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심부름꾼, 이호정목사
목회 소명과 철학
본인은 만주에서 태어나 7세까지 살다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자 고향(영덕군 병곡면)에 내려와
잠시 살다가 아버지가 충북 영동에 있는 구세군병원에 부동산관리책임자로 취직되어 영동에서
사는 중에 6.25를 만나 피난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허무를 크게 느껴 모태 신앙인으로 전쟁 중에
신앙심이 강해졌다.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야 그 어떤 고난도 정복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고 목회자로 살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목회자는 천하보다 귀중한 생명을 돌보기 위한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하기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사명을 가진 삶이 되어야 하리라.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중함을 깨닫고 보살피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오직 진리에 붙들리어 그 어떤 것들 보다 진리를 앞세우고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고 진리가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그 발자취를 따라 살면서 오직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맡겨주신 양무리들을 사랑하며
하늘 소망으로 돌보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목회 사역 이야기
인천 주원교회가 나의 첫 목회지였다. 1966년 9월 18일에 27세의 나이로 부임하여 1975년 3월 30일까지
목회하는 중에 교회가 너무 가난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생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미리 목회훈련을
강하게 훈련시킨 것 같다. 취학전 아이들을 모집하여 동네 유치원 같은 내용으로 돌보는 일을 하는 중에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하여 1971년에 자립을 선언하였다.
그 당시 어린이들이 잘 자라 2명(박성일 박성민)은 감리교단의 목사로 목회하고 오원근목사는 본 교단
대광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의 음악회의 반주자인 강신자는 화동교회 최국순목사의
부인으로 동역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전농동교회(현 나사렛교회)로 1975년에 이동하여 4월 6일에 부임예배를 드리며 목회하는 중에
옛 성전을 헐고 새 성전을 1976년에 완공하고 그 해 4월 18일 부활주일에 헌당예배를 드리다.
주원교회에서 목회 할 때 미자립교회로서 총회본부로부터 약간의 지원금을 받았으나 전농동교회는 당시 전국
나사렛교회에서도 비교적 큰 교회 중 하나였기에 성도들과 뜻을 같이하니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었다.
교회는 성전건축도 중요하나 앞으로 영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을 양성함이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그래서 인재 양성에 힘을 기우려 기도와 장학금으로 지원하였다. 나사렛교회에서 자라난 청년들은 훗날 교계
안팎의 지도자가 되었다 서울 안동교회(장로교) 목회자인 유경재목사 나사렛교단의 권중택목사, 양영호목사,
신민규목사, 박기영목사 기장의 이규상목사, 나사렛대학교의 권미란교수 건국대학교의 김두환교수 외국어대학교의
장태용교수, 태국과 대만에서 선교활동했던 박해림선교사, 케냐에서 선교활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이원재교수(장로교단) 그리고 학자로서 목회자로서 골고루 잘 갖추어진 유승원목사(장로교단) 거창에서 목회하고
있는 이충선목사(장로교단) 나중에 모든 좋은 직장 그만두고 초대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다가 은퇴한 박성규목사 등
여러분들이 있어서 성전건축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과 보람이었다.
특별히 1978년은 교회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사업으로 강원도 정암교회와 안중에 있는 용성교회(현 서해로교회)를
세우기로 작정하고 실시하였고 울산에는 본교회 지교회인 은혜교회(현 아름다운교회)를 개척하고 창립예배(1978. 4.30)를
드리다. 이 모든 교회가 아직까지 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큰 보람이다.
또 감사한 것은 1978년 6월 1일에 창시된 사랑의 음악회 조직을 본인의 목회중 아내(박옥경)가 세계선교회연합회 회장으로
있을 때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계속 활동함으로 나사렛동산 건축의 큰 기틀이 되었고 해마다 사랑의 음악회를 통하여
지금은 70여명의 은퇴목사와 홀사모들을 위로하고 대접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감개무량하다.
그 후에 1987년 5월 31일부로 안중교회에서 목회하였다. 안중교회에서는 교회 자체 운영내규를 만들어 조직을 재정비하여
진행중이었으나 다음 해에 감독으로 피선되어 활동하다 보니 목회에 많은 지장이 되었으나 교회에서 많이 이해하고
협조함으로 잘 진행이 되었다. 재임시 40주년 기념관을 건축하는 일이 있어서 다소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래도 70여개 교회들을
다 방문하고 위로하며 격려하니 관계가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2년 동안의 감독의 임기가 마치자 나사렛신학교의 제4대 교장으로 선임(1991.8.22.)되어 안중교회를 떠나 천안으로 이사하여
본 교단의 숙원인 4년제 정규대학으로 승격(1992. 12.23)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총장의 임기(1997. 2.28)가 다 되자 다시 목회현장으로 초원교회에 부임하여 2005년 2월 28일까지 목회를 하고 3월 1일에
은퇴감사예배를 드리다.
보람되었던 일들
1. 인천 주원교회에서 유치부특별반을 조직하여 지역사회의 어린 생명들을 돌봄으로 교회가 부흥되게 하였고
인재가 양성되었 던 일.
2. 전농동교회(현 나사렛교회)에 새 성전을 건축한 일과 다양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게 하였 던 일
3. 사랑의 음악회를 조직(1978.6.1)하여 은퇴목사 부부를 사랑으로 돌볼 수 있게 한 것.
4.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중부연회 전 교회를 방문하며 보살핀 것과 본 교단 총회본부 건물을 건축한 일.
5. 본 교단 교육기관인 나사렛신학교에 한국인으로 처음 교장으로 선정되어 재임중 대학인가 를 받고 나사렛대학교로
승격되자 초대 총장으로 활동하게 되었던 일.
은퇴 후 하고 있는 일들과 하려는 일
한길복지원과 선한이웃 주간보호센타를 통해 소외된 생명들을 돌보는 일.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들을 직접 방문하여 격려하며 돌보는 일.
시조시인으로 등단하여 글을 정리하여 함께 볼 수 있도록 하여 영향을 끼치는 일.
앞으로 새롭게 하려고 하는 일은 “나라 사랑 운동”으로 노래를 통해 정서적으로 하나가 되게 하려는 일인데 이는
자신이 국민으로서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과 함께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려는 마무리 삶이기도 하다.
2022년 7월에 정리된 “나라사랑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나라 사랑 노래
1. 이 땅에 평화 위해 우뚝 선 대한민국
아시아의 동쪽에서 등대되어 빛 발하네
조상들이 피땀으로 가꾸어온 우리 조국
나라사랑 이어받아 죽기까지 충성하리라
후 렴
우리는 대한 국민 온 세상의 평화 주역
타오르는 그 불길로 어둠밝힐 등대되리라
타오르는 그 불길로 평화의 빛 밝히리라
2. 옥토와 자유대한 첨단과학 우리 보화
진리심어 행복누릴 우리사명 다 하리라
사랑의 샘 강물되어 오대양에 흘러가서
육대주의 나라마다 대한의꽃 피게 하리라
3. 약한 듯 활기참은 우리들의 기상이며
쓰러질 듯 우뚝섬은 창조주의 돌봄이라
희망의 꽃 활개치니 대한민국 복된 나라
우리마음 하나되어 나라사랑 노래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