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깨져 금이 간, 못 생긴 항아리가 있었다. 주인은 그 항아리를 물 긷는 데 사용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주인은 금이 간 항아리를 버리지 않고 온전한 물 항아리처럼 아끼며 사용했다.
‘나로 인해 그토록 힘들게 길어 온 물이 조금씩 새 버리는데도 주인님은 나를 아직도 버리지 않다니….
깨진 항아리는 늘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어느 날, 깨진 항아리가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님, 왜 저를 버리지 않으시나요? 전 별로 쓸모가 없는 물건인데요.”
주인은 아무 말 없이 물이 담긴 항아리를 지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어느 길에 이르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얘야,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아라.”
늘 물을 길어 집으로 돌아오던 길가에는 꽃들이 싱싱하게 피어 있었다.
항아리가 물었다.
“어떻게 이 메마른 산 길에
예쁜 꽃들이 피었을까요?”
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바로 네 몸의 깨진 틈으로 새어 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좋은 글' 중에서-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루카 13,18-21)
너무나 빠르게 살아가고 있는 제게 예수님께서는 주시는 말씀입니다.
올라가는 가지와 내려가는 뿌리는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내면이 자라지 않고서는 외면도 기쁠 수 없습니다.
속도를 줄여야 출구가 더 잘 보입니다. 모든 것이 좁고 답답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서두르며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닦고 마음을 자라게 하는 데는 그만큼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씨앗이 마음에 머물러야 하느님을 모실 마음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겨자씨는 분명 가장 낮은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십자가의 모습을 믿도록 이제껏 인내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보이는 가지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의 시간까지 함께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천천히 천천히 하느님과 하나 되어 자라나는 마음의 나무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