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극생비(樂極生悲)
즐거움 끝에는 슬픈 일이 생긴다는 뜻으로, 낙이 있으면 고생도 있다는 의미로 세상일은 돌고 돈다는 말이다.
樂 : 즐길 락(木/11)
極 : 다할 극(木/8)
生 : 날 생(生/0)
悲 : 슬플 비(心/8)
(유의어)
복과재생(福過災生)
복과화생(福過禍生)
흥진비래(興盡悲來)
(상대어)
고진감래(苦盡甘來)
부극태래(否極泰來)
출전 :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卷126 골계열전(滑稽列傳)
아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태산을 넘으면 평지를 본다’거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격려한다. 자주 쓰는 성어로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이고, ‘음지가 양지 된다’는 음지전 양지변(陰地轉 陽之變)이다.
반면 좋은 자리에서 떵떵거리거나 가진 것이 많아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은 그것이 오래 갈 줄 안다. ‘십년 세도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이 남의 이야기인줄 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데도 말이다.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樂極) 슬퍼지게 된다(生悲)는 이 말도 흥겨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흥진비래(興盡悲來)와 똑같다.
사기(史記)의 골계(滑稽)열전은 뛰어난 언변과 해학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쳤던 인물들을 모은 곳이다. 첫 머리를 장식하는 순우곤(淳于髡)의 고사에서 나왔다. 그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인물로 미천한 신분에 몸집도 왜소해 볼품이 없었지만 반어와 풍자에 능해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단 한 번도 굴욕을 당한 적이 없었다.
초(楚)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했을 때 순우곤이 조(趙)나라의 구원병을 청해 물리쳤다. 놀고 마시기를 일삼던 위왕이 잔치를 베풀고 노고를 치하했다. 왕이 순우곤에게 얼마나 술을 마시면 취하는지 물었다.
분위기에 따라 한 말을 마셔도 취할 때가 있고, 한 섬을 마셔야 취할 때가 있다며 말을 잇는다. "예부터 술이 지나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지나치면 슬퍼진다고 했으니 모든 일이 이와 같습니다(故曰 酒極則亂 樂極則悲 萬事盡然)." 이 간언에 따라 위왕은 밤새워 벌이던 술잔치를 그만 두고 순우곤을 더욱 중용했다.
권력이나 부유함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돌고 돈다고 믿는다. 그래야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사람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차지하는 정당은 인기를 끌게 되면 몇 10년을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오만함이 지지를 갉아 먹는다.
또 있다. 이전의 정경유착으로 부를 긁어모은 재벌들은 모든 수단을 다 써서 대물림하려 한다. 지나치면 바람 앞에 스러질 재산인데 말이다.
낙극생비(樂極生悲)
즐거움 끝에는 슬픈 일이 생긴다는 말이다.
이 성어는 전국시대 제(齊) 나라의 종횡가 순우곤(淳于髡)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순우곤(淳于髡)은 제(齊)나라 사람의 데릴사위(지위가 낮아 죄수와 거의 같은 대우를 받았다)였다.
그는 키가 일곱 자도 안 되지만 익살스럽고 변설에 뛰어나 제후들에게 자주 사신으로 갔으나 굴욕을 당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제위왕(齊威王) 8년에 초(楚)나라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제나라를 쳐들어왔다.
제나라 위왕은 순우곤을 사자로 삼아 조(趙)나라로 가서 구원병을 청하게 하였고, 조나라 왕은 정예 병사 10만 명과 전차 천 승(乘)을 주었다. 초나라는 이 말을 듣고 밤중에 군대를 이끌고 가 버렸다.
위왕은 몹시 기뻐하여 후궁에 주연을 준비하여 순우곤을 불러 술을 내려주며 이렇게 물었다. “선생은 어느 정도 마셔야 취하시오?”
순우곤이 대답했다.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취합니다.”
위왕이 말했다. “선생이 한 말을 마시고 취한다면 어찌 한 섬을 마실 수 있소? 그 이유를 들려줄 수 있소?”
순우곤이 대답했다. “대왕이 계신 앞에서 술을 내려 주신다면 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곁에 서 있고 어사(御史; 문서와 기사를 담당하는 관리)가 뒤에 있어, 신은 몹시 두려워하며 엎드려 마시기 때문에 한 말을 못 넘기고 바로 취합니다.
만일 어버이에게 귀한 손님이 있어 신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꿇어앉아 앞에서 모시며 술을 대접하면서, 때때로 끝잔을 받기도 하고 여러 차례 일어나 술잔을 들어 손님의 장수를 빌기라도 하면 두 말을 못 마시기 전에 즉시 취합니다.
만약 사귀던 친구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뜻밖에 만나면 너무 기뻐 지난날 일을 이야기하고 사사로운 생각이나 감정까지 서로 터놓게 되어 대여섯 말을 마시면 취합니다.
만약 같은 고향마을에 모여 남녀가 한데 섞여 앉아 서로 상대방에게 술을 돌리며 장기와 투호 놀이를 벌여 짝을 짓고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아도 벌을 받지 않고,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금하는 일이 없으며, 앞에 귀걸이가 떨어지고 뒤에 비녀가 어지럽게 흩어지는 경우라면 신은 이런 것을 좋아하여 여덟 말 쯤 마셔도 약간 취기가 돌 뿐입니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어 술자리가 끝나면 술 단지를 한군데로 모아 놓고 자리를 좁혀 남녀가 한자리에 앉고 신발이 뒤섞이고 술잔과 그릇이 어지럽게 흩어지고(杯盤狼藉) 마루 위의 촛불이 꺼집니다.
주인은 저만을 머물게 하고 다른 손님들을 돌려보냅니다. 이윽고 엷은 비단 속옷의 옷깃이 열리는가 싶더니 은은한 향내가 퍼집니다. 이때 신의 마음이 몹시 즐거워 한 섬은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술이 극도에 이르면 어지럽고 즐거움이 극도에 이르면 슬퍼진다(故曰酒極則亂, 樂極則悲)’라고 하는데 모든 일이 이와 같습니다. 사물이란 지나치면 안 되며, 지나치면 반드시 쇠합니다.”
이러한 말로 (위왕에게) 풍간하였다. 위왕이 말했다. “좋은 말이오.”
위왕은 그 뒤로 밤새워 술 마시는 것을 그만두고, 순우곤에게 제후들 사이의 외교 업무를 맡겼다. 왕실에서 주연이 있을 때마다 순우곤이 항상 왕을 모셨다.
인간을 떡으로 만드는 곡차(穀茶)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한때 유행했던 숙취음료 광고 카피다. 술깨나 마셔본 사람이라면 머리를 긁적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되는 문구다. 술로 떡이 된 사람을 시쳇말로 '떡실신' 또는 '꽐라'라고 표현하곤 한다.
술은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방금 만난 낯선 사람과의 서먹서먹한 관계를 마치 10년 된 듯 친근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한 묘약이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술의 부정적인 면을 보면 사소한 의견 충돌에도 큰 싸움이 벌어지게 하는 독약이다.
과도한 음주는 엉뚱하면서도 심각한 실수를 유발한다. 과음은 단 한 번의 실수로 자신의 삶을 구렁텅이에 밀어 넣기도 한다. 심지어는 가정 파탄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묻지마 폭행의 범인은 술의 저주를 받는 자들이 다반사다.
성인군자들은 술을 마시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4대 성인으로 꼽히는 공자(孔子)도 술을 마셨다. '논어'에 의하면 공자의 주량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술은 한정을 두지 않으셨으나, 품격을 어지럽힐 정도까지 이르시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즉 술자리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고 함께 어울리되 '절제의 미'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채근담'에서는 '꽃은 반만 피었을 때 보고 술은 조금만 취하도록 마시면 그 가운데 아름다운 멋이 있다. 만약 꽃이 활짝 피고 술이 만취에 이르면 추악한 경지에 이르니, 가득 찬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음주 습관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2018년 12월, 음주운전 사고로 숨진 윤창호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윤창호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시행되었다. 음주운전 기준과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법의 처벌 강화가 솜방망이로 여겨지거나 신분의 권력으로 피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애주가들은 '윤창호법'을 비웃고 있다.
국민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청와대 비서관이나 법을 집행하는 검사와 같은 공직자들의 음주운전 적발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뱉어 내게 만든다.
음주운전자는 '도로 위의 살인마'라는 섬뜩한 애칭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술을 마신 상태로 운전대를 잡으면 그 순간 흉악한 살인범의 가면을 쓰게 된다.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남의 인생마저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사악한 저승사자가 되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골계열전(滑稽列傳)에는 술을 마셨다하면 몇날 며칠을 마셔대는 위왕(威王)의 술버릇에 대해 순우곤(淳于髡)이 따끔하게 충고하는 구절이 나온다. “술이 극에 달하면 난리가 나고, 쾌락이 극에 달하면 슬퍼진다(酒極生亂, 樂極生悲).” 이 말은 모든 애주가들이 가슴깊이 새겨들어야 할 구절이다.
▶️ 樂(노래 악, 즐길 락/낙, 좋아할 요)은 ❶상형문자로 楽(락)의 본자(本字), 乐(락)은 간자(簡字)이다. 현악기를 본뜬 글자, 신을 모시는 춤을 출 때 손에 가지는 방울을 본뜬 글자, 북 따위의 타악기를 본뜬 글자 등의 유래가 존재한다.기본 음가는 악이고, 전주된 음가로 락과 요가 있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될 때, 요는 좋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❷상형문자로 樂자는 '음악'이나 '즐겁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樂자는 본래 악기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樂자를 보면 木(나무 목)자에 絲(실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거문고처럼 실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와 줄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白(흰 백)자가 더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줄을 튕길 때 사용하는 피크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또 음악을 들으면 즐거우므로 '즐겁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樂(악)의 경우는 ①노래, 음악(音樂) ②악기(樂器) ③연주하다 ④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등의 뜻이 있고, 樂(락/낙)의 경우는 ⓐ즐기다(락) ⓑ즐거워하다(락) ⓒ편안하다(락) ⓓ풍년(豐年)(락) ⓔ즐거움(락) 등의 뜻이 있고, 樂(요)의 경우는 ⓕ좋아하다(요) ⓖ바라다(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노래 가(歌),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인생을 즐겁게 여기거나 세상을 밝고 좋게 생각함을 낙관(樂觀),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낙토(樂土), 재미 붙일 만한 일을 낙사(樂事),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세상이나 인생을 즐겁게 생각함을 낙천(樂天), 노래의 곡조를 악곡(樂曲), 음악 기구를 악기(樂器), 작곡에 관한 착상이나 구상을 악상(樂想), 음악에서 연주되는 음의 배열을 악보(樂譜), 노랫소리 또는 가락스런 소리를 악음(樂音),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를 악단(樂團), 물을 좋아함을 요수(樂水),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는 뜻으로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낙생어우(樂生於憂), 안락은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을 낙시고인(樂是苦因), 천명을 깨달아 즐기면서 이에 순응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낙천지명(樂天知命), 즐겨서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는 말을 낙이망우(樂而忘憂),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움 속에 삶이 있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낙중지생(樂中之生),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요차불피(樂此不疲),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산수 경치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을 요산요수(樂山樂水) 등에 쓰인다.
▶️ 極(극진할 극/다할 극)은 ❶형성문자로 极(극)은 간자(簡字)이다. 용마루의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亟(극; 위아래가 막힌 곳에서 말(口)와 손(又)으로 빨리 하라고 지시함)의 뜻이 합(合)하여 지극히 높다는 데서 '지극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極자는 '다하다'나 '극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極자는 木(나무 목)자와 亟(빠를 극)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極자가 그려져 있었다. 갑문에서는 땅을 딛고 머리로 하늘을 받치고 있는 거인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늘까지 '다다라 있다' 즉 '극에 달하다'라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口(입 구)자와 攴(칠 복)자가 더해지면서 세상을 호령하는 모습을 표현하게 되었고, 소전에서는 木자가 더해지면서 기둥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음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極(극)은 (1)지축(地軸)의 양쪽 끝, 곧 북극(北極)과 남극(南極) (2)지축이 천구를 자르는 점. 천구의 극 (3)은하면에 수직(垂直)된 직선(直線)이 천구를 관통(貫通)하는 점. 은하극 (4)전지(電池)에서 전류(電流)가 드나드는 두 끝, 곧 음극과 양극. 전극(電極) (5)자석에서 자력이 가장 센 양쪽의 끝, 곧 남극(南極)과 북극(北極) (6)한 구면상(球面上)에 그린 대원(大圓) 또는 소원(小圓)의 중심을 통과하는 구(球)의 직경(直徑)의 양쪽 끝 (7)극좌표(極座標)에 있어서 좌표의 원점(原點) (8)어떤 점의 한 곡선(曲線)이나 곡면(曲面)에 관한 극선(極線), 또는 극면(極面)을 생각할 때의 그 점의 일컬음 (9)동물축(動物軸)의 양끝 (10)어떤 명사(名詞)의 앞에 붙어 '아주', '극심(極甚)한', '극히' 따위의 뜻을 나타냄 (11)더할 수 없는 막다른 지경(地境) 등의 뜻으로 ①극진(極盡)하다 ②지극(至極)하다 ③다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다다르다 ⑤이르게 하다, 미치게 하다 ⑥세차다, 엄(嚴)하다(매우 철저하고 바르다), 혹독(酷毒)하다 ⑦죽이다, 징벌하다 ⑧바로잡다, 고치다 ⑨병들다, 지치다 ⑩괴롭히다 ⑪내놓다 ⑫멀다 ⑬잦다(잇따라 자주 있다), 재빠르다 ⑭극, 한계(限界) ⑮남북(南北)의 두 끝 ⑯하늘 ⑰별의 이름 ⑱북극성(北極星) ⑲정점(頂點), 최고의 자리 ⑳제위(帝位) ㉑임금의 자리 ㉒용마루(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 ㉓대들보(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른 큰 들보) ㉔중정(中正) ㉕근본(根本) ㉖흉사(凶事), 흉악한 일 ㉗깍지(활 쏠 때 사용하는 기구), 장갑(掌匣) ㉘매우, 심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곤할 곤(困), 다할 추(湫), 다할 진(殄), 다할 진(盡), 다할 궁(窮), 다할 갈(竭), 끝 단(端), 가난할 빈(貧)이다. 용례로는 몹시 심함을 극심(極甚), 더 갈 수 없는 극단에 이름을 극치(極致), 더할 수 없는 정도를 극도(極度), 사물의 끝닿은 데로 맨 끝을 극한(極限), 아주 옳음이나 매우 좋음을 극가(極可), 성질이 지독하고 과격함을 극성(極盛), 온갖 말로 태도가 매우 완강하거나 열렬함을 극구(極口), 있는 힘을 아끼지 않고 다함을 극력(極力), 지독한 심한 추위를 극한(極寒), 지독한 심한 더위를 극서(極暑), 힘이나 마음을 다함을 극진(極盡), 극구 칭찬함을 극찬(極讚), 맨 끝이나 맨 끄트머리를 극단(極端), 아주 매우 작음을 극소(極小), 몹시 가난함을 극빈(極貧), 매우 중요한 비밀을 극비(極祕), 몹시 악함 또는 더할 수 없이 지독한 악덕을 극악(極惡), 지극히 매우 큼을 극대(極大), 뜻을 다함을 극의(極意), 지극히 열렬함을 극렬(極烈), 끝에 있는 땅으로 남극이나 북극을 극지(極地),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움을 극미(極美), 더 할 수 없이 무거운 형벌을 극형(極刑), 몹시 궁함을 극궁(極窮), 극히 어렵고 고생스러움 또는 몹시 가난함을 극간(極艱), 극히 공손함을 극공(極恭), 말이나 행동이나 성질이 아주 아름다움을 극가(極嘉), 몹시 줄임을 극감(極減), 지나치게 심한 말을 극론(極論), 지극히 선량함을 극선(極善), 몹시 심한 더위를 극염(極炎),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움을 극려(極麗), 지극히 적음을 극미(極微), 사물에 대하여 그것을 긍정하고 능동적으로 활동함을 적극(積極), 극도에 달하여 어찌 할 수 없음을 궁극(窮極), 끝이 없음으로 동양 철학에서 태극의 처음 상태를 일컫는 말을 무극(無極), 더욱 심하게를 우극(尤極), 몹시 분에 넘침을 과극(過極), 몹시 바쁜 때를 방극(方極), 지구 위에서 가장 추운 곳을 한극(寒極), 어떠한 정도나 상태 따위가 극도에 이르러 더할 나위 없음을 지극(至極), 임금이나 부모의 은혜가 너무 커서 갚을 길이 없음을 망극(罔極), 더없이 악하고 도의심이 없다는 말을 극악무도(極惡無道), 너무 성하면 얼마 가지 못해 패한다는 말을 극성즉패(極盛則敗), 사물의 근원과 끝을 철저히 규명한다는 말을 궁원극위(窮源極委),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하늘이 넓고 끝이 없다는 뜻으로 부모의 은혜가 매우 크고 끝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호천망극(昊天罔極), 성정이 음침하고 매우 흉악하다는 말을 궁흉극악(窮凶極惡), 총애가 더할수록 교만한 태도를 부리지 말고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는 말을 총증항극(寵增抗極) 등에 쓰인다.
▶️ 生(날 생)은 ❶상형문자로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생기다, 태어나다의 뜻으로 만들었다. ❷상형문자로 生자는 '나다'나 '낳다', '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生자의 갑골문을 보면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生자는 본래 '나서 자라다'나 '돋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生자는 후에 '태어나다'나 '살다', '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生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본래의 의미인 '나다'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姓(성 성)자는 태어남은(生)은 여자(女)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生(생)은 (1)생명(生命) (2)삶 (3)어른에게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흔히 편지에 씀 등의 뜻으로 ①나다 ②낳다 ③살다 ④기르다 ⑤서투르다 ⑥싱싱하다 ⑦만들다 ⑧백성(百姓) ⑨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⑩자기의 겸칭 ⑪사람 ⑫날(익지 않음) ⑬삶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있을 존(存), 살 활(活), 낳을 산(産)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을 사(死), 죽일 살(殺)이 있다. 용례로 살아 움직임을 생동(生動), 목숨을 생명(生命),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생존(生存),말리거나 얼리지 않은 잡은 그대로의 명태를 생태(生太), 자기가 난 집을 생가(生家),생물의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생활 상태를 생태(生態),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사로 잡음을 생포(生捕), 태어남과 죽음을 생사(生死), 먹고 살아가기 위한 직업을 생업(生業), 활발하고 생생한 기운을 생기(生氣),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생모(生母), 끓이거나 소독하지 않은 맑은 물을 생수(生水), 어떤 사건이나 사물 현상이 어느 곳 또는 세상에 생겨나거나 나타나는 것을 발생(發生),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先生), 사람이 태어남을 탄생(誕生),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일단 못 쓰게 된 것을 손질하여 다시 쓰게 됨 또는 죄를 뉘우치고 마음이 새로워짐을 갱생(更生), 다시 살아나는 것을 회생(回生), 아우나 손아래 누이를 동생(同生), 사람이 삶을 사는 내내의 동안을 평생(平生), 어렵고 괴로운 가난한 생활을 고생(苦生), 살림을 안정시키거나 넉넉하도록 하는 일을 후생(厚生),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음을 생매장(生埋葬), 생명이 있는 물체를 생명체(生命體), 이유도 없이 공연히 부리는 고집을 생고집(生固執),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세상만사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생자필멸(生者必滅), 불교에서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만 한다는 네 가지 고통 즉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의 고통을 이르는 말을 생로병사(生老病死),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곤궁하여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생구불망(生口不網), 학문을 닦지 않아도 태어나면서부터 안다는 뜻으로 생지生知하는 성인을 이르는 말을 생이지지(生而知之), 죽은 자를 살려 백골에 살을 붙인다는 뜻으로 큰 은혜를 베풂을 이르는 말을 생사골육(生死骨肉), 사람이 태어난 뒤 사흘 동안과 죽은 뒤 이레 동안을 부정하다고 꺼리는 기간을 이르는 말을 생삼사칠(生三死七), 몹시 곤란한 지경에 빠져 삶이 차라리 죽음만 같지 못하다는 말을 생불여사(生不如死), 기운이 꺾이지 않고 본디의 기운이 아직도 남아 생생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생동생동(生動生動),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잠깐 동안 머물러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죽는 것은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생기사귀(生寄死歸), 산 채로 삼키고 산 채로 껍질을 벗긴다는 뜻으로 남의 시문을 송두리째 인용함을 이르는 말을 생탄활박(生呑活剝), 나면서부터 알아 쉽게 행한다는 뜻으로 배우지 않아도 사물의 도리를 알아 쉽게 그것을 실행한다는 말을 생지안행(生知安行), 일속을 잘 알지 못하고 관계가 없는 사람을 그릇 책망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생면대책(生面大責), 태어나서 만나 본 적이 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생면부지(生面不知),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뜻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생살여탈(生殺與奪), 거듭나서 유전한다는 뜻으로 만물이 끊이지 않고 변해 감을 이르는 말을 생생유전(生生流轉) 등에 쓰인다.
▶️ 悲(슬플 비)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非(비)로 이루어지며, 마음(心)이 좋지 않아 슬프다를 뜻한다. 非(비)는 새의 날개, 여기에서는 어기는 일, 扉(비; 문짝)나 排(배; 밀치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억눌렸던 것이 배출구를 찾아 초조해지는 기분을 나타낸다. 마음대로 안되어 마음에 치밀어 오르는 괴로운 기분, 슬픔, 슬퍼하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悲자는 '슬프다'나 '서럽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悲자는 心(마음 심)자와 非(아닐 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非자는 새의 양쪽 날개를 그린 것으로 '아니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悲자는 이렇게 '아니다'라는 뜻을 가진 非자에 心자를 결합한 것으로 '마음(心)이 영 아니다(非)'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마음이 영 아니라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悲자는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悲(비)는 ①슬프다, 서럽다 ②슬퍼하다, 마음을 아파하다 ③슬픔, 비애 ④동정(同情), 가엾이 여기는 마음, 가엾게 여겨 은혜(恩惠)를 베푸는 일 ⑤가엾게 여겨 은혜(恩惠)를 베푸는 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슬플 애(哀), 슬플 오(嗚), 슬퍼할 도(悼), 슬퍼할 처(悽), 슬퍼할 개(慨), 슬퍼할 측(惻), 슬플 창(愴), 슬플 강(慷),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기쁠 희(喜), 즐길 락(樂), 기쁠 환(歡), 달 감(甘)이다. 용례로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비참한 사건을 비극(悲劇), 갑작스러운 위험이나 두려움 때문에 지르는 외마디 소리를 비명(悲鳴), 인생을 슬프게 보거나 세상을 어둡고 쓸쓸하게 생각함을 비관(悲觀), 슬퍼하고 서러워함을 비애(悲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슬프고 끔찍함을 비참(悲慘), 슬픈 가락의 노래를 비가(悲歌), 슬퍼하며 탄식함을 비탄(悲歎), 슬프면서도 마음을 억눌러 씩씩함을 비장(悲壯), 비장한 결심으로 이루려는 소원을 비원(悲願), 슬픈 운수 또는 슬픈 운명을 비운(悲運), 마음이 슬프고 쓰라림을 비상(悲傷), 마음이 아프도록 몹시 슬퍼함을 비통(悲痛), 자비심이 많은 어머니를 비모(悲母), 슬픈 기별을 비보(悲報), 애절한 그리움을 비련(悲戀), 슬픈 느낌을 비감(悲感), 슬픈 곡조를 비곡(悲曲), 슬픈 근심을 비수(悲愁), 슬프게 읊음을 비음(悲吟), 슬픈 이야기를 비화(悲話), 사랑하고 불쌍히 여김을 자비(慈悲), 기쁨과 슬픔을 희비(喜悲), 괴로움과 슬픔을 고비(苦悲), 통탄하고 슬퍼함을 상비(傷悲), 슬프면서도 마음을 억눌러 씩씩함을 장비(壯悲), 근심과 슬픔을 우비(憂悲), 근심스럽고 슬픔을 척비(慽悲), 슬픈 일과 기쁜 일이 엇갈린다는 뜻으로 슬픔과 기쁨을 번갈아 맛봄을 이르는 말을 비희교지(悲喜交至), 슬프고 분한 느낌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음을 이르는 말을 비분강개(悲憤慷慨), 슬픈 바람과 처참한 비라는 뜻으로 비참한 처지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비풍참우(悲風慘雨), 슬픔과 기쁨을 우울함과 즐거움을 이르는 말을 비희우락(悲喜憂樂), 즐거운 일이 지나가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순환됨을 가리키는 말을 흥진비래(興盡悲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