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비밀스러운 햇빛
이 영화와 잘어울리는 도시, 신애와도 잘어울리는 의미를 가진 도시이다.
남편도, 끝내 아들도 잃은 신애에게 삶이란 무겁고 의미없는 것일 뿐이다.
힘들어하는 그녀를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종교의 힘, 즉 하느님을 믿으면 모든게 편하고, 힘들지 않게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저기 작은 햇볕 하나에도 하나님은 의미를 주셨어요.”라고 말하며 신애에게 신앙을 가질 것을 이야기한다. 햇빛에 가까이 손을 가져가며 아무것도 없다며 차갑게 신애는 답변한다.
저 대사는 겉으로는 기독교적 의미를 보여주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지 못하는, 아니 그 의미를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 우리들의 모습이며, 신과 구별되는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그 햇빛을 따라 간 곳은 교회. 하느님을 믿으며 조금은 기운을 차린 신애로 보였지만, 아니 신애 자신도 조금은 상처가 치유되어 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아니였다. 준이의 살인자의 면회를 가서 그가 하느님이 자신을 용서해 준 것 같다고 얘기했을 때, 자신이 용서하기도 전에 먼저 용서받아버린 그와, 용서해준 것이 자신이 믿고 있는 하느님이었기에 화가난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의 상처는 전혀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후, 일부로 하늘을 보며 꺽꺽 대며 밖으로 나와 울기도 하고, 집사를 꼬드겨 야외로 데리고 나와 불륜을 저지르려는 시도도 한다. 또 장로의 연설에 거짓말이야 라는 노래를 틀고,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동시에 하늘을 향해 지금 내가 보이냐며 하늘에게, 하느님에게 반항 아닌 반항을 하길 계속한다.
종찬이 계속해서 잘해주고, 자신의 곁을 맴돌지만 맘을 열지 못하는 것도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사람을 더이상 믿을 수 없게되고, 사람뿐만이 아니라 신까지도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 신애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버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의 반은 신애의 흐느낌 혹은 눈물 범벅인 얼굴이 가득찬 영상이다.
그만큼 신애의 삶이 고독하고 가슴아프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느낄 수 있게된다.
밀양. 비밀스러운 햇빛
영화를 보는 내내 신경아닌 신경을 쓰고 있던 것도 바로 이 햇빛의 의미이다.
햇빛을 나는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었다.
종찬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
결국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사랑과 신이 주는 인간으로서는 피할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랑인데,
공통점은 그 두개의 사랑은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특히 후자의 사랑은, 사실 인간이라면 자신이 지금 그 사랑을 받고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피하려고 할수록 그 사랑은 더욱 자신을 힘들게한다.
마지막 미용실 장면에서도, 필연적으로 그 미용실에 가게된다. 한번 더 하느님이 신애에게 용서 할 기회를 준 것이다.
왜 하필 이 미용실이냐고 신애는 소리치지만, 소리치면서도 그것은 종찬에게 하는 말이 아닌 하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집에 와서 햇빛이 쬐는 밖에서 종찬에게 머리를 내어주는 신애. 결국 내 눈에는 두 개의 사랑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신애의 다짐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