수국을 보아서 반짝였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수국의 잎사귀를 만지며 믿었던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 흰색이길 바랐다
백팩에 넣어둔 선크림을 다 쓰고도 너는 더디 올 것이다
할 말이 많아서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았다 손끝에 닿았던 잎사귀들은 일제히 출렁거렸다
-「선약」 부분
앞서 언급한 「반성」과 「드링크」의 경우는 병치의 관계가 두드러지는 작품인데 반해 「선약」, 「물 때」, 「지하실에 내려온 것은 비 때문이었다」 등은 병치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시인은 제목과 내용 사이의 관계에 거리를 두고자 하는 태도를 취한다. 「선약」의 경우 시의 마지막 연에 선약을 유추할 수 있는 정황이 등장한다. “할 말이 많아서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았다 손끝에 닿았던 잎사귀들은 일제히 출렁거렸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시인은 일관적 사유 체계로 작품을 구조화하지 않으려 한다. 동일한 사유 구조 안에서 전개되는 일관성을 벗어남으로써 시인은 낯선 세계와 함께 신선한 상징 구조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낡은 철제 의자를 끌어와 앉힐 수 있는 것을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나는 비를 끌고 비는 나를 끌어 염원이 생겨나지만
냄새에 민감할수록 바깥은 부적을 뗀 손들로 북적이고 나는 비의 마지막 에피소드처럼 추방당하고 싶었다
온몸에 비 문신을 새기고 탁본을 뜨기 위해 불을 끄고 컴컴함을 쏟아 붓는다
내가 태어난 어느 날처럼 왕년에 엿들은 나쁜 예감처럼 그래서 데려가야 할 미안처럼 몸에서도 떨어지는 빗방울이 있다
-「지하실에 내려온 것은 비 때문이었다」 부분
일관성을 벗어난 시적 구조의 새로움은 「지하실에 내려온 것은 비 때문이었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은 지하실에 내려오게 된 것이 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그 이유는 밝히고 있지 않다. 독자들은 지하실에 내려오게 된 것이 왜 비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시인은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것이다. 「지하실에 내려온 것은 비 때문이었다」에는 불우한 삶의 그림자와도 같은 슬픔과 우울이 묻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시인은 슬픔과 우울을 드러낼 뿐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슬픔과 우울은 시적 의미로 전이된다. 슬픔과 우울이라는 분위기만 등장시킴으로써 시가 제시하고자 하는 감각과 의미와 상징은 오히려 극대화 된다.
낚시가방을 챙길 때는 녘에 기댄 날이다
풀어 놓은 맘을 거둘 녘이거나 그 글귀가 떨어져 내 기슭에 닿을 녘이거나 생의 낯설음에 보호색을 입히고 한동안 길렀던 머리카락을 자를 녘이거나 해거름에 바라본 민달팽이의 검은 점들이 짙어 보이는 녘이거나
어쩌면 이 모든 장면을 깨끗이 지운 녘인지도 모른다
바다는 어떤 녘도 유순하게 받고 선의의 거짓말도 가볍게 빠뜨릴 것 같아
조금 때는 들고 난 맘이 같아질 때라서 아무렇지 않게 되돌아오게 할 것 같아
-「물 때」 부분
「물 때」는 이번 작품에서 제목와 내용의 일관성이 가장 강조된 작품이다. 시 속의 물때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바로 그 물 때이며, 시의 내용 역시 물 때의 이야기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병치의 관계와 같이 낮설게 구조화되는 이돈형의 시에서 특별한 지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러한 유형의 작품이 상투성의 세계로 전락한 것은 아니다. 「물 때」의 경우에도 다채로운 “녘”의 시간을 호명하여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보편적 양상으로의 물 때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이돈형의 시는 낯선 정황과 구조가 돋보인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구조적 특징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사실 이돈형 시의 매력은 낯선 감각을 환기하게 하는 지배적 정황을 효과적으로 포착하는 데 있다. 때문에 시인이 포착한 정황은 특별한 미적 인식을 보여주게 될 뿐만 아니라 시 전반의 분위기를 지배하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낯선 것들끼리의 충돌과 간극, 그것이 바로 이돈형 시의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이다.
―『애지』 2018년 겨울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