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고현 거리에서
삼 년 전 거제로 건너온 첫해는 일과를 마치면 곧장 교정을 나서 와실로 들어 옷차림과 신발을 바꾸고 산책을 나섰다. 연사마을 주변 산을 오르거나 시내버스로 얼마간 이동해 갯가를 산책하고 날이 저물어 와실로 들어 늦은 저녁밥을 지어 먹었다. 덕분에 거제의 토박이만큼이나 인문 지리에 밝아졌고 자연환경에 훤해졌다. 웬만큼 알려진 해안이나 산자락에는 서너 번씩 다녀왔다.
작년 봄부터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하고부터는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해 산행이나 산책을 줄였다. 퇴근 후 보내는 시간은 단조로워 개미 쳇바퀴 도는 듯하다. 아침에 둘렀던 연초천과 들녘 산책 정도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새로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정기고사 기간 오후는 허여된 시간이 많아 갯가 산책을 나서 갑갑한 일상으로부터 변화를 시도했다.
시월 넷째 화요일은 두 달만에 고현으로 나가는 날이었다. 십여 년 전부터 당뇨가 있어 주치의 처방전에 따라 약을 타 먹고 있다. 근무지를 거제로 옮기고부터 고현에 내과를 정해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남들보다 많이 걸어 혈당이 관리되나 즐기는 곡차를 끊지 못해 유감이다. 혈당 수치와 당화 혈색소가 정상인과 경계치인데도 의사는 약을 먹으라고 권해 코가 꿰어 계속 다닌다.
퇴근 시각이 되어 교정을 나서 외실로 들어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신발을 바꾸어 신었다. 고현까지 시내버스를 타면 십 분 남짓 걸리나 매번 걸어서 간다. 거제대로와 나란한 연사 들녘 농로를 따라 걸어 연초교를 지났다. 연초교부터 고현만까지 연초천 하류는 바닷물과 육수가 만나는 기수역이다. 하루 두 차례 밀물과 썰물이 들고 나면서 수위가 달라져 냇바닥이 드러나는 때도 있었다.
연초교를 건너 천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날이 저무니 하루해는 계룡산을 비켜 사등으로 넘어가면서 석양이 비쳤다. 산책로에는 중곡지구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산책을 나와 오르내렸다. 연초천 하류는 물때가 썰물이라 냇바닥이 드러나니 철새들이 찾아와 먹이활동을 했다. 텃새로 머물다시피 하는 백로와 왜가리가 몇 마리 보였다. 겨울 철새로 날아온 쇠오리는 떼를 이루었다.
중곡아파트와 상가가 끝나니 매립을 마친 고현만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었다. 고현 시외버스터미널에 이르니 날이 어둑해져 상가 네온 간판 불이 켜졌다. 다니는 내과 의원을 찾아 혈당을 체크하니 안정된 수치였다. 그래도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로부터 종전과 같은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두 달치 약을 탔다. 고현에 나감은 약을 타는 것만큼 중요한 일인 특식이 기다렸다.
네온 불이 켜진 상가 골목에서 몇 차례 들렸던 실내포장을 찾아갔다. 자리를 먼저 차지한 중년 사내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정치 뉴스를 화제로 삼아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그들은 모두 현역에서 은퇴한 이들인 듯했다. 주인 아낙은 내가 맑은 술과 함께 저녁밥까지 먹고 갈 손님인 줄 알고 있었다. 밀치와 병어가 신선한 것이 있다면서 안주로 추천했다.
병어회를 주문해 놓고 밑반찬이 나오면서 맑은 술이 따라왔다. 자작으로 맑은 술 잔에 채워 비웠다. 곧이어 선도가 좋은 병어가 연한 뼈째 썰어져 나와 안주로 집어 먹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맑은 술은 한 병으로 양이 차지 않아 한 병 더 시켰다. 느긋하게 잔을 비우면서 공기밥을 청하니 미역국이 곁들여 나왔다. 남은 술을 마저 잔에 채워 들면서 공기밥을 다 비우고 자리를 떴다.
고현은 자주 나가는 곳이 아니지만 낮보다 밤이면 이방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터미널로 가서 시내버스를 타지 않고 수협 마트로 가서 시장을 몇 가지 봤다. 찌개를 끓일 재료가 될 두부와 계란을 집었다. 간편식으로 때울 라면도 한 봉지 챙겼다. 연사까지 되돌아가는 길은 걸어도 되겠으나 밤공기가 차고 시간이 늦어져 시내버스를 탔더니 금방 수월삼거리를 거쳐 연사마을에 닿았다. 21.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