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낮보다 밤에 더 기승을 부렸다. 퇴근을 하고 경비실 cctv 모니터가 툭하며 꺼졌다는 전화를 받은 시각은 오
후 8시였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또 관리사무소가 정전되었다는 전화를 받고서 집을 나왔다. 간간히 번개가
번쩍이며 앞길을 환하게 비추고 곧 이은 천둥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한다. 평상시처럼 9호선을 탔다. (9호선은 그
이튿날 홍수로 인해 일부분 역이 폐쇄됐다)
관리사무소의 누전차단기가 떨어진 것을 보아 누전으로 보이지만 다행히 입주민 각 세대는 이상이 없다. 바로 옆
다용도실 콘센트에서 전기선을 연결하여 불 꺼진 냉장고, 모니터를 작동시키고 전기업체와 cctv 사장에게 점검을
의뢰했다. 그때였다. 동 대표 회장이 바삐 오가며 지하3층 주차장에서 물이 샌다고 한다. 공교롭게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전기실 벽 쪽이다. 천장 바로 아래 케이블 통에서 물이 계곡물처럼 떨어진다. 바로 위가 아카시아, 버드나
무 등이 있는 정원인데 쏟아 붓는 폭우를 배수구도 감당 못 해 바닥 케이블 통으로 밀어내고 있다. 더구나 주차장
에 고인 물은 바로 옆 전기실 바닥으로 스며들고 있어서 급히 움직였다. 물통과 밀대 등을 가져와서 관리원과 함
께 물을 퍼내다 보니 떨어지는 물도 지친 듯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밖은 아직도 컴컴한 어둠 속에서 폭우가 세차
게 내리치고 있다.
어느덧 날이 밝았다. 전날 밤의 집중 호우는 장마철 폭우의 정점이었다. 장마 때 서울의 한 달 평년 강수량(약
350mm) 이 어제 하루에 쏟아진 것인데 마침 물 폭탄에 대비할 수 있게 신속히 출근한 보람도 있었고 침수 방지
작업의 모양새도 좋았다. 티브이에는 우리 아파트에서 멀지않은 강남역 일대가 침수되어 버스와 승용차 등이 지
붕만 보이는 화면으로 가득하다. 지대로 보면 강남역 일대는 인접한 역삼동과 서초동보다 각각 17m, 12m가 낮다
고 한다. 지형이 오목한 항아리 모양이어서 집중호우가 내리면 순식간에 깔대기에 담기듯 강남역 일대에 물이 고
인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때보다 비가 더 내린 탓도 있지만 빗물 저류능력(저장했다가 천천히 흘려보냄)이 목
동은 32만 톤인데 저지대인 강남은 1.5만 톤이라고 하니 강남역 근처는 속수무책으로 물난리를 겪을 수밖에 없
다. 일부 출타한 주민들도 불안했는지 우리 아파트에는 피해가 없느냐는 전화를 걸어온다.
인근 주변 아래 도로는 벌써 폭우가 할퀴고 지나갔는지 아스팔트가 자갈처럼 깨져서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고 또
땅이 꺼진 듯 패인 사이로 트럭 앞부분이 코를 박고 있다. 그 옆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배수구 역류로 한 쪽 입구
에 모래주머니를 쌓아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영동시장에는 상인들이 물에 잠겨 흙탕물이 묻은 물건들을 길가에
꺼내놓고 상가를 청소하기 바쁘다. 건물에 딸린 지하주차장은 아직도 입구 높이까지 물이 가득하다. 우리 아파트
는 그래도 언덕 경사진 곳에 세워져 침수는 면했지만 노후 된 탓에 누수는 피해가질 못했다. 온 세계가 이상 고온
과 가뭄, 홍수 등 갑작스런 기후변화에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번처럼 역대 급 폭우가 쏟아진 것도 앞으로 자주 있
을 것이라고 한다. 새삼스럽게 아파트 입주민의 안전과 시설보호의 중요함을 느낀다.
첫댓글 뉴스를보면서 마음조린건 누구나마찬가지일겁니다. 보고싶은 기택이.. 어려서부터 책임감이
강하다는걸 알았지요. 늘건강기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