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속에서 용안을 보여준 해님이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오 주여! 내가 주를 뵈옵나이다! 손님이 없는 것 빼고 다 좋습니다. 대통령 구속 취소-한덕수 총리 탄핵 선고 기일이 24일로 잡혔습니다. 전국 판도의 희비가 엇갈린 가운데 윤 대통령 지지자가 분신을 했어요. 이번 들어 2번째 사망 사건입니다. 윤 석열 대통령 측은 분신(20일) 시도한 가족의 빈소를 찾아 “대통령께서 비보를 접하고 정말 가슴 아파하셨다"라며 “남겨진 유서도 몇 번이나 읽어보셨다고 전했습니다. 제발, 애도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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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애도'에 대한 기억은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친 할머니 외할머니-장인-장모-선친 상을 치른 정도입니다. '애도'라는 의식을 가장 심도 있게 다룬 책이 '안티고네'라고 생각합니다. 근친상간으로 얽힌 복잡한 주인공 안티고네의 '애도'가 어떤 가치를 담은 것인지 다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의 분신 에스더와 토론하면서 운명에 매몰 당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당찬 여성의 애도에 경의를 보내게 됐어요. 에스더-카뮈-사르트르-니체-지젝 리스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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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전을 읽는 행위는 원류를 찾기 위함이라고 봅니다.'안티고네'가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 일가의 비극을 연작 형태로 다룬 작품 중 하나이지만 각각 나름대로 완결성을 유지하고 있어요. 소포클레스가 ‘희랍 비극의 완성자’라고 합디다. 비극은 서사시가 가진 모든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운율과 장단을 서사시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드라마틱한 요소 때문인지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고 정신과 정치적으로 원숙한 경지에 이르를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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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가 '안티고네'를 통해 인간의 한계와 운명에 반항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려 한 것이 핵심이라고 봐요. 크레온 왕의 결정이 자신에게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안겨다 주는지(국가를 배신한 자의 장례식 거행 불가 = 국가의 법), 거기에 맞선 안티고네의 행동은 사람 위에 군림하는 악법보다 그 당시의 신의 법이 우선함(오빠의 시신을 장례 치름 = 천륜)을 보여 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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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입장을 점층적으로 대립시킴으로서 나중에는 파멸에 이르는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비극이 가지는 극적인 요소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인간이 신을 모욕하면 자신의 생명으로 갚아야 했어요. 사실 '안티고네'를 통해 한 인간의 영혼과 심성과 생각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는 점을 재 획인 했어요. 우리가 아는 대로 비극'안티고네'는 그리스 신화의 두 개의 법이 충돌하는 세계의 갈등을 다루는 이야기의 원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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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안티고네는 도시의 질서를 위협했던 둘째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 위에 세줌의 흙을 뿌려 금지된 장례를 치릅니다. 장례를 금지한 크레온의 명령이 땅의 법이라면 안티고네가 따르는 것은 하늘의 법인 셈입니다. 안티고네에게는 (그가 어떠한 자이든) 죽은 자에게 제의를 바쳐 그의 영혼을 기리는 것이 이 세계의 정의고, 그는 그것이 법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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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계, 두 개의 법이 대립하는 설정입니다. 둘째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대신해 감옥에 갇힌 안티고네는 모든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폴리네이케스의 편에 서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심장이 시키는 것’(하늘의 법)을 따르기 위해 땅의 법을 위반하고 스스로에게 유죄를 선고합니다. 두 개의 법 사이의 딜레마, 그것이 안티고네를 ‘산 채로 무덤에 갇히도록’ 합니다. 이는 그것이 응당 짊어져야 하는 안티고네의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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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는 지금 누구와 싸우는 것인가? 아무리 봐도 안티고네가 싸워야 하는 구체적인 대상이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일단 법과 대립하지만, 이 법을 정초 한 주인의 자리가 비어 있는 탓에 그녀가 싸우는 대상이 명확히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티고네는 자신이 누구와 싸우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설사 그렇다고 한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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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가 ‘심장이 시키는 것’을 따르듯, 안티고네를 심문한 경찰, 법정의 검사와 판사 모두는 자신이 따라야 하는 법적, 제도적 의무와 절차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 관료적 시스템에는 영혼이 없어요. 이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장이 시키는 것 대신 자신의 자리에 부여된 법적, 제도적 절차의 매뉴얼을 따르면 그만이지요. 첫 재판에서 변호사 선임을 거부한 안티고네는 스스로에게 유죄를 내립니다. 대한민국의 헌법 재판소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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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안티고네가 유죄를 인정하는데도 재판은 끝날 수 없습니다. 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절차를 준수하는 일 일지 모릅니다(실정법의 한계). 검사, 변호사, 판사 등 재판에 관련된 그 누구도 안티고네가 왜 오빠를 위해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재판이 잘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역할만 수행하는 자동화된 기계라 해도, 그것이 그들이 악인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미선-정계선-정정미-문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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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영혼 없는 이 거대 시스템에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무리일까? 영화 판 '안티고네'는 이 장면을 마치 아나키스트 코미디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유쾌한 소동극처럼 묘사합니다. 그것이 조롱하는 것은 법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존립 기반으로 삼기 위해 마련된 절차들일 것입니다. 영화든 책이든 안티고네는 ‘아니오!’라고 말하며 무언가를 비판하거나 저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물이기보다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절실히 지키겠노라고 주장하는 인물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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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심장이 시키는 것을 따르겠다는 그 욕망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외치는 인물에 가깝지요. 알제리에서 망명한 안티고네 가족이 캐나다에서 추방되어 알제리로 돌아간다면 생존을 보장받지 못할 것입니다. 안티고네는 그저 그 위험에서 둘째 오빠를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그녀는 거창한 목표를 위해 싸우는 투사가 아니라 그것이 세상과 불화한다 해도, 그녀는 그저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울 뿐입니다. 에예공! 이 대목을 공유(공감) 해 줘서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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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지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그리고 그 믿음이 배신당한 순간의 절망감과 분노도, 그리고 두 개의 법 사이에 끼어 있는 두려움도 모두 안티고네의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지기 때문에 영화판 안티고네의 얼굴은 관객을 설득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보는데 동의해 주시라.이 대목에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아마도 안티고네가 관객과 어떤 연대감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나마리치가 연기하는 안티고네의 얼굴의 힘 덕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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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은 안티고네를 통해서 죽음으로 향하는 자유를 보았고, 대의를 위해 사적 가치(결혼)를 버리고 악정을 펼치는 통치자에게 저항했던 만델라를 보지 않았을까? 영화 속 안티고네는 세상의 모든 오브제 중에서 인간의 얼굴을 가장 소중한 오브제로서 숭고하게 다루어왔는지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정서적 울림을 주었고, 안티고네의 얼굴이 더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절망이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엔딩에서 알제리로 추방당하는 안티고네는 자신의 과거를, 또는 또 다른 난민을 마주치는데 이 비극은 그렇게 계속해서 반복될 것입니다. 후, 누가 이 반복의 역사를 끊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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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왕(유선)이 주례하는 조회시간입니다. 실세 동탁이 위풍당당 하게 입성을 하자 왕윤은 조조의 거사가 실패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좌불안석입니다. “여기에 역적 조조의 배후와 원소의 끄나풀들이 있다. 내 이들을 발권새신 해 장안에 목을 내걸고 말 것이다. 왕윤! 며칠 전 환갑이었다며(동탁) “ 황급히 궁을 빠져나온 왕윤은 멸문지하를 당할까 봐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때 초선이 양 아버지 왕윤에게 살길을 일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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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인즉 "조조가 환갑잔치에 오긴 했는데 문전 박대를 당했다. 고로 조조와 우리 집안은 무관하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그때 제가 그곳에 있었는데 거의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조조가 찾아왔고 동탁을 욕하자 쫓아낸 건 사실입니다. 후에 왕윤이 조조를 찾아가 동탁을 죽이는데 의기투합을 했고 그 증표로 칠성도를 조조에게 주었어요. 거짓이 두려운 것은 그 절반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절반의 사실로 진실을 대신하는 것이 거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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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장 여포가 동탁의 명을 받고 서량 군과 함께 들이닥쳤어요. 왕윤은 벌벌 떨고 있는 상황이고 초선은 기생 합처럼 의연하게 여포에게 거짓 말을 합니다. 여포는 초선을 보고 첫눈에 뿅 간 눈칩니다. 수컷이 암컷 보다 더 멋지다는 말을 어디서 주서 들었는데 지금 보니 초선보다 여포가 눈부시게 예쁜 것 같네요. 칠성 도를 확인한 여포가 왕윤을 봐 주려고 검문검색을 급히 끝내고 철수합니다. 결국 여포가 바보가 아닐진대 속는 걸 보면 사심이 있으니 유혹에 넘어간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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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복숭아꽃 군락이 화사하게 피여 있는 것이 판타스틱 무릉도원입니다. 내게 중국의 풍경이 정겨운 것은 한류가 중국에 먹히는 이유와 모종의 상관이 있을 것입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하는 장면이 잠깐 비추고 곧 도망자 조조를 따라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됩니다. 수배령이 떨어졌으니 조조에겐 중국 대륙이 좁을 것입니다. 무명소졸에게 잡혀 현령에게 인계된 조조가 자신은 장사꾼 황 보장이라고 거짓말을 하지만 안 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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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현령인 '진공 대'가 감옥 안으로 조조를 찾아들어갈까요? 중 오현 감옥에서 진공대가 조조를 알아보고 의기투합을 하는 것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요? 이들의 명분은 '동탁을 죽이자와 영웅은 난세에 난다.'입니다. 그러고 보니 의기투합한 영웅들은 그 길로 재다 길을 떠납니다.
2025.3.22.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