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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새울까?
<1927년 金曙汀 작사작곡, 李貞淑 노래 - 강남달>
진주라 천리 길을 내 어이 왔던고/ 촉석루에 달빛만 나무 기둥을 얼싸안고/
아~ 타향살이 심사를 위로할 줄 모르누나?
<1941년 李嘉實 작사/ 李雲亭 작곡/ 李圭南 노래 - 진주라 천리길>
특정지역을 배경으로 한 노래는 그 지역의 특성과 정서를 잘 반영한다. 그래
서 이러한 노래는 당해 지역민들과 출향인들에게 향수를 자극하고 동질감을
갖게 한다. 지역을 상징하면서 지역홍보 역할을 톡톡히 하는 노래도 있다. 그
러나 진주(晉州)의 경우 이런 노래가 너무 많아 지역 상징과 홍보측면이 오히
려 희석되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부른 노래는 진주
(晉州)가 제일 많다고 한다. 다만 그 많은 진주(晉州) 노래들도 지역 정서를 나
타내고 향수를 자극하는 측면에선 두드러진다.
제일 먼저 인용한 노래가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유행가로 알려진 진주
(晉州) 출신 김서정(金曙汀)이 작사 작곡한 1927년에 나온 <강남달>이다.
김서정(金曙汀)은 서울 중앙무대에서 활동하던 서양화가(西洋畵家)를 아버
지로, 진주기생(晉州妓生)을 어머니로 하여 둘 사이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결과로 태어난 사람으로 서울에 유학하여 만능 딴따라꾼으로 음악에는 탁
월한 재능이 있었다. '강남달' 의 노래무대는 진주남강이다. 촉석루에 외로
이 앉아 남강에 어린 달을 보며 부른 노래로, 여기서 '님'은 조국이고, '구름'
은 일제를 상징하는 말로 잃어버린 나라를 떠올리는 애틋한 선율이다.
둘째 노래가사는 1941년에 나온 흔히 진주(晉州)를 말할 때 쓰는 <진주라
천리길>이다. 이 노래는 여러 가지 뜻 깊은 가사에 조국 광복 이후에도 많
이 부르던 노래였으나, 작사 작곡 가수가 해방 이후 6.25동란을 겪는 과정
에서 모두 월북하여 1952년부터 절대금지곡이 되어 국민들 사이에는 점차
잊혀져 가는 노래가 되었다.
진주는 6.25전쟁에서 북한 인민군 6사단(사단장 방호산 소장)에게 피침 당
하여, 1950년 7월 31일부터 9월 25일까지 북한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인민군은 마산으로 진격하기 위하여 진주에 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군사행
동을 강화하자, 미군의 강력한 비행기 공습으로 시가지가 완전히 파괴되었
으며, 진주시가지를 흐르는 남강을 가로 지른 남강대교까지 폭파되어 다리
가 끊어져 강남으로 오고갈 때는 배를 타고 가야해서, 강남을 '배건너'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촉석루도 불타 없어졌다.
그리고 진주는 오랜 전통 속에 교육의 보금자리였는데, 이런 교육의 장이
었던 학교도 모두 불타 없어졌다. 그래서 1950년대 진주시민들은 휴전 이
후에도 촉석루를 읊은 노랫말이 "기둥없는 주춧돌만~~" 등으로 표현되어
절망적이고 허탈감 속에 삶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어려움과 힘드는 시절을 보내는 진주시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일
은 "진주라 천리길" 이라는 영화와 그 영화에 따른 주제곡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진주라 천리길"이라는 노래는 부르지도 못하고 언급조차 할 수 없게
된 말이라, 영화제목으로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붙인 이름이 《진
주는 천리길》이었다.
《진주는 천리길》은 1958년에 제작된 정일택(鄭一宅: 1922~1997 경남鎭海 출
신) 감독의 영화이다. 정일택 감독은 KBS방송국에서 6개월간 인기리에 방송된
조남사(趙南史, 본명 趙南憲: 1923~1996 충북永同 출신)원작의 우리나라 최초
의 라디오 드라마인 주간연속극 【청실홍실】을 영화화하여 영화감독으로서의
위치를 견고히 하게 되었다. 한편 정일택 감독의 작품으로는 이 《청실홍실》
《晉州는 천리길》 이외도 〔동백꽃〕〔백만장자가 되면〕〔어머니〕〔청춘일번가〕
〔귀향〕 등을 감독하였다.
《진주는 천리길》을 만든 사람들은 정일택 감독 이외의 영화를 만든 스탭진으
로 김석민 각본, 양보환 촬영, 김대현 음악, 제작담당 김경준 등이 영화제작에
참여하였다.
한편 이 영화 《진주는 천리길》에 출연한 배우는 김웅(金雄, 본명金鎭海, 경북
榮州 태생), 한미나(韓美那, 본명韓英愛: 1935~ ? 함남興南 출신), 성소민(成笑
民, 본명成必慶: 1922~1982 경기坡州 출신), 김정옥(金貞玉:1927~? 平壤 출신),
강계식(姜桂植: 1917~2000 충남溫陽 출신), 노재신(盧載信, 본명盧甲順: 1913
~2003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연극배우 겸 영화배우로 嚴鶯蘭의 어머니이면
서 영화배우 申星一의 장모이기도 하다), 양일만, 장훈, 노영숙 등이 출연하여
만든 영화이다.
《진주는 천리길》이 제작 완성되어 1958년 8월 27일 서울 수도극장(註;부도로
매각되어 1962.9.27에 1,400석이 넘는 대형개봉관으로 확장되어 '스카라극장'
으로 이름을 바꿨다)에서 개봉한 신파 멜로물이 바로 이 영화이다. 당시에 개
봉하는 영화는 대개 필름 2부를 만들어 서울의 개봉관 한 곳과 부산의 부산극
장 이렇게 2곳에서 동시개봉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이름
에도 '진주'라는 역사적인 도시 이름이 들어가 있고, 모든 무대나 배경도 '진주'
라는 도시로 꾸며지고 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필름을 3부 만들어 서울(수도극
장), 부산(부산극장), 진주(진주극장)에서 동시 개봉상영을 하였다. 그 당시 들
리는 말로는 진주극장 사장이 돈을 내어서 필름을 1부 더 만들었다는 말도 있
었고, 진주출신 기업가가 그 비용을 내주었다는 설도 있었다.
《진주는 천리길》이란 영화의 주인공은 금주, 원철, 인혜, 인택, 은주, 영호인데
영화주제곡 "(원철의 노래) 진주는 천리길"과 "(금주의 노래) 진주는 천리길"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 노래는 영화와 함께 그 당시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주제곡 이름과 같은 《진주는 천리길》이란 영화는 1958년 작품으로, 김웅·한
미나 주연이고 정일택 감독이다. 진주의 고급요정 <신미관>에는 금주(錦珠)
라는 여대생 딸이 있는데, 부잣집 아들인 원철(元哲)과 사귀는 사이다. 그런
데 그 금주(錦珠)네 집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금주(錦珠)를 사모하는
청년이 또 하나 더 있었으니, 그는 고등고시를 준비하는 성실한 고학생이었
다. 그러나 금주(錦珠)는 부잣집 아들을 선택하면서, 그 고학생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원철(元哲)은 청운의 뜻을 품고 금주(錦珠)와 함께 서울로 올라간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마냥 즐거움만 느끼며 함께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화려
한 서울 생활은 잠깐 뿐, 남자는 여자를 배신하고 떠나 버린다. 여자는 자살
을 시도하나 미수에 그치고 낙담에 빠져있던 중 친구의 소개로 요정 <등선
각(登仙閣)>의 기생이 된다.
어느 날 고등고시에 합격한 고학생 청년이 찾아와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말
하면서 자기와 결혼하자고 말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유명한 신파조 대사
“저는 화류계 여자, 기생의 자격밖에 없어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어!
돌아오면 되는 거야”가 등장한다. 그런 가운데 원철(元哲)은 자신의 꿈을 접
고 진주(晉州)로 내려갈 결심을 굳히면서 서울 시내에서 금주(錦珠)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원철(元哲)은 금주(錦珠)를 찾지 못하고, 두 사람은 서로 만
나지 못한다.
원철(元哲)은 서울에 있던 금주(錦珠)가 진주에 내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리운 고향땅인 진주로 되돌아 온다. 진주로 돌아온 원철(元哲)은 진주의 곳곳
을 샅샅이 들추면서 금주(錦珠)를 찾지만, 진주에 없는 그녀의 행방을 알길이 없
어 절망 속에 탈기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원철의 노래" (진주는 천리길)》이다.
♣ 원철의 노래 (진주는 천리길)
♣️손인호- 진주는 천리길 (원철의노래) (youtube.com)
진주(晉州)에 돌아와서 금주(錦珠)를 찾지 못한 원철(元哲)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된다. 그 동안 서울에서 많은 돈을 모은 금주(錦珠)가 진주(晉
州)로 돌아와서 원철(元哲)을 찾아온다. 그런데 마침 그날이 원철(元哲)의 결혼
식 날이었다. 금주(錦珠)는 원철(元哲)의 결혼 식장 한 모퉁이에서 신랑 신부가
막 결혼식을 마치고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며 한없는
눈물을 짓는다. 영화음악은 김대현이 맡았고, 노래는 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에
손인호와 황금심이 주제가를 불렀다.
이 장면에서 영화의 주제가 《"금주의 노래" (진주는 천리길)》가 흘러나오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반겨줄/님이라서/찾아왔건만/발길을/돌려야 할/사랑이
었네/상처난/가슴안고/울고 갈 길을/어이해/내가 왔나/진주는 천리길’. 작사
는 ‘릴리리 맘보’로 유명한 부산 출신 천봉이 맡았고, 작곡은 ‘오동동 타령’의
한복남이 담당했다. 노래는 황금심이 불렀다.
주연배우 김웅은 1957년 ‘가거라 슬픔이여’를 통해 인기스타가 됐고 80여 편
의 영화에 출연했다. 여배우 한미나는 흥남 출신으로 월남해 1958년 ‘장미는
슬프다’로 데뷔했고 ‘종말 없는 비극’, ‘끝없이 하염없이’에도 주연으로 출연했
다. 아쉽게도 이 필름은 현재 유실되어 다시 감상할 수 없다고 한다.
♣ 금주의 노래 (진주는 천리길)
♣️황금심-진주는 천리길 (금주의노래)_ (youtube.com)
두류봉 개인으로는 이 영화는 생전 처음 본 영화이다. 두류산 남녘 산골짜기에서 태
어나 국민학교생활(1951.4.1~1957.3.31)을 마치면서, 중학교 입학시험으로 특차는
진주사범학교병설중학에 응시하였고, 1차는 부산의 어느 중학에 응시하여 모두 합
격하였다. 그러나 정작 입학은 부산에 살고 있는 종형(일본식민지시절 東京商業卒)
의 주선으로 부산의 소위 명문중학에 입학했으나, 넉달만에 자퇴하고 고향으로 돌
아와 농사를 짓고 지냈다. 양친부모님이 모두 6.25전쟁 중에 돌아가시고 형제자매
가 뿔뿔이 흩어져 남자라고는 아무도 없는 집안이라, 오직 형수(兄嫂)를 따라 농삿
일을 하면서 서당의 한문고급과정을 공부하는 2년차 되는 해였다. 필자는 그때 漢
文儒學四書中大學과 論語를 마무리하고 中庸 과정으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그 당시 두류봉의 고향마을은 80가구 정도이면서 동네 인구도 500명을 넘었고, 한
해에 태어나는 신생아가 20명이 넘던 시절이라 동네사람들 구성원 중에서 청소년
들이 엄청 많았다. 모든 집집마다 농사를 짓는 농업위주의 생활방식이라 음력 절후
명절따라 한달에 하루씩 놀면서, 놀이문화를 외지에서 들어온 젊은 머슴들이 주도
하고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농삿일 이외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은 의사(醫師)가
한사람, 면서기가 2사람, 그리고 국민학교 교사 한 사람이 있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생활은 겨울엔 산에서 땔감만 해와서 겨울내기를 하면 되지
만, 양력 4월부터 11월까지는 항상 논밭에서 지내야 했다. 특히 진주지역은 논에도
겨울보리를 심어 6월에는 수확하고 보리를 벤 논을 갈아엎어서 물을 댄 후, 써레질
을 하여 모내기를 하여 벼논으로 만들기 때문에 보리타작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바빴다. 온몸이 땀 범벅이 된 상태에서 보리까시랭이가 전신을 찔러 대고, 특히 겨
드랑이나 사추리에 파고들어 살을 찌르면 따갑고 몸에 열이 펄펄나면서 온몸이 아
프기까지 하였다.
양력 8월의 농삿일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너무 더운 계절인지라, 필자처럼 작은 몸
집에 아랫도리엔 삼베잠방이를 입고, 윗도리 삼베적삼을 걸치고 벼논을 매는 일은
어렵고 고통스러움을 이겨내어야 한다. 특히 처서(處暑) 무렵의 맞논 매는 일은 벼
가 많이 자라 볏잎이 온 얼굴을 갉아 대고 다리에는 뱀과 거머리가 달라 붙으면서,
종아리는 볏잎으로 온통 베어져 있다.
그 시절 필자가 소속된 단위면(面)에는 약 50개의 단위 마을이 있어, 8월15일 광복
절에 면소재지에서 광복절 기념식을 한 후 부락대항 축구대회와 배구대회를 하였
다. 1958년의 백중(음력7월15일)이 8월29일이었는데, 맞논까지 매고난 후라서 그
날 동네 청년들과 읍으로 가서 《진주는 천리길》이라는 영화를 진주극장에서 보았
다.
[필자가 자란 마을은 현재는 행정상 산청군에 속하지만, 1914년 이전은 진주에
속했으므로 오랜 언어의 관습상 진주시내를 그냥 읍이라고 말한다]
▲ 진주시가지와 진주성 및 남강
진주는 천리길(원철의 노래) 1958 손인호 👍[ ysblue2002님의 선물 ] 0199 (youtube.com)
[남덕소리♪] 가수 남우현 - 진주는 천리길 (원곡 손인호) (youtube.com)
진주는 천리길 (元哲의 노래)
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 손인호 노래
아~ 진주 남강, 푸른 물에 우는 새야
촉석루에 달빛 아래 청춘은 노래하네.
그 시절, 그 사람이 한없이 그리워서
대숲을 헤매돌며 추억에 운다.
아~ 진주 남강, 흐른 물에 뜨는 달아
내 가슴을 울려놓고, 말없이 떠나버린
그 사람 돌아오길 이 밤도 기다리며
백사장 주저 앉아 미련에 운다.
♣️ 진주는 천리길(금주錦珠의 노래) 1958 황금심 (youtube.com)
진주는 천리길 (錦珠의 노래)
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 황금심 노래
반겨줄 님이라서 찾아왔건만
발길을 돌려야 할 사랑이었네
상처진 가슴안고 울고 갈 길을
어이해 내가 왔나 진주는 천리길
사랑에 버림받은 서러움 속에
오로지 그 사람의 행복을 빌며
모두가 운명인 걸 원망하랴
청춘의 슬픈 노래 진주는 천리길