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저만치에서 / 양윤미
한 달 생활비가 육만 원이라고 해서,
열 살짜리 인도 아이, 아닌에게 매달 육만 원을 보냈어요
십 년 정도는 돕고 싶었어요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라잖아요
십 년이면 720, 그깟 돈으로
누군가의 세상에 보탬이 되기로 했어요
정기적으로 감사 편지가 왔지요
미혼에 무자식인 주제에 아닌의 안위에 뿌듯했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닌의 키가 자라고 몸이 자라고
저의 마음도 자랐습니다
상황이 달라지기 전까진 말이예요
아닌이 너무 쑥쑥 자라서
생활비에다 학비 삼십이 더 필요하대요
침이 꼴깍 넘어갔어요
아닌 건 아닌 거잖아요
비정규직 강사는 출산과 동시에 캐시가 멈추거든요
결국 저는 제 새끼들을 선택했어요
한동안 돌을 씹는 기분이었어요
아닌이 잘 살아남길 기도하는 수밖에요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을 보다가
아닌이 궁금해지는 밤이면, 미안해져요
공부까지는 못 시켜줬잖아요
아닌한테만 미안한 건 아니에요
그 돈 안 쓰고 모았더라면
우리 애들 학원 하나는 더 보냈을 테니까
모두에게 미안한 밤입니다
마음이 저만치에서 돌아보는 표정을
애써, 모른 척해 봅니다
-『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 학이사, 2023.
감상 – 기회비용이란 말이 생각나는 시다. 대충 이해한 내용을 줄이면, 기회비용은 어떤 것을 선택함으로써 선택하지 못한 것의 가치를 따지는 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회비용은 미래의 자산과 성취의 정도와 직결된다. 언제든 기회비용을 머릿속에 그릴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생산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회비용은 숫자로 바로 환산되지도 않을뿐더러 선태한 쪽과 비교해서 쉽게 유·불리를 단정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어떤 선택으로 개인의 자산이 늘어도 평판을 잃을 수 있고, 손해 보는 길로만 갔더니 거꾸로 요긴할 때 더 잘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단,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의 결과물로 존재한다는 말일 것이다.
시인은 비정규직 강사로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먼 나라의 아이의 생활비를 돕는 선택을 한다. 세상에 남 좋은 일 하는 것보다 훌륭한 일이 어디 있는가. 게다가 어려운 환경에 있었을 아이가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제적 부담을 상쇄시키는 보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돈을 요구해왔을 때 시인은 순수한 마음으로 돕던 그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이전에 따지지 않던 기회비용도 생각한다. 그 돈을 집의 아이들 학원비에 투자했으면 영어나 국어를 더 잘하는 아이가 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집의 아이가 더 나은 인생을 사는 밑거름으로 작용했을지 누가 아는가 말이다.
시인은 고민 끝에 지원을 중단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끔 중간자 역할을 했었을 비영리단체의 태도에 더 큰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시인은 좋은 일하는 사람을 함부로 매도하는 선택 대신 이웃나라 아이와 집의 아이들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시인이 그랬듯이 마음이 있는 일엔 돈을 써도 그 기회비용을 따지고 싶지 않지만 반대로 마음이 없는 일엔 거리를 두고 기회비용까지 떠올리게 되는 경험이 없지 않다. 이 시는 그러한 마음에 대해서 한 번 더 성찰하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시집 말미의 ‘시인의 에세이‘에 밝힌 것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나’와 올곧게 잘 버틴 대견스러운 ‘나’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그려온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 적어도 어제의 나보다는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는 말이 크게 와 닿는다. (이동훈)
첫댓글 따뜻하면서 어딘가 채울 수 없는 허전한 연민,
선택의 양가성에 대한 존재론적인 좋은 시
잘 감상했습니다.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