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 – 4절
교회는 항상 거짓된 교리를 전하는 자들과 싸워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장로는 교회에서 진리가 선포되고 성도들이 진리안에서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교훈하고 그리고 인도해야할 책무를 가지는 것입니다. 교회내에서 어떤 사람들이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다가거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하면 일단은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계시되었고 그 성경도 사도적인 전통안에서 해석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진리를 따라 행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데 사도바울도 교회가 진리를 따라 행한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무척기뻐하였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은 곧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나라의 말씀으로 사도들에게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증거되어집니다. 그런데 교회내에 어떤 자들은 사도들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전해들었다고 하는 자들과 또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도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자신들보다 열등하다고 말하며 자신들은 특별한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만 진리를 알고 가진 것처럼 말하고 교회를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어떤 자들은 거짓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교회를 자기의 욕심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양들을 늑탈하고 헤치는 늑대들입니다. 이 늑대들은 목자들이 자리를 비우는 틈을 노렸다가 양떼들에게 거짓복음을 가르치고 전합니다. 이들이 전하는 공통점은 양떼들과 목회자들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즉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때에는 이 늑대들이 교회로 들어와서 교회성도들과 사도바울 사이를 이간질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양떼들을 목자들로부터 떼어 놓고서 양떼들을 자신들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늑대들은 한결같이 자기들의 영적우월감을 가지고서 성도들에게 영적인 열등감을 갖게 해서 종을 삼습니다. 그러닌까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양들은 그 늑대들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열등감 때문에 핍박을 받아도 기뻐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데살로니가교회에 거짓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이 일어나서 예수님의 재림이 지나갔다던가 재림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그 거짓된 교리를 말하면서 그 정당성을 사도들에게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서 받았다고 하면서 이미 예수님의 재림이 지나갔다던가 재림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닌까 그들의 교리를 배우는 자들은 자신들은 이미 예수님의 재림때에 들림받지 못하는 자들이 되었다고 낙심하고 낙망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거짓교리에 현혹된 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고 살다가 재림하심이 지나갔다고 하는 말을 듣고서 마음이 흔들려서 방탕하게 행하며 두려움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거짓교사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주의 날을 바라보며 사는 성도들에게서 긴장감을 풀어서 허랑방탕하게 살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면에 사단의 역사가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면서 이 거짓교사들은 사람들을 자신들에게로 줄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안에서 사람들에게 줄서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을 다시 전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에서 떠난 결과 교회가 혼란에 빠졌는데 그 중심에는 거짓교사들과 성도들의 불신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