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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장 19-26절.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옥문이 열림
19절.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가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hen her masters saw that their hope of profit was gone, they seized Paul and Silas and dragged them into the market place before the authorities,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Ἰδόντες δὲ οἱ κύριοι αὐτῆς ὅτι ἐξῆλθεν ἡ ἐλπὶς τῆς ἐργασίας αὐτῶν,
Having seen now the masters of her that was gone out the hope of the profit of them
‘끊어진’(ἐξῆλθεν)은 부정과거로서(was gone out) 갑자기 끊어져버린 것을 가리킵니다.
‘보고’(δ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een) 확실히 본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ἐπιλαβόμενοι τὸν Παῦλον καὶ τὸν Σιλᾶν,
having taken hold of the Paul and the Silas,
‘붙잡아’(ἐπιλαβόμενοι)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hold of) 확 붙잡은 것을 가리킵니다.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가
εἵλκυσαν εἰς τὴν ἀγορὰν ἐπὶ τοὺς ἄρχοντας,
they dragged to the marketplace before the rulers
‘끌어갔다가’(εἵλκυσ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dragged) 강제로 단단히 끌어간 것을 가리킵니다.
1.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점하는 여종 하나를 이용하여 여러 주인들이 많은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빌립보 사람들이 점하러 다녔으면 여러 주인들이 점쟁이 하나를 통해서 먹고 살았을까요?
아마 이 점쟁이 사업가들은 빌립보 도성에서 대단한 기업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점쟁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버렸으니, 여종의 주인들이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아마 수십 명이 먹고 살길이 끊겨서 바울을 죽이려고 난동을 부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리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2.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가
바울과 실라를 붙잡았다는 것은 디모데와 누가가 바울과 함께 있지 않고, 아마 빌립보 교회에서 일을 보고 있었던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점쟁이 사업가들이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관청으로 끌고 갔습니다.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는 것은 고대에 관공서가 장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지방에서 시골 사람들이 장날에 장 보러 왔다가 관공서 일도 함께 보도록 하기 위해서 장터에 관공서를 설치해두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관공서는 장터에서 멀고, 은행은 장터에 가까이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관공서가 권위주의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관공서는 행정사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삼권을 다 갖고 있어서 죄수를 재판하고 처벌하는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20절.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en they had brought them to the chief magistrates, they said, "These men are throwing our city into confusion, being Jews,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καὶ προσαγαγόντες αὐτοὺς τοῖς στρατηγοῖς, εἶπαν
and having brought up them to the magistrates, they said
직역하면 ‘그들을 상관들에게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는 뜻입니다.
‘데리고 가서’(προσαγαγ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 having brought up) 강제로 끌고 간 것을 가리키고, ‘말하되’(εἶπ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said) 단호하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여기 ‘상관들’이란 단어(στρατηγοῖς, magistrates)는 군대 지휘관, 장군, 시공무원(leader of a army, general, city official)을 가리킵니다.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Οὗτοι οἱ ἄνθρωποι ἐκταράσσουσιν ἡμῶν τὴν πόλιν,
these the men exceedingly trouble of us the city
직역하면 ‘이 사람들이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한다’는 뜻입니다.
‘요란케 하여’(ἐκταράσσουσιν)은 현재형으로서(trouble) 현재 요란케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Ἰουδαῖοι ὑπάρχοντες,
Jews being
‘인데’(ὑπάρχοντες)는 현재분사이고, 원형(ὑπάρχω)은 ‘시작하다, 곧 되다, 이다’(to begin, to be ready or at hand, to be)는 뜻입니다.
1. <상관들>이란 로마의 행정관 밑에서 빌립보 도성을 다스리는 빌립보 시민으로서 최고 관리들을 가리킵니다.
광주시로 말하자면, 시장이 로마의 행정장관이라면 그 밑의 실국장과 과장들과 시의원들을 상관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점쟁이 사업가들과 관리들은 빌립보 도성의 상관들 앞에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가서 고소를 했습니다.
2.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첫째로 고소하는 말은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이라고 고소했습니다.
당시에 빌립보 도성은 로마 당국에 철저히 충성하는 성읍이었지만, 유대인들은 로마 당국에 반란을 일삼는 민족이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이 로마에 대항하는 민족이라는 것은 세계 모든 지역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도성 상관들도 유대인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점쟁이 사업가들은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이라고 고발한 것입니다.
2. 그리고 점쟁이 사업가들은 바울과 실라를 집회 허가를 받지 않고 사회를 소란케 하는 소요죄로 고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를 소란케 한 사람들은 바울과 실라가 아니라 점쟁이 사업가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점쟁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냈을 뿐이고, 점쟁이 사업가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소란을 피웠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1장에서 유대인들도 바울을 고소할 때, 자기들이 소란케 해놓고서 바울을 소요죄로 고소했습니다.
우리말에 <똥 뀌고 성낸다>는 말처럼, 자기들이 소란케 하고선 바울에게 소요죄를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21절.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are proclaiming customs which it is not lawful for us to accept or to observe, being Romans."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καὶ καταγγέλλουσιν ἔθη, ἃ οὐκ ἔξεστιν ἡμῖν παραδέχεσθαι οὐδὲ ποιεῖν,
and they preach customs, that not it is lawful for us to accept nor to practice,
‘받지도’(παραδέχεσθαι)는 부정사형 중간태이고(to accept), ‘행하지도’(ποιεῖν)도 부정사형 동사이고(to practice), ‘못할’에서 동사(ἔξεστιν)는 현재형으로서(it is lawful) ‘불법이다’는 뜻입니다.
‘전한다’(καταγγέλλουσιν)은 현재형으로서(they preach) ‘그들이 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로마 사람인
Ῥωμαίοις οὖσιν.
Romans being
‘인’(οὖσιν)은 현재분사입니다(being).
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빌립보 시민들은 원래 로마 사람이 아니고 헬라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충성하고 아부하여, 로마 도성 중에 첫째 클래스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사람들은 상관들에게 자기들이 로마 시민인 것을 영예롭게 생각하는데, 우리 로마 시민이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습을 바울이 전한다고 고발했습니다.
이처럼 로마 사람이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습이란 로마제국에서는 로마 황제를 숭배해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 숭배를 거절하고 하나님만 숭배하라고 주장하는 유대교 교리를 지적한 것입니다.
그래서 점쟁이 사업가들은 로마 상관들에게 아부하면서 바울을 황제 숭배의 반란자들로 고발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일제 강점 시대에 기독교를 반대하는 한국 사람들이 자기들은 일본 신민 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일본 순사들에게 아부하면서, 우리 한국 교회 신자들을 고발한 것과 같습니다.
2. 이 고발은 소위 풍속 사범으로 바울을 고발한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낸 것은 미신 풍속을 물리치고, 선량한 풍속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귀신 쫓아낸 것을 풍속 사범으로 고발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칼 한 것입니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점쟁이와 같은 미신이 얼마나 나라를 좀먹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기독교가 많이 펴져서 미신적인 풍속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운세를 보고 사주팔자를 보고, 무당에게 점하는 이런 미신 풍속은 하루속히 나라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22절.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crowd rose up together against them, and the chief magistrates tore their robes off them and proceeded to order them to be beaten with rods.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καὶ συνεπέστη ὁ ὄχλος κατ’ αὐτῶν,
and rose up together the crowd against them
직역하면 ‘무리가 그들을 대항하여 함께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함께 일어났다’(συνεπέστη)는 부정과거로서(rose up together) 함께 와- 하고 일어난 것을 가리킵니다.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καὶ οἱ στρατηγοὶ περιρήξαντες αὐτῶν τὰ ἱμάτια
and the magistrates having torn off of them the garments
직역하면 ‘상관들이 그들의 옷들을 찢어 벗기고’란 뜻입니다.
‘찢어 벗기고’(περιρήξ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orn off) 사도들의 옷을 확 찢어 벗겨버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매로 치라 하여
ἐκέλευον ῥαβδίζειν
were commanding that to beat with rods
직역하면 ‘매로 치도록 명령했다’는 뜻입니다.
‘치라’(ῥαβδίζειν)는 부정사형 동사이고(to beat), ‘하여’(ἐκέλευον)는 미완료과서로서(were commanding) ‘계속 명령했다’는 뜻인데, 사도들을 잔인하게 때리라고 명령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점쟁이 사업을 하는 사장들이 평소에 뇌물을 바쳤던 관리들과 함께 상관에게 바울 일행을 사회질서 혼란 사범과 풍속 사범으로 고발하자, 점쟁이 사업가들이 동원한 무리들이 일제히 일어나 함께 소리를 지르면서 상관들에게 바울을 고발했습니다.
고발하려면 정식으로 고발장을 작성하고 접수하고, 증인을 내세워서 재판을 한 후에, 처벌할 수 있는 법입니다.
즉 로마 시대에도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이 엄연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 총독이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25:16.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그러기 때문에 로마의 한 천부장은 바울을 재판 없이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사도행전 22:29.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더구나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정식 재판절차를 밟아야 하고, 또 상소를 하면 로마 황제의 재판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도성을 다스리는 상관들은 고발장도 없고 증인도 없고, 재판절차도 없이 바울을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플라톤이 말한 중우정치(우민정치)인 것입니다.
요즘에 우리나라도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군중들이 데모를 해서 정당한 법질서를 어기고, 선동정치로 몰아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바로 점쟁이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바울 일행을 민족주의적 감정에 호소하여 <바울 일행은 유대인들이고 자기들은 로마식민이라>고 사적인 감정에 호소하여 정상적인 재판절차도 없이 바울 일행을 옷을 찢고 매를 때리고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2. 그러면 우리들은 교회에서 그런 일들을 하지 않습니까?
서로 가족과 친척관계라고 신앙을 떠나서 무조건 뭉치는 폐단은 없습니까?
서로 같은 지역민이라고 타지인들을 무조건 배척하고 비난하는 습관은 없습니까?
심지어 어떤 지역 교회에서는 목사라면 무조건 정죄하는 곳도 있습니다.
즉 목사를 두긴 해야 하겠는데, 말 잘 듣는 월급쟁이로만 두고 자기들이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잘못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곳에 비하면 우리 교인들은 목사를 하나님의 종으로 잘 대접하는 것 같습니다.
두고 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 같아요.
3. 교회에서도 기존 신자들이 새 가족들을 잘 대접하고 보살펴야 새 신자들이 교회에 정착합니다.
그런데 기존 신자들이 터줏대감 노릇 하면서 파당을 짓고, 새 신자들이 오면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파에 집어넣을 생각만 하는 이상한 교회도 있습니다.
그리고 새 신자가 활달하게 봉사하려고 하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차 내려고 한다고 구박을 하는 잘못된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서로 화목하고, 새 신자들을 사랑으로 잘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4.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옷을 찢어 벗기는 것은 노예와 극형을 당할 죄수에게 행하는 극히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였습니다.
즉 옷은 그 사람의 인격을 상징하기 때문에, 옷을 벗기는 것만도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고, 옷을 찢어 벗기라는 것은 인격을 짓밟는 모독 행위였습니다.
이처럼 바울과 실라는 귀신을 쫓아내주는 선한 일을 하고서도, 예수님처럼 노예와 죄수 취급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악한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따라서 요한일서 5장 19절에 말씀한 것처럼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하여 있어서>, 선한 일을 한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를 낫게 함으로써 신적인 대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에서는 귀신을 쫓아내 주는 극히 선한 일을 하고서도, 점쟁이 사업가들에게 극심한 모독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영적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선교의 현장입니다.
5. 그리고 매로 치라고 했습니다.
이 매란 가죽끈에 날카로운 쇠토막을 매달은 채찍으로서 이것으로 벌거벗은 몸을 내리쳤다가 잡아당기면, 살점이 뚝뚝 떨어지고 선지피가 뚝뚝 흐르는 무서운 형벌이었습니다.
이 매는 보통 40대씩 맞는데, 이 매를 맞고 나면 죽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경건한 척 외식하여 혹시 한 대를 잘못 셀까봐서 40에서 하나 감한 매를 때렸습니다.
이처럼 바울과 실라는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것과 똑같은 무서운 매를 맞으면서 빌립보 도성을 전도했습니다.
23절.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they had struck them with many blows, they threw them into prison, commanding the jailer to guard them securely;
많이 친 후에
πολλάς δὲ ἐπιθέντες αὐτοῖς πληγὰς
many then having laid on them blows,
직역하면 ‘그들에게 많은 타격들을 가하고’란 뜻입니다.
‘가하고’(ἐπιθέ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laid on) 사정없이 친 것을 가리킵니다.
옥에 가두고
ἔβαλον εἰς φυλακήν,
they cast into prison
직역하면 ‘옥에 던져 넣었다’는 뜻입니다.
‘가두고’(ἔβαλον)는 부정과거로서(they cast) 확 집어 던진 것을 가리킵니다.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παραγγείλαντες τῷ δεσμοφύλακι ἀσφαλῶς τηρεῖν αὐτούς·
having charged the jailer securely to keep them
직역하면 ‘그들을 든든히 지키도록 간수에게 지시했다’는 뜻입니다.
‘지키라’(τηρεῖν)는 부정사형 동사이고( to keep), ‘하니’(παραγγείλαντες)는 부정사형 분사로서(having charged) 엄히 지시하고 명령한 것을 가리킵니다.
1. 많이 쳤다는 것은 재판정에서 몇 대를 치라고 언도한 것이 없기 때문에, 까물어칠 때까지 무한정 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과 실라를 사형에 처할 것이라는 것은 의미합니다.
2. 지극히 악한 죄수이기 때문에 깊은 감옥에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수에게 든든히 지키라는 것도 바울과 실라를 극악한 죄수로 취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종합해볼 때 바울과 실라는 이튿날 사형에 처할 죄수 취급을 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사도행전 12장에서 베드로를 이튿날 처형하기 위해서 군사 16명이 파수꾼으로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24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having received such a command, threw them into the inner prison and fastened their feet in the stocks.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ὃς παραγγελίαν τοιαύτην λαβὼν
who order such having received
‘받아’(λαβ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eceived) 확실하게 받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ἔβαλεν αὐτοὺς εἰς τὴν ἐσωτέραν φυλακὴν
he threw them into the inner prison
‘가두고’(ἔβαλεν)는 부정과거로서(he threw) 간수가 사도들을 깊은 감옥에 확 집어던지는(쳐 넣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καὶ τοὺς πόδας ἠσφαλίσατο αὐτῶν εἰς τὸ ξύλον.
and the feet fastened of them in the stocks
‘든든히 채웠더니’(ἠσφαλίσατο)는 부정과거 중간태로서(fastened) 단단히 채운 모습을 가리킵니다.
1. 간수가 상관의 명령을 받아서 바울과 실라를 깊은 감옥에 가두고, 그들의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습니다.
성춘향이는 목에 차꼬를 차고 있었지만, 바울과 실라는 발에 차꼬를 찼습니다.
점쟁이 사업가들이 얼마나 빌립보 성읍에서 세력이 강했으면, 이처럼 바울과 실라를 재판도 없이 살인강도보다도 더 악한 죄수 취급을 받게 하고,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가두고 쇠사슬로 묶었겠습니까?
이처럼 마귀와 관련된 사람들은 인정사정도 없고, 정말 악한 존재가 되는 것을 봅니다.
즉 사람이 악해지면, 마귀같이 되는 것을 봅니다.
불신자나 점쟁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성령의 역사가 떠나고 마귀가 역사하면, 그렇게 악한 모습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이렇게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차꼬에 채이는데도 가만 보고만 계셨습니다.
점쟁이 사업가들이나 관리들이나 상관이나 매질하는 사람이나 간수의 목을 비틀어놓든지, 팔을 부러뜨리든지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가만 보고만 계셨습니다.
그럴 때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욥의 아내처럼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부인하고, 기도도 않고 더구나 찬양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다시는 복음 전도고 뭐고 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 원망하고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서 참새 한 마리의 목숨도 다 섭리하시는 하나님으로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고난당하고 순교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25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about midnight Paul and Silas were praying and singing hymns of praise to God, and the prisoners were listening to them;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Κατὰ δὲ τὸ μεσονύκτιον Παῦλος καὶ Σιλᾶς προσευχόμενοι
toward now midnight Paul and Silas praying
‘한밤중에’(Κατὰ τὸ μεσονύκτιον)는 ‘한밤중쯤에’(about midnight)를 가리키고, ‘기도하고’(προσευχόμενοι)는 현재분사로서(praying) 계속 기도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매
ὕμνουν τὸν Θεόν,
were singing praises to the God
‘찬송하매’(ὕμνουν)는 미완료과거로서(were singing praises) 계속 찬송하는 것을 가리킵니다(continual singing).
죄수들이 듣더라.
ἐπηκροῶντο δὲ αὐτῶν οἱ δέσμιοι·
Were listening now to them the prisoners
직역하면 ‘죄수들이 그들에게 계속 귀를 기울이더라’는 뜻입니다.
‘듣더라’(ἐπηκροῶντο)는 미완료과거로서(Were listening) 계속 듣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이 단어는 의학용어로서(medical language) ‘소리로서 내적인 질병의 상태를 탐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to detect the nature of internal disease by sound).
1. 바울과 실라는 매를 죽도록 두들겨 맞아서 아마 정신을 잃었을 것입니다.
이튿날 사형에 처할 것이기 때문에, 인정사정없이 죽어라고 두들겨 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을 잃자 깊은 감옥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발을 차꼬에 채워서 도망을 못 가게 했습니다.
그래놓고 밖에 파수병들을 두어서 든든히 지키게 했습니다.
이튿날 죽일 것이기 때문에 밥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한동안 정신을 잃고 쓰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2. 오늘날도 그렇지만 원래 감옥에서는 찬송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죽을 각오로 전도하기 때문에, 정신이 들자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보통 우리 같으면, 하나님 일 하다가 매를 맞고 죽게 되었으니까, 기도하거나 찬송하지 않고 낙심했을 것입니다.
욥의 아내의 말처럼 하나님의 원망하고 죽지 않으면 다행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녀들의 머리털 하나라도 보호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종인 바울과 실라가 죽도록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도록 가만히 보고만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변함이 없이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송했습니다.
정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말씀한 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모습입니다.
시편 50편 15절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니라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50:23. 이처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구원을 보여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33:1-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약속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감옥에 큰 지진이 나게 하시고, 감옥 문이 다 열리고, 죄수들의 매인 것이 다 풀리게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의 이름과 복음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0-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니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베드로전서 4:15-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26절.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suddenly there came a great earthquake, so that the foundations of the prison house were shaken; and immediately all the doors were opened and everyone's chains were unfastened.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ἄφνω δὲ σεισμὸς ἐγένετο μέγας,
suddenly then earthquake there was great
‘나서’(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there was) 과거에 있었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옥터가 움직이고
ὥστε σαλευθῆναι τὰ θεμέλια τοῦ δεσμωτηρίου·
so that were shaken the foundations of the prison house
‘움직이고’(σαλευθῆ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로서(were shaken) 갑자기 움직이는 놀라운 모습을 가리킵니다.
문이 곧 다 열리며
ἠνεῴχθησαν δὲ παραχρῆμα αἱ θύραι πᾶσαι,
were opened then immediately the doors all
직역하면 ‘그래서 모든 문들이 즉시 열렸다’는 뜻입니다.
‘열리며’(ἠνεῴχ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opened) 갑자기 확 열린 것을 가리킵니다.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καὶ πάντων τὰ δεσμὰ ἀνέθη.
and of all the chains were loosed
‘벗어진지라’(ἀνέ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loosed) 모든 사슬들이 확 다 벗겨진 것을 가리킵니다.
1.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지진 때문에 옥터가 움직였습니다.
이처럼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니까, 옥문들이 곧 다 열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매 놓은 사슬과 족쇄들이 다 풀려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놀라운 기적 사건이었습니다.
2. 이 사건은 과거에 사도행전 12장에서 헤롯 아그립바 왕이 베드로를 죽이려고 깊은 감옥에 가두고, 16명의 군사들에게 지키라고 했는데,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밤중까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베드로의 사슬이 다 벗겨지게 하고, 옥문이 저절로 열리게 하시고, 군사들이 보지 못 하게 해서, 기적적으로 석방시켜 주신 것과 비슷합니다.
3. 이처럼 하나님은 온 우주를 기적적으로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주를 기적적인 능력으로 운행하시고, 꼭 필요할 때 기적적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이 기적을 자주 일어나게 하시면, 이것은 자연적인 일이지 기적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켜주십니다.
성경에도 사라의 잉태라든지, 모세가 애굽과 광야에서 일으킨 기적이라든지, 여리고 성의 기적이나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적 사건 그리고 예수님이 일으키신 많은 기적 사건들과 베드로와 바울이 일으킨 몇 가지 기적 사건들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해외 선교지에서는 이런 기적 사건들이 가끔 일어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목사님들을 통해서 많은 기적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절망이 변하여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면서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살다가 특히 주의 일하다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낙심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주시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